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없다
공부는 보험이다. 미래에 원하는 방향이 생겼을때 걸림돌이 되지 않게 하는 보험. 고2때까지 공부에 열중하지 않고 나중에서야 꿈이 생겨 부랴부랴 공부하는 케이스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 값이 전부 동일하기에 (초등 교육 6년, 중,고등 교육 6년이라는 시간의 값어치) 이왕이면 가장 빵빵한 보험을 드는게 안전하다. (학벌)
젊을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배로 고생한다..
하지만 공부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다. (심지어 이 비싼 보험이 나중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의대에 진학했는데, 다른 꿈이 생겼다면, 그는 과연 과감히 포기할 수 있을까? 비싼 보험의 대가이다.) 공부를 하지 않고도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일단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여기선 도향식 성공한 인생의 정의를 내리겠다.
1.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을 수 있는 인생
2. 최소한 직계 가족 정도는 책임질 수 있는 인생
3. 월요일이 고통스럽지 않은 인생
4. 내일을 걱정하며 잠들지 않고, 눈뜨는 것이 괴롭지 않은 인생
내가 생각하는 "니 인생이 성공했는가 안했는가"를 위한 심사대는 30대 초반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가정을 꾸릴 나이고 어느정도 사회 경험을 한 나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30대때부턴 인생이 진짜 실전이고, 현실이 가차 없이 니 뺨아리를 갈길 것이다. 그러면 방구석 진지충 만 22세 도향은 뭘 해야할까?
내가 도달한 결론은 간단하다. 20대엔 최대한 경험을 많이 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이왕 실패할거라면 빠르게 실패하고 빠르게 일어나자. 내가 지금 당장 현재 이걸 실천하는 방법은 꽤 다양하다. 스타트업 창업, 물리학 공부, 양자 컴퓨팅을 비롯한 다양한 연구소 지원, 봉사활동, 파이낸셜 모델링 포트폴리오 준비, 뉴욕 금융가의 증권맨들과 네트워킹 등등. 내가봐도 어떻게 이걸 다 한번에 저글링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의문점, '어떤 커리어를 선택할 것인가'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만한 방법이 없다. 20대때 내리는 이 결정이 꽤나 오래, 큰 영향이 있을텐데, 이왕이면 확신이 있는 결정을 내리면 좋지 않은가. 예를 들어 물리학 박사를 따기 위해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는데 졸업후 30대 초반에 이 모든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게 아니란걸 깨달았다면, 그때 어떤 방향으로 틀어야할지에 대한 결정은 현재의 경험이 바탕이 되지 않을까? 만약 현재 물리학 한길만 파다가 대학원 졸업 후 이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때 과거 다른 분야에 대한 경험, 데이터가 없다면 말 그대로 좆된 상황이 아닌가. 그래서 난 조금이라도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고 있다. 하지만 이건 단순히 내 생각이고, 이젠 "객관적인 인생의 정답"에 대해 얘기를 해보겠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작년 초여름쯤에 깨달은 삶의 진리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서이다. 당시 나의 관점으로 글을 이어나가보겠다.
20대때 매일 술처먹고 관리 안하는 병신들은 산소가 아깝다. 저럴려고 부모님이 등골이 휘어가며 중고딩때 학원보내고 밥 먹여주고 입혀준게 아닐텐데.. 아 아니다.. 대다수의 20대가 저런 인생을 사니까 덕분에 내가 너를 밟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난 나중에 너한테 월급을 주는 사장이 될거고, 넌 내 노예가 될거다. 지금 너가 대학가에서 소주 빨면서 술게임을 할때 나는 벤쳐 캐피털과 엔젤 투자자들과 미팅을 할것이고 너가 일주일에 두번이나 가는 인생네컷을 찍을때 나는 운동을 하러 갈 것이다. 그 덕분에 20년 뒤에 너는 소중한, 세상을 전부 주고 싶은 너의 자식에게 "우리 형편에 그 학원은 무리야 / 유학은 무리야 / 운동은, 음악은 무리야"라고 말해야할것이고 와이프한테 "쓸데없는데 돈 낭비 하지말라고 했잖아"라고 싸움을 벌일때 나는 "내년에는 어떤 도시에서 살고 싶어?"라고 와이프한테 물을 것이고 내 자녀가 원하는 교육은 무조건 받을 수 있게 할것이다. 내가 8시간 자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을때 넌 직장 상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게 눈치를 보느랴, 집안에선 와이프 눈치를 보느랴 하루하루가 고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직장 상사의 상사의 상사는 내 눈치를 봐야하는 사람일 것이다. 난 잠에서 깼을 때 출근이 귀찮거나 피곤하면 일을 안 갈 것이고, 오늘은 가족과 하루를 보내고 싶으면 출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너는 몸이 아파도, 잠을 4시간 밖에 못 잤어도, 하루하루 날이 다르게 커가는 자녀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며 사무실이라는 감옥에서 살아야할 것이다. 나는 자유로울 것이고 너는 구속돼있을 것이다. 내 밑의 100명의 직원분들이 고생해서 혁신을 이뤄내도 결국 스포트라이트는 대표인 내가 받을 것이다. 그런 대단한 직원들을 두기 위해, 나는 지금 뼈를 갈아야한다.
그렇기에 내 20대는 유흥을 즐기지 못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 당연한 이치니까. 20대들의 90%처럼 살면, 나중에 40대의 90%처럼 살아가야한다. 술 먹으러 가는 니네가 단 하나도 부럽지 않고, 지금 명품을 자랑하고 해외여행을 가는 너네 인생이 진짜 하나도 부럽지 않다. 지금 너네가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지금이 니 인생의 최전성기이고 앞으론 그 과거의 영광에 취해 살아야할 것이고 다신 돌아오지 않을, 맛볼수 없는 그 달콤한 맛을 최대한 음미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덜 미안하니까.
이런 마인드로 살아가던 나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회사에서 만난 1살 위의 민호형이었다. 정민호. 민호형의 첫 인상은 '잘생기고 옷 잘 입는다. 자신감이 있는 남자다.'라는 생각이었다. 친해지고 싶은 정말 웃긴 사람이었다. 하지만 약 1주일이 지나고 알게된 사실은, 정민호씨는 본인의 수입의 80%이상을 옷에 쓴다는 것이었다. 민호형은 1년 이상 회사를 다닌 어른이었기에 월수입이 결코 적지 않았는데, 80%는 옷에, 20%는 술에 쓰는, 당시의 내 눈엔 인생 조지는 정석을 걷고 있었다. 너무나 이해를 할 수 없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했다. "형 인생 좆된거 아니에요? 그렇게 살지 마세요" 친해진지 얼마 안된 사람에게 난 훈수를 두었다. 왜냐하면 수입의 75%는 어떤 방식으로든 투자를 해야 성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호형은,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어이가 없었다. 아니 당연히 지금 이따위로 돈 관리를 하면 나중에 나이 먹으면 진짜 제대로 한강직행 인생일텐데, 이 자명한 대답을 해야하나 싶었다.
여기서 같은 회사 직원이었던 근우형이 한마디를 한다. "도향씨가 사는 인생의 방향이 있고 민호씨 방향이 있는거죠. 도향씨가 생각하는 인생의 정석이 절대적인 옳음이 아니잖아요" 이게 뭔 개소리지 싶었다. 백번 이 말이 맞다해도 도저히 민호형의 인생이 정답인 논리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민호형이 납득 시켜줬다.
정민호씨는 본래 부경대 건축학과를 재학중이었다. 부경대는 나쁘지 않은 학교고 건축학과면 그래도 공대쪽이니 먹고사는데 당장 큰 걱정을 할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호형은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방향일까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고, 본인이 추구하는 패션을 배우기 위해 자퇴를 하고 파리로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Fashion에 대한 그의 passion은 대중적인 기준의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걸 들은 나는 정말 심장이 철렁했다. 그의 결정이 너무나 대단했고, 부러웠으며, 엄청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이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인생의 성공이란, 행복이란 정말 주관적인 것이며, universal한 기준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벌써 민호형은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알고 있었다. 23살이란 나이에. 엄청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자퇴를 할 수 있었다. 크게 두렵지도 않았을 것이다. 똥인지 된장인지 확실히 찍어먹어봤으니까. 그에겐 뚜렷한 정답이 보였으니까.
반면 나는 물리를 해야하는지, 사업을 해야하는지, 물리를 하면 어떤 세부 분야를 파고 들어야하는지, 사업을 한다면 어떤 분야를 해야하는지, 아니 그냥 대학을 졸업하면 뭘해야할지 감도 안 잡히는데, 내 passion에 대한 감도 못 잡았는데,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고 익사하지 않기 위해 생존의 허우적임을 하고 있는데 민호형은 이미 나침반이랑 지도까지 있는 배의 선장 같았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돈을 무식하게 쓰는 사람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그 옷에 대한 경험을 쌓고 그의 패션에 대한 철학을 쌓기 위한 투자였던 것이었다. 자기개발이자 가장 현명한 투자였다. 나에게 옷이란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 갖춰야하는 거적대기와 같은것이었기에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여기서 장님은 나였다. 진실을 보지 않고, 내가 진리라고 소리지르고 있는 멍청이였던 것이었다.
이 사건 뒤로 민호형을 굉장히 리스펙하게 되었다. 같이 책 이야기도 하고, 철학 이야기도 하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다. 민호형을 이해하고 나니 그의 인생에 대한 태도가 궁금했다. 알게 되면 알게될수록 멋진 사람이었고, 가치관이 너무나 멋진 사람이었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예술적인 사람이었고, 때때론 민호형이 정말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있을땐 민호형이 시원하게 풀어줄때도 있었다. 내가 어떤 것을 바라보는 관점을 민호형과 공유하면 민호형은 정반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한번은 민호형에게 "미래의 개인 브랜드가 나이키 같이 대중적인 의류 브랜드 CEO vs 동네에 있는 작은 옷집이지만 확실한 마니아층이 조금 있는, 생계유지 겨우 되는 옷집 사장되기"를 물었을때에 대한 서로의 다른 대답과 그 대답에 다다르는 논리등의 얘기는 너무나 재미있었다. 난 인생에 하고 싶은걸 이미 다 이룬 느낌이라 앞으로의 인생은 "덤"처럼 개인적인 욕심 없이 미래의 배우자와 자식을 위한 인생을 살아가고 싶었고, 민호형은 아직 이루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기에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단 1도 없었다. 일찍 민호형을 만나서 너무나 고맙고 또 무례한 나의 첫 인상에 미안했다. 나에게 민호형은 "인생에 정답은 없다"라는 걸 보여준 완벽한 예시였다.
지금은 누군가를 한눈에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일반화하지 않는다. 정민호가 가르쳐준 깨달음 덕분에. 인생을 확실히 조지는 법 같은건, 인생의 “오답”이란 개념은 확실히 실패한, 후회 가득하고 떳떳하지 못한, 패배자 4-50대들이 만든 개념이다. 승자들은 인생에 정답이 없다고 믿는다. 너가 하고 싶은걸 했으면 좋겠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지 않고 정말 너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걸 선택했으면 좋겠다. 20대때 그걸 찾는건 희귀하지만, 당신이 어떤 길을 걷든 나는 응원한다. 그리고 이미 찾았다면 정말 축하하고, 꼭 성공하길 기도하겠다. 이것만 보면 민호형이 좀 신격화 돼있는데, 그만큼 인간미도 있고 무엇보다 정말 재밌는 사람이다. 민호형 너무 보고 싶고, 합격 발표, 좋은 소식 기대할게!
이 글은 2025년 3월 8일에 작성되었습니다. 민호씨는 현재 파리의 디자인 스쿨에 합격하여 프랑스에 거주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