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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LINA Feb 22. 2023

대학교 안 가도 성공할 줄

 '좋은 대학을 나와야...',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학교에 들어가야...', 대학교 가야 된다는 이야기는 초등학생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들어왔다. 그 대학,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매일 같이 대학생들의 취업난 이야기가 매스컴을 채웠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간다는 서울대를 졸업해도 취업률 40%인 이곳에서 나에게 대학은 썩 매력적이지 않았다. 중고등학생 때 국영수 열심히 공부해봤자 커서 써먹지도 못하는데, 교육과정 공부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때 취업률 98%인 특성화고등학교 홍보 용지를 보았다. 홀린듯이 입학설명회에 참석하였다.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대학교를 졸업해도 가기 힘든 기업들에 입사한 사례를 보며 믿음이 생겼고 바로 지원했다.


 특성화고등학교에서의 3년은 치열했다. 입학 커트라인이 중학교 내신 13%인 만큼, 소위 서울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였고 경쟁은 과열되었다. 아침 8시 이전까지 등교하면 되는데 학교에서 집까지 한 시간이 걸렸기에 매일 7시 이전에 집을 나왔다. 특히 동아리 활동이 있는 날이면 (주 3회 동아리 활동을 했다.) 한 시간 일찍 등교하여 캄캄한 새벽길을 나섰다. 오전 5시 30분. 지하철 첫 차가 운행되는 시간이다. 아직 밖은 어두운데 지하철에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사람들 모두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고등학교 1년 루틴은 이러하다. 3월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만큼 신입생 환영회가 있고 동아리 홍보에 열을 올린다. 4월이 되면 중간고사가 있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배구연습을 하게 된다. 5월에 있을 교내 배구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이다. 6월에는 다시 기말고사를 치르고 바로 합창대회 준비에 매진한다. 여름방학이 되면 방과 후 수업을 듣게 된다. 특히 3학년 학생 중 취업이 되지 않은 학생이라면 매일 나와서 취업특강을 듣고 취업의 기회를 엿봐야 한다. 취업은 남이 떠먹여 주지 않는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엔 각종 현장학습과 산업체 방문을 하고 10월 중간고사를 본 뒤에는 체육대회에 참여한다. 3개교가 같이 진행되는 행사인만큼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영어말하기 경진대회 같은 경연도 몇 번 개최되는데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기말고사 기간이 되고 한 학년을 마무리하게 된다. 1년 12개월을 꽉 채워 보내면서 자격증 시험은 주기적으로 봐줘야 한다. 취업할 때 전산회계 1급과 컴퓨터활용능력 2급은 꼭 필요로 하기 때문. 그렇게 고등학교 3년간 IT, 무역, 회계, 언어 자격증 모두 포함하여 15개를 취득하고 졸업했다.


 교외 활동도 열심히 한 편이다. 중학생 때는 주말만 되면 학원에 가야 해서 정신없이 살았는데, 막상 학원 갈 일이 없으니 무료했고 의미 있는 보람찬 일을 하고 싶었다. 정기 봉사를 알아보던 중, 구 내 청소년회관 운영위원회 모집 공고를 보았고 바로 지원했다. 아이디어 펼치는 것을 좋아해서 기획팀에 들어갔다. 얼떨결에 기획팀장까지 맡게 되어 좀 더 다양한 일을 해보았다. 청소년 프로그램 기획 및 전반적인 운영관리를 맡았고 새로운 기관과 협업을 통해 격주로 요양원 봉사에 참여했다. 시설 뒤 버려진 땅을 개간하여 농작물을 심고 겨울에 수확하여 김장을 담근 뒤 요양원에 지급하기도 했다. 그 외 국가유공자 어르신들을 위한 자서전 집필 활동, 북한이탈주민 학생들과 교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참여했다. 운영위원회 활동은 2년간 연임했는데 봉사시간만 300시간이 넘었다.


 고등학교 3년간 바라온 기업에 취업한 순간까지 모든 게 순탄대로였다. 3년간 고생한 보상을 받는구나. '역시 대학교는 빛 좋은 개살구야', 나의 선택이 언제나 옳았다는 자만감에 빠져 있었다. 특성화 고등학교 진학을 반대했던 가족들에게 성공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꿈에 그리던 사원증 찍고 들어가는 큰 기업에 입사했지만 회사 내부 모습은 달랐다. 종이 쪼가리라고만 생각한 대학교 졸업장이 승진을 결정하고 연봉을 정하는 세상이었다. 정부는 고졸차별을 없앤다고 공공기관 입사 지원 시 학력 기재칸을 없앤다고 하는데, 사실 이 세상의 90%는 민간기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뭐야, 대학교 안 가도 성공할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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