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작가 시즌1
(글 키우는 남자)

글심저격

by 글심저격

사회자: 이번에 소개해 드릴 미스터 작가는 참가번호 1번 글 키우는 남자입니다. 어떤 계기로 미스터 작가 예선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소감이 궁금합니다.


글 키우는 남자: 저는 집안의 장남으로 3대째 소를 키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의 꿈은 원래 소를 키우는 것이 아닌 글을 키우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전공을 국어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를 지원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니가 거기 가면 소는 누가 키우냐”는 말에 열받아서 학업을 포기하였습니다. 반항심에 소 한 마리를 타고 강가에서 신세 한탄하며 돌팔매질을 하고 있을 때 소가 풀을 뜯으며 되새김질하는 모습이 시를 읊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눈망울이 큰 미물도 시를 읊는데 소 키운다고 신세 한탄 하는 저 자신이 미웠습니다. 이번 글로 아버지와 소에게 인정받고 싶어 글을 썼습니다.


사회자: 이번 글 정말 궁금합니다. 소에 관련된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과연 글이 어떤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글 키우는 남자:

제목 : 회고록


그녀는 내게서 이상한 향기가 난다고 말을 했어.

그녀가 음~~머~~하면서 중얼거렸지!


난 세상이 줄 수 없는 시골의 향수를 품은 남자라고 들이댔지!

너도 소 만큼 소 중한 존재라며 한 걸음 다가갔지


뒷걸음질 치는 그녀를 붙잡고 싶지만 소 여물을 먹일 시간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 뒤로 뉘엿뉘엿 해는 지네


소를 사랑해 줄 수 있니,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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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회고록 잘 읽었습니다. 뭔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담겨 있긴 한데

소가 왜 여기서 나오는지 좀 이해는 안 갑니다.

그럼 어떻게 이 글이 나오게 되었는지 참가자님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글 키우는 남자: 이 글은 옆집 순이가 강남에 사는 사촌 언니에게 돈 많은 남자를 소개해 준다며

마련한 자리에서 저는 검소하게 다이아가 박힌 50돈 금목걸이와 파텍 펄럭손목시계를 차고 나갔습니다.

그녀는 처음에 돈의 향기가 난다며 좋아했는데 제가 소 이야기를 하자 그때부터 표정이 X씹은 표정을 하며 멀어져가는 그녀를 아쉬워하며 소 타고 집에 와서 소 여물 주고 X똥을 치우다 쓴 글입니다.


사회자: 그런 심오한 뜻이 있었군요. 그럼, 여기서 심사위원의 평가를 보겠습니다.

아, 이게 뭡니까. 한 분만 합격이고 나머지 99명은 불합격을 주었습니다. 충격입니다.

그럼 심사위원의 심사평을 듣겠습니다. 심사위원이 심사하지 않는군요.

아무래도 보복이 두려워서 그런 거 같은데 제가 지목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심사위원 3번 님 말씀해 주세요.


심사위원3 : 저를 지목해 주셔서 참으로 난감합니다. 자발적이 아닌 사회자님의 지목으로

평가한다는 점을 염두에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글 키우는 남자의 글을 봤을 때 뭐랄까 소를 덜 키운 느낌이라고 할까? 소에도 등급이 있잖아요.

좋은 등급은 A+++있잖아요. 제가 볼 땐 F---등급이 아닐까. 아주 최악입니다.

여인과의 소개팅에서 “소가 왜 거기서 나오는지”도 의문이스러웠고요.

마지막에서 "사랑 해 줄 수 있니"라는 말이 처음 보는 소개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좀 더 소를 키우는 마음으로 글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네, 글도 소를 대하듯이 A+++이 나올 수 있도록 키웠으면 하는 바람 잘 들었습니다.

다른 심사위원의 심사평도 들어보겠습니다. 고개를 드시고 제 얼굴을 똑바로 보세요.

아까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28번 심사위원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심사위원27: (28번 부르며 흔들어 깨운다.) “이봐 이씹팔번 부르잖아! X발”


심사위원28: 아~ 이거 기분 진짜 더럽네요. 번호도 이씹팔번인데 지목까지 받았으니, 마치 소똥 밟고 넘어져 개똥 집은 기분입니다. 참가자님 지금 표정도 X씹은 표정인데 제 말에 충격받지 마시고요.

한 말씀하겠습니다. 저는 글을 보기 전에 글을 대하는 참가자님의 태도에 불합격을 주었습니다.

막 축사에서 일하다 말고 달려 나오신 거 같은데 장화에 뭐가 묻어 있는 거 같고요.

옷이 지금도 굉장히 더러워 보입니다. 냄새가 여기까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것 같아요.

소개팅 때와는 다른 옷차림에 글이 가여워 보입니다. 글도 사람의 외모로 판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글에도 엄연히 품격이 존재합니다. 글이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품격이 달라지거든요.

이건 심사위원과 글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러니 글이 이 모양 이 꼴로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불합격으로 매겼습니다.


사회자: 글의 품격 참 좋은 말씀입니다. 참가자님 소처럼 울지 마시고요. 마지막으로 유일하게 합격을 주신 심사위원 88번의 심사평을 들어보겠습니다.


심사위원88: 저희 할아버지는 소를 키워 팔아서 소 판 돈으로 생계를 꾸리셨습니다. 저는 소 키우는 참가자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는 심사위원님들께 한 말씀드립니다. 말 그대로 소는 아무나 키웁니까? 참가자님과 소가 뭔 죄가 있고 글이 뭔 죄가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 글은 참가자님의 영혼이 담겨 있는 순수한 자연의 글입니다. 소를 키우며 때려치우고 싶어도 소의 눈망울을 보면서 참아야 했고 3대째 물려받은 사명감과 부담감에도 소의 향기를 사랑하고 소개팅녀를 소중히 여기는 글이 고스란히 전해져 있습니다. 글이 얼마나 가엾습니까? 그런 참가님이 얼마나 가엾습니까? 소는 참가자님이 탈락하여 얼마나 슬퍼하겠습니까?

글 쓰는 걸 포기하지 마시고 꼭 이 거지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작가로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사회자: 거지 같은 프로그램에 거지 같은 사회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기 싫겠지만 참가자님의 다짐이나 소감을 듣고 마치겠습니다.


글 키우는 남자: 이 프로그램을 보고 탈락하여 기뻐서 동네잔치를 하실 아버지가 생각나고요.

제 글이 소똥을 치우다 말고 급하게 쓰는 바람에 이런 더러운 평가가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음에 이런 작가 프로그램에 나온다면 부모와 인연을 끊고 소를 다 팔아버리고 명품 옷을 입고 글을 써서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작가 시즌답게 작품을 내다보는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조언과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요.

제가 이 프로그램 너무 가볍게 보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제발 아무때고 “그럼, 소는 누가 키워”이 말을 하는 사람에게 "그럼 니가 키워" 한 마디 해 주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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