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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Jan 15. 2024

제 꿈은 00입니다.

꿈을 이야기하다.


Self 자문자답_


Q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제 꿈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꾸준히 하며

 따뜻한 가정을 이루는 멋진 엄마가 되는 거예요!

여러 사람들 앞에서 꿈 얘기하기_ 짤렸다. 어색하고 넘 떨림.
필라테스 수업과 다른 스피치도 연습해봐야겠다 넘 떨려 꺅

어릴  처음에 꿨던 꿈은 경찰이었어요. 태권도랑 달리기에 꽤 자신 있었거든요. 정의에 사도가 되어 나쁜 놈들을 때려잡고 싶었어요.


다음 꿈은 시골에 내려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순수 미술을 하는 자연을 담는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 사회에 불편한 지점들을 그림으로 비유해 표현하고 싶단 욕망을 품었어요.


중학생 때 돈에 매인 인간을 새장이란 감옥에 넣은 조형물을 만들었던 작품이 대상을 받았어요. 현금을 구겨 넣고는 돈과 비슷한 색을 색칠해서 사람을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는 돈이 곧 종교란 생각이 들고는 했어요. 자신의 색을 잃고 사람들이 돈의 노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의 주관이나 꿈, 행복도 없이 그저 돈만을 이야기하며 싸우는 사람을 생각하며 창작 작업을 했어요. 우리 가족들은 하찮은 돈 때문에 욕설이 난무했으니 창작을 할 때 영감을 받기 좋았어요.


유난히 사람에 말 한마디에 민감해서 상처받는 일이 잦았어요. 친구들이 뒷담 하는 자리에 껴 있다는 것만으로  못 견뎌했어요. 뒷담을 하면서 친해진다는데 그럴 때면 도서관에서 접한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의 악의 평범성이 떠올랐어요.

 

나도 평범하게 주변에 흐름에 따라 악인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의문을 품지 않으면 악한 주변의 환경과 시류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힘들게 상처를 줄 악의 평범성에 해당하는 인간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어릴 땐 세상에서 나처럼 상처를 줄 만한 결핍을 소지한 아이가 사회에서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받는 건 상대에게 미안한 일이고 사회의 악이자 민폐란 생각을 하고는 했어요.  당시 저에게 사랑은 사치란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의 사랑 방식은 너무 아프기만 했고 생채기처럼 느껴졌거든요.


가난하단 이유로 뒷담을 당했던 경험도 있었죠.

화장실에 갔다가 우리 집에 왔던 친구가 가난하다며 친구들과 화장실에서 뒷담을 하고 비웃는 걸 우연히 듣게 됐어요.

화장실에서 아이들이 하는 이야길 듣고 혼자 입을 틀어막고 쉬는 시간 내내 화장실 칸막이에서 쭈그려 앉아서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누군가를 뒷담 하는 자리가 숨 막히고 불편했어요. 

아프고 힘들고 억울할 때 참고 견디는 게 익숙했어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그럼 복잡한 생각이 사그라들었으니까요. 어린 제게 예술은 즐길거리가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이자 나를 놓지 않기 위한 생존 수단이자

휴식처였어요.


뒷담을 하며 타인의 잘못이나 어떤 부족한 부분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말을 옮김으로써 사람의 가능성을 제한시키지는 말자. 는 생각을 했어요. 상대의 칭찬은 할 수 있지만 굳이 나쁜 말을 옮겨 사람을 직접 겪어보기 전에 색안경을 끼게 만드는 게 싫었어요. 차라리 스스로 자책하는 게 마음이 편하지 타인을 긍정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어요.


그러다 보니 화병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극대화되면 신체화 증상이 생겼어요.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못하고 자책하며

그대로 숨을 못 쉬고 길바닥에 쓰러지고는 했어요. 사실 아무도 상처받기를 원치 않았거든요. 그냥 나만 견디고 참아내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너지더라고요.


내가 무심코 뱉고 가볍게 비난했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는 말이 될 수 있단 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았어요. 저는 말이 너무 무게감이 있었고 눈으로 보이는 전쟁보다 더 지독하고 악독한 것이 말 한마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누군가를 공격하는 말은 그냥 삼켜내고는 했어요.

그게 편했으니까요. 어릴 때는 나를 안아주는 방법을 몰랐고 저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몰라 모든 모양을 바꾸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지금은 제 모양을 장점으로 받고 수용하며 난 꽤 아름답고 멋있네. 표현할 수 있게 됐지만 그땐 난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아이란 생각을  했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저로 돌리는 아이였어요.


어릴 때는 죽음을 많이 생각했어요.

가족으로부터 듣는 말이 괴로웠거든요.

죽음은 삶의 유일한 탈출구란 생각을 했던 순간도 있었죠.


하지만 겁쟁이라 사후세계불확실해서 죽지 못했고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생각에 열심히 공부해서

집에서 멀리 떨어져 탈출하는 계획을 했어요.


유독 생각이 많아서

믿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감정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죽음이란 무엇인가?

끝이 보이는 삶을 무엇이 의미 있는 걸까?

끊임없이 세상에 의문을 품고

자문자답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데 진지하고 어렵다는 말로 돌아오고는 해서 어린 시절에는 입을 다물고 글과 그림으로 내 머릿속에 관념들과 주변에 대한 관찰과 생각들을 기록하고는 했어요.


그러다 앤서니 브라운의 따뜻한 그림을 보고 마음을 울리는 스토리를 담은 동화그림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투명인간처럼 아무도 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조용한 아이였어요. 별명은 토마토였어요. 말을 걸거나 발표를 하면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거든요. 사실 주변 시선이 두려워서 쉬는 시간이 무서웠어요. 그래서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혼자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갔어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며 위안부나 임금체불 등 사회의 불편한 부분으로 억울함을 가진 이들, 남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표현 하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말을 대변해 주는 배우를 꿈꿨어요. 


평상시 타인을 비난하거나 화를 못 내고 거절 한마디 못 했지만 연기는 합법적으로 분노를 표출하며 아무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는 지점이 좋았어요.


하지만 평소 화를 내본 적이 없어서 화내는 연기는 너무 어려웠고 화를 내려고 하면 일단 말이 없어지고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어요. 말을 하고 싶지만 벙어리 인어공주처럼 입이 막히고 눈에 맺히는 눈물을 안 보이려고 두 주먹을 꽉 잡고 참아내고는 했어요.


강압적인 비난은 싫었지만 예술을 통해 돌려 까고 비꼬고 싶었어요. 감정을 움직여 사람들의 마음이 동해서 행동이 바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적을 꿈꿨어요. 한 사람의 인생을 세계라고 바라본다면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고 관점에 변화를 주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닐까? 예술을 통해 그런 꿈을 꿨던 적이 있어요.


묻지 마 사고로 범죄의 피해자가 우리 가족이 되면서 예술이 아닌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영화보다 현실이 더 잔인하더라고요. 허울뿐인 cctv덕분에 범죄를 당하고도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았죠. 엄마는 신체에 장애를 앓게 됐고 빚이 쌓였어요.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려  수술 직후 마취가 덜 풀린 엄마를 취조를 했고 엄마를 마약한 사람 취급을 했어요. 온몸이 찢어져 전신을 다쳤는데 넘어져서 다친 걸로 사건을 종결지었죠. 민중의 지팡이는 민중의 솜방망이였고 공권력이 결코 시민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전 학교에  있어서 그 모든 과정을 사건이 다 종결된 이후 받아들이게 됐어요.


엄마는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을 이야기하면서 모든 것을 참아내길 교육하셨어요. 알바에서 임금을 못 받았을 때도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어주라는 교육을 하셨고 모든 일을 사랑하고 축복하라며 강요하셨죠.


저는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말하지 못하고 참고 견디고 버티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었어요. 근데 지금 돌아보니 저는 분노가 많은 사람이었더라고요. 그 표출 방식이 예술이었단 생각이 듭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리 정신을 계몽시키려는 예술을 논한 들 정작 이걸 봐야 될 사람들, 변해야 될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삶만을 살며 무관심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의 사고는 제가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된 시발점이 되었어요. 엄마의 건강이 무너지고 집을 담보로 몇천만 원을 대출받아 교회에 헌금을 냈단 사실을 친척들을 통해 알게 됐죠. 신이 전부 지켜준다며 보험조차 들지 않았던 엄마. 어마어마하게 깨지던 병원비, 그때 목사님은 돈이 없으니 mri를 찍지 말라는 말을 했어요. 그렇게 교회에 목숨을 걸고 삶을 매진하는 엄마에게 건넨 목사님의 말은 상처가 되어 절대로 종교에 깊게 빠져들지 말자. 무언가를 너무 깊이 의존하지 말자. 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는데 그냥 앉아서 복을 빌기만 하는  기복신앙과 인간의 불안한 지점을 파고들어 돈을 갈취하는 목사의 태도와 너무 지옥 같은 환경 속에 살아남기 위해 신앙에 온몸을 다해 매진하는 엄마에 대한 연민이 속을 복잡하게 했어요.


아무리 가족에게 이건 아닌  것 같아.라고 이야기한들 엄마의 마음속 빈자리의 여백을 채울 수 없으며 고착된 생각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한계를 경험했어요. 사람이 가장 고통스럽고 무력감을 느끼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하고 전부 책임을 짊어지려고 노력할 때 오더라고요. 가족에 대한 연민으로 돈을 드릴수록 자립하기보단 모든 걸 저한테 의존하고 그렇게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는 가족이 안전지대라기보단 책임져야 될 무게감처럼 느껴졌어요. 맹목적인 신앙으로 좋게 말하면 방목, 나쁘게 말하면 방치였고 가난과 부정적인 말이 난무하는 환경 속에서 사랑이 부족했던 동생은 엇나가기 일 수였고 그 안에서 나는 꽤 이기적인 사람이라 내 생존을 위해 실수를 하면 안 됐고 공부에 그렇게 목매고 매진했던 것 같아요.


죽음을 생각하긴 해도 저는 삶을 살고 싶고 세상에 호기심이 많았고 하고 싶은 것들이 항상 많았어요. 그래도 나름 꽤 매력적인 외모에 공부머리가 있었어요. 반면 동생은 그런 저를 보며 부러워했죠. 학습장애가 있어 문맹이 없을 것 같은 대한민국에서 까막눈이었어요. 동생은 제게 아픈 손가락이었고 어린 시절을 보호받지 못한 연약한 존재였기에 연민을 느꼈어요.


가난한 집안의 K장녀는 가족 하면 고려해야 될 책임의 무게가 짙었어요. 누군가와 사랑을 하며 평범한 연애와 일상을 꿈꾸는 건 사치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내 삶에 누군가 기대는 일없이 혼자 살아가자며 마음을 다잡고 고백을 하는 이가 있어도 이성과의 신호가 와도 거리를 뒀어요. 일단 내가 먼저 바로 서는 게 중요했어서 나도 마음이 동해도 가정의 힘든 뒷배경을 안고 있었기에 문제를 끌어안고 혼자서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했네요. 제 결핍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어요.

그리고 나의 아픔과 고통을 같이 느끼게 하기 싫었으니까요.


현역 때도 재수 때도 내가 돈을 벌어서 학원을 다녔고 4년제에 붙었지만 돈 얘기를 하는 부모님 이야기에 전문대를 갔죠. 대학생 때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학생 때부터 부모님은 힘들다며 돈을 요구하셨어요. 그러다보니 내가 하고 싶은 걸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것 자체에 죄책감이 들었어요. 엄마의 병원비를 감당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꿈을 논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교수님께 휴학을 얘기했지만 휴학을 만류하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한 학기를 마치고 졸업까지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신 말이라 감사해요. 그때 가족을 책임지기 위해 돈을 선택했다면 저는 알바만 하며 같이 수렁에 빠졌을지도 몰라요.


 때문에 절대로 장학금을 놓치고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겼어요. 독기를 품고 과에서 2등으로 장학금을 받고 다녔어요. 남들은 술을 먹고 놀 수 있겠지만 난 내 가족이 내게 의존하는 입장이니 어느 누구도 의지할 수 없었어요. 생존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했어요.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노는 건 내게 사치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를 위해 카페에 가서 간식 하나 사 먹는 것도 가족 생각을 하면 죄책감이 들었죠. 밥은 대충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때우고 생존을 위해 채우는 연료 도로 인식했어요.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 대본을 주야장천 들고 다니며 종이가 닳도록 외우고는 했어요. 연기를 하지만 암기력이 좋은 편이 아니라 남들보다 몇 배로 시간을 들여야 엇비슷하게 따라갈 수 있었어요. 타고난 재능을 노력으로 따라갈 수 없음을 학교에 들어가서 느꼈어요. 학교는 관대했기에 별다른 재능이나 특별함은 없었지만 끈기와 성실, 노력이  뮤지컬 가창

1과목을 빼고는 올 A+을 받고는 했어요.


재능은 없고 별로 똑똑하지는 않아도 악바리와 독기, 그냥 무식하게 반복하고 버티는 자신 있었어요. 그리고 아이들과 상황극 보조교사로 활동하고 시험 기간에 동기들과 교양 요점 정리를 해주며 성적이 오르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과 성취감을 크게 느꼈어요. 친가의 큰아빠, 큰엄마, 고모 모두 학교 선생님들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뭔가 지식을 배우고 쉽게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에 저도 재능을 물려받았었나 봐요. 


그렇게 건강에 관심을 갖고 처음 웨이트와 요가에 푹 빠졌다가 중간 지점인 줄 알고 필라테스를 취득했는데 정말 새로운 운동이었죠. 엄마의 사건으로 건강이 무너지니 인생에서 건강은 정말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건강을 잃으니 가세는 더 기울어졌고 삶 속에서 누군가의 통증을 떨어뜨리고 미리 운동을 통해 예방할 수 있는 일에 사명을 갖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기 시작했어요.


대학을 졸업 후 피트니스 센터에서 새벽 5시부터 인포를 했어요. 가족에게 오십씩 떼 드리고 알바로 1000만 원을 모았어요. 동창회도 안 가고 일만 했던 기억이 있어요. 놀이와 유흥은 제게 사치란 생각을 했었어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자격증반을 재청강을 하며 수많은 워크숍을 들었어요. 제대로 하고 싶었으니까요.


강사일을 시작하고 1년 뒤 혼자 대출을 받아 독립을 했고 독립 후 하루 많게는 10~14시간을 일하며 1년 반 만에 아주 조그마한 공간이지만 전세금을 갚았어요. 그렇게 돈을 거의 갚고 나니 처음으로 여유가 생겨 연애에 관심이 생겼어요.


일을 하며 인정과 칭찬 속에 자존감도 높아졌다고 생각했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렇게 연애를 했지만 한 번도 누군가에게 의존해 본 경험이 없어 연애가 영 쉽지 않았어요. 애정을 갈망하고 불안했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 cc를 했지만 제대로 연애를 한 건 거의 처음이었으니까요.


헤어진 후 처음으로 마음을 깊게 내어줬던 만큼 온몸이 갈가리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저녁 일을 하러 가는 중 이별에 대한 후유증으로 미주신경성실신이 와서 응급실에 실려갔어요. 14시간을 일하고 철인처럼 일해도 끄덕 없었는데 마음이 무너지니 몸이 한순간에 무너졌어요. 


그렇게 몸에 건강에서 심리, 표현예술치료, 명상 등 마음

건강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많은 워크숍을 듣게 됐어요.  즉흥예술기획으로 활동을 하며 몸과 마음의 연결을 하고

싶어 그림책 필라테스를 만들었어요.


사실 상담을 받게 된 건 동생을 치유하고 싶어서였어요. 

 집에서 독립을 했지만 동생을 집에 남겨뒀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있었어요. 종교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곧 전쟁이 날 거라고 비상식량을 쌓아놓고 악한 영이 느껴진다며 사생활 없이 방문했던 목사님, 조금 아프거나 건강이 조금만 나빠도 모든 것을 잘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요하는 어머니,  걸핏하면 악한 영을 얘기하신 덕분에 오랜 시간 집을 머물수록 굉장히 괴로웠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지원은 없지만 통제가 심했죠. 말이 통하지 않던 부모님과의 상처를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는 했는데 저도 제 자신을 챙기기 급급했고 이별의 후유증으로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가 없었어요.


그렇게 동생이 정신 병원에 입원했단 소식을 들었어요. 부모님은 동생의 병원비로 다달이 200만 원을 요구하셨지만 그 당시 이직 제안을 받았던 곳을 가지 않고 일을 줄이며 나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한 탓에 전 같은 수입이 없었죠.


동생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했다며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그리고 그만큼 능력이 없는 자신에게 자책했어요. 일을 하지 않는 부모님, 매번 개인 회생, 돈문제로 내게 도움을 요청하던 부모님. 저는 제 한계를 이야기했고 가족은 살기 위해 저와 분리하고 그렇게 연락이 끊기게 됐어요.


한동안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가족이 끊어졌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내 일보다는 가까운 사람의 아픔이 더 고통스러워서 주변 사람이 그냥 평범하고 제발 행복하길 바랐어요.


가족과 완전히 끊어지기 전 동생을 치유하고 돕고 싶어서 표현예술치료 상담 세션을 받게 됐어요. 근데 저도 고질적인 문제로 자책하고 있었고 객관안 없이 타인의 문제를 전부 제 문제로 끌어안고 있음을 알게 됐죠.


상담을 통해 내가 전부 책임지려 하는 것 또한 집착이고 나의 욕심이고 내가 전부 통제할 수 있으리라는 오만임을 알게 됐죠.


엄마가 했던 "네가 우릴 돕지 않고 독립해서 우리가 개인회생을 하는 거야. 더 작은 곳으로 이사 가는 거야." 그런 말들이 마음을 불편하게 했었죠.


그냥 가족이라는 이유로 각자의 힘든 일들과 삶의 전사를 듣다 보니 부모님의 상식적이지 않은 행동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어요. 왜 그렇게 종교에 빠져 들었을지. 부모님의 삶은 정말 파란만장하고 기구했기에 원망할 수 없었어요.  부모님의 존재가 괴로웠지만 저를 사랑한다는 건 알 수 있었어요.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몰랐던거죠.


그냥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땐 남을 탓할 수 없으니 저의 능력과 한계를 탓하며 스스로를 다그치고는 했었죠. 코로나 시기 일을 못 하게 된 것도 몸이 아픈 것도 모두 제 믿음의 문제라며 약속의 땅에 가야 된다는 말로 내 그림에는 악한 영이 느껴진다는 말로 돌아왔죠. 어떤 불합리한 상황 속에도 무조건 참아낼 것을 강요하셨죠.


상담을 통해 남을 돕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를 돕는 게 먼저 중요함을 알게 됐어요. 동생을 치료하려 시작한 상담은 저를 치료하는데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몇 주간을 하루에 4~5시간을 나를 마주하고 내 불편한 모든 감정과 생각을 직면하고 이야기를 토해내는데 썼어요. 불편하고 마주하기 싫은 나를 만나야 해서  정말 많이 괴롭고 힘들었고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이해가 되지 않아도 자식이니까 다 이해하고 부모님이 역할을 못 하니 내가 책임져야 된다는 생각을 했지만 내 살기 급급한 스스로를 미워했어요.  그리고 그 작업이 나를 수용하는 방법을 깨닫게 도와주었죠.


제가 외로운 사람이었고 사실은 사랑이 굉장히 고픈 아이였더라고요. 일로 도피한 삶을 살았고 수업이 없으면 강박적으로 불안했어요. 거절도 못 했고 남들에게 휘둘리며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성취는 이루었지만 선택적 을을 자처하는 삶을 살았음을 깨달았어요. 정말 죽을 듯 살듯 노력을 하고 눈앞에 기회가 다가와도 제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했기에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삶을 살았더라고요.


나는 세상에 하고 싶고 호기심이 많은 사랑이 많은 아이였음을 알게 됐어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정의 내리고 낙인찍는 것이 아닌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따뜻한 한마디와 옆에서 귀를 기울여 들어주는 경청과 포옹이었음을 깨닫게 됐어요. 그때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수용하니 큰 힘이 됐고 인생의 방향을 내 마음의 진짜 욕망을 선택할 수 있는 실행력이 생기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그간 제가 얼마나 각성 상태로 성취 중독에 빠져 일을 도피처로 삼았는지 깨달았죠. 사람들에 번아웃을 해결할 실마리를 주고 싶었어요. 그 밖에 애착유형, 마음을 돌보고 감정을 살펴보며 워커홀릭 일중독자들의 적절한 몸의 움직임을 통한 이완과 대화를 통해 저처럼 잃어버리기 전에 예방하고 자신을 수용하는 법을 먼저 알아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가족과 끊어진 후 친척이 이야기해 주셨던

"너 자신만을 위해 살아."라는 한 마디가

모든 짐과 무게에서 해방시켜 준 말이었어요.


항상 내게 의존했던 가족은 끊어진 후

기초생활수급을 받아 병원비 부담이 덜어졌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시간이 꽤 흘러 전달받게 됐어요.


가족과 끊어진 후 내가 책임지지 못했단 생각에 오랜 죄책감에 짓눌렸지만 분리가 되니 가족은 가족대로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찾아가는 걸 느꼈어요. 참 감사한 일이었죠.


내가 모두 책임지려고 할수록 가족은 의존하게 되고

스스로 자립할 수 없게 되는 거였어요. 상호작용이었죠.


 "너 자신만을 위해 살아."


 말을 듣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여정을 떠났어요.


지금 내 나이 또래에는 하지 않을 무모한 짓들. 쓸데없는 일,

학창 시절에 하지 못 한 일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정말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도전했던 것 같아요.


저는 제 인생의 주인공이며 제 삶의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의 모든 결핍에서 출발해 제가 도움을 받았던 과정들을 소셜링 콘텐츠에 녹여내려고 노력했어요.


과거 14시간씩 일을 하고 번아웃을 겪고  몸의 교감신경의 과각성 상태로 찾아온 미주신경성실신, 그걸 해결하기 위한 부교감신경계를 활성화시켜 줄 수 있는 림프순환시퀀스를

녹였어요. 감정카드를 통한 알아차림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통해  마인드셋을 변화시키는 작업은 현대 사회에서 꼭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느린 움직임을 통해 몸과 마음의 힐링을 돕고 싶어 시작한 힐라테스 소셜링.


사랑에 실패하고 사랑수업을 보며 애착유형을 공부하고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진행하는 무브유어 마인드 대표님을 찾아갔어요.  멋진 사랑을 하고 내 사랑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시작했던 사랑을 통해 나를 톺아보기. 개개인의 사랑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따뜻하게 사랑받는 경험이 필요하단 생각에 탄단지 밸런스가 좋은 음식을 만들어갔던 기억이 나요.


어릴 적 동화그림작가와 미술 선생님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한 꿈으로 시작했던 드로잉 토크. 다일작가님이 작품을

세상에 소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드로잉

토크. 처음 소셜링을 시작할 때 열심히 연구하고 만든 콘텐츠를 세상에 알리고자 고군분투했지만 어느 누구도 모이지 않고 영 쉽지 않았어요. 콘텐츠는 진심으로 만들었지만 홍보는 취약했어요.


그래서 새롭게 소셜링을 열 때 다일 작가님과 작업하면서 소셜링으로 작은 성공을 하는 계기를 만들어 드리고 싶었어요.  과거 나는 누군가가 나의 소중한 작품을 소개해주는 계기, 시도해 볼 수 있는 따뜻하게 열 수 있는 장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느꼈으니까요.


소셜링에 사람이 많든 적든 상관없었어요.

모든 과정들 하나하나가 중요했어요.

제게는 모두 의미 있고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이 모든 여정은 제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고 어릴 때 배우지 못한 관계를 다시금 배울 수 있는 장이었어요.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 한 사람이 무너지지 않고

잃고 나서 후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자신의 삶을 좀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제 소셜링은 모두 제 결핍에서 출발했어요.

제가 실제로 극복해 낸 과정과 지식과 워크숍들을

토대로 조합해 창작해 낸 소셜링들이었어요.


그렇게 속 마음을 나누고 헛헛함 없이

따스히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진행했어요.


그리고 적자가 난 적도 있지만

이 작업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고 의미가 있었어요.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준 사랑스러운 동료를 만났으니까요.


후기에 남겨준 따스한 글귀들에 울컥하고

잘 즐겨주시고 도움을 받았다니 참 고마웠어요.


따뜻한 말 한마디들에  모든 수고가

눈 녹듯이 녹아내리는 듯 행복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아도 정말 필요한 한 사람을

위해 진짜 도움을 받고 앞으로 함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기를 응원하게 됩니다.


아티스트웨이 12주 과정을 먼저 경험하고

열었을 때 아무도 찾아주지 않을까 봐 참 고민이 짙었어요.


많이 무모한 작업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준비했어요. 크고 작은 변화와 성장기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고 저마다의 꿈을 이뤄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사랑해요. 아티스트 어벤저스들.

한 번이 끝이 아닌 계속 서로 긍정적인 시너지를

줄 수 있는 성장하는 멋진 동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 결과가 안 나오고 더디더라도 괜찮아요.

저는 여러분의 모든 가능성을 그냥 믿습니다.


그렇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멋진 일이 뭘까요?

처음에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먼저

바꾸려 드는 게 아니라 결핍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받아들이며 내 관점을 바꾸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책임지고 아름답게 성장시키는 일이 가장 멋진 일이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바로 가정을 이루고 좋은 "엄마"란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연인도 없는 입장에서 너무 먼 미래, 꿈일지도 모르지만 안정감 있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꿈을 꿉니다.


과거 난 절대로 내 불행을 타인에게 물들게 할 수 없어. 

절대로 엄마가 되지 않을 거야. 인생을 혼자 살 거야.

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상담을 통한 따스한 수용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방법은 삶이 무너질 때 조금 더 유연하게 스스로를 공격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이 됐어요.


남들이 1에서 시작할 때  난 - 에서 시작한 덕분에 

행복 역치가 낮아 남들보다 행복하니 지금  삶이 꽤나

감사해요. 푸르른 자연과 하늘만 봐도 순수하게

해맑게 웃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니까요. 


그냥 그 모든 힘든 시기들을 지나오고

살아냈다는 것만으로 사람은 또 웃을 수 있더라고요.


삶이 고단해서 타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할 틈 없이

살기 급급했고 경주마처럼 달리는 삶을 살아와서

대중적이거나 트렌디한 것들에는 사실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도 저만의 속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아가며 조금씩

제 나름의 방식대로 세상과 접점을 이루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중이에요. 그냥 모든 과정들 하나하나가 남들이 뭐라 하든  나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란 확신이 들기 시작했어요.


자연스럽게 정서적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과 근거 없는 자신감과 돌아갈 곳이 있다는 든든한 안전지대가  부러울 때도 있었어요. 근데 아팠던 만큼 누군가를 깊게 공감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에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 감사해요. 그리고 밑바닥에서 시작하니 남들보다 일어나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웬만큼 아픈 이야기, 슬픈 이야기를 가져와도 그 감정들이 두렵거나 너무 힘들고 불편하지 않아요. 제게 부정적인 감정들은 꽤나 익숙한 감정이었거든요. 이미 제가 많이 발버둥 치며 직면했던 감정들이니까요. 그냥 덤덤히 들어줄 힘이 생긴 것 같아요. 빠르게 힘내!라고 하기보단 여유가 있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나눌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모든 경험들과 각자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냥 가능성을 믿고 기다릴 힘이 생겼어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엄마가 되어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이란 생각이 어요. 일은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고 보상이 주어지지만 자식 농사는 내 맘처럼 통제 불가능하고 쉽지 않으니까요. 엄마의 역할을 충실히 해도 어떤 보이는 물질적 보상도 주어지지 않으니 난이도가 굉장히 높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자신의 몸도 상하는 고통을 마주하니까요.


저와 같은 결핍을 가진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인간은 관성을 가지고 있어서 쉽게 변하지 않는 건 맞아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변하는 게 인간이더라고요.

그냥 조금만 더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했을 뿐이죠.


흔히 평범히 사랑을  받고 따스하게 자란 아이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하고 심리적으로 갖지 못한 유산을 자수성가하듯 갖추기 위해서 남들보다 몇 배로 더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그러다 보면 누구보다 멋진 사람이 될 거라고 밝게 빛나는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이순신 장군도 환경이 너무 힘들어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장군이 됐다는 말처럼 당신의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따스히 안아준다면 남들이 뭐라 하든 그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될 거예요. 그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우린 더 나아질 수 있고 빛날 수 있어요. 아직 모르겠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뿐 끊임없이 변하고 있어요.


성장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이라고 해요. 변한 거 없이 제자리인 것 같죠. 이제 좀 바뀌었나 싶은데 여전히 제자리에 맴돌고 튀어나오는 발작 버튼과 방어기제로 인한 결핍으로 누군가와 사랑을 하고 헤어질 때면 사랑이 누구보다 갈급했기에 남들은 그냥 가볍게 넘길 일도 피눈물을 흘리며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낄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런 나를 잘 보듬고 안아주면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조금은 세상에 나와 또 사랑을 하고 꿈을 위해 도전할 아플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어요.


흔한 안전지대와 돌아갈 곳이 없다는 좌절은 많은 것을 두렵고 불안하게 할지도 몰라요. 그럼에도 계속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분명 좀 더 나아지고 성장하고 달라질 수 있음을 믿어요. 그리고 안전지대가 없었다면 이제는 내가 선택하고 만들어서 내 안전지대를 개척하면 되죠.


저는 불행한 집안,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불행하게 살아간다는 편견을 깨부스고 누구보다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요. 결코 그 환경들은 당신이 선택하지 않았고 힘든 사건과 사고들이 당신 탓이 아니에요. 그냥 교통사고처럼 일어난 사건인 거죠. 그러니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았으면 해요. 충분히 당신의 아픔을 알아주고 애도하고 다시 그냥 살아가면 되는 거예요.


결핍과 분노는 강한 동력이 되어 남들보다 악착같이 버틸 힘과 끈기가 되죠. 남들이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나아갈 수 있는 바보 같은 짓도 끝까지 버틸 미련한 악바리 근성을 심어줬단 생각이 들어요.


편하게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다면 갖지 못할 재능인 거죠.

고통과 경험의 양이 적었다면 공감의 폭이 넓어지지도 않았을 거고 자립심이 커지지도 않았을 거예요. 혼자 독립을 해서 1년 반 만에 전세금을 갚는 독기도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제게 회복탄력성의 저자였던 김주환 교수님이 변화될 수 있단 가능성을 이야기했던 말들이 좋았어요. 누구보다 마음에 와닿았고 울림으로 감사함으로 힘으로 다가왔어요.


이 글을 읽는 이 중 힘들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혹시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곧 지나갈 거예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통도 즐거움도 결국 머물고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면 고통이 다가올 때 행복을 기억하게 될 거예요. 당신은 결핍 속에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란 걸 얘기해주고 싶어요.


그걸 알아주고 별견해 줄 따뜻하게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앞으로 조금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남들이 다 뭐라고 헛소릴 늘어놓고 가난하고 못난 집안은 별로라는 식으로 비난을 일삼고 선입견 가질지라도 그냥 맘대로 생각하게 내버려 둬요. 그건 그 사람의 생각일 뿐 진짜 내가 아니잖아요. 상대방의 비난이 당신의 존재 가치를 결코 깎아내릴 수 없어요.


쓰레기를 줄 때 받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그냥 그 말을 받지 말고 더 멋지게 살아가면 되는 거예요. 당신은 누구보다 멋진 가능성을 가진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니까요. 쥐뿔 아무것도 없는 저도 이렇게 멀쩡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말고 우리 함께 행복하자고요.


당신은 누구보다 힘듦과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인재라 아픔을 겪어왔던 거예요. 앞으로 당신의 경험은 아픈 이들에게 강력한 힘과 위로가 될 것이란 말을 건네고 싶어요. 모두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요. 각자의 결핍이 있기에 때로는 연결되고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더라고요. 결핍은 좋은 재료예요. 그 관점을 바꿔 앞으로 나아갈 에너지로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몰랐던 나를 알아채는 도구로 사용하길 바라요.


고통이 깊고 진했던 만큼 남들보다 행복 역치도 낮아서 사소한 일상과 소소한 자연만 봐도 행복할 수 있는 큰 장점을 지녔잖아요. 당신은 가능성을 발현하지 못했을 뿐이니 부디 당신의 삶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자신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누가 뭐라고 해도 당신이 꺾여도 다시 일어난 후 행복할 수 있어요. 앞으로의 삶과 미래를 기대하고 응원할게요. 그러니 부디 삶을 포기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은 그 누구보다 행복할 자격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니까요.


저도 미래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사랑을 내어주는 멋진 엄마가 될 거예요. 사랑을 한껏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행복과 사랑력을 높이는 훈련이 선행되어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나와 가장 가까이 밀접한 관계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집착하지 않고 투사하지 않고 성장시키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그만큼 가치 있고 뿌듯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가 완벽주의로 도덕적인 기준이 굉장히 높다면 아이에게 투사하며 강요를 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동일시 여기기보다는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고 다름을 알아봐 주며 살피고 마음으로 하는 경청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어요. 가정으로부터 배우지 않았다면 책이 있고 요새는 유튜브도 있고 다른 사람을 통해 후천적으로 우린 습득할 수 가능성이 있음을 믿어요.


저는 필라테스강사 일을 하며 오전에  많은 주부 회원님들과 수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어요. 출산 후 엄마가 된 여성들은 관절이 느슨해지고 모든 영양분을 빼앗겨서 관절이 시린 증상을 호소하고 호르몬 문제로 괴로워하고했죠.


밤새 우는 아이로 인해 잠도 잘 못 자기도 하고 예전처럼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도 없게 되죠. 임신 중 호르몬의 변화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을 잃기 쉬우니 미리 건강을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함을 느꼈어요.


근데 이렇게 몸이 망가지고 고생을 하는데도 자식들 덕분에 활짝 웃음 짓게 되고 행복한 엄마들을 보면서 엄마가 되어 자식을 키는 건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이 생기고 경험해보고 싶어 졌어요. 엄마란 존재는 참 위대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어릴 때 항상 삶이 힘들게 느껴져서 사랑을 꿈꾸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어가고 세상 속에서 사랑받는 경험과 성취를 경험했어요. 혼자 독립을 하고  뒤에도 여러 사건으로 가족이 끊어지는 경험도 해보게 됐죠. 가정이 없으니 내 사람을 선택해서 미래에 나의 둥지와 가족을 이루는 엄마가 되야겠단 꿈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연애를 하고 이별 전후로 제 가치관을 완전히 뒤 바뀌었어요. 

항상 일에만 빠져서 "성장, 변화, 배움 "이었고 혼자 사는 인생을 꿈꿨고 일이 전부였던 사람이었는데 인생의 가치가

"행복, 사랑, 건강"으로 뒤 바뀌었어요. 사랑은 사람을 완전히

바꾸는 힘이 있는 것 같았어요.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고 힘든  일도 힘들지 않게 하는 마법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대학생 때 상황극 보조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쳐 보니 함께

알려주고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걸 보람을 느끼고 좋아하더라고요.  책 읽고 낭독해 주는 건 자신 있어서 미래의 아이에게 상황극 하듯이 그림책을 읽어주고 아이들의 성장기를 에세이로 담고 그림책을  만들어 주고 계속 뭔가를 만들어주는 상상을 고는 요.


과거에는 일에서의 정점을 찍는 것만이 꿈이었는데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유명해지고 영향력을 행사하며 알려지기보다는 인생에서 나를 알아주는 동반자 한 사람이면 충분하단 생각이 들고는 요. 만나서 많은 사람들과 떠드는 것도 즐겁기는 하지만 혼자 있는 것도 좋아하고 다수보단 경험담을 같이 이야기하며 사색하는 가치관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넣고 싶어서 넣은 사진들 개연성 없음. 올해는 오리 너구리가 되보자


전 좀 스스로가 복잡한 독특한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내 마음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상대가 나를 다 알아줄 거란 기대가 이제는 크게 없어요. 경험하지 못한 영역을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폭력이 될 수도 있더라고요.


나처럼 깊게 파고들고 복잡한 사람이 흔치 않더라고요. 그러니 상대에게 의존하기보다는 내가 나를 잘 알아주고 셀프케어를 하는 게 현명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공감 능력은 남자와 여자는 완전 다른 생물이니 그것까지 바라는 건 욕심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섬세한 남성의 공감 능력이 무똑똑한 여성의 공감 능력에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되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 남성한테 동성 친구만큼의 공감 능력을 바라는 건 욕심이란 생각이 들어요. 자원이 없어 고갈된 사람한테 달라고 계속 매달리면 얼마나 힘들고 괴롭겠어요.


단순히 공감능력이 높은 사람보단 조금 현실적이고 논리적으로 내가 놓친 관점의 시야를 열어주고 사이다 발언과 팩폭을 날리는 사람들을 보며 묘한 쾌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F들의 따스한 방식의 위로도 좋아하고 T들의 문제를 직면해 해결하는 현실적인 방식들도 힘이 됐던 것 같아요. 그 근본적인 마음에는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담겨있다는 걸 이제는 다름을 이해하고 알고 있으니까요.


나와 다른 공감 방식이 아닌 문제 해결 방식의 흥미롭고 호기심을 갖고 연구하게 됐어요. 못했던 관점을 열어줄 때 호기심이 많아 다르지만 즐거워요. 색달라서 맘에 들었던 것 같아요. 힘든 일로 마음이 울적할 때 웨이트로 힘들게 굴려서 상쾌하게 만들어줬던 T친구의 위로 방식은 정말 맘에 드는 방식이었어요.


울다가 힘든 웨이트를 하면 잡념도 사라지고 역시 사람은

적당히 굴러봐야 행복해지는군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이 울적하고 복잡할 땐 역시 몸을 굴려야지..ㅋㅋㅋ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하러 첫 해외여행을 가려고

여건을 만들 때 가족과 끊어진 후 비상 연락망에 쓸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울적했던 적이 있어요.


그냥 웨이트를 하며 몸을 움직이니 현재의 실존하는 내 몸을 인식하고 너무 깊게 빠지지 않게 도와주더라고요.

몸이 힘들면 도파민이 뿜뿜 나오고 복잡함을 가볍게

환기시켜 주더라고요. 힘들 땐 움직이면 확실히

금방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됐어요.


주변에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감정, 내 꿈을 공감할 안전지대를 구축하고 내가 셀프케어법을 익혀 연인에게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게 현명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은 내 주변과 타인을 통해 충족할 수 없단 생각이 들어요. 그건 내가 스스로 다뤄야 될 영역이란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내 마음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관점을 바꾸는 게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행복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행복을 위해서는 삶에 고통이

동반돼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통스러운 경험은 뭘까?를 생각하다 보니 출산 후 육아라는 답이 나왔어요.


인생의 한번 출산이란 가장 큰 고통을 겪고 나면 세상이 이전과 달리 보이고 더 단단해질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냥  쉽게 얻는 안락한 편안한 행복보다는 은근 고통을 즐기는

변태 체질이라 힘든 것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요즘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안정기에

접어들지 않아 출산율 0.7%의 OECD국가 중에 거의 꼴찌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결혼이나 엄마가 되는 일은 정말 용기가 필요하고

엄청난 결심과 갖춰야 될 자격이 필요로 하단 생각이 들어요. 요즘 시대에 가장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행복한 삶을 꿈꾸며 좋은 엄마, 멋진 엄마, 아내가 되기 위해서 어떤 자격을 갖춰야 될까? 를 고민하게 됐어요.


먼저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별 후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안정감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어요. 심리를 배우니 양심적이고 선한 일을 하며 떳떳한 사람이 되는 것이 건강과 신체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느꼈어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정서적 안정감을 갖추고 행복해야 먼 미래의 아이도 행복할 테니까요. 육아서적을 읽고 내면아이, 포커싱 기법, 알아차림 등을 살펴보고 상담과 워크숍을 공부하면서 나를 다시 셀프 양육 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아이는 성인과 일과 달리 논리와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가 아닌 비언어적인 제스처를 이해하고 감정을 잘 알아차리는 작용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을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이 미래의 아이를 위해 중요하단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컨택을 통해 천천히 머물고 교감하는 것, 비폭럭 대화, 경청 워크숍에 관심을 가졌어요.


(감정 작업을 하면서 30살 정도의 성인이 되면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수용해 준 경험이 없고 효율을 추구하며 일을 위해 달려오거나 책임에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기에 헛헛한 번아웃을 느끼기 쉽다고 해요. 일과 사업을 위해 효율을 추구하며 빠르게 남들을 맞추며 달려온 사람일수록 감정을 살펴보고 속 마음을 꺼내는 작업이 중요한 거죠. 성인의 번아웃의 핵심은 놓치고 살았던 감정을 알아차리는 작업이더라고요. 여자들은 수다를 떨며 해소하지만 오히려 남성들은 그런 작업을 해본 경험이 더 없단 생각이 듭니다. 그게 쌓이다 보면 결국 이유 모를 만성적인 피곤함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에 대한 핵심키가 글쓰기와 비표준어 감정사전 만들기란 생각이 듭니다. 몸의 통증은 묵혀둔 정신적 이슈인 경우도 꽤 있더라고요.)


육아 서적은 소셜링에 만나는 참여자와 회원님들께 적용할 만한 게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육아의 목적은 한 인격체의 독립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집착하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양육은  밥 짓기와 닮았어요. 밥을 지을 때 소금 설탕을 첨가하기보다 사랑과 따뜻한 시선(물과 불)으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해 주고 지지해 주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자녀를 미래에서 온 사람들로 보는 마음가짐도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래서 세상에서 변화와 성장에 대한 요구를 부여받고 책임에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 타인과 남을 맞춰주면서 자신을 챙기기에 소홀했던 이들에게 "그대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었어요.


잠깐만 책임의 무게감을 내려놓고 그냥 살아서 숨을 쉬고 살아있는 모양,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당신의 모양이 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었어요.


그 말을 타인에게 뱉으면서 나를 위해 다시 마음속에 나를 단단히 하기 위해 건네는 말이기도 했어요.

그렇게 말을 무수히 반복하다 보면 무의식과 의식에 중간 지점에 그 말이 켜켜이 쌓여서 정말 나를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로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더라고요.

현실에 돌아가면 다시 맞춰주는 시간을 보내는 환경 속에 놓일지 모르지만 잠깐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쉼이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부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천천히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선택하고 자신의 방향대로 나아갈 수 있는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는 멋진 사람이에요.


그렇게 나와 너무 긴밀한 미래에 남자 친구님한테 불안해하거나

집착하며  감정적으로 너무 의존하지 않도록 정서적 안전지대가 될 관계들을 사전에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티스트 어벤져스들_재능부자들♡♡♡


안전지대를 만들고 함께 성장하고 싶어서 [아티스트 웨이] 워크숍 12주를 진행했어요. 이들이 워크숍 과정을 통해 마음근력이 향상되고 단단해지고 성장해서 자신들의 꿈을 이루고 성공하길 꿈꿔요. 계속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이어가며 서로를 응원해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이들이 되길 원해요.


워크숍  이후에도 영감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마음을 따스히 알아줄 사람들이 되길 꿈꾸고 있어요. 각자가  마음이 더

단단해져서 주변의 좋은 영향력을 줄 사람들로 계속해서 성장하기를 바라요. 이들의 가능성을 믿어요.


나를 믿고 신뢰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은 앞으로

제 삶을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더해 줄거란 생각을 했어요.


멋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지금 미련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도전과 꿈들을 모두 시도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내 꿈에 미련이 생기면 내가 못 이룬 꿈들을 자식에게 강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열심히 일만 하는 삶에서 이후 명상, 마음 챙김, 심리와 상담을 배우고 소셜링 콘텐츠를 만들고 시도해 봤어요. 


스쿠버다이빙, 등산, 러닝, 무용, 공연 등 정말 다양한 움직임들을 체험하고 사업가 모임부터 운동권, 사회복지, 예술 등 여러 분야의 그룹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을 배우고 건강, 예술, 심리 파트의 다양한 워크숍을 들었어요.


등산은 사랑이에요.
소셜링을 돌아다니고 많이 열다보니 도달한 점수. 도장깨기 느낌
작년에 만든 에세이 문집 2권


사실 혼자 있는 고독과 일을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사람과 관계를 배우고 생각을 듣고 싶어서 작년에 소셜링만 100회를 넘게 돌아다녔어요. 하반기에 글쓰기에 도전해 에세이 2권을 만들고 일상춤 공연과 연기 활동도 진행했어요. 내가 못했던 꿈을 자식에게 강요하지 않는 엄마가 되기 위해 조금 철없어 보이는 하고 싶은 시도와 도전들을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해보게 된 것 같아요. 남들에 속도와 주변의 방향을 따르면 제가 하는 일이 미련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제가 나아가는 속도와 방향, 지금 나아가는 때는 이게 맞다. 는 판단을 했어요. 돈이야 과거 악착같이 벌어 본 경험이 있으니까 언제든지 다시 벌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씁쓸한 건 한 가지만 너무 몰입하는 탓에 소개팅을 갔을 때 관심사인 콘텐츠 얘기를 해서 빠꾸 당한 경험이 있어요. 


사실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덕후처럼 파는 성향이 있어서 약간 경주마 기질도 있고 다른 건 잘 안 들어와요. 소개팅에서 홍보하려고 한 게 아니라 생각이 계속 콘텐츠 하나밖에 머릿속에 없기 때문에 관심사 말하라길래 말했던 거예요.

하나 꽂히면 그것밖에 생각이 안 나서 홍보 의도는 없었는데 너무 좋고 주관심사다 보니 자꾸 말로 튀어나오더라고요.

튀어나오려고 할 때마다 자제하려고요.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게 계속 머릿속에 꽂혀있는  얘기,

콘텐츠 얘기를 하다가 썸을 망쳤던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연애할 때 로망이 책을 읽고 가치관 대화를 나누는 거라서

[사랑수업] 책을 들고 와서 같이 공부하고 챕터별로 매주

같이 도장 깨기하고 실천해 보자며 플랜을 짜왔는데

연애가 스터디하는 것 같다고 망쳤던 기억이 요.


남자친구가 s였는데 가치관과 생각들을 물으니 생각하지 못한 거라 너무 어렵다는 소릴 들었어요.

연애할 때 하고 싶은 취미 같이 하는 사람?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성장하는 사람?

을 윈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책 읽기를 하자며 조른 게

혹시 강요한게 아닐까? 헤어지고 엄청 자책했어요.


헤어지고 로맨스 영화를 정독하고 스킨십도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일밖에 모르는 로맨스 없는 연애 고자였음을 느끼고 반성했어요.


학창 시절 야동 같은 음란물은 안 보고 사회에서도 술, 담배 안 하는 젊은 선비였거든요. 자꾸 자취방 오라는데 왜 그러는지 몰랐어요. 아.. 남자친구가 꼬신 거였구나. 직설적으로 얘기 좀 해주지. 전부 돌려 말해서 눈치가 없고 잘 몰랐어요.


잠깐 cc를 하고 연애할 때도 혼전순결이란 가치관을 지켰어요. 개인의 욕망으로 자식을 낳아 불행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런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리 욕망이 있다고 해도

관계는 그만한 확신이 설 때 가져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건강한 엄마가 되고 싶어서 술, 담배를 하지 말아야 될

명확하고 또렷한 이유가 생겼어요.


연애할 때 너무 정서적 교감 노래를 불러서 헤어졌단 생각이 들어요. 스킨십을 공부해서 다음 연애에는 선비가 아닌 변태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다음 썸에는 "키스가 궁금해요."라는 말로 급발진을 했어요.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네 생각이 난다며 고백을 날렸던 기억이 나요.


근데 선비로 살아서 손만 잡아도 너무 긴장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쭈구리가 돼서 뚝딱거리며 고장 났어요. 


동성과는 포옹도 하고 별거별거 다했는데 좋아하는 이성과는 손잡고 걸어가것도 스킨십도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난이도가 넘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목소리만 들어도 심쿵해서 잠을 못 자고 자꾸만 생각이 나서 불면증이 생겼어요. 도파민 과다분비..

지난 연애와 달리 로맨스 영화를 본 이후로는 마구니가 껴서

상상력이 잔뜩 늘었어요. 호기심도 많고 상상력도 뛰어났고 자극들 하나하나에 민감했어서 덮치고 싶은 거 욕망들이

있지만 어릴 때부터 참는 건 자신 있었으니까요. 


사실 정서적 교감을 통한 깊은 가치관 대화를 원했지만

상대가 다른 걸 원한다면 다 맞춰 줄 자신은 있었어요.

호기심이 많아서 다른 교감도 해보니 즐겁더라고요.

확실히 스킨십을 좋아하지만 자제력이 강했던 것 같아요.

사랑에 빠지면 사랑하는 사람 한정 말 한마디 놓치지 않고

전부 다 기억하는 칭찬봇이 됐던 것 같아요.


이별 덕분에 감정을 나누는 대화를 공부하게 됐어요.

말을 줄이고 듣는 법을 연습해야겠단 생각을 했죠.

멀티가 잘 안 되고 생각이 많아서 기억을 잘 못 해요.


한 번에 여러 사람을 만나 어장을 치거나 바람을 피우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모든 사람을 기억하기보단 진짜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만 기억하려고 해요. 


너무 바쁘게 살아서 연애를 못 할 거라는 피드백도 듣고 좋아하는 일에 꽂히면 그것만 파는 성향이 있어서 제 콘텐츠에 관해 신나서 늘어놓는데 그걸 보고 사업 설명회 같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 충격.. 반성중입니다. 넘 한결같고 앞뒤가 똑같고 솔직하고 내숭도 못 떨어서 연애초보라 슬픔ㅠㅠ

요새 생각이 콘텐츠 연구 밖에 없음.ㅠㅠㅠㅠㅠㅠ

다른 게 머리에 안 들어옴..

글쓰기 꽂힐 때는 그것만 생각나더라고요.

몰입감은 좋은데 멀티가 영 안되네요.


연애도 사실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르겠어요.

고백을 받았으니 시작을 했지.. 에라 모르겠다. 에요.


소개팅은 어떻게 하는 거죠? 뭔 말을 해야 하는 거지?

다들 연애 어떻게 하는 거예요? 잠깐 보고 마음이 생기나?

학교나 운동 크루에서는 자주 보다 친구한테 러닝을

배우면서 친해졌어요. 둘 다 자신을 혹사시키면서

바쁘게 살고 술, 담배 안 하는 선비 타입이었어요.


난 일출 등산을 꼭 가겠다고 고집부렸는데

바다 일출을 보여주겠다는 말에 설득당해버렸어요.


밤새 달려서 속초 바다에서 일출을 보며

"서로를 제어해 주는 존재"가  자며 사귀었어요.


보통은 다들 어떻게 사귀는지 감이 안 와요.

소개팅도 어떻게 하는지 영 감이 안 와요.


뭔가 형식과 틀이 짜여 있고 단기간에 어떻게 결정을 하는 건지 신기해요. 그래서 그 뒤로는 소개팅을 안 나갔는데 이성과 대화하는 거 연습 삼아 나 봐야 되나 싶어요. 


1가지에 꽂히면 그것만 파는 성향이 좀 과하다 보니 열정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워커홀릭으로 보더라고요. 사실 뭐 하나에 꽂히면 그거 하느라 핸드폰도 잘 안 봐요. 인스타도 잘 안 하고 트렌드, 대중적인 거에 관심이 별로 없어요.

 

취미나 책에서 주제 뽑아서 가치관과 생각을 다양하게 사유하는 대화를 좋아하지 sns나 카톡에 취미가 영 안 생겨요.


일단 현재는 열심히 하고 싶은 도전들을 다 시도한 이후에. 다시 센터로 들어가 전임부터 시스템들을 배우고 싶어요.

지금은 프리랜서 강사로서만 살아왔는데 올해 마지막 연극과 상황극 배우로의 활동, 아티스트 웨이를 끝으로 시스템, 구조, 관리를 하는 전임으로 들어가려고 해요. 글쓰기와 콘텐츠를 이어가지만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현실의 안정감도 중요하니까요. 대중 예술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순수한

이야기를 못 하더라고요. 그러니 돈이 없어도 하고 싶은 예술 작업 따로 아예 섞이지 않게 현실적인 필라테스로 안정감을 잡는 밸런스가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콘텐츠만 집중을 했는데 3년가량은 푹 안정적인 시스템 속에서 배우고 이후는 대표로도 센터를 운영할 만큼 돈을 모아 센터를 열만큼의 능력과 흐름을 알고 싶어요.


책을 만들어서 간간이 잊을 만할 때

들어오는 치킨값을 벌고 싶단 생각도 있어요.


열심히 시도하고 구축해서 나중에 연인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인데..

소개팅에서 공공재나 하란 말에 굉장히 씁쓸했네요.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좋은 엄마가 되는 게 꿈이라고!!

지금 이 모든 활동들은 좋은 가정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을 해요. 좋은 가정을 위해서는 내 일도 해야 되고 내 삶을 잘 지키기 위해 미리 훈련을 좀 해야지. 공공재 소리반발심이 생겨서라도 연애를 하고 꼭 좋은 가정을 이루겠어!!


연애 시작 전부터 엄마라니 너무 먼 미래까지 꿈꿨어요.

근데 이렇게 장기적으로 이상적인 꿈을 꾸고 높게 잡아 둬야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연애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러니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열심히 하며 내가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 안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나만의 속도와 방향대로 나아가야겠어요.


사주에서 남자복이 없고 고생을 정말 많이 하고 말년에 성공한다며 양육하고 가르치는 쪽을 이야기를 듣기는 했는데.. 남자 복 없다는 얘기에 씁쓸했지만 뭐 운명은 정해진 게 아니라 내 삶은 내가 스스로 개척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고래고래 외쳐봅니다.


미래에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멋진 엄마가 될 수 있길 꿈꿔요.

사주를 풀이하는 것도 그 사람의 관점의 문제지 인생과 운명은 내가 개척하는 거 아니겠어요??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창조해 내는 기적을 만들어보겠어!!라고 외쳐봅니다.


전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심이 그득그득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먼저 내가 올바로 서고 행복해야 내 주변도 행복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착하기만 한 사람이기보다는 적당히 이기적이고 적당히 착한 그런 사람이 되려고요.


그래서 제 행복을 위해 내 그룹 안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다들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나에 마음에 맞는 선택을 하고 온전히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서 더 많은 것들을 이루고 조금 더 세상이 따뜻한 온기로 채워지길 꿈꿉니다.


인생은 끼리끼리라는데 아직 나와 비슷한 사람을

못 만나서 그렇지 만나서 행복한 삶, 해피엔딩을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려고 합니다. 우리 존재 파이팅!


내가 추구하는 인생의 3가지 가치 :  행복, 건강, 사랑


-행복: 내가 돈을 버는 이유도 활동을 하는 이유도 누군가를 만나는 이유도 행복하기 위함 아닐까요? 전 제가 열심히 수고했을 때 고마워하는 사람,  감동받은 사람의 얼굴을 볼 때 즐거운 대화를 나눌 때 큰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요새는 어릴 때와 달리 맛있는 거 먹을 때도 큰 행복감을 느끼고는 해요. 빙수 먹을 때 자연을 산책할 때 무언가를 만들 때도 행복하고 세상은 행복한 일 투성인데 어릴 땐 그걸 잘 몰랐어요. 따뜻한 말과 힘이 되는 말에서 큰 힘을 얻고는 해요. 행복은 빈도수라는 말에 맞춰 좋아하는 취미를 한가득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나만의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바쁘게 살 때는 잘 몰랐는데 주변에 관심을 갖고 호기심을 가지니 일상에 행복한 일이 많음을 느껴요. 가끔 괴롭고 힘든 부정적이라 여길 감정도 마주하다 보면 행복도 늘어나는 것 같아요. 도전하고 성취하고 머물고 쉴 때의 밸런스를 조율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건강 : 몸의 건강과 마음 건강은 같이 간다고 생각이 들어요. 몸이 무너지면 무력감이 생기고 짜증이 나고 이해와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부정적 감정을 느끼기 쉽죠.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활동들을 못 하기도 하죠. 건강의 적신호는 나를 챙겨주는 고마움이지만 잃고 나면 정말 괴로워요. 운동과 수면, 글쓰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잘 케어하고 잃고 나서 찾기보단 미리 예방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술이나 담배도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행복한 일 하고 싶은 일을 한가득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오랫동안 순수하고 꿈 많은 건강한 어른으로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싶으니까요.


-사랑 : 사랑은 생각하는 것에서 유래가 됐는데요. 내가 무언가 호기심을 갖고 관심을 갖는 모든 것이 됐던 것 같아요. 돌아보면 때에 따라 연기라는 꿈이 되기도 했고 종교적 신념이 됐던 적도 있고 일을 통한 돈이 됐던 적도 있고 가족, 연인이 됐던 적도 있는데 돌아 돌아보니 결국 "나"를 먼저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더라고요.  항상 열심히 간절히 바라고 염원하고 도달하려고 독기를 품고 집착할수록 긴장하고 오히려 어설픈 실수를 했던 기억도 나요. 그래서 사랑하는 것들로 인해 많이 괴로워하고 헤어질 때 죽을 것처럼 힘든 시절들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너무 간절히 염원하기보다는 그냥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마지막에 툭 내려놓기. 자연스러운 힘 빼기, 집착 없이 욕심 없이 그냥 흘러가는 흐름에 맡기는 연습을 해보는 중이에요. 무겁지 않고 가볍게.. 단순한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꿈꿔서 현실 감각이 떨어질 때가 있어서 세상에 나와서 좀 듣긴 해야 돼요.


간절하게 최선을 다해 끝까지

노력하고 마지막에 툭하니 내려놓기.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그 속에 사랑이 없다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말이 있어요. 아무리 옳고 착한 소릴 하더라도 마음 중심에 사람을 사랑하는 말이 없다면 그저 잔소리일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삶에서 사랑은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랑이 담긴 따뜻한 말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꿈이라고는 했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조금 먼 미래의 목표로!!

결국 결혼은 현실이니 지덕체 밸런스도 잡고

앞으로 돈도 열심히 모아 봐야겠어요.


만약 맘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솔로로 산다면

나름대로 홀로 멋있게 살아가면 그만이지.

라는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시도들을 이어나가야겠어요.

지금은 미래에 멋진 엄마를 목표로 파이팅!



#주저리주저리 풀어내는 건 잘하는데 생각이 많아서 핵심을 한 문장에 담기가 어려워요.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글을 쓰면 너무 솔직해져요. 그래서 과거의 생각에 바뀐 지점들을 불태우고 화형식을 해버리고 싶단 생각도 듭니다.

사실 그전까지 내 생각을 솔직히 드러낼 때 나를 선입견을 갖고 바라볼까 봐 굉장히 두려웠고 전전긍긍했어요.


근데 그냥 이 모든 모습들을 변화하고 성장하는 추이들을 기록하고자 해요. 이제는 그냥 난  이런 사람이야. 하고 드러내 보려고요. 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변화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모든 사람들한테 포장하면서 사랑받기보단 그냥 브런치에서는 솔직한 대환장 파티의 나의 성장기를 그냥 드러내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멋지게 행복하게 살아갈 거니까요. 선입견을 갖고 저를 진지하게 보고 재미없어하는 것도 ok. 원래 난 이런 사람이니까요.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되는 거죠. 저는 고정된 사물이 아닌 움직이는 생명력을 가진 존재니까요.


#제대로 글을 배운 적도 없고 감정이 격했을 때 쓴 글은 계속 할머니처럼 똑같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반복했어요. 퇴고를 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그냥 생각을 그냥 올리기도 했어요.

근데 계속 감정을 쓰다 보니 옅어지고 별거 아닌 일처럼 가볍게 드러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확실히 글은 치유력을 지녔단 생각이 듭니다.


#글쓰기도 지금은 영 보잘것없지만 계속 써내려 가면서

  성장할 거예요. 저의 성장기를 기대해 주세요.


#작년부터 과거를 깊게 톺아보는 글은 브런치에서 이 글이 당분간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는 현재와 그날의 활동의 감상을 기록하려 합니다.



Q 나의 보이지 않는 자산은?

1) 호기심인데요.

강점 검사를 하며 지혜 파트가 대체로 높게 나왔어요.

호기심은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배우는 건 전부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세상에 아직도 아이처럼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는 게 많아요. 무엇이든 새롭게 배우는 건 다 좋아요.

어렵지만 즐겁습니다. :)


2) 낮은 행복역치?

애초에 밑바닥에서 시작해서 행복 역치가 낮은 것 같아요.

하늘에 몽글몽글 구름과 노을만 봐도 행복합니다.

요새는 달달한 빙수를 먹고 예쁜 문구, 힘이 되는 문구를

발견했을 때 내 모임의 참여자들이 성장하는 여정을 함께

지켜볼 수 있음에 감사하고 행복해요.


열정, 몰입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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