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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랜드
Feb 05. 2023
남편과의 분리불안 증상.
워킹맘 기자의 삶
오늘 남편이 해외출장을 떠났다.
유럽 3개국으로 2주간 출장을 떠난 남편.
13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남편과
8시간의 시차를 두고
2주간 살아야 하는 현실이 결국 도래한 것이다.
올해만 벌써 두 번째 해외 출장.
첫 번째 출장은 1월 초 미국 애틀랜타였다.
원래 남편은 해외 출장이 잦은 직군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작스레 글로벌 프로젝트(?)에 파견·투입되면서
올 한 해 '해외출장 복'이 박 터지듯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 남편은 해외출장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출발 전에는 A부터 Z까지 사전 준비를 거쳐야 하고,
현지에 가서도 하루 종일 회의, 회의, 또 회의를 거쳐
숙소에 들어가서는 자정을 넘길 때까지 보고서에 파묻혀 있는 생활의 연속이라며
"결코 원해서 가는 게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남겨지는 내 입장에서
해외출장을 떠나는 남편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
1. 가는 곳이 유럽이다.
2. 혼자만의 '13시간 비행'을 할 수 있다.(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낮잠도 잔다)
3. 혼자 호텔에서 편히 잠을 잔다.(집에서는 두 아이 틈바구니에서 자야...)
4. 혼자 호텔 조식을 즐긴다.
5. 출장 일정에 주말이 끼어있다.(현지인들 다 쉴 텐데... 뭐든 하겠지?)
===============
그곳이 에펠탑을 올려다볼 수 있는 곳이라면,
버터 바른 바게트를 씹어먹을 수 있는 곳이라면,
소시지에 독일 맥주를 곁들일 수 있는 곳이라면,
해리포터가 살 것 같은 건물 사이로 빨간 이층버스가 달리는 곳이라면,
난, 24시간 일을 해도 좋으니 그곳에 가고 싶다.
남편은 그런 내 마음을 찰떡같이 알아채고는
이번 출장 계획이 나오자마자 "갖고 싶은 가방 하나 찝어!"라며
가방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나 : "이 가방으로 하겠다!"
남편 : "오.. 예쁘네! 내가 봐도 예쁘다 이 가방 :)"
직접 면세점 오픈런을 해가며 가방을 구매한 남편.
가방으로 2주간 독박육아를 하게 될 와이프의
헛헛한 마음을 달래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구매하겠다는 의지를 실천해 보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독박육아도, 가방도, 무엇도 아니었다.
내가 굉장한 '남편 분리불안'을 껴안고 살고 있는 여자라는 점이 문제다.
1. 남편이 없는 날 '불면증'이 돋는다.
쿨쿨 잘도 자던 내가 새벽 2시, 3시가 넘어도 잠들지 못한 채
침대에서 괴로워하며 뒤척거린다.
생각해 보면 결혼 전 엄청난 불면증에 시달렸던 내가
결혼하면서 신기하게 불면증이 사라졌는데,
잘 때 남편 냄새를 맡으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지난 1월 남편의 미국 출장 때도
어찌나 잠이 오지 않던지,
새벽 3시까지도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막판 며칠은 아예 잠을 포기하고
보고 싶던 웹툰을 보거나, 드라마를 보다 기절하듯 잠들곤 했다.
두세 시간 자다 보면 다음날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빡센 업무강도는 변하지 않으니,
난 그 2주간 정말 파김치가 되어 눅눅해진 몸을 질질 끌고 다녔다.
그런데 또... 2주간 남편이 없다.
잠이 오지 않는, 불면의 밤을 또다시 겪어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괴롭다.
2. 남편이 출장만 가면 큰일이 터진다.
지난 1월, 남편이 미국에 가고 얼마 되지 않아
개인적인 신변에 문제가 생겨 혼자 전전긍긍
상황을 정리한다고 고생을 했다.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몇 년 만에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갈 정도였다.
남편이 해외출장만 나가면 꼭 그런 일이
하나씩 생기는 징크스가 있다.
이번엔 또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아무 일 없이 지나가주면 너무나 감사!)
3. 독박육아에 대한 두려움
난 육아의 많은 부분을 남편에게 의존한다.
아이의 등원 전 온라인 자가검사라던지,
유치원에서 결제해야 하는 것들도 모두 남편이 챙긴다.
필요한 물품(물티슈나 치약 같은 필수품들)의 재고를 체크하고
온라인 구매하는 것도 늘 남편의 역할이다.
아이 둘 중 한 명은 남편이 재우고,
내가 늦는 날이면 조금 서둘러 퇴근해 아이들의 저녁을 챙겨준다.
그런데 2주간, 그런 남편이 없다.
남편은 "내가 외국에 있어도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며
날 달랬지만,
지금도 '갑작스레 뭔가 필요해지면 어쩌지?'라는
왠지 모를 두려움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4. 뭐든 의견을 묻고 조언을 얻던 인생의 동반자 부재.
난 무언가 결정하기 전 남편에게
조언을 구하는 습관이 있다.
하물며 옷을 한 벌 살 때도 남편이
"그거 예쁘다!"라고 해줘야 마음이 놓이고,
아이가 아플 때, 응급실을 갈지
다음날 아침 일찍 소아과를 갈지를 선택해야 할 때도
남편의 조언으로 확신을 얻는다.
그런 내가 남편 없이
갑작스레 늦은 밤 아이가 열이 나거나
뭔가를 구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함이 꿈틀꿈틀 마음속에 자라난다.
정리를 하다 보니
남편 없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확실한 건, '남편과의 불리불안 증상'이 분명 존재하고
남편은 그런 날 잘 알기에
출장을 가면서도 여러 장치와 안심 요소들(?)을 곳곳에 포진시켜 놔 준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공항에서 영상통화를 걸어온 남편.
결혼하고 애가 둘이나 있지만,
바로 옆에 함께 출장을 가는 동료들이 있지만,
통화를 끊기 전 "아이 사랑해"라며 마음을 전한다.
부끄러워하면서 전하는 그 마지막 "사랑한다"는 한 마디가
2주간 그 없이 한국땅을 지킬 내겐 큰 힘이 된다.
(구매한 가방을 번쩍 들어 올리며
"나 완전 보부상 같지 않아?"라는 해맑은 멘트를 날리기도 했다 ㅎㅎ)
이로써 그와의 13시간 연락 두절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그가 보고 싶은 걸 봐서는
분리불안 증세는 벌써 시작됐다.
이번주에는 둘째의 어린이집 생일파티가 있고,
다음 주에는 첫째의 유치원 졸업식이 있다.
유치원 졸업생 대표로 뽑힌 딸은
졸업식 당일
단상 위에 올라 송사를 발표할 예정이다.
아빠가 출장 중이라 부득이 나 혼자 딸의 멋진 모습을 보게 됐는데,
왜 이리 떨리는지.
남편이 있었다면 좀 덜 떨렸을까?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개인적이며, 자존감 높던 내가
어쩌다 이토록 남편 의존적인 사람이 된 건지.
남편이 돌아올 날을 카운트하며 보내게 될 내 모습이
오늘따라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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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를 키우는 여기자가 스위스 취리히에서 살아가는 좌충우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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