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사람들 시리즈
중학교 친구 모임에 있는 친구 이야기이다. 이 친구와 난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어 본 적이 없다. 중학교 2학년 체육시간에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 줄넘기 두 번 뛰기를 한 번도 안 걸리고 많이 뛴 사람에게 체육점수 1등을 준다고 하였다. 순진한 난 운동신경을 믿고 말 그대로 체육시간마다 친구들 앞에서 열라 통통 뛰어 되었다. 100개는 넘었던 거 같다. 한번 뛰고 나면 힘들어 비실거렸는데 1등을 열몇 개 차이로 매번 이기지 못했다. 그게 이 친구이다.
이 친구가 대학교 댕길 때 사법고시를 합격하여 시골에 용이 났다고 전봇대에 걸린 플래카드가 용처럼 휘날렸고 덩달아 전봇대도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때 난 고향과 먼 시골 공장에서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근래 단톡방 카톡에 프로필 사진이 바뀌어 있었다. 달리기 꾀나 하는 사람처럼 번호를 달고 마라톤 결승점에 도착하는 사진이었다. 나도 달리고 있는데 반가웠고 모임 때 언제부터 뛰었는지 얼마나 뛰는지 물어볼 참이었다.
토요일 저녁 친구 모임이 있는 날, 난 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글심저격: 친구 왔어.. 프로필 사진 바뀌었던데 얼마나 뛰는 거야? 난 말이지 매일 5km를 달린 지 1년이 넘었지 말이지. 너 요즘 쫌 뛰나 보다.
판사친구: 어, 별거 아니야. 난 뛰기 시작한 지 2년 넘었는데 매일 10km를 뛰고 하프마라톤도 뛰고 있어.
완주가 목표야.. 서울 마라톤 대회도 신청했는데 BTS 때문에 미루어졌어..
난 더 달려야 해, 황영조 기록도 깨야 하고 글로발 시대에 넌 글을 발로 쓰지만 난 발로 뛰며 글로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글심저격: (할 말을 잃음, 괜히 말 꺼냄, 어깨뽕 꺼짐, 밥 맛 안남, 위가 위축됨)
(그래도 패배자로 살고 싶지 않아~~!) 대단한데 그래도 난 니가 자랑스럽지 않다. 어떻게 중학교 때도 그렇고 한 번을 져 준 적이 없냐?
판사친구: 중학교 얘기는 뭐냐?
글심저격: 그때 줄넘기 두 번 뛰기 어쩌고 저쩌고 헉헉 통통~ 한 번을 져주질 않냐~
판사친구: 미안하다 친구야. 니가 중학교 얘기만은 하지앓기를 바랬는데~그때 난 네가 너무 두려운 존재였어. 3등은 우리 상대가 안되어 별 볼일 없었지만 너는 달랐어. 너를 이기기 위해 쇠사슬로 방과후 쓰레기장옆에서 두 시간씩 연습했고 휴일엔 뒷동산에 올라 칡뿌리로 줄넘기 훈련을 했어. 쫓기는 공포감을 극복하기 위해 뱜을 잡아 엮어 줄넘기를 하기도 했어. 그때 니가 어떻게 운동하나 몰래 따라가 봤는데 넌 매일 공부는 안 하고 줄넘기도 안 하고 동네 아이들과 메뚜기, 개구리 잡으며 놀기 바빠서 내가 얼마나 안심한 줄 알아. 그런데도 넌 단번에 줄넘기를 해도 나를 바짝 따라와 긴장시켰지. 지금의 이 벗어진 머리는 그때 스트레스로 생긴 거야~ 지금의 난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글심저격: (이거 내가 미안해해야 되는 건가? 하얗게 늘어난 흰머리도 내 탓인가?) 대단해.그건 그렇다 치고 2년 전부터 뛰게 된 계기는 뭐냐?
판사친구: 내가 이렇게 되기까지 너는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었어. 2년 전 친구모임에서 니가 한 말을 기억 안 나지.? 다른 친구에게 "이제 슬슬 달리기나 시작해 볼까" 난 그 말에 충격을 받았지. 그동안 판결하느라 해야 할 일이 많아 운동을 거의 쉬다시피 했는데 너의 그 말을 듣고 난 그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어. 니가 나보다 달리기를 먼저 할까 봐 두려웠어. 나보다 빨리 뛰거나 멀리 뛰면 어떡하지 난 신경이 쓰여 어떤 판결도 내릴 수 없었어. 너를 먼저 뛰어넘어야 했기 때문이야... 다행히 넌 몸이 골골하여 늦게 달리기를 시작했지, 니가 달리기를 하고 있는지 너의 가족과 내통하였고 일론머스크와 통화하여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위성과 CCTV로 감시했지. 너의 집에 바퀴벌레도 내가 염탐하라고 풀어놓은 거야..
글심저격: (바퀴벌레의 정체가 그랬었군) 그럼 내가 안 달리면 너도 안 달리는 거야.
판사친구: 난 니가 그럴 수 없는 놈이라는 걸 잘 알아. 하나에 꽂히면 아파뒈질때까지 그 짓을 하지, 넌 하루라도 뛰지 않으면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나고 아리랑 쓰리랑 춤이라도 추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지. 지금 니가 글 쓰고 있는 것도 두려워, 글이라면 나였는데 넌 되지도 않는 글로 사람을 웃기고 있잖아? 쉬지 않고 웃다가 생업을 포기하는 자도 늘었다고 들었어, 그래서 난 니 글을 보지 않아.
니가 처음 뛰었을 때 5km를 쉬지도 않고 단번에 뛰는 것을 위성으로 보고 지금도 정신이 얼얼해. 그때부터 난 거북이와 경주를 해서 겨우 이겼고 토끼와 특별훈련을 하면서 이날까지 온 거야.
글심저격: 그렇지 않다 판사친구야~ 그때 난 5km를 뛰고 나서 며칠 동안 밖에도 못나고 회사도 휴가 내고 식음을 전폐하며 끙끙 앓았어. 그리고 난 고향 플래카드에 니 이름이 펄럭일 때 감격해서 전봇대와 춤을 추웠어. 난 니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돈도 나보다 많고 이렇게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좋아~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내가 두 번 뛰기를 사실 1000번은 하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이 놀라 입을 못 다물까 봐 안 한 거고 공부 잘해서 사법고시 합격하면 맘 약한 우리 부모님 쓰러질까 봐 공부를 안 한 거야.. 달리기도 안 쉬고 500km를 뛸 수 있지만 신발과 양말이 닳을 까봐 아껴 신으려고 안 뛰는 거야..
판사친구: 역시 넌 나보다 한 수 위야~ 너와 함께 뛸 수 있어 기뻐,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달리고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