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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온 Dec 14. 2023

어느 할머니의 손편지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남겨진 사람들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우리 딸.

누구보다 든든한 우리 아들,

새끼 강아지 같은 똥꼬발랄한 우리 손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나이가 드니 너희들을 보는 맛으로 산다. 할미는 이제는 지나온 추억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 같아. 똥깡아지 같은 우리 손주, 어렸을 때 00(아들, 딸 이름)이와 판박이더구나. 어찌나 고집이 쌘 똥강아지인지.. 이 할미 어린 시절과 쏙 빼다 박았지. 눈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며 예쁜지 참 사랑스럽더구나. 나를 닮은 너희들을 보니 그렇게 예쁘기만 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는 말들이 너희를 보니 실감이 난다. 처음 배가 아파 너희들을 만났을 때 나는 너희들을 만남이 행복하면서 두렵기도 했다. 이렇게 예쁘기만한데.. 너희들을 보니 우리 엄마가 한편으로는 원망스럽기도 하더구나. 나를 무척 사랑하지만 표현 방식이 서툴러서 상처를 줬던 우리 엄마. 나도 너희들에게 상처를 주는 어미가 될까봐 정말 기를 쓰고 나를 먼저 케어하고자 많이 공부했었다. 정말 두려웠는데 그래도 이런 부족한 나를 사랑하고 잘 따라와준 너희에게 참 고맙다. 너희들을 만나서 나도 참 많이 자랐다. 너희들 덕분에 엄마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드니 사람의 온기가 그립고 적적하다. 젊을 때는 혼자 있어도 외로운 걸 몰랐는데 늙으니 몸이 예전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호르몬의 영향 탓에 갱년기로 인한 감정 기복도 올라오고 서글픈 감정, 마주하기 싫은 감정들이 종종 올라온다. 이제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실감이 난다. 아무도 없었다면 눈에 밟히지 않았을텐데 너희를 만났다는게 내게는 큰 행복이었음을 느낀다. 먼저 간 그 이의 빈 자리가 외롭게 느껴진다. 그 당시 꺽꺽대며 토해내듯이 울었었는데.. 이제는 눈물이 다 매마른 것 같다 .참 따뜻한 사람이었지. 먼저 그렇게 예고도 없이 사라지고 야속한 사람이었다. 자꾸 남겨두고 떠나야한다는게 마음에 걸린다. 너희들의 환한 미소가 자꾸만 아른거려서 내게 마지막이 다가온다는게 아쉽더구나.


어릴 땐 내가 왜 태어난걸까? 세상이 원망스러웠던 순간도 있었는데 끝이 다가오니 이제는 삶을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 행복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살아감에도 삶이 너무 그립더구나. 모든 것 하나하나가 그립고 소중한 걸 보면 난 운이 좋은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


눈에 너희를 담고 목소리를 들어도 여전히 너희들이 그립다. 나는 떠나가지만 너무 그리워하고 슬퍼하기보다는 너희들은 너희들의 삶을 충실히 살았으면 좋겠다. 삶을 쭉 회고해보니 너희들과의 만남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행복이었단다. 행복하다 못해 이제 끝이 다가온다는게 가슴이 저릿하게 아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나를 만나줘서 고맙다. 떠나가더라도 영원히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죽음 또한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받아 들이려고 노력해본다. 늙으니 예전처럼 냄새도 잘 안 나고 기억도 참 가물가물해. 어릴 땐 시력이 참 좋았는데 눈도 침침하니 세상이 조금 흐릿하더구나. 겨울 유리창에 김이 서린 것처럼 온 세상이 뿌옇게 느껴져. 뿌옇게 보이는 탓에 내게는 매순간이 한 겨울의 크리스마스 같이 느껴진다.


어릴 땐 늙음도 죽음도 멋지게 받아들이는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기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이 서글프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두렵더구나. 건강이 중요하다는 말을 계속 되내이며 잔소리를 하게 될 줄이야. 아프고 기력이 없는 늙은 몸뚱아리. 아무리 내가 노력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죽음이란 그림자가 두렵다. 너희들은 맛있는 것도 많이 잘 챙겨 먹고 몸 관리를 잘 하렴. 늙으니 이곳 저곳이 내 몸같지가 않아. 그래서 예전만큼 새롭게 경험하지 못한다는 게 늙으니 영 아쉬운 것 같아.


젊을 때는 등산이니 뭐니 그렇게 돌아다녔었는데 아프고 늙으니 참 서러웠지. 근데 그것보다 더 속상했던 건 기억을 붙잡아 두고는 싶은데 몸도 기억력도 영 젊을 때만 못하다. 젊을 때도 기억력이 썩 좋지 않아 기록에 집착하고는 했었는데 늙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영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는 거야. 어릴 때 본 영화 속 주인공처럼 머릿 속에 지우개가 있는지 자꾸 지워져 나가. 기억이란 필름이 중간중간 끊겨져 있는 것 같단다. 추억을 꺼내고 기억을 끄집어 내는 것 조차 어려워진다는게 내게는 그렇게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침침한 눈으로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길게 풀어놓은 글과 영상을 보며 지난 날을 추억하고 반추하고는 한단다. 그제서야 그 때의 감정들이 생기있게 살아나더구나. 그러니 경험을 했다면 조금 번거럽더라도 기록을 남기는 것이 남은 삶을 즐기는 하나의 즐거움이더구나.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붙잡지 못함이 내게는 서글프더구나.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 망각이라는 것이 괴로운 기억을 흐릿하게 만들어 고맙기도 했지. 너무 아픈 기억이 자꾸 떠오르면 그건 앞으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더구나.


그러니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으니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쓰고 표현하고 멀리 태워버리렴. 그리고 좋았던 행복한 기억들은 사진과 글로 영상으로 차곡차곡 추억들을 쌓아갔으면 좋겠다. 나이가 드니 이것이 가장 큰 자산이었고 행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아무리 맛있는 걸 먹어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 맛이 영 느껴지지 않더구나. 맛있는 것도 젊을 때 많이 맛을 보고 여행도 많이 다녀오고 눈과 사진에 많이 담아두렴.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젊을 때 추억을 다채롭게 쌓고 많은 것들을 사랑했으면 좋겠다. 사랑할 것들을 세상에 많이 만들어 두니 인생이 좀 더 행복하더구나. 돈만 쫓고 일만 하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결혼이 두려웠는데 험난한 세상에서 내 편이 생긴다는 경험은 꽤나 소중했다. 그리고 내 생에 있어서 너희를 만날 수 있게 했으니 그 이와의 만남은 가장 옳은 선택이었단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 또한 소중히 여기고 충실히 보내렴. 나이가 드니 이제는 예전만 못해서 움직이지 못하니 추억을 곱씹으며 그때의 따뜻했던 경험, 사랑했던 경험으로 남은 삶을 살아 가는 것 같아. 많이 경험하고 기록하렴. 너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용기내어 표현하기를 바란다. 야속하게 먼저 떠나간 그 이의 빈 자리가 외롭게 느껴진다. 근데 때때로 함께 있어도 인간의 근본적인 외로움을 타인이 충족할 수 없는 법이란 말이 맴돈다. 그럴 때면 자연에 머물면서 나를 따스히 채워주는 햇살의 온기를 마주하고 너희들의 순수한 환한 미소를 떠올려 본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기분 좋은 것들을 떠올리고 좋아하는 것들에 머물다보면 어느 새 외로움도 굉장히 작고 가벼운 먼지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삶 속에 소소한 행복이 다시금 차오른단다. 그냥 사소한 일상에 귀를 기울이면 외로움도 공존하지만 행복도 나를 따스히 덮어주더라.


아무리 너의 속에 따뜻한 마음을 한가득 간직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표현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모르는 법이란다. 표현하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거든. 자존심을 부리는 사람이기보다는 그걸 알고 잘 듣고 표현할 수 있는 후회하지 않을 용기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지금 느끼는 행복, 감사함을 꼭 표현했으면 좋겠다. 떠나보내고 나니 그 때 그 사람의 이야기와 감정을 듣고 일이 바쁘다며 많이 나누지 않은 것이 후회로 남더구나.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자존심을 세우며 표현하지 못했던 게 아쉽더구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에 안 될거라. 는 충고보다는 그 꿈을 응원해 줄 수 있는 따뜻한 지지자가 되어 줬으면 좋겠다. 때로는 남들이 모두 다 안된다고 이야기할지라도 실패를 하더라도 미련하게 실패를 하며 네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해야 후회가 없단다. 그렇게 네 마음의 소리에 따라 선택을 하면 결과가 썩 좋지는 않더라도 그만큼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짊어지고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지. 경험은 더 값진 것을 배울 수 있게 하니 네가 한 선택에 용기를 내고 책임지는 삶을 살길 바란다. 내가 이야기했던 말에 다 따르려고 할 필요는 없단다. 너희들은 부디 너희들의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삶에 정답이 없어서 양심과 도덕적으로 위배되지 않는 이상 틀린 것은 없으니 그냥 너의 선택을 온전히 믿고 나아가렴.

네가 원하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머물고 들여다보는 고독의 시간도 필요하단다. 스스로 부딪히고 경험해보며 타인이 제시한 정답에 맹목적으로 따르기 보다는 너의 질서를 스스로 세우고 정답을 찾아나서기를 바란다. 나는 비록 떠나겠지만 나는 영원히 너의 선택을 믿고 지지하는 영원한 너의 편이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너희들의 모든 행동과 마음의 선택을 믿는단다. 부디 세상을 살아가며 더 많이 들어주고 조금 더 따뜻한 온기를 더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따뜻한 온기를 나누다 보면 함께 온기를 나눠줄 수 있는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 더 큰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을거야.


너는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잊지 말렴. 삶을 살아가다가 무너지고 쓰러지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너는 누구보다 큰 사랑으로 태어난 존재라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이가 드니 먹는 걸 그렇게 좋아했는데 씹는 것도 힘들고 이제 입맛이라는 것도 영 시원치 않아. 몸을 씻어도 나는 내 냄새를 맡지 못하는데 내게 고약한 악취가 나는지 인상을 찌뿌리는 주변의 시선들이 처음에는 당혹스럽게 느껴졌었다. 이제는 그런 시선들에 익숙해졌다. 사소한 것에 휘둘릴만큼 상처받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어버린 탓이다. 그런 걸로 거절감을 느끼고 상처받기에는 덤덤해졌단다. 나도 참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너희들이 찡그리며 다가오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된단다. 이 할미도 어릴 땐 감각들이 조금 예민한 편이라 굉장히 민감했거든. 그래서 피곤하면 조금 성을 내며 까탈스럽게 반응한 적도 있었지. 근데 늙으니 이제는 그런 감각들도 둔감해져서 평온해진 것 같아. 어려서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자극들이라 더 예민하게 몸이 반응했을테니 그런 걸로 너희들이 죄책감을 가지고 지나간 일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오히려 여러 자극들에 민감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생기있고 생동감있는 생명력이 넘치게 표현하는 너희들의 모습이 내게는 신선하게 다가온단다. 어릴 때 내 모습을 떠오르게 해.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고 울상을 짓는 모습들 조차 내게는 그저 귀엽고 놀랍다. 그냥 사랑스럽게 느껴진단다. 그러니 아가야. 너무 미안해하지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후회할 필요도 없단다. 할미는 정말 괜찮거든. 네가 무슨 행동을 하든 그저 내 눈에는 우리 손주는 변치않고 여전히 사랑스럽고 너무 예쁘거든. 늙어서 말이 어눌해지고 기억력이 희미해져서 즉각적으로 바로 표현하지 못해서 이렇게 글로 한자한자 끄적거려본다. 나는 네가 무슨 행동을 하든 여전히 그냥 너라서 사랑한단다. 그러니 후회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사람은 누구나 경험과 표현 방식이 다르므로 깊게 얘기를 나누기 이전에는 서로를 알지 못한단다. 다가갈 수 록 마음 속 의도와 달리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 받기도 한단다. 그래도 상처받을 걸 뻔히 알면서 그저 한 번 더 용기를 내는 거야. 누구나 서로를 찌르고 상처를 주지만 그럼에도 상처를 주고 받으며 다시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게 된단다.

나도 상처를 받을 걸 뻔히 알면서 그냥 네가 좋아서 용기있게 다가간거니 상처를 줬을까봐 괜히 지레 짐작하며 너무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변의 문제들이 생겼을 때 스스로를 가시로 계속 찌르고 후벼파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먼저 보듬고 케어하지 못하면 그 상처로 인해 또 누군가를 찌르게 되는 법이거든. 그러니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줬다면 그 사람도 아직 상처를 치료하지 못했구나. 연민을 가지고 훌훌 넘겨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리고 나 또한 상대에게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상처를 받을만큼 사랑하고 있었구나. 를 깨달으면 되는거야. 내가 너무 외롭고 사랑받고 싶어서 상처를 받았었구나. 하고. 우리는 모두 이번 생이 처음인 서툰 사람들이니까. 나도 너희들도 물론 마찬가지고. 그러니 괜찮다. 상처를 줬으면 그걸 기억하고 사과하고 다시 번복하지 않으면 된단다.


서로에게 그만큼 기대했고 사랑했으니 주고받는 상처들. 결국 네가 내게 미안했다면 그만큼 나를 사랑했기 때문이겠지. 나를 생각해주고 그만큼 아파하고 사랑해줬다니 그것만으로 고맙다. 내게 계속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말을 전달 받았을 때 나도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있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내가 표현했던 말들로 인해 후회가 되고 상처를 받는 것이니 "고마워. 사랑해. 미안해. "란 말에 자존심을 내세우며 주저하지 말자. 그냥 너를 위해서 한 번 더 용기를 내어 표현해보렴. 물론 상대가 받지 않을 수도 있겠지. 부담스럽지 않게 천천히 표현해보렴. 그리고 상대가 받아주지 않는다고 상처받을 필요는 없단다. 사랑은 상대가 너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선택하고 표현하는 너의 마음이란다. 네 마음이 원한다면 그냥 한번쯤 소중한 이들에게 표현해보렴. 그러다보면 인생이 좀 더 다채로워진단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는 오롯이 너를 위해서 표현하는거야. 그렇게 표현할 용기를 내야 후회가 없거든. 글을 쓰며 문득 그리움도 나눌 수 있어야 그리움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내 이야기를 읽고 들어주고 나눌 수 있는 너희들이 있음에 고맙다. 그러니 난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 이렇게 길게 주저리 주저리 기록하고 나눌 사람도 있으니 말이야. 내 속을 이렇게 꺼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들어줘서 참 고맙다. 그리고 항상 미안하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서 가끔 너희들에게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과 의도와 달리 내 고집이나 표현방식이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서 너희들을 아프게 했을 수도 있겠지. 내가 잘 못한게 있다면 서툰 사람을 용서해주렴.


일과 업무가 너무 바빠서 나를 못 보고 떠나보낸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이제는 너에게 맡겨진 가족을 위해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니까. 독립을 하고 너에게 생긴 소중한 가족들을 위해 시간을 보낸 것이니 너무 후회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너는 그 때 너에게 충실히 삶을 보낸거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든든한 가장이었어. 새로운 가족에게 충실하게 시간을 보내고 책임을 다한거잖니? 그리고 표현하지 않으면 마음은 상대에게 닿지 않아. 그러니 조금은 부끄럽고 낯간지럽더라도 조금씩 표현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마음 속에 있는 말이라도 꺼내지 않으면 모르는 법이거든. 조금 부끄럽고 낯간지럽겠지만 너의 소중한 인연들에게 조금만 용기를 내어줬으면 좋겠다.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이 말을 잊지 말렴.


어미를 떠나 멀리 갔다고 버리고 간 것 같다며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육아의 목적은 독립이라는데.. 내가 너희들의 삶을 붙잡고 계속 의지하고 얽매는 것도 영 멋이 안 난다. 꽤나 멋있게 늙어가고 싶으니 너희는 너희의 인생을 잘 살면 된단다. 나는 남은 여생을 잘 보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사랑하다보니 가끔 그립고 많이 보고 싶을 때도 있단다. 여유가 될 때면 한번 쯤 얼굴을 비춰주렴. 이제 나도 곧 떠나갈 시기가 다가온 것 같아서 보고싶구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한 걸로 인해 스스로를 자책하고 생채기를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 있더라고. 내 의도와 달리 오해를 하고 그렇게 멀어지고 상처를 주기도 하더라. 인연에는 총량이 있어서 너무 뜨겁게 빠르게 가까워지면 상처를 주며 멀어지기도 해. 그러니 떠난 이들은 시절 인연이었거니 생각하면 한결 가벼워진단다. 또 새로운 인연들이 그 자리를 채워줄 테니 인연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주렴.


정말 흔한 말이지만 익숙함에 속아 함부로 하지 말고. 생이 영원할 것이라면서 미래만을 생각하고 불안해하면서 너의 행복을 너무 뒤로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은 사람마다 제각각 정의하고 표현하는 바가 다 다르단다. 누군가에게는 성취가 행복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머무는 것이 행복이 되기도 하고 일상의 소소함, 사람들과 함께 좋은 가치를 주는 것이 행복이 되기도 하지.


가끔 문득 인생이 허무하고 공허하고 헛헛할 때가 찾아올텐데..

그럴 때마다 너와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곁에 뒀으면 좋겠다. 그게 먼저는 자신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용기를 내어 너의 이야기를 조금 꺼내두면 물론 그걸 이용하는 못된 사람들도 있겠지만 너의 솔직한 마음을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소중한 사람들도 있을거야. 그럼 무뎌진 너의 마음에 행복이란 색채를 더해줄 거야. 사람들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고맙다고 표현해주렴. 그리고 가끔은 너무 남을 위해 다 맞춰주며 살기보다는 너의 행복을 위해 조금 더 너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도 괜찮아. 네가 혼자서 모두 책임을 짊어지고 버거워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때로는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아.


너 자신만을 위해 살란 말이 이기적으로 혼자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더 너의 일을 선택함에 있어서 주변 사람들에 말에 너무 이리저리 휘둘리지 말고 너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도 되고 네가 할 수 없는 일까지 다 책임지려고 버거워하지 않아도 된다. 는 말이야. 너의 인생은 내가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네가 스스로 온전히 책임지고 살아가야 된다. 는 걸 잊지 말렴. 그렇게 자신에게 책임을 짊어질 때 너의 삶에 주인 의식을 갖고 행복할 수 있단다.


끝이라고 생각하니 이제 그만 줄여야지. 했는데..

계속 아쉬움이 남아서 했던 말을 주저리주저리 반복하고 설교가 늘어난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이야기를 해도 결국 모든 마음의 선택은 네가 하는 것이니 내 말을 곧이 곧대로 다 받아들이지 말고 너의 삶은 네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렴. 네가 무엇을 선택하든 나는 그냥 영원히 너의 선택들을 믿어줄게.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너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나는 여전히 너희들을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단다.


이 헤어짐이 참 아쉽다.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지금의 헤어지는 아쉬움을 충분히 나누고 훌훌 잊어버리렴. 가끔 감정을 너무 억제하고 통제하며 너무 좋은 모습만을 보일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 바쁘게 빠르게 효율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내가 너무 도태되는게 아닐까? 때때로 미래를 생각한 나머지 너무 불안할 수도 있겠지. 근데 너무 비교할 필요가 없는게 각자의 속도와 장점이 다 다른거니 타인과 비교하며 연연할 필요는 없단다. 그럴 수록 너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네가 정말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 너의 속도대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네가 모든 것을 다 책임질 수 없다는 걸. 그 당시 너는 너의 몫을 충분히 다한거야. 그리고 이제는 나 말고도 너희들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니? 그 사람들과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만들고 사랑을 표현하렴. 이렇게 마지막까지 너희들을 사랑하고 그리움을 나눌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고맙고 사랑한다. 여전히 너희가 그립다. 내가 떠난다면 그 시간을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고 너무 감정을 숨기고 억압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렇게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면 또 새로운 인연들이 그 자리를 대신 채워주고 너희들의 삶에 다시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 찰거야. 그러니 다가오는 감정을 너무 미워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지 말고 조금 더 흘러오면 흘러오는대로 받아주고 놓아주며 그렇게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렴. 함께 해줘서 다시 한번 고맙다. 아쉽지만.. 충분히 슬퍼했다면 너무 미련을 두고 계속 나를 곱씹고 꺼내기보다는 너희들의 삶을 위해서 나를 부디 잊어주기를 바란다. 때때로 너무 슬프고 아픈 것은 망각하는 것이 더 좋은 법이니까. 기억하는 것은 삶을 살고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지. 다 끝나간 늙은이를 너무 기억하며 아파하며 삶을 슬프게 보내기를 원치는 않는단다.


추신)

장례식은 화려한 것보다는 최대한 간소하게 하렴. 요새 장례식 비용이 만만치 않더구나.

다 죽어서 화려하게 하는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냥 살아있을 때 좀 더 목소리와 얼굴이나 비춰다오.

수목장으로 과일이 나는 나무를 심어서 나를 생각할 때 소풍 온다는 느낌으로 하거나,

아니면 화장으로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에이~ 장례식은 그냥 너희들이 편한 걸로 해라.

그래도 사망 보험은 잘 들어놨으니 넉넉치 않게 나올거야.

다 늙어가는 마당에 너희들한테 너무 손벌리며 짐을 더해주기는 싫었다.

보험금가지고 싸울 것 같은 조짐이 보이면 다른데 싹 다 기부해버릴테니 서로 싸우지 말고.

손주들 맛있는 거나 더 먹이고 여행이나 한번 더 다녀오고 좋은 추억들 많이 만들거라.

그리고 남은 삶을 내 몫까지 해서 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미래에 할머니가 된다면 똑같은 말을 주저리 주저리

계속 되내이면서 반복하지 않을까?

죽음은 가장 소중한 지점을 상기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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