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쉐프의 국제정세 스파게티 : 비스마르크 1편
시내 한복판에서 폭탄이 터졌다.
이 폭탄을 조사해보니 제조된지 수십 년은 된것같다.
폭탄의 제조자가 폭탄을 시내에 두고갈 때
폭탄의 위험성, 폭탄을 놓는 위치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고있었다.
그런데, 이 폭탄의 제조자
찾고보니 사망했단다.
그러면, 이 사람은 범죄자인가?
피의자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말고,
우리의 인식상에서.
정확하게 똑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약 200년전 유럽 한복판에 어마어마한 폭탄을 설치하고
사라진 남자가 있었다.
그 이름은..
1862년, 프로이센은 내부부터 꼬였다.
군 개혁을 둘러싼 예산 문제로
국왕 vs 의회가 정면 충돌 중.
의회: “세금은 우리가 통제한다.”
군부·국왕: “군 개혁 없이는 국가가 죽는다.”
이때 빌헬름 1세가 꺼낸 마지막 카드가
오토 폰 비스마르크였다.
이미 그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이 남자를 이렇게 기억했다.
“위기일 때만 부르는,
약발은 강한데 부작용도 강한 카드.”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바로 이거다.
“당대의 큰 문제는 연설과 다수결로 해결되지 않는다.
철과 피(Blut und Eisen)로 해결된다.”
(이른바, 철혈재상)
이 문장은 나중에 독일을 통일시키고,
동시에 유럽 전체를 지뢰밭 위에 세우는
출발점이 된다.
근데 이 사람,
갑자기 1862년에 짠 하고 등장한 천재가 아니다.
본격적인 미친 설계자는
그 전부터 이미,
조용히 ‘외교 실습’을 끝내고 올라온 상태였다.
1851년, 비스마르크는
독일연방의회(프랑크푸르트)에 프로이센 대표로 부임한다.
당시 독일연방은
이름만 “연방”이지,
실질은 오스트리아가 상석 앉아 있는 구조였다.
의장국: 오스트리아
나머지 독일 소국들:
대체로 오스트리아 눈치를 보는 분위기
프로이센: 군사력은 강하지만,
‘연방 안에서는’ 여전히 2등 취급
비스마르크가 보기엔,
이 구조가 이미 답이 정해져 있었다.
“지금 판 그대로면,
프로이센은 영원히 오스트리아 2인자 신세.”
그래서 그가 한 일은,
처음부터 “질서를 뒤집는 퍼포먼스”였다.
그 유명한 담배 일화도 여기서 나온다.
회의 중에
오스트리아 대표만 담배를 피운다는 관례가 있었다.
어느 날, 비스마르크가 의장 쪽으로 가서
“불을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태연하게 담배를 붙인다.
나머지 대표들은 당황해서
“이거 우리도 피워도 되나요?”를
본국에 조회까지 올렸다는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그 뒤로 연방의회는
“담배 연기 자욱한 회의장”이 되었다는 전승도 있다.
(화생방 실습장인가?)
이 일화의 디테일은
살짝 과장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징은 분명하다.
“오스트리아만의 특권 = 상석의 위신”을
비스마르크가 노골적으로 깨버렸다는 것.
그리고 이건 단지
“예의 없는 맞담배 사건”이 아니라,
그의 외교 스타일을 요약하는 시범이었다.
1) 상대가 독점하고 있는 상징을 깨뜨린다.
2) 규범을 어기되, 정면충돌이 아니라
“애매하게 농담 반, 실무 반”의 형식으로 한다.
(지금 트럼프식이라고 생각하면 편함, 근데 음..트럼프는 정면충돌도...)
3) 그걸로 생긴 파장을 전체 구도 재편에 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비스마르크는 꽤 냉정한 결론을 얻는다.
“이 연방 구조 안에서는,
프로이센은 절대 1등이 될 수 없다.”
“오스트리아와 ‘동급’이 아니라,
언젠가는 한 번 정면으로 붙어야 한다.”
“그걸 위해서는,
지금부터 ‘언제 싸워도 이길 수 있는 환경’을
조용히 만들어야 한다.”
(손자병법을 봤나, 선승이후구전을 알고있네)
그리고 이게
나중에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직행하는
정치적 전주곡이 된다.
1859년, 비스마르크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재 대사로 옮겨간다.
그가 여기서 본 것은
단순히 “큰 나라 하나”가 아니다.
인구: 유럽 최대급
영토: 말 그대로 끝이 안 보이는 땅
체제: 전제군주 + 느린 개혁
군사력: 느리지만, 일단 움직이면 규모는 압도적
프로이센 입장에서 러시아는
이상한 이중 존재였다.
한때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같이 싸운 동맹
동시에, 폴란드 문제·동유럽 문제에서는
언제든지 이해관계가 어긋날 수 있는 잠재적 위협
비스마르크는 여기서
두 가지를 뼛속 깊이 새긴다.
1. “독일이 양쪽 전선을 동시에 감당하는 건 불가능하다.”
서쪽에 프랑스,
동쪽에 러시아.
이 둘과 동시에 싸우는 그림은
“망하는 루트”라는 걸 확신한다.
2. “그래서, 러시아와는 최소 중립 이상은 유지해야 한다.”
꼭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적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 사고가 나중에
재보장 조약(독·러 중립조약) 발상으로 이어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절에
비스마르크는 농담처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러시아와는,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끝까지 피하라.
이긴다고 해도 값이 너무 비싸다.”
(약 100년뒤, 히틀러가 온몸으로 시연했음. 조상님 말 잘듣지 그랬어?)
그는 이미 그때부터
“프랑스–러시아 양면전선”이
독일(당시는 프로이센)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나중에 그가 프랑스 고립에 집착하고
러시아와 중립 조약을 묶으려 한 이유는
그냥 ‘갑툭튀’한 게 아니다.
이 시기에 다 나온 계산이었을 것이다.
1862년, 비스마르크는 잠깐
파리 주재 프로이센 대사를 맡는다.
(그 뒤 곧바로 총리로 소환되지만,
이 짧은 파리 근무가 주는 정보는 크다.)
그가 파리에서 관찰한 건 두 가지다.
제국을 표방하지만,
안보 전략이 일관되게 정교하진 않다.
대중 여론과 체면에 약하고,
언론(또는 여론)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다.
혁명 이후,
“우리는 유럽 정치의 중심이고,
프랑스의 위신은 세계적이다”라는 자의식.
(어? 이거 동아시아에도 있는데? 중화사.....상?)
독일 지역(라인 강 연안, 알자스·로렌)에
경제·문화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
비스마르크 입장에서
프랑스는 이런 나라였다.
“지금은 여전히 유럽의 1티어 강국이지만,
내부는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다.
여론을 살짝만 건드려도 크게 흔들린다.”
그는 여기서
“나중에 독일을 통일하려면,
프랑스를 언젠가 한 번은 넘어야 한다”는 결론을
더 확실하게 굳힌다.
프랑스는
그냥 ‘옆나라’가 아니라,
통일 독일의 탄생을
체면상 절대 가만히 못 보는 나라고,
동시에,
국내 정치용으로 “전쟁 카드”를 꺼내들기 쉽다는 걸 본 것이다.
파리 시절까지를 합치면,
비스마르크의 머릿속에는
이미 이런 지도가 완성됐던 것 같다.
북부 독일: 프로이센의 세력권
남부 독일: 아직 오스트리아·프랑스 영향권
동쪽: 절대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러시아
서쪽: 언젠가 한 번은 상대해야 할 프랑스
이제 퍼즐판은 다 봤다.
남은 건 “어떻게 순서를 짤 것인가”였다.
이제 1862년, 프로이센 총리 비스마르크 시절로 돌아오자.
그가 세운 큰 그림은 단순했다.
1) 오스트리아를 먼저 밟는다.
2) 북부·남부 독일을 프로이센 중심으로 묶는다.
3) 마지막으로 프랑스를 상대로
“민족 통일의 클라이맥스”를 만든다.
이 그림은 세 번의 전쟁으로 실행된다.
명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의 귀속 문제.
겉으로는 “독일계 주민의 보호” 같은 민족주의 이슈였다.
실질: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공동작전을 벌여
덴마크를 밀어내는 전쟁.
(그러고 보면 ‘레벤스라움’은 히틀러 종특이 아니라 독일 정치 엘리트 종특인것같은데..?)
*레벤스라움 : 생존권, 생활권 / 나치독일의 영토 확장에 이념이자 정치 군사적 정책
프로이센 입장:
“오스트리아와 같은 편으로 싸워,
나중에 ‘나눌 거리를’ 만들어둔다.”
결과:
두 나라는 승리하고,
문제의 두 영지는 공동관리 상태로 들어간다.
하지만 비스마르크는
애초부터 여기서 “갈등의 씨앗”을 심어둔다.
“공동 관리”는
나중에 싸울 구실을 만든 말이기도 하니까.
(청일전쟁 데자뷰인가?)
덴마크에서 얻은 영토의 처리 문제를 빌미로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와의 갈등을 의도적으로 키운다.
외교적으로 일부 독일 소국들을 포섭해
“오스트리아가 독일 문제에 간섭하는 게 문제”라는
명분을 만든다.
오스트리아는
전통적 상석의 자존심 때문에
“한 번 맞짱 떠야겠다”는 감정 상태로 올라간다.
(나보다 밑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어오르면 열받는 딱 그 감정)
전쟁은 단 7주 만에 끝난다.
프로이센의 압승.
근데 여기서 비스마르크는
상당히 이상한(?) 행동을 한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까지 밀고 갈 수 있었는데,
거기서 멈춘다.
오스트리아를 분할하거나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딱 이렇게만 한다.
“독일연방에서 오스트리아를 배제한다.
프로이센 중심의 북독일연방을 만든다.”
즉,
오스트리아는 ‘독일 문제’에서 손을 떼라.
프로이센이 독일 민족의 대표 역할을 하겠다.
군사적으로는 완승,
외교적으로는
“필요 이상으로 모욕하지 않는 승리”였다.
이게 중요하다.
비스마르크는
“오늘의 적을, 내일의 적으로는 남겨두지 않으려 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에게 진짜 문제는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프랑스와 러시아의 잠재 동맹이었다.
여담이지만, 빌헬름 1세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완전히 점령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자살 쇼’까지 해가며 빌헬름 1세를 말렸고
오스트리아를 적으로 돌리지 않았던
비스마르크의 계산은
후일 독일의 외교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마지막 퍼즐은 프랑스였다.
무대 설정은 이렇다.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로,
독일계 후보가 거론된다.
프랑스는 “우리 둘러싼 왕좌에 독일계가 오르는 건 싫다”고 반발.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와 프랑스 대사가
엠스에서 만나 조정 시도.
여기서 나온 것이
유명한 ‘엠스 전보(Ems Dispatch)’사건이다.
원래는 꽤 무난한 수준의 '외교 실랑이' 정도였다.
프랑스 대사 베네데티가
온천 휴양지 엠스에서 산책중인 빌헬름 1세를 붙잡고
‘앞으로도 영원히’ 호엔촐레른 가문 사람이 스페인 왕위에 오르지 않게 하겠다고
지금 여기서 약속해달라고 요구하자
빌헬름 1세는 예의를 갖춰
“미안한데 그건 좀 지나치네” 라고 거절
미래의 모든 상황에 어떻게 영원한 약속을 하냐는 취지였다.
베네데티가 이후에 다시 면담신청을 하지만
빌헬름 1세는 부관에게
새로 전할 말이 없다며 면담을 거절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비스마르크가 이것을 살짝 편집해서
“프랑스가 무례하게 굴었고,
프로이센이 단호하게 나갔다”는 식으로
자극적인 버전으로 언론에 흘린다.
(가짜뉴스는 동서고금 위험함)
결과:
프랑스 여론: “독일에게 모욕당했다, 전쟁이다!”
(나한테 왜그랬어요?)
프로이센 + 남독일: “우리도 자존심이 있다, 싸우자!”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하면서
전쟁은 공식 개막.
그리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프로이센·북독일연방 + 남독일 국가들의 연합 승리
1871년,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서
독일 제국 선포
(수십 년 후 이 ‘거울의 방’에서 무슨일이 생겼는지 알면 소름..)
프랑스는 알자스·로렌을 빼앗기고,
막대한 배상금을 떠안는다.
이로써
비스마르크의 큰 그림은 완성된다.
“프로이센 중심의, 통일 독일 제국.”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비스마르크는 이론상
“승리 후 적을 모욕하지 말라”는 원칙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전쟁에서는
그 원칙이 반만 지켜진다.
프랑스를 분할하거나
완전히 식민지화하진 않았다.
하지만 알자스·로렌이라는
상징적인 영토를 강제로 떼어낸다.
여기서 또 여담을 하자면
보오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영원한 적’으로 돌릴것이라며
합병을 반대했다.
그런데 몰트케를 비롯한 군부가
‘전략적 요충지’가 필요하다며
강력히 주장해서
어쩔 수 없이 이에 따랐다.
(몰트케한테는 자살쇼가 안먹힌다고 생각했나?)
어쨌든,
거기에 더해서
프랑스 수도 파리에
독일 황제 즉위식을 올리는 것과 다름없는
“베르사유 독일제국 선포”라는 (능욕)퍼포먼스까지 한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이게 단순한 군사패배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땅”을 빼앗긴 수치
“유럽의 중심”이라는 자존심이 짓밟힌 날
프랑스 정치와 사회는
거의 공식처럼 이렇게 다짐한다.
“언젠가, 반드시 되갚아줄 것이다.
알자스·로렌을 되찾고, 독일을 무릎 꿇린다.”
(구천과 부차가 울고감 : 와신상담)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1918년에..)
이때부터
프랑스는 독일에게
“언젠가 칼 들고 돌아올 사람”이 된다.
비스마르크는 이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 그의 외교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한다.
“프랑스를 고립시켜라.
프랑스가 독일을 상대로
타국을 동맹으로 만드는 걸 어떻게든 막아라.”
그리고 그걸 위해
그가 만들어낸 것이
2편에서 본격적으로 터지는 비밀 동맹의 그물망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오스트리아의 위신을 깨던 비스마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를 “절대 적으로 돌려선 안 될 존재”로 본 비스마르크
파리에서
프랑스를 “언젠가 넘어야 할 마지막 보스”로 본 비스마르크
그리고 총리 시절,
세 번의 전쟁으로 독일을 통일시키는 비스마르크
이 모든 걸 합치면
그의 외교 시스템은 이렇게 보인다.
1. 한 번에 여러 전선을 만들지 않는다.
2. 전쟁은 짧게, 냉정하게, 결정적으로 끝낸다.
3. 오늘의 적은 내일의 잠재 파트너로 남겨둔다.
(하지만 프랑스는 예외, 고립 대상.)
4. 가장 위험한 조합
= 프랑스 + 러시아
이 둘이 손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 최우선.
“여기까지 보면,
비스마르크는 그 시대 최고의 ‘위기관리 천재’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모든 균형이
종이에 적힌 규칙이 아니라
한 사람의 머릿속에만 들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머리가 어느 날
‘정치적 이유로’ 잘려 나갔을 때,
이 시스템은 더 이상 균형이 아니라
시한폭탄이 된다.”
지금 이 얘기도 재미있지 않나?
(또 나만 재밌지)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2편에서 계속 되는 비스마르크의 외교적 행위다.
(나만 재밌는거 맞는거같긴함)
그야말로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거짓말)비밀 외교가 막장 아침드라마처럼 쏟아진다.
이 ‘막장 아침드라마’가 결국 무슨일을 냈는지 궁금하지 않나?
이 시스템이 시한폭탄이 되어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비스마르크의 비밀 외교가
어떻게 막장 아침드라마가 됐는지....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