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충분히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약속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이 날은 유독 빠르게 출발하여 친구들과 함께 카페에서 보기로 하기까지 대략 1시간이 남아버렸다. 근처에 대학교 용지가 있었으므로, 모처럼 생긴 자투리 시간이니 머리도 식힐 겸 용지를 걷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대학가에서 약속을 많이 잡아 자주 지나치기만 했을 뿐, 용지를 따라 한 바퀴 제대로 걸었던 것은 이 날이 처음이었다. 산책을 이어가던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며칠간 영하의 온도로 꽁꽁 얼어붙은 빙판과, 아직 얼지 않은 호수를 유영하는 원앙 무리였다.
나는 자연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작은 동물들을 보고 있기를 좋아한다. 작은 것에 귀여움을 느껴선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각자 또는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고, 한편으로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을지 골똘히 생각해보며 사색에 잠긴다.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한 마리가 내가 서 있는 쪽의 얼음 위로 올라오자, 다른 원앙들도 하나둘씩 빙판 위로 올라와 각자 물기를 털어내며 몸을 정돈한다. 사람들이 말로써 대화를 하고 의사소통하듯, 원앙들도 다양한 울음소리나 몸짓 등 그들만의 소통수단이 있다. 우리는 그들이 직접 되어보지 않는 이상 이것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내가 먹을 것을 줄 것이라 생각하여 올라온 건지, 아니면 그저 우연히 지나던 길에 얼음 위에서 휴식을 취하려 올라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원앙들과 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존재한다는 점이다. 서로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으며, 서로를 인식하며 그저 한 공간 속에 살아있을 뿐이다. 어쩌면 내가 작은 동물들을 보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내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님을 알게 해 줌으로 외로움을 달래주면서, 내가 갖고 있는 작고 개인적인 공간에 침투하여 불편함을 주는 일도 없다.
우리는 종종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다른 인간/비인간을 판단하고 섣불리 행동할 때가 있다. 이는 수많은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지치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이러한 행위를 인식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관심을 기울어야 하지 않을까. 말과 행동을 취하기 이전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 서로의 존재를 인정, 존중하면서 각자의 자유 안에서 살아가는 것. 이와 같은 태도가 생명체들의 바람직한 관계 맺기의 밑바탕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