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사랑 받으려 하면 안되는 이유

작가 사용 설명서

by 도향


인간이란 동물은 서로 협력하고 공생하며 살아간다. 사회에서 내가 맡은 임무를 책임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예를 들어 내가 SK 하이닉스에 다닌다면 아이폰에 들어가는 칩을 만드는데, 그리고 그 칩과 관련된 부분을 담당하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농사를 지어 우리의 밥상을 책임지고, 누군가는 요리사가 되어 그 재료들을 맛있게 조리하고, 또 누군가는 가구 디자이너가 되어 내가 잠잘 침대를 디자인한다.


모두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가장 신경쓰는 것은 각자의 능력이다. 하지만 잊고 있는 점 한 가지는 그 능력을 서로 잘 협력하고 끌어올릴 수 있는 의사소통이다. 의사소통은 사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A가 B라는 사람을 아무리 사랑한다 한들, B라는 사람이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서로가 생각하는 상대의 모습이 다르게 된다. 때문에 애정표현 (사랑, 스킨쉽)등을 사람들은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서로를 챙기는 행동에 대한 부분은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말해보겠다.


거짓말을 하면 안되는 이유


사람들은 흔히들 사회에서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가면을 쓴다. 쉽게 생각하면 정치적 성향도 이에 한 부분이다. 요즘 미국에서 “보수주의”라고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밝히는 것은 유사 자살행위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을 숨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속내, ‘진실’은 말하지 않되,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침묵을 유지하는건 괜찮지만, 자신의 속마음과 반대되는 것을 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이 상황에는 3가지 결과가 존재한다.


첫번째,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냥 무슨 말을 하건 말건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사람들의 반응이다.


두번째, 이 거짓말을 싫어한다. 아니, 내가 거짓가면, 화장을 한 예쁜 얼굴의 가면을 썼는데, 누군가가 이걸 싫어한다면, 왜 굳이 가면을 쓰는가? 가면 뒤의 내 실제 모습은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은가?


셋째, 이 거짓가면을 좋아한다. 그러면 진정한 내가 아니라 껍데기 가짜 가면을 좋아하는 것이기에 의미가 없다. 상대방 입장에선 “완벽한 버전의”, ideal version(이상적인 버전)의 "나"를 좋아하는 것이기에 나를 좋아하는지는 미지수이다. 이 경우가 가장 위험한데, 원하지 않는 똥파리를 꼬아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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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아빠와 라멘을 먹고 돌아오며 한 얘기다.


"닌 아빠 차 좀 빌려달라고 할법도 한데, 한번도 빌려달라는 말을 안한게 참 용하다."


내가 대답했다.


"물론 아빠 차 한번 운전해보고 싶긴 해요. 그런데 사고칠 가능성은 둘째치고, 내가 멋진 차를 타게 된다면 나를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사람들, 나를 우러러 보는 사람들이 바뀔거란 걸 알고 있고, 그게 등가교환이 아니라 손해를 보는 행위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빠 차 안 타죠."


쉽게 생각해보자. 내가 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면 그걸 동경하는 사람들은, 고생없이 빠른 나이에 돈을 벌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호날두의 슈퍼카와 슈퍼모델 여자친구들은 부럽지만, 그에 따른 미친 개인 훈련시간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나는 절대로 그런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절대로 보여주기식 소비를 하지 않는다. (돈이 없는 것도 맞긴 하다…)


이 세가지 케이스 전부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된다. "침묵은 지키되, 거짓은 말하지 말자"이다. 난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나 자신"을 정말 열심히 확성기에 대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닌 것 같은데, 이 때문에 잃은 친구들도 꽤 되는 것 같다. 잃은 친구들 중에서 정말 멋진 사람들도 많았지만, 결국 내 사상과 신념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고통을 준다면 슬프게도 그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참고로 나는 나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설득하는 경우가 절대 없기에 "내 생각의 존재 자체"가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로 남는 좌파진보, 종교 혐오자, 성소수자에게 샤라웃합니다. 감사하고 리스펙 합니다.)


그렇게 나는 내 생각만을 말하며 깨달은 몇가지가 있다. 최근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원하는 대로 말하기"이다.


최근에 엄마와 사소한 말다툼이 있었다.


내가 하루는 집에 오후 8시에 들어와서 바로 엄마가 차려준 저녁을 먹을 예정이었다.


"빨리 먹어라. 치워야 된다"라고 했다.


분명히 어제는 빨리 먹으면 체하니까 천천히 먹으라고 한 사람이 오늘은 왜 이럴까? 물론, 내가 그 둘의 차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게 아니다. 어제는 내가 냉면을 거의 두입만에 다 먹으려고 하니까 체할까봐 걱정돼서 한 말이고, 오늘은 내가 늦게 들어왔으니 빨리 밥상을 정리해야해서 한 말이다. 그래서 보고 있던 폰을 내려두고 고기를 30초는 처다본 것 같다. 꽤 긴 시간이었다.


"왜 어제는 빨리 먹지말라고 하고 오늘은 빨리 먹으라 해요?"


엄마가 내게 속마음을 털어놓으셨다. 자신은 집에 누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서 저녁을 준비하고 저녁식탁을 치우고 본인이 할 일을 하는데, 도대체 내가 일찍 들어오지를 않으니 하루종일 기다리다 지쳤고 본인이 할 일이 밀렸으니 짜증이 나고 이런 서운한 부분을 알면서도 내가 휴대폰을 보고 있는게 화가나고 속상해서 그런말을 했다고 했다.


첫째, 그 돌판 위에 있는 고기를 한입에 전부 털어넣었으면 입안에 화상도 입고 체했을 것이다. 둘째, 내가 폰을 내려놓고 고기를 멍하게 때려보니 엄마의 표정이 풀렸다. 셋째, 내가 엄마보고 기다리라고 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여기서 살짝만 강조하자면, 주로 어른들은 휴대폰을 보는게 '딴짓을 한다'와 직결된다. 내가 급한 업무와 관련된 이메일을 폰으로 처리해도 엄마 눈엔 '딴 짓'일 뿐이다. 그러니 직장에서 노트나 메모를 할 일이 있다면 보여주기 식으로라도 종이 메모지와 펜을 꼭 쓰자.


아무튼, 포인트는 '내가 서운하니까 집 오는 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일찍 다녀줘'라는 말을 엄마는 "빨리 먹어"로 암호화해버렸다. 해독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하지만 내 인생의 100%를 나는 엄마의 아들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거기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과연 이것이 나의 불찰일까?


그 날 저녁식사를 하던 중, 아빠가 왔다. 그러고 엄마는 아빠 앞에서 "소파가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은데, 새로 바꿔야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아빠가 "돈 없다!"라고 답을 했다. 그러니 엄마가 말했다.


"아니 내가 소파를 바꿔야된다고 했지 누가 소파 사게 돈 달래? 당신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어."


눈치를 챘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과 살면 피곤하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그런 여자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편할땐 생각대로 말하고, 또 어떨땐 꼬아꼬아 암호화해서 말한다. 그리고 해석하는 건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낸 아빠와 나의 몫이다. 본인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바꾸기 어렵고, 이정도나 같이 살았으면 내가 그걸 이해하는게 본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본인의 생각을 입밖으로 내뱉는 연습을 해본적이 없어서 남들에게 '이해를 바라는' 아주 전형적인 책임전가자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본인의 의무를 남에게 전가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사회부적응자의 태도로써 남들의 발목을 붙잡기만 할 뿐이다.


나는 이런 형태의 대화를 너무나도 많이 목격했다. 특히 여자들은 "물 마시고 싶어"를 "오늘 날이 좀 덥네"라고 표현을 한다거나 "아, 목 말라"로 표한한다. 그런데 그나마 직설적인 "목 말라"와 "물 마시고 싶어"는 전혀 다른 두가지 뜻이다. 하나는 현재 나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의 필요성을 말하는 말이다. 한쪽은 보디빌딩 대회 때문에 단수중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고 (목이 마르지만 물은 주지 마세요), 한쪽은 방금 갓 운동을 끝낸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현실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부산대 근처에 사는 여자친구가 있다고 치자. 할일도 처리할겸 그녀 주변에 도착했고, 집 가기까지 3시간 정도 시간이 비었다. 나는, "보고 싶어. 너네 집 주변이고 시간이 3시간 정도 남는데 만날래?"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개의 여자들은, "심심해. 아참, 나 지금 부산대 근처야"라고 말한다. 도대체 왜 "A라고 말하면 B라고 이해해줘"라는 태도를 취하는 걸까? 이건 정말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알려주겠다.


우선, 내가 빙빙 돌려 말하는, 우리 엄마같은 사람이라고 하자. 그러면 나는 주변 사람들한테 원하는 것을 말할때도 있고, 암호화하고 남이 해석하게 둘 때도 있다. "언어" 자체도 결함이 있는 소통수단인데, 그걸 암호화까지 한다? 내 진심이 남들에게 닿을 확률이 너무나도 적다. 여기서 언어 자체가 결함이 있다는 것은 짧게 설명하자면, 내가 아무리 '사랑해'라고 한다한들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고, 아마 장거리에서 연락을 하면 싸우는데, 얼굴을 보고 대화하다가 다툰적이 없는 연인들은 공감할 것이다. '너'는 '나'가 아니니까 내가 느끼는 감정, 하는 생각을 전부 알 수 없으니, 그것을 '입'이라는 출구로 나오는데 그 출구로 도착하기 전에 문제가 있을수도 있고 남의 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다르게 해독해서 들을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개인이 남과 소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있는 그대로 말하기"이다. 내가 원하는 경지는, 남들이 다른 누군가와 대화할때는 어떻게 하건 상관이 없지만, 나와 대화를 할때는 "목말라"와 "물 마시고 싶다"의 차이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인지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난 물이 마시고 싶으면 물이 마시고 싶다고 하고 내가 찾아마신다. 그런데 목은 마르지만 물을 마시면 안되는 상황일땐 (곧 달리기나 축구를 해야할때)는 죽닥치고 있거나 목마르지만 마시면 안된다, 등의 말을 한다.


그래서 처음에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를 되게 어렵게 생각한다. 굉장히 무례하고 직설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남기고 남들은 다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해가 쌓이지 않고 의사소통이 쉽고 편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방식을 채택했을 뿐이다. 남 입장에선 항상 선물을 받으면 포장을 풀어서 내용을 봤는데, 내가 하는 말은 포장을 푸는 고생을 안해도 된다는 것을 인지했을때의 그 편안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굳이 '이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의 무의식을 갖고 나와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 같다. (아, 그리고 항상 나와 처음 만나는 사람은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찾거나 뼈가 담겨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건 마치 내가 아이폰을 줬는데 그 안에 선물이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아이폰을 분해하는 것과 같다. 내가 강아지를 선물해줬는데 강아지를 해부한 것과 같다. 한마디로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말이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거짓말을 하지 말고, 나에게는 돌려말하지 말아라. 그리고 내가 하는 말도 꼬아 듣지 말아라. 이걸보고 '도향 사회생활 끝났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이걸 '직장'이나 '업'에서는 굳이 강요를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확실한 위계질서와 상하관계가 있는 구조에선 특수성이 부과된다. 그저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이나 가까운 사람, 가족에게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도향식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이 글에 대한 제목을 한참을 고민하다 깨달은게 있다. 이 글은 확실한 작가 본인, 도향 사용 설명서이다. 나와 대화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내가 위에 쓴 글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거다. 난 당신의 말을 해독하는 귀찮고 피곤한 일을 하고 싶지 않고 (나도 하는 경우가 간혹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반드시 내가 이익을 쟁취한다. 그러니 나랑 그런 게임을 하는 것은 피하길 바란다) 당신도 내 말을 귀찮고 피곤하고 의도된 바와는 반대로 해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과 말을 섞기 싫으면 나는 분명 당신에게 그 의사를 전달했을것이고,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면 난 당신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점을 유의하고 내가 하는 말을 듣거나 나에게 말을 해주길 바란다.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맙고, 내 블로그 글들을 읽어주어 감사하다.


본 글은 2025. 7. 6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