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쉐프가 말아주는 국제정세 스파게티 : 미국편(인디언)
어서오십시오, 고객님. 기다리시(지는 않으시)던 식사 나왔습니다.
오늘의 메뉴는 ‘국뽕’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국뽕’ 한 사발을 들이키곤 한다.
“전 세계에서 창제자가 명확하고, 독창적인 문자를 가진 민족은 우리뿐이다!”
(크으, 취한다. 주모! 여기 한사발 더!)
그런데 어쩌나. 이 맛있는 국뽕에 찬물을 좀 끼얹어야겠다. 사실이 아니니까.
지구 반대편, 미국 땅에 살던 체로키 부족의 세종대왕, 대장장이 ‘시쿼야(Sequoyah)’를 소개한다.
이 양반, 1821년에 혼자서 글자를 만들었다. 영어를 읽지도 못했는데,
백인들이 종이에다 뭘 적어서 소통하는 걸 보고 “어? 저거 개꿀인데?” 하고 영감을 받아서 86개의 문자를 만들어버렸다.
효과는 기가 막혔다.
몇 년 만에 부족 전체가 까막눈을 탈출했고, 자기들 언어로 된 신문 <체로키 피닉스>까지 찍어냈다.
그러니까, 조선에 세종이 있었다면 북미에는 시쿼야가 있었다.
두 민족 다 문자를 가질 만큼 ‘뇌섹 민족’들이었고, 자존심도 셌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맛이 좀 씁쓸해진다.
19세기 말, 두 민족은 똑같이 제국주의라는 믹서기에 갈려 들어갔다.
우리는 일본한테, 그들은 미국한테. 탈탈 털렸다. 땅도, 말도, 영혼도.
근데 결과가 다르다. 이게 진짜 미스터리다.
100년 뒤, 한쪽은 G7 정상회의에 기웃거리는 번영을 누리고 있는데,
한쪽은 아직도 보호구역(Reservation)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관광 상품을 팔고 있다.
(LG TV 기본 배경화면 보셨죠? 그거 인디언겁니다. 엔텔롭 캐년)
재료(문명 수준)도 비슷했고, 조리법(식민 지배)도 비슷했는데, 왜 맛이 이렇게 다를까?
그 이유는 ‘오븐’에 있었다고 본다.
오늘의 코스 요리! 갑자기 한글과 국뽕, 인디언을 섞어 만드는 괴식
<살아남은 자들의 비밀 레시피> 지금 시작합니다.
미국 서부,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느낀 건 ‘이질감’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대지 위로 카지노의 네온사인이 깜빡이고,
부족 사무소 앞에는 최신식 픽업트럭들이 서 있다.
굶주림? 없어 보인다. 학대? 눈에 띄는 폭력은 없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절망은 깊겠지만, 적어도 당장 굶어 죽는 '생존의 공포'는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 정부가 주는 보조금과 카지노 수익 배당금 덕분에, 웬만한 도시 빈민보다 나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묘하게 ‘공기’가 달랐다. 고요했다. 너무 고요해서 서늘할 정도로.
내 기억 속, 우리가 배운 식민지의 풍경은 이렇지 않았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역사는 잿빛이면서 동시에 붉은빛이었다.
만주 벌판의 칼바람을 맞으며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총을 닦던 사람들.
이름을 뺏기지 않으려 학교를 거부하고, 말을 뺏기지 않으려 목숨 걸고 사전을 만들던 사람들.
그곳엔 서슬 퍼런 ‘독기(毒氣)’가 있었고, 빼앗긴 것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결기’가 있었다.
우리가 천안 독립기념관에 가면 느끼는 그 뜨거운 온도, 그게 여기 보호구역에는 없었다.
(표면상 국가 – 국가 관계를 맺고있는 인디언 자치국과 미국의 관계가 복잡하지만
이걸 풀어내려면 글이 여러개는 필요할 듯..)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관리된 평화’와 ‘학습된 무기력’이었다.
분명히 자치권을 인정받고 자치국으로서, 미 연방과는 대등한 국가 대 국가 간의 관계를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연방 정부가 그어준 울타리 안에서, 연방 정부가 주는 돈을 받고, 연방 정부가 허락한 카지노를 운영하는 삶.
우리도 100년전 유사한 상황이 있었는데, 인디언과는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
“도대체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처음엔 아주 단순하고 무식한 야매쉐프다운 결론.
“우리가 쟤네보다 좀 더 독한가 보다.”
(한국인이 마늘을 많이 먹어서 독하긴 하지. 크으.. 마늘향에 취한다.)
아니면, “인디언들은 현실에 안주하는 성향인가?”
하지만 이건 너무 게으른 결론이다.
인간과 사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건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시스템’의 문제에 가깝다.
이 대목에서 정확하게 말하고 싶다.
그들도 우리처럼 투쟁의 역사가 있다.
내가 보호구역에서 본 그 서늘한 고요함이,
결코 그들이 "원래부터 순응하는 민족"이라서 생긴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도 싸웠다. 처절하게 싸웠다.
우리가 일본도에 맞서 화승총을 들었듯,
그들도 최신식 라이플로 무장한 미군 기병대 앞에서 활과 구식 총을 들고 맞섰다.
1830년대, 그 유명한 '눈물의 길(Trail of Tears)'을 기억하는가.
체로키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총칼에 떠밀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때,
그 길 위에서만 4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그들은 걷고 싶어서 걸은 게 아니었다.
살고 싶어서, 혹은 고향의 흙 한 줌이라도 지키고 싶어서 걷고 또 걸었다.
어디 그뿐인가. 1890년 '운디드 니(Wounded Knee)'의 눈보라 속에서 학살당한 300여 명의 시신들.
그중 절반은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그 참혹한 사진 한 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의 역사는 결코 조용하지 않았다. 비명과 함성, 그리고 피 냄새로 진동했던 역사다.
그러니까 내가 그곳에서 마주한 그 평온함은 '전쟁을 모르는 평화'가 아니었다.
모든 저항이 철저하게 분쇄되고, 더 이상 흘릴 피조차 남지 않았을 때 찾아오는 '패배 이후의 적막'이었다.
나는 '싸우지 않은 민족'을 본 게 아니라, '싸움이 너무나 완벽하게 끝난 뒤의 풍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오해는 풀렸다. 그들의 기질 탓이 아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똑같이 피 흘리며 싸웠는데, 왜 우리는 다시 일어서서 국가를 만들었고,
그들은 보호구역의 울타리 안에 남았는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식전 빵을 씹으며 오해 하나만 더 바로잡자.
혹시라도 “인디언들은 게을러서 발전을 하지못해 나라를 못 만들었다”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정말 큰 실례다.
사실 그들은 억울하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빌려 말하자면, 이건 애초에 이기기 힘든 싸움 이었다.
우리(유라시아인)에게는 ‘치트키’가 있었다.
‘동서’로 뻗은 대륙 덕분에 같은 위도상에서 농작물과 기술이 고속도로처럼 전파됐다.
하지만 아메리카는 ‘남북’으로 길게 막혀 있었다.
멕시코의 옥수수 씨앗 하나가 기후가 다른 미국 땅으로 올라가는 데 수천 년이 걸렸다.
더 결정적인 건 ‘엔진’이었다.
유라시아엔 말, 소, 돼지 같은 가축이 13종이나 있었지만, 북미 대륙엔 빙하기 이후 대형 포유류가 싹 멸종해 버렸다.
즉, 우리는 트랙터(소)와 탱크(말)를 타고 문명을 일굴 때, 그들은 맨손으로 땅을 파야 했다.
가장 ‘자연 친화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지구 친화적인 민족이 아닐까? 좋은 의미로.)
그런데 그 순수함이 독이 됐다.
유럽인들이 가져온 건 총칼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몸속엔 가축과 뒹굴며 얻은 ‘균(천연두)’이 있었다.
가축 없이 깨끗하게 살던 인디언들에게 이 세균은 핵폭탄이었다.
싸워보기도 전에 인구의 90%가 쓰러진 그들을 두고
“왜 저항 시스템을 못 갖췄냐”고 묻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들은 무능했던 게 아니다.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역사는 냉정하다.
이유가 무엇이든, 억울함이 얼마나 크든,
결국 ‘살아남아 시스템을 만든 자’와 ‘만들지 못한 자’의 미래는 갈라진다.
강조하고 싶은 한가지를 분명히 적어두고 싶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포기해도 된다.”가 아니다.
환경은 변명이 아니라 조건이다. 조건은 결과를 ‘확정’하지는 않지만, 선택지의 폭을 결정한다.
똑같은 인간도 사막에 떨어지면 물을 먼저 찾고, 숲에 떨어지면 불을 먼저 만든다.
그러니 총·균·쇠는 ‘누가 더 의지가 약했나’를 판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왜 어떤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나를 설명하는 이야기다.
그 다음은 별개다. 문이 열렸을 때, 그 좁은 선택지 안에서조차 무엇을 선택했는가가 남는다.
자, 이제 환경 이야기는 그만하고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하자.
"미국은 신사적이었고 일본은 악랄했다?"
천만에. 제국주의 요리책에 그런 구분은 없다. 레시피는 놀랍도록 똑같다.
(근데 저 트럼프 대통령님 저 미국 진짜 좋아하거든요?
오해하지 마세요. 반미주의자 아닙니다. 반미는 샌드위치만 좋아합니다.)
(진짜임)
일본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주인이 불명확한 땅을 총독부 소유로 만들었다. 미국은? ‘도스 법(Dawes Act)’을 통해 부족 공동 소유의 땅을 개인별로 쪼개고, 남는 땅을 백인에게 불하했다.
둘 다 “근대적 소유권 확립”이라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합법적 삥뜯기”였다.
(자자 신고 안하면 그 땅 국유화 합니다~ // 인디언 : 땅은 대 자연의 것이지 누군가의 소유가 될수있는가?)
자국에 순응하는 민족으로 만들고 동화시키기 위해 언어와 문자를 뺏어갔다.
다만, 정확한 팩트를 짚고 넘어가겠다.
"미국은 체로키 문자 만드는 거 칭찬해 줬다던데?" 맞다. 처음엔 칭찬했다.
선교사들이 성경 번역하기 좋았으니까. 시쿼야에게 메달도 줬다.
일본도 1920년대엔 '문화 통치'라며 한글 신문을 허용해 줬다.
하지만 "이 언어가 무기가 될 때" 태도는 돌변한다. 체로키족이 문자로 헌법을 만들고,
신문 <체로키 피닉스>를 찍어내며 "우리 땅을 지키자"고 여론전을 시작하자,
미국(조지아주)은 즉시 군대를 보내 인쇄기를 압수하고 부숴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건 '기숙학교'의 침묵이었다. "Kill the Indian, save the man.“
(지키긴 뭘 지키나? 영혼 살해 아님?)
학교에서 체로키어를 쓰면 매를 맞았고, 입에 비누를 물어야 했다.
지금 미국 정부가 체로키어 복원에 돈을 대준다고? 그건 그들이 더 이상 '국가'가 아니라 '문화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제국은 살아있는 호랑이(국가)의 이빨은 뽑지만, 박제된 호랑이(문화)의 가죽은 닦아주는 법이다.
일본이 친일파 귀족에게 작위를 줬듯,
미국은 협조적인 부족장들에게 특혜를 줬다.
저항의 구심점이 될 엘리트들을 시스템 안으로 포섭해 버리는 것.
그러니까, 레시피(통치 기술)는 같았다.
둘 다 아주 효율적으로, 아주 잔인하게 상대를 요리했다.
그런데 왜 결과물이 다를까?
레시피가 같다면, 차이는 재료가 들어간 ‘오븐(환경/조건)’에 있다.
조선이라는 오븐: 500년 묵은 가마솥 조선은 망했지만,
500년 넘게 중앙집권 국가를 운영해 본 ‘기억(Legacy)’이 있었다.
전국을 8도로 나누고, 세금을 걷고, 과거 시험으로 관료를 뽑고,
왕명을 지방 말단까지 전달해 본 경험.
이게 엄청난 자산이다.
나라가 망하자마자 상해에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군대를 만들고(광복군), 외교관을 파견하고, 헌법을 만들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해봤으니까.”
국가라는 시스템을 돌려본 근육의 기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운동 해본분들 알죠? 머슬 메모리)
그래서 조선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국가의 복원(Restoration).”
돌아갈 집이 있었다.
인디언이라는 오븐: 급하게 지은 모닥불
반면 북미 원주민들은 앞서 말한 환경적 불운(가축 부재, 지리적 단절) 때문에
거대 제국으로 성장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들은 부족 연합체였고, 근대적 의미의 행정 조직을 운영해 본 경험이 부족했다.
그들의 목표는 “국가의 수립”이 아니라 “전통적 삶(부족 생활)의 보존”이었다.
(역사상 이렇게 지구친화적인 민족이 또 있을까?)
하지만 이미 산업화된 미국 땅에서 유목과 수렵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돌아갈 집(과거)은 사라졌는데, 새로 지을 집(국가)에 대한 설계도는 없었다.
저항도 공짜가 아니다. 저항은 ‘비용’이고 ‘시스템’이다.
조선은 그 비용을 감당할 ‘행정적 근육’이 있었지만, 인디언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그리고 운명의 1945년이 왔다. 일본이 패망했고, 우리는 해방되었다.
비슷한 시기, 미국도 인디언 정책을 수정했다. 두 민족 모두에게 ‘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냉정한 사실을 하나 짚고 가야 한다.
해방(Liberation)은 남이 열어준 문이다. 우리의 독립운동이 치열했지만, 결정타는 미국의 원자폭탄이었다.
(야매쉐프, 역사 논쟁의 한복판에서 암살당하고 싶은가?)
진짜 승부는 문이 열린 ‘그다음’이었다.
독립(Independence)은 문을 나선 뒤, 내 손으로 집을 짓는 과정이다.
우리의 선택: 악착같은 자립.
우리는 문을 나서자마자 미친 듯이 시스템을 복구했다.
농지 개혁을 하고, 의무 교육을 하고, 공장을 지었다.
남이 주는 원조 물자를 받으면서도, 속으로는 “두고 봐라, 언젠가 내 돈으로 사 먹는다”며 이를 갈았다.
그건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국가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는 시스템의 본능이었다.
(대한민국 근대화세대, 산업의 역군들은 올타임 레전드가 확실합니다.)
(크으.. 주모.. 취한다... 한 사발 더!)
그들의 선택: 울타리 안의 생존
반면 인디언 보호구역은 문이 열렸지만, 자립할 경제 시스템(공장, 회사)이 없었다.
여기에 더해서 미국정부는 인디언들에게 ‘안락한 덫’을 놓았다.
바로, 미국 연방 정부가 주는 보조금과 카지노 운영권.
자립할 경제적 토대가 없으니
연방정부가 인디언들에게 주는 것은 ‘시혜적’인 성격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분명히 시혜적인 조치의 일부다.
문제는, 이러한 시혜적 조치가 야성을 거세시켜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건 “실패한 독립”이 아니다.
“비용을 치르지 않은 평화”의 결과라고 내가 썼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그 비용을 “치르기 싫어서”가 아니라, 많은 경우 치르도록 설계된 길 자체가 좁아진 평화다.
달콤하지만 치명적인 독. 야성을 거세하고, 저항을 비용으로 계산하게 만든다.
물론 안다. 환경은 가혹했고,
인디언들에게는 애초에 선택지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진짜로 겨누는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다.
환경이 99%의 벽을 세울 때, 남은 1%의 틈은 영웅담이라기보다 경고다.
공짜 점심은 언제나 그 틈을 먼저 막아버리려 든다.
사람이든 공동체든, 한 번 ‘유지비를 대신 내주는 구조’에 익숙해지면
저항은 계산의 대상이 되고, 자유는 값비싼 물건이된다.
자립하지 못한 것을 비난하는게 아니다.
실제로 너무너무너무 어렵다.
환경이 그들을 막아섰고
상황이 그들을 주저앉혔다.
말하고자 하는것은
‘해낸 것이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냐’는 것.
전후 아무것도 남지않은 대한민국을 보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가능성을 믿고, 수십년을 내달렸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떤가?
(취한다..흐윽...숙취로 내일 출근은 힘들것같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엔텔롭 캐년.
하지만 200년전, 민병대의 공격을 피해, 살기 위해 숨어들었던 곳.
인디언들은 자신의 조상이 살기위해 그곳으로 도망쳤다는 사실도 알고있었다.
그러니까, 기억도 하고있고 흔적도 여전하다. 처절한 역사를 뒤로하고
우리와 이들은 왜 이렇게 달라졌는가.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종교와 철학이 왜 그렇게 끈질기게 ‘자립의 고통’을 찬양했는지.
그건 인간을 착하게 만들기 위한 훈계가 아니다.
인간이 ‘사육되는 존재’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아주 오래된 생존 매뉴얼이다.
불교의 선승 임제가 말한 수처작주(隨處作主).
“어디에 있든 주인이 되어라.”
이 말을 나는 마음가짐으로만 읽고 싶지 않다. 이건 정신승리가 아니라 회계장부다.
능동적인 사람은 비용을 낸다. 세금이든 노동이든 책임이든, 자기 손으로 유지비를 낸다.
수동적인 사람은 능동적인 자가 하는대로 한다.
수동적인 사람이 되는 순간, 메뉴는 내가 고르지 못한다.
주는 대로 먹는다.
심지어 먹는 줄도 모르게, 조용히 길들여진다.
기독교의 달란트 비유가 무서운 것도 그 때문이다.
땅에 묻어두면 안전하다. 잃을 일 없다.
그런데 그 안전이 죄가 된다.
왜냐하면 그건 “아무 것도 안 했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삶의 위험과 책임을 포기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안락함은 가끔 휴식이 아니라 항복이 된다.
(??? : 자네, 해 보긴 해봤어?)
“주는 손이 받는 손보다 낫다.”는 이슬람의 경구도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맹자의 경고도
말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하나다.
경제는 돈 얘기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를 지탱하는 근육이라는 것.
밥을 남이 차려주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목소리까지 남이 정한다는 것.
그래서 니체는 ‘최후의 인간’을 저주했다.
그들은 따뜻함을 사랑하고, 배부름을 사랑하고, 안전을 사랑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완성되면, 남는 게 없다.
별을 동경하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됐지”라고 말하며, 삶의 높이를 스스로 깎아 먹는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더 잔인하게 말한다.
“인간은 자유로 형벌을 받았다.”
선택에는 비용이 든다. 책임이 든다. 그래서 자유는 아프다.
그런데 그 비용이 싫어서 선택권을
국가에게, 정부에게, 제도에게, ‘좋은 의도를 가진 누군가’에게 넘겨버리는 순간,
인간은 자유를 버리고 편안함을 얻는다.
대신 주체가 아니라 정책의 대상이 된다.
사람이 아니라 관리되는 숫자가 된다.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보이는 그 풍경이다.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그들을 둘러싼 세계가, 제국이 만든 설계가
밖으로 나가는 길의 입장권(토지, 자본, 교육, 시장)을 먼저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오븐 문을 잠가 놓고, “왜 밖으로 안 나오냐”고 묻는 게임.
그러니 남는 합리적인 선택지는 “안락한 담요”다.
담요속에서 나가지 않겠다/나갈 수 없는 상태다 라는 문장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됐든
이것은 평화가 아니라 관리다.
자유가 아니라 유지비를 대신 내주는 구조다.
우리는 어땠나?
우리도 처음엔 얻어먹었다. 원조를 받았고, 국제정치에 흔들렸고, 전쟁 잿더미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할 정도로, ‘수동적인 존재로 남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받아먹되, 언젠가는 내가 차리겠다는 '능동적 태도'로서의 광기를 버리지 않았다.
공장을 돌리고, 교육을 늘리고, 제도를 만들고, 국가라는 기계를 어떻게든 다시 세웠다.
고결해서가 아니라 국가로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시 한번 근대화의 화신, 산업화의 역군 선배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강의 기적은 당신들 덕분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 야매 쉐프의 결론은 단순하다.
공짜는 없다.
공짜 점심의 대가는 당신의 영혼이다.
만약 공짜처럼 보인다면, 지금 당신은 돈이 아니라 당신의 선택권, 자존, 이름으로 값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시쿼야의 체로키 문자는 잊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유산’이 되었지만,
세종의 문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밥벌이를 책임지는 ‘도구’로 살아있다.
이 차이는 문자의 우수성에서 나온 게 아니다.
누가 더 착했는가의 문제도 아니다.
누가 더 많이 유지비를 감당할 구조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구조를 지키기 위해 누가 더 오래 아픈 자유를 견뎠는가의 차이다.
지금 당신은 어떤가?
혹시 누군가가 공짜로 주는 따뜻함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수동적인 사람”의 포지션으로 편함에 취해 있지는 않은가?
기억하시라.
자신의 삶에 능동적인 주인이 치르는 비용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수동적인 사람이 치르는 비용은 조용히, 아주 예의 바르게,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러니 오늘도 내 밥벌이하느라 더럽고 치사하고 힘들었던 당신.
당신은 방금 당신의 존엄을 지켜낸 것이다.
오늘 하루도 주인으로 버텨낸 당신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야매쉐프가 말아주는 미국편(인디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