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ISBN

3초 관심법으로 살펴 보는 정보

by 무당벌레
한국어 잘알못 외국인한테 자기 책 정보를 알려주려면 어째야 할까? 혹은 외국에서 한국 서적을 소개해 주려면? 책 제목 알려주면 될까? 흐음, 콩글리쉬 제목이라도 급조할까. 아님 교보 링크 건네주면 되려나;;;


책의 ISBN을 알려주는 수밖에 없다. 책의 지문이자 주민번호면서 여권번호 겸용인지라…. 때론 제목보다 더 요긴한 13자리 국제표준도서번호. 이너내셔널 스튼다아ㄷ 붘 남바.


ISBN만 쓱 보고도 여러 정보를 알 수 있다. 가령, 해당 출판사 규모가 어떤지나 출간 종수나 출간 빈도는 어느 정도인지를, 심지어 외국인이 봐도 대충 헤아릴 수 있다. 원고 투고에 관심이 많거나 출판계에 호기심이 있는 분들께도 꽤 유용한 표식일 수 있다. ‘ISBN 3초 관심법’으로 알아낼 수 있는 대표적 TMI 정보 몇 가지.




ISBN 자체가 안 붙은 책도 의외로 많다. 이제는 폭넓게 사용되는 ‘독립출판’이란 용어는 애초에는 ISBN이 부여되는 출간 및 유통을 거부하고 알음알음 세상에 나온 책과 그 유통 경로를 일컫던 말로 기억한다. 배포용 비매품, 소량 판매용, 실험적 서적 혹은 '불순 서적' 등이었다. (ISBN 유무가 본질적 기준이었는지 실은 가물가물하지만, 독립출판과 상업출판 간 경계를 따지려는 글은 아니니 패스.)


암튼 ISBN이 붙었으면 원칙적으로는 상업출판물이라 봐야할 듯하다. ISBN이 붙어야 대형 서점이나 도서유통센터, 총판 같은 공식 유통망에서 유통될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각종 도서관과 공공기관 납본도 가능해진다. 발행자(대개 출판사)가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서지표준센터에 신청해서 부여받는다.


ISBN에 대해 조금만 알면 해당 책의 출판사를 가늠하는 데 요긴하다. ISBN만 척 봐도 출판사 규모나 출간 이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설명이 살짝 필요하다. 아래 ISBN을 보자.



중요한 건 각 부분 자릿수다. A, B, E, F 부분의 자릿수는 다 고정인데, C와 D만 조신하지 못하게 자릿수가 변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발행자 식별번호(C)'의 자릿수가 짧을수록 출판사 규모가 크고 이력이 길며, 출간 종수가 많고 빈도도 높은 출판사라고 보면 된다.(현재 3 ~ 6자리가 쓰이는 중.)


척 들으면 아는 출판사들은 C가 3자리다. 현재 민음사 고유 식별번호는 374, 문지는 320, 문예출판사 310, 문학동네 416, 창비 364 등이다. 중견‧중형 출판사는 4자리이며 소형 출판사는 5자리가 대부분이다. 6자리는 갓 태어난 출판사거나 오래 돼도 거의 책을 안 낸 출판사다.


출판사 차별하려고 이렇게 배정된 건 아니다. 자연스레 그리 됐다. 각 출판사의 출간 종수가 늘어나면 '도서 식별번호(D)'의 숫자도 점점 커진다. 그런데 C와 D를 합쳐 7자리여야 전체 13자리를 맞출 수 있다. D의 자릿수가 느는 만큼 C의 자릿수를 줄여서 재배정 받아야 하는 것이다. 조신하진 못 해도 천지 분간 않는 자릿수는 아니란 말.


숫자만 떠올리면 숨이 가빠지는 분들을 위해 상세 설명 드간다. (2010년 즈음부터) 신생 출판사는 일단 6자리의 발행자번호(C)를 배정받는다. 유령 출판사 포함 국내 등록 출판사 수가 10만에 근접(8만 남짓?)하니 그러나 싶다. 아무튼 그리 되면 D는 1자릿수가 된다. 첫 번째 출간 책의 D 값은 0이 되고, (개정판이나 E북 포함해) 10번째 출간물은 9로 매겨진다. 출판사가 꼭 출간순서로 매기란 법은 없지만, 나중에 이빨이 빠져도 안 되기에 웬만하면 그렇게 매긴다.


이 출판사가 11번째 책을 내려면? 발행자번호 C를 5자리로 줄여서 재배정 받아야 하는 게다. 11번째 책의 D는 00으로 매기게 된다. 110번째 책은 99다. 111번째 책부터는 D가 3자리여야 하니 C를 4자리로 줄여 재배정 받는다.


실전 엑설사이즈. 지난해 4월에 나온 책인데, C와 D 부분이 90710-97(5자리-2자리)다? 이제 척 보면 안다. 90710 출판사가 대충 100여 번째 출간한 책이다. 판권에 표기된 출판사 등록번호(혹은 등록일자)를 보니 2022년 등록 출판사다. 당시 6자리 발행자 식별번호를 부여받아 단기간에 열심히 10권을 만들어 5자리로 갈아탔고 3년 안 돼 90여 권을 더 출간한 것이다.(대개 정규 편집자 1명당 연간 5권 언저리를 편집•홍보한다)


6자리 C, 1자리 D 조합에 오래 머무는 출판사도 부지기수다. 두어 달 전 철새를 다룬 신간서적을 봤는데 '979-11-6자리(C)-3(D)-8'이었다. 2020년 등록 출판사였으니 6년 간 4번째 책을 낸 게다. 괜찮은 철새도감이었다. 다만 혼자 꾸려오며 여러 사정이 있었거나 그간 출간에 전념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발행자식별번호가 4자리면 지금껏 3자리 수 책을 냈을 테니 제법 큰 중견 출판사다. 그러니 대형 출판사의 3자리 발행자 번호는 훈장이긴 하다.


그렇다고 저 자릿수에 너무 예민하진 말자. 자릿수는 길지만 색깔 또렷하고 내실 빛나는 출판사도 많다. 반대로 자릿수 다고 마냥 신경 써주는 출판사도 아니다. 게다가 (반)자비출판에 주력하는 출판사의 경우 출간 종수가 많으니 비슷한 업력이나 규모의 출판사에 비해 자릿수가 짧기도 하다. 최근 출판계 뜨거운 감자인 'AI 딸깍 출판사'들은 연간 몇 천 권도 찍어낸다니 금세 짧아지지 싶다.


오래 전(2007 ~ 2010년 무렵 이전) 등록된 출판사의 경우에도 이런 방식으로 파악하기엔 살짝 무리가 있다. 13자리 체계가 국내에 덜 안착된 시절이라 그 전에 출간된 책도 있었고 여러 이유로 발행자 번호가 바뀌기도 하고 그랬다 한다.


요즘은 온라인서점에서 출판사명으로 검색하면 출간 권수나 빈도, 주력 분야까지 알 수 있는 시절이긴 하다. 그러니 온라인서점이 지금처럼 쌈박하지 못했던 시절에 유용했던 얘기긴 하지만, 그래도 ISBN만으로 출판사를 가늠한다면 간지 살지 않을까^^;


실제로 원고 투고 계획을 세울 때 도움이 된다. 투고 희망 출판사 1차 선별에 드는 시간을 팍 줄여준다. 큰 출판사든 작은 출판사든 장단점이 있다. 일일이 온라인서점에서 출판사명을 검색하지 않고도 해당 출판사가 자기 원고와 상황에 맞는 규모일지 1차로 선별할 수 있다.


큰 출판사일수록 투고된 원고 검토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니 큰 출판사부터 작은 출판사 순서로 텀을 두고 투고하는 게 좋더라고 말씀드린 적 있다(출판사 투고메일 리스트 520). 투고 희망 출판사 리스트를 만들 때 이 식별번호도 타이핑 해두면 규모 순으로 정렬해 투고 순서를 정하기 편하다.


투고 메일의 내용 톤을 조절할 때도 편했다. ‘메일 제목이나 몇 문장만 보고 메일을 닫아버리는’ 바쁜 출판사용 투고 메일 본문에는 상품성의 핵심만 최대한 짧고 드라이하게 적는 게 좋을 테다. 규모가 작은 곳일수록 해당 출판사를 택한 이유나 협업 제안 내용, 혹은 인간미 풍기는 내용을 늘려도 좋지 않을까.




ISBN에 관한 기타 TMI. 접두부(A)는 ‘이 상품은 옷도 음식도 아니라 책이다’는 뜻이며, 국가번호(B)는 ‘한글로 된 한국서적'이라는 뜻이다. 작가님들께서 지금 들고 있는 한국책의 A-B 조합은 978-89 혹은 979-11 둘 중 하나다. 같은 뜻이다. 단지 979-11은 2013년 3월 이후의 출판사나 출간 책에 주로 붙는다. 체크기호(E)는 ISBN 유효성 체크용 숫자에 불과하니 못 본 척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부가기호(F) 부분. ISBN 뒤에 올라탄 이 5자리는 책의 MBTI쯤 된다. 가령 03810이라면 ‘일반 독자 대상의 교양서(0)이며, 발행형태는 단행본(3)이고, 내용분류는 문학 분야 중 한국문학(810)’이라는 뜻이다. 13370이라면 ‘특정 독자 대상의 실용서이며, 발행형태는 단행본, 내용은 사회과학 중 교육학’이라는 뜻이다. 세부적인 내용분류표는 아래 링크 속 ‘ISBN 구조’를 스크롤하면 나온다. 이 5자리 부가기호는 한국에서만 알아먹는 번호체계인지라 정식 ISBN에 포함시키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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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벗작가님들. 무당벌레입니다^O^


『서툰 아빠의 마음공부』에 얽힌 이런저런 얘기를 두루 연재해 왔는데, 연재북은 일단 여기서 멈추고 매거진으로 이어나가얄 듯합니다. 꼬박꼬박 오래오래 연재 이어가시는 분들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네요;


올해는 문화예술 분야 활성화 정책이나 지원 사업이 좀 늘었으면 좋겠네요. 암흑 같던 몇 년이었던 듯해서요ㅎㅎㅎ 관련한 기사 있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 가져봅니다^^

요새 좀 마이 시원합니다. 건강한 겨울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