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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리머 Jan 29. 2023

결국은 엄마에게 죄인이 되는 딸

워킹맘 기자의 삶

우리 엄마는 '젊은 할머니'다.


아직 환갑이 채 되지 않으신 나이에

이미 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첫 손주를 두신 엄마.


엄마는 23살, 아빠와 결혼을 하셨다.

나보다 조금 앞서 생겼던 아기 때문에 아빠와 결혼을 하셨는데,

결혼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유산을 하셨다고 한다.


운명이려니, 하고 기다리다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내가 찾아왔고

엄마는 그렇게 '엄마'가 됐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키도 작고 앳된 얼굴의 엄마를 보고

늘 "애가 애를 낳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엄마는 지금도 굉장한 동안에 미인이셔서,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가면 늘

"이모가 조카랑 똑 닮았네"라는 소리를 자주 듣곤 한다.

(하지만 난 아빠를 훨씬 더 많이 닮았다.. 는 슬픈 사실...)


그럼 큰 소리로 "이모 아니고 우리 엄마예요!"라고 외치곤 했는데,

엄마는 싱글벙글 그 상황을 즐기시곤 했었다.


길을 가다 보면 누군가 소곤거리듯

"연예인 000 아냐?"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게 고우신 우리 엄마.

하지만 젊은 시절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


찬찬히 되돌아보면 꼭 '드라마 속 이야기'같은 삶이었다.




아빠는 사업을 하셨었는데, 제주도나 강원도 같은 산지에서

직송으로 농수산물을 넘겨받아 도소매업자들에게 판매하는

유통업을 크게 운영하셨다.


사업이 정말 잘 됐을 때는 '돈방석'에 앉았다.

내가 유치원생이던 때는 2층 짜리 으리으리한 단독주택에서

고급진 옷만 입고 살았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미술·피아노 같은 예체능을 모두 과외 수업을 받았고,

유명 서예가에게 서예 교습을 받기도 했다.

미국에서 직구입한 비디오테이프로 영어 동영상을 늘 틀어주셨고,

몬테소리 같은 고급진 교구가 집안에 갖춰져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삶은 갑자기 불어닥친  IMF로 완전히 무너졌다.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채 집안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우리 집 곳곳에는 소위 '빨간딱지'라 불리는 가압류 딱지가 붙었고,

정말 옷가지만 끌어안고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다.


지하 단칸방 문을 열고 들어서던 순간의 매 쾌한 냄새를 잊지 못한다.


그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기엔 어린 나이였는데도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인지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냄새 때문이었다.


꼬리꼬리한, 오래 묵은 장판지 아래에서부터 스며 나오던 그 곰팡이 냄새.

나와 내 동생 손을 잡고 그 집 안으로 들어서던 엄마의 표정까지.


마치 드라마 속 한 장면 같았다.




엄마는 그때부터 손발을 걷어붙이고 일을 하셨다.


유치원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어린 남매를 챙겨 학교에 보내고 유치원으로 향하셨고,

유치원 선생님으로 일하시면서 보조교사에 차량 교사까지

부수입이 가능한 모든 일을 도맡아 하셨다.


참으로 고된 시절이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우리를 키우시면서

부업으로 인형눈 붙이기에 봉투 붙이기 같은, 정말 그 시절 집에서 하던

부업이란 부업은 다 갖다 하시고 새벽녘 잠이 드시곤 했다.


유치원 선생님이 집에서 저런 부업을 할 거라고는

아마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엄마는 그 시절 치킨을 시키면 목과 날개만 드셨다.

본인은 그 부위가 맛있다고 하셨다.


나와 동생은 엄마가 정말 목과 날개를 좋아해서 그 부분을 늘 골라 드시는 줄 알았다.


어느 날 세월이 많이 흘러 치킨을 함께 시켜 먹는데

당연하다는 듯 우리가 엄마 앞에 목과 날개를 따로 빼놓자


"나도 날개보다 다리를 좋아한단다. 이제 너희 다 컸으니까.

너희가 엄마보다 닭다리 먹을 세월이 더 기니까

이젠 엄마가 닭다리를 먹어도 되겠니?"


라고 하셔서, 정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살은 우리 먹이고, 살이 별로 없는 부위를 엄마가 드셨던 것이었다.


엄마는 그런 분이셨다. 그렇게 늘 희생하고 또 희생하셨던 우리 엄마.




엄마는 지금 딸을 위해 두 손주를 돌봐주고 계신다.


기자인 딸은 중학생 시절부터 꿈이 기자였고,

엄마는 그런 딸이 진짜 기자가 되었을 때 세상 누구보다 기뻐해 주셨다.

본인인 나보다 더 더 기뻐하셨던 것 같다.


그런 딸이 육아라는 이유로 꿈을 내려놓길 바라지 않으셨다.

본인이 사시던 포근한 보금자리를 전세로 내주고

그 전세금을 들고 딸네 집 옆으로 전세를 얻어 이사를 오셨다.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애들은 걱정하지 말고, 넌 네가 하고 싶은 일 마음껏 해.

여자라고 해서 집에만 있으면 안 돼. 네 꿈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내.

엄마는 그런 우리 딸을 위해서라면 애 둘이 아니라 셋, 넷도 봐줄 수 있어."


그런 엄마께 나는 경력을 이어가는 만큼

내가 버는 월급에서 내가 써야할 돈을 제외한  대부분을 가져다 드린다.

남편 역시 그런 내 결정을 지지한다.


엄마가 단순히 딸을 위해 희생하기보다는

엄마의 노동력 제공만큼, 아니 그에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나름의 월급을 나름 부족하지 않게 드리려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난 결국 엄마에게 죄인이 되는 딸이다.


한 살 한 살 자랄수록 더욱더 키우기 힘들어지는 두 꼬맹이들을 엄마에게 맡겨두고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저녁 약속을 자주 갖는다.


늦게까지 아이들을 돌봐주신 엄마는

술에 취한 딸이 퇴근하면 "속 버려 어쩌니"라며 오히려 딸을 걱정하신다.


첫째를 낳고 2년여간을

이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일을 했었는데

그 시절 잘 못 챙겨 먹인데 대한 미안함을 늘 갖고 있다는 걸 아시는 엄마는

꼭 아이들의 아침저녁을 손수 해 먹이려 하신다.


안 그러셔도 된다고, 반찬이고 뭐고 사 먹이시라고 해도

굳이 굳이 애들이 등원하고 나면 불 앞에 서서 요리를 하신다.



할머니표 반찬과 함께 펼쳐지는 집밥의 향연.


아이들은 그런 할머니의 희생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난 그런 엄마의 희생을 먹고 내 커리어를 쌓아간다.


하지만 엄마는 그만큼 더 늙어가시고, 늙어가신다.




엄마가 없는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난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지금도 나의 엄마에 비하면, 난 한참 모자란 엄마다.


자식에게 헌신하려 하지만, 그만큼 나 자신도 소중하다.

아이의 행복을 바라지만, 그만큼 나 자신도 행복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 본인이 불행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분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자식이 될 수 있을지

늘 생각하지만, 늘 부족하다.




다음 달 초 유럽으로 출장을 가는 남편이

면세점에서 엄마가 생각났다며 예쁜 스카프 한 개를 샀다고 했다.



디자인도 색상도

소녀 같은 우리 엄마에게 잘 어울릴 예쁜 스카프였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을 봐주시는

장모님에게 드릴 예쁜 선물을 산 사위, 내 남편에게 고맙다.


엄마에게 스을쩍 사위가 엄마 생각해 산 선물이라며

사진을 보내드렸다.

남편은 그냥 다녀와서 드리겠다고 했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말씀드리고 싶었다.


너무나도 기뻐하시는 엄마.


남편이 몇 주 전 미국 출장을 다녀오면서

고급 화장품 세트를 사다 드려서

이번엔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셨던 엄마는

부담된다면서도 자신을 생각해 줬다는

사위의 마음이 그냥 기쁘다며 좋아하셨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난 또 참 많은 생각이 든다.




그래. 이제 더는 내가 엄마에게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앞으로 남은 시간, 더 엄마에게 갚고 또 갚는 딸이 되면 된다.


해드릴 수 있는 걸 내 선에서 더 열심히 해드리자.


맛있는 것, 즐거운 것, 재미난 것, 좋은 것을 더 많이 드리자.


아무리 갚아도 다 갚진 못하겠지만,

후회 없이 열심히 갚아보자.


엄마에게 한 번이라도 더 전화드리고,

엄마와 쉬는 날 한 번이라도 더 맛있는 걸 함께 먹고,

엄마와 한 번이라도 더 좋은 곳에 여행을 떠나자.


그게 딸로서, 평생을 희생하신 나의 엄마에게

내가 해야 할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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