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쉐프의 국제정세 스파게티 : 비스마르크 2편(완결)
"주문하신 '야매쉐프 스파게티', 비스마르크 2편 나왔습니다."
(사실 주문한 적 없음)
지난 1편 두 줄 요약:
1. 비스마르크는 통일을 위해 진실보다 '연출'과 '편집'을 잘 이용했다.
2. 그 결과 독일은 제국이 되었지만,
유럽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형국이 되어갔다.
2편은 그가 만든 비밀,
입만열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오고
어떻게 막장 아침드라마화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것이 폭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통일 후 비스마르크의 목표는 놀라울 정도로 간단했다.
"현상 유지."
배 터지게 먹었으니, 이제 소화 좀 시키자는 거다.
그의 외교 레시피는 딱 세 줄이었다.
프랑스:영원히 왕따로 만든다. (복수 못 하게)
러시아:절대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 (양면전선 방지)
오스트리아:적당히 살려두고 파트너로 쓴다.
1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비스마르크는 1866년 보오전쟁 때, 자살쇼까지 해가며
빌헬름 1세를 말렸고 영토도 거의 뺏지 않았으며 배상금도 적당한 선에서 넘어갔다.
그저, 가장 크게 요구한 것은 이것.
“독일 문제에서 손 떼라”
"오늘의 적이지만, 내일의 파트너가 될 여지를 남긴 것.“
오스트리아의 숨통을 완전히 조이지 않고, 자존심을 살려준 이 결정은
나중에 '독·오 동맹'이라는 든든한 보험으로 돌아온다.
비스마르크 입장에서 천추의 한은 프랑스에게는 이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그게 결국은 비수가 되어버린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비스마르크가 가장 두려워했던 최악의 레시피는 이것이었다.
[프랑스 + 러시아 = 독일 샌드위치 (사망)]
그래서 그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를 동시에 식탁에 앉혔다.
이른바 '삼제(三帝)동맹(1873)'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황제가 손잡고 "우리 셋이 유럽 질서를 책임집니다"라고 선언한 것.
겉으로는 '보수 왕정 수호 동호회' 느낌이었지만, 실질은 이거였다.
러시아에게: "우린 네 적 아니야. 프랑스랑 붙지 마."
오스트리아에게: "체면 살려줄게. 대신 독일 문제는 우리한테 맡겨."
독일 자신에게: "프랑스가 설 자리는 없다."
하지만 이건 처음부터 "전 여친과 현 여친을 한 테이블에 앉힌 꼴"이었다.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는 발칸반도라는 땅을 두고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도 이걸 알았다.
그래서 이건 처음부터 "시간 벌기용 임시방편"이자,
"다 같이 숨 막혀 죽기 전에 내가 판을 다시 짤 시간을 버는 설계"였다.
결국 발칸반도에서 슬라브 민족들의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러시아는 범슬라브주의를 명분으로 사건에 개입한다.
(러시아의 영원한 숙제인 부동항 확보가 진짜 목적이었겠지만.)
그 과정에서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치렀다.
러시아는 여기서 승리하여 산스테파노 조약을 맺고,
발칸반도에 말 잘 듣는 꼭두각시 '대불가리아'를 만든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던 오스트리아.
“뭔데 내 앞마당에 이런 걸?”
오스트리아는 자국 내 슬라브인들의 동요를 두려워했다.
결국 오스트리아가 반발하며 멱살잡이가 시작되자 비스마르크는 선택해야 했다.
그래서 비스마르크는 ‘정직한 중개인(자칭)’을 표방하며
둘을 베를린으로 불렀다. (베를린 회의)
결과는?
러시아-오스만 전쟁의 결과인 산스테파노 조약에서 획득한
러시아의 이익은 후려치고, 오스트리아의 편에 선 것.
(정확히는, 비스마르크는 러시아가 너무 커지니까
균형을 지키려 한 것이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배신으로 느낌)
러시아는 ‘독일은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했고,
삼제동맹은 파기되어 버린다.
비스마르크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동맹을 재설계한다.
그 결과가 독·오 동맹(1879), 그리고 나중에 이탈리아까지 낀 삼국동맹(1882)이었다.
이 선택으로 독일은 든든한 파트너를 얻었다.
하지만...
프랑스 입장에서 유럽 지도는 공포 그 자체였다.
"동쪽엔 독일, 그 뒤엔 오스트리아, 바다 건너엔 영국... 우린 진짜 혼자네?"
안그래도 복수의 칼을 갈고있는데
숨이 목끝까지 조여오니, 복수에 피가 끓었을 것이다.
비스마르크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금, 러시아를 그냥 두면 러시아와 프랑스가 밀착하고
양면전선이 형성되어 독일에게 치명상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역사상 가장 뻔뻔하고 천재적인 '거짓말'을 준비한다.
이게 비스마르크 외교의 하이라이트이자, 시한폭탄의 뇌관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러시아를 이렇게 버리면 양면전선이 만들어질 수 있고,
그런 상황은 독일에게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오스트리아와 군사동맹을 맺어놓고,
뒤로는 몰래 오스트리아의 잠재적 적국인 러시아에게 가서 이렇게 속삭였다.
"야, 만약 누가(오스트리아가) 너 공격하면, 우린 중립 지킬게. 걱정 마.“
완벽한 이중계약이었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은 우리 편"이라고 믿고,
러시아는 "그래도 독일이랑 중립 약속했으니까"라고 믿는다.
현실은?
"둘이 싸우면 독일은 양쪽에 '너랑은 안 싸울게'라고 말해놓은 셈."
여기서부터 시스템은 "겉으로는 안정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를 의심하게 만드는 구조"가 된다.
이 모든 모순이 비스마르크의 머릿속에서는 정합성을 가지고 돌아갔다.
하지만 문제는 늘 같다.
"그 머리는 영원하지 않다.“
잠깐, 마키아벨리 형님을 소환해보자.
『군주론』에는 대략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에게 상처를 줄 거면 아예 복수할 수 없게 짓밟든가,
아니면 아예 잘해주든가 해라. 애매하게 모욕하면 반드시 복수당한다.“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에게는 이 원칙을 잘 지켰다.
(잘해줘서 내 편 만듦, 같이 살 길을 열어둠)
러시아에게도 '중립'이라는 숨통을 열어두려 했다.
하지만 프랑스에게는 최악의 실수를 했다.
알자스·로렌 강제 병합 (내 땅 내놔!)
베르사유 궁전에서 독일 제국 선포 (남의 안방에서 능욕 퍼포먼스)
막대한 배상금
프랑스는 "완전히 죽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살려주지도 않은" 상태였다.
모욕과 분노는 Max인데, 힘은 남아있다? 이건 "복수 제조기"를 24시간 풀가동한 셈이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라는 쥐를 구석에 몰아놓고, 빠져나갈 '숨구멍'을 하나도 주지 않았다.
(처음 설계는 숨통을 틔워놓는 것이었지만,
군부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프랑스에 대해서만큼은 원칙을 깼다.)
이 지점에서 이미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파산이 예정되어 있었다.
조금 덧붙이자면, 이건 감정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구조의 문제기도했다.
프랑스 내부에서 ‘복수’는 애국이 되었고
‘굴욕을 잊자’는 말은 매국의 문장처럼 되었다.
즉, 독일은 프랑스의 국내정치 ‘엔진’을 복수모드로 고정해버린 셈이었다.
1890년, 드디어 일이 터진다.
젊고 패기 넘치는(하지만 눈치는 없는) 황제 빌헬름 2세가 등장한다.
그는 늙은 비스마르크를 쫓아내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외교가 왜 이렇게 복잡해?”
그래서 그는 비스마르크의 역작(?)인
'재보장 조약(러시아와의 비밀조약)'을 갱신하지 않고 쿨하게 버린다.
이유는 "외교적 모순"이었지만,
실상은 "나는 비스마르크처럼 이 판을 돌릴 능력이 없으니,
복잡한 건 그냥 안 할래"라는
무능력한 단순함에 가까웠다.
(천재가 가고 범재가 오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그 결과는?
독일에게 손절당해 패닉에 빠진 러시아가, 외롭게 떨고 있던 프랑스와 눈이 맞았다.
"프랑스, 너 내 동료가 되라.“
[프랑스 + 러시아 = 독일 포위]
(러불동맹, 1892년)
*심화 설명을 하자면
러시아는 독일이 손을 떼자 자금(차관)과 외교적 후견인이 필요했고,
프랑스는 고립에서의 탈출이 시급했다.
그것이 결국 러불동맹으로 이어진 것.
어쨌든,
비스마르크가 평생을 바쳐 막으려 했던 악몽이,
그가 떠나고 얼마 안 돼 현실이 됐다.
거짓말로 쌓아 올린 탑을, 대책 없는 단순함으로 무너뜨린 순간,
폭탄의 타이머는 켜졌다.
이후 유럽은 ‘동맹의 자동화’와 ‘군비 경쟁’에 빠진다.
(적대하는 서로를 믿을 수 없으니, 군비경쟁은 격화되고 동맹은 견고해진다.)
"네가 쟤를 치면, 난 자동으로 참전해."
"상대가 동원령 내리면, 우리도 자동으로 내려야 해."
정치가 외교를 통제하는 게 아니라, 미리 짜놓은 군사 스케줄이 정치를 집어삼켰다.
누구도 쉽게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는 집단 난폭운전 모드.
쉽게 설명하면, 동원 계획(시간표)이 먼저 돌아가고
이것을 진정시켜 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외교는 그것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1914년 사라예보의 총성은 작은 불씨였다.
하지만 비스마르크가 깔아놓고, 후임자들이 방치한 시스템은 온통 기름바다였다.
불씨 하나가 떨어지자마자, 누구도 멈출 수 없는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정리해보자.
그는 분명 천재였다. 전쟁을 짧게 끝내고 독일을 통일시킨 영웅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일부 국가(오스트리아)에는 숨통을 틔워줬고,
다른 국가(프랑스)의 숨통은 막아놨으며,
그 모든 상태를 '거짓말'과 '비밀'로 봉합해놨다.
(아주 전형적인 미봉책)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영웅? 악당? 전범?
내 생각엔, "폭탄 제조자"라는 말이 가장 가깝다.
그의 시스템은 천재 한 명이 살아있을 때만 작동하는 평화였다.
결국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체제는
‘곧 터지는 폭탄’이었고
폭탄이 터진 그곳은 지옥이었다.
지옥이 따로 있는게 아니었다.
참호안에서 발이 썩어가고, 쥐가 시체를 파먹다 못해
잠든 병사의 살을 뜯어먹고
실시간으로 동료의 손, 발, 머리가 날아가는
그런 지옥.
역사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오늘 야매쉐프가 말아주는 한 접시는 바로 '관계의 유통기한'에 대한 이야기다.
비스마르크의 외교는 '유통기한이 있는 재료'들로만 만들어졌다.
'거짓말'은 들통나기 전까지만 유효했고,
'억압'(프랑스의 숨통 틀어쥐기)은 상대가 힘을 회복하기 전까지만 유효했다.
그리고 '천재성'은 그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만 유효했다.
이 모든 유통기한이 끝난 순간,
독일 제국은 상해버린 음식처럼 폐기 처분(패전)되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정직(신뢰)'과 '상호 존중'은 도덕책에 나오는 고리타분한 잔소리가 아니다.
이것들은 유통기한이 없는 유일한 재료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다.
거짓말로 돌려막은 관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고,
상대를 벼랑 끝까지 몰아세워 얻은 승리는 언젠가 복수의 칼날로 돌아온다.
하지만 내가 한 말을 지키는 '정직',
그리고 싸우더라도 상대가 돌아갈 길을 열어주는 '상호존중'.
이 두 가지로 맺은 관계만이,
내가 천재가 아니어도, 상황이 조금 나빠져도,
오래도록 상하지 않고 나를 지켜준다.
비스마르크는 외교에서 여러 조약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화려한 서커스를 보여줬지만, 결국 무대 뒤로 사라졌다.
차라리 정직함과 존중으로
외교를 했다면 (프랑스와의 화해, 러시아와의 신뢰) 어떻게 됐을까?
요즘은, ‘힘의 논리’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학자들은 이걸 현실주의, 신현실주의라 부른다)
그리고 힘이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논리가 힘으로만 돌아간다면
(나중에 다룰지도 모르지만)
나폴레옹 이후
100여년에 가깝게 평화를 지킨 빈체제나
2차대전 이후
거대한 전쟁을 막아온 ‘얄타 체제’의 평화는 설명하기 어렵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가 누린 가장 길고 안전한 평화는
총칼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약속과 시스템 위에서 만들어졌다.
정직과 제도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은 동화속 이야기가 아니라
엄연한 역사의 증명이기도 하다.
결국은 국제정치학의 이상주의, 자유주의는 그저 이론이 아니라
이것도 현실의 한 범주라는 말이다.
정직, 제도로도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강력한 이론 혹은 믿음.
그래서 지금까지 비스마르크 체제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거다.
(설마 또 철학적 교훈?)
(야매야 너 이런 요리만 팔면 장사가 안돼 장사가)
(손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진화론, 생물학입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거짓말에 능숙하지만,
때로는 생각보다 정직하다.
그리고 그 정직함은 사실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우월전략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정직함이 우월전략이 아닌 열등전략이라면
세상에 정직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계속해서 그런 유전자를 퍼트릴 수 있었을까?
단기적인 손해가 있더라도 ‘정직함이 장기적 이득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사실은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건 아닐까?
너무 야매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 고급진 맛을 내보자면 이렇다.
‘착하기’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직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진화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하는거다.
단순히 정직해져라, 착해져라가 아니라 진화학 쪽의 설명을 빌리면 이렇다.
반복해서 마주치는 관계에서는, 오늘의 배신이 내일의 손해로 되돌아오고,
그래서 “이번엔 내가 해줬으니 다음엔 네가 해라” 같은
‘직접 상호성(direct reciprocity)’이 협력을 떠받칠 수 있다는 것.
이 발상을 생물학 이론으로 정식화한 고전이 트리버스의 ‘상호적 이타주의’(1971)이고,
반복 게임(반복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협력하면 협력으로, 배신하면 배신으로 되갚는’ (tit-for-tat)
단순한 호혜 전략이 실제로 협력을 버티게 만들 수 있음을
액셀로드–해밀턴(1981)이 자신의 연구에서 증명했다.
이후 노왁(2006)은 협력 진화를 설명하는 대표 메커니즘들 중 하나로
direct reciprocity(직접 상호성)는 “같은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조건”이 핵심이라고 정리한다.
정리하면, 정직함의 요건은 진화적인 결과물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단순 이상론이 아닌 실현 가능한 이상론이다.
그래서, 이런 방식의 정직함이란
결국 인간 개개인에게는 단기적인 손해를 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개인과 전체에게 이득을 주는 덕목이 아닐까?
온 세상이 정직해지면 좋겠다.
그래서 전쟁도, 학살도, 배신도, 거짓도 없는 세상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