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사람들 시리즈
달리기까지의 글심저격 이야기
글심저격이 태어나서 지금껏 잘 해온 일이라곤 약해 빠진 몸으로 밖에 나가 자연을 벗 삼아 소리 지르고 뛰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동네 아이들의 데리고 나름 시키지 않은 착한 골목대장을 하였으며 풀밭에 사는 메뚜기, 개구리, 뱜과 사이좋게 놀았다. 뱜을 잡아 묶어 뒤곁에 두었다가 엄니가 그걸 보고 기겁하여 뒤지게 쳐 맞기도 했다.
나름 운동신경을 누구에게 물려받은 건지 쓸모가 있어 은희에게 매미를 잡아 주려고 나무에 오르다가 떨어져 뒈질 뻔도 하였고 동네형들과 냇가에 가서 형아들을 따라한다고 어설픈 자신감에 수영을 하다 깊이를 모를 물에 허우적대다가 물을 한 바가지 마셨을 때쯤 누군가 살려줬다.
사춘기 시절 마음이 찢어질 거 같은 파열음이 집안에 일어나면 눈물을 글썽이며 바다가로 뛰어나가 짐승처럼 소리 지르며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학교 댕길땐 운동쪼매 하는 달리기 선수, 씨름선수, 잡다한 운동을 다 해보았다. 스포츠로 크게 성공할 체력도 없었으며 키도 별스럽지 않았다. 공부는 그럭저럭 수학은 이미 우주로 날려 보낸 지 오래였다.
고등학교를 유학 가서 뛸 곳을 찾아 새벽부터 신물배달을 해보았고 우유를 훔쳐먹었냐는 오해도 사고 교실수업은 말할것도 없이 스며드는 따스한 햇살아래 꾸벅꾸벅 비몽사몽 잠이 드는 게 일상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어둠을 뚫고 비춰올 때면 어린 시절 뛰놀았던 풀밭과 바닷가에서 밭매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잠이 더 잘 왔다. 공부는 어둠속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여드름 투성이에 극도로 노화된 얼굴, 우리 반 아니 전 학년을 통틀어 네가 제일 늙어 보인 다는 친구의 충격적인 말을 듣고 기뻐서 당장 인력사무소에 가서 막노동을 하며 용돈을 벌었고 때 것(새참)에 나오는 막걸리의 위로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막노동을 하고 나면 몸땡이가 안쑤시는 곳이 없어 취업이냐 대학 진학이냐 걱정이고 나발이고 뻗어 잠들기 바빴다.
직장생활을 하며 안 해보던 테니스를 하였다. 너 쫌 하겠는데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10년간 열라 열심히 했다. 하는 동안 약해 빠진 몸은 비실비실하여 써브 넣을 때 어깨 관절도 삐그덕 거리고 어깻죽지가 파열되어 시퍼런 멍도 보았고 뒤지게 아픈 엘보우도 겪어왔다. 어느 추석날 결정적으로 되도 않는 족구를 슬리퍼를 신고 동생과 내기를 하다가 발목이 시큰거렸는데도 끝내 이길때까지 오기를 부려 오천원 삥을 뜯었다. 나름 지독한 놈은 결국 발목이 아킬레스건이 되어 오래 걷거나 달리면 아프고 부어올랐다. 매일 중독처럼 빠지지 않던 테니스는 점점 내게서 멀어져 갔다. 결정적으로 얼마 전 목디스크가 넌 이제 아웃이라고 선언을 하였다.
발목부상은 모든 운동의 치명타였다. 자연 치유의 개똥철학을 믿으며 세월아 네월아 버텨온지 거의 7,8년이 지난 지금 걷는 위주로 쉬고 걷고 하다보니 어느새 기적처럼 뛰기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좋아진 발목이 너무 고마워서 뽀뽀를 해주고 쓰다듬고 안아주었다. 그래봐야 고작 5km 달리는 게 전부
이다. 그래도 매일 빠짐없이 달리고 있다. 더 뛰고 싶은 유혹이 와도 시원찮은 사람이 나를 앞질러도 무리하지 않는 게 삶의 원칙이 되어 가고 있다.
글심저격은 개인적으로 달리기 열풍 때문에 뛰는 것도 아니다. 단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을 밖에서 놀거나 뛰거나 운동을 하는 삶을 살아왔다. 비실비실 약골이어도 집안에 쳐 밖혀 뒹굴뒹굴만 하면 정말 돌아 버릴 것 같아 지금도 평일을 비롯 휴일에도 밖으로 뛰러 나간다. 그게 하나의 삶이고 루틴이 되어 버렸다.
달리면 어디가 좋고 어떻고를 떠나 천성이 하늘아래 자연의 공기를 마시지 않으면 마음에 병이 난다.
달리기 야그는 내가 뛰는 운동장에서 만난 다양한 여러 사람을 보면서 나름 나의 이야기와 그들과의 대화를 상상 속에서 엮어 나간다. 정형외과 목디스크를 아쉬워했던 극소수의 독자님께 감사드리며 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뛰어 보아요.. 글심저격 고개 들어 인사드립( 목디스크 때문에^^)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