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쉐프가 말아주는 국제정세 스파게티 : 미국편(태평양전쟁)
미주노선의 비행기 안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감정은 설렘이 아니다.
대부분은... 압도적인 지루함이다.
지도 앱을 켜면 비행 경로가 보인다. 가느다란 선 하나.
그리고 그 선 아래로 끝없이 펼쳐지는 건 북태평양이다. 바다. 바다. 그리고 또 바다.
“아직도 바다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1941년, 이 루트를 타고 진주만을 공격했다? 일제는 확실히 정상이 아니네.
(이 생각을 하는 너도 정상은 아니야 야매쉐프)
나는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이 먼 거리를 건너서 선제공격이라니, 무모하다.”
하지만 비행기가 계속 날아가고, 창밖의 풍경이 몇 시간째 변하지 않자
그 ‘무모함’은 다른 얼굴로 바뀌기 시작한다.
“근데 이렇게 멀면... 올거라고 예상은 할수있나?”
군사학에서 말하는 기습은 단순히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왔다'는 것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적이 올 것을 알고 있더라도,
방어자가 예상치 못한 시기와 방식으로,
즉 방어가 준비되지 않은 찰나를 타격당했다면
그것이 바로 기습이다.
그 순간 깨닫는다. 내가 방금 느낀 이 지루함과 안도감이야말로,
기습이 가능해지는 최적의 조건이라는 것을.
태평양의 거리는 공격자에게는 극한의 부담이지만,
방어자에게는 “기습성공 확률이 0에 수렴해 보이는 거리”로 작동한다.
즉, 진주만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불가능해 보였던 작전’이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리가 너무 멀어서 미국이 방심할 수밖에 없었던 작전’이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은 일본이 ‘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동남아쪽으로 예상했지, 하와이 진주만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글은 그 거리(distance)의 역설에서 시작한다.
기습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공격자는 겉보기엔 어려운 전략을 실행 가능한 전략으로 바꿔야 하고,
둘째, 방어자는 그 접근을 “일어나기 힘든 일”로 치부해야 한다.
태평양은 물리적으로 첫째 조건을 거의 파괴한다. 너무 멀고, 너무 크고, 너무 비싸다.
그런데 심리적으로는 둘째 조건을 완벽하게 강화한다.
태평양은 방어자의 머릿속에 이런 안이한 문장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설마, 저 망망대해를 건너서 여기까지 온다고?”
하지만 항구는 움직이지 않는다.
고정된 표적은 준비된 공격자에게 ‘단 한 번의 타격으로 끝낼 수 있는’ 매력적인 먹잇감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내가 비행기 안에서 느낀 그 지루한 거리 덕분에 기습은 성공할 틈을 얻었다.
문제는 이 기습이 ‘전술적으로 성공’했지만 ‘전략적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일본이 진주만 공격에서 달성하려던 전략적 핵심목적은 미국의 전의상실을 통한 협상유도였고
그것을 위한 진주만 기습 공격에서의 ‘핵심 표적’은
당시 해전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던 항공모함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공격 당일,
미 태평양 함대의 주력 항모인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렉싱턴(Lexington), 사라토가(Saratoga)는 모두 진주만에 없었다.
(하와이에 스파이가 그렇게 많이 있었는데, 이걸 놓쳐버렸네?)
더 치명적인 실수는 따로 있었다.
일본군은 화려한 전함 격침에 취해, 정작 전쟁을 지속하게 만드는 ‘인프라’를 건드리지 않았다.
기습 이후 태평양 함대 사령관이 되는 체스터 니미츠(Chester Nimitz)는 이렇게 회고했다.
"만약 일본이 450만 배럴의 유류 저장고를 파괴했다면, 전쟁은 2년 더 길어졌을 것이다."
전함을 부수었지만, 배를 움직일 기름과 배를 고칠 수리 시설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는 미국에게 "회복할 시간"과 "반격할 연료"를 남겨준 셈이었다.
전술적으로는 화려한 승리였으나, 전략적으로는 ‘미국의 목줄’을 끊지 못한 절반의 실패였다.
수백 년 전 조조도 관도대전에서 병참기지 오소를 먼저 태웠다. 전술의 기본 중의 기본인 '보급 파괴'를 엘리트 일본 해군이 놓친 것이다. 얘네는 삼국지를 안읽었나 싶다.
그런데 놀랍게도 삼국지는 일본제국군 장교들에게 필독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환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삼국지를 '전략서'가 아니라 '무협지'로 읽었다.
조조가 오소를 태워 이긴 건 까먹고, 관우가 죽을 때까지 칼 휘두르다 산화한 것만 기억한 것이다.
읽고 싶은 페이지만 찢어서 읽은 대가, 그것이 바로 패망이었다.
(그러니까 노몬한에서 소련군 장갑차 상대로 착검돌격 했겠지 덴노 헤이카 반자이)
그리고 물리적 피해보다 더 무서운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습이 부순 것은 함대였지만, 기습이 깨운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분노였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에겐 처음에 그럴싸한 목표가 있긴 했지.
말 그대로 ‘쳐맞기 전’까지만...)
진주만의 진짜 파괴력은 침몰한 톤수가 아니라,
미국 내에서 ‘전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지루한 토론을 단 1초 만에 끝내버린 데 있다.
공격 직후 갤럽(Gallup) 조사에서 대일 선전포고 찬성률은 97%였다. 반대는 사실상 없었다.
여기서 국제정치학자 제임스 피어론(James Fearon)의 ‘청중비용(Audience Costs)’ 이론이 섬뜩하게 맞아떨어진다.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가 공개적인 도발을 당한 뒤 물러서는 것은,
독재자가 물러서는 것보다 훨씬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들을 지켜보는 ‘청중(유권자)’이 지도자를 정치적으로 심판하기 때문이다.
즉, 민주주의에서 굴욕적인 후퇴는 곧 ‘정치적 자살’이다.
일본은 미국을 공격함으로써 루스벨트 행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타협의 여지’를 없애버렸다.
민주주의는 원래 전쟁을 꺼린다.
설득해야 하고, 반대파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분 없는 기습으로 뺨을 맞는 순간, 그 복잡한 민주주의는 ‘단일한 복수 기계’로 돌변한다.
일본은 미국 함대를 때린 게 아니라, 미국이 ‘평화’로 돌아갈 수 있는 퇴로를 폭격해 버린 것이다.
(다 차치하고서, 유류고랑 항모는 도대체 왜 놓친거야? 이소로쿠가 X맨인가?)
나폴레옹이 유럽에 등장하고, 유럽을 제패했던 이유를
‘국민국가’,‘국민군대’의 등장으로 꼽는 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관찰의 산물이었던 것.
봉건 영주나 왕을 지키기 위한 군대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한 군대가 되어
국민국가가 행하는 총력전에서 국민군대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죽을때까지 싸우는 처절한 복수기계가 된다.
여기서부터는 단순히 "미국이 강했다"는 감탄으로 끝나선 안 된다.
왜 ‘민주주의’가 전쟁을 회피하다가도, 일단 시작하면 괴물이 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정치학자 부에노 데 메스키타(Bueno de Mesquita) 등의
‘승리연합(Winning Coalition)’ 이론은 이를 아주 건조하게 설명한다.
독재자는 소수의 엘리트만 만족시키면 권력을 유지하지만,
민주주의 지도자는 다수의 유권자(승리연합)를 만족시켜야 한다.
따라서 전쟁이 터지면 민주주의 지도자는 패배를 막기 위해 국가의 모든 자원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지면 선거에서 떨어지고, 권력을 잃기 때문이다. 생존 본능이 국가 총력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미 19세기에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이 역설을 꿰뚫어 보았다.
"민주국가는 전쟁 초반에는 취약하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승산이 커진다.“
초반의 방심과 혼란이 지나고 나면, 민주주의는 특유의 생산력, 물류, 그리고 정당성을 무기로
전쟁을 ‘영웅담’이 아닌 ‘교체 속도 게임’으로 바꿔버린다.
누가 더 빨리 배를 찍어내고, 누가 더 빨리 조종사를 길러내는가.
이 종목에서, 전시 체제로 전환된 미국 민주주의를 이길 수 있는 나라는 없었다.
캘리포니아의 고속도로와 철길을 달리다 보면 보이는 끝없는 평원과 유정(油井)들.
그것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아니다.
조금만 오래 바라보면 그게 자연이 아니라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걸 알게 된다.
끝없이 펌프질하는 석유 시추기, 지평선까지 뻗은 농장, 거미줄 같은 물류망.
그건 평화로울 땐 부(富)의 원천이지만, 전쟁이 터지면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의 무기가 된다.
나는 그 풍경을 보며 결론을 고쳐 쓴다.
“일본은 바보였다”는 1차원적인 결론이 아니다. 진짜 결론은 더 무겁고 묵직하다.
민주주의는 전쟁을 싫어한다. 그건 자유가 가진 본능이다.
하지만 한 번 명분이 주어지면,
자유는 토론을 멈추고 전쟁을 ‘선택’이 아닌 ‘책임’ 혹은 ‘의무’로 받아들인다.
그때부터 민주주의는 쉽게 멈추지 않는다. 상대가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진주만은 미국을 약하게 만든 사건이 아니었다.
잠자고 있던 거대한 시스템, 미국을 가장 미국답게 만든 스위치였다.
자, 이제 정리하겠다.
진주만 공격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은 이것이다.
“가장 평화지향적인 시스템이, 가장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역사는 "그렇다"고 답한다.
자유는 평소에는 나태하고 분열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존립이 위협받는 임계점을 넘으면 관용을 뺀 적나라한 힘으로 돌변한다.
그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지켜야 할 가치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그것을 방해하는 적을 제거하는 데 있어 어떤 망설임도 없는 효율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태평양의 거리는 기습을 허용했지만, 그 기습은 ‘잠자던 거인’을 깨운 게 아니라
잠자던 민주주의의 형태를 바꿔버렸다.
(잠자다가 싸대기 맞았는데 화가 좀 많이 나긴 하지)
상인의 시스템이 군인의 시스템으로, 토론의 시스템이 동원의 시스템으로..
우리가 아는 현대사에서, 자유가 입은 제복만큼 무거운 갑옷은 없다.
일본은 '정신력'으로 현실을 덮으려 했지만, 미국은 '데이터'로 현실을 직시했다.
처참하게 깨진 진주만의 잔해 앞에서
미국이 보여준 진짜 저력은 복수심 너머에 있다.
그것은 실수를 즉시 인정하고, 시스템을 통째로 뜯어고치는 유연한 회복력(Resilience)이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미국의 힘은 항모의 숫자가 아니라,
최악의 실패조차 투명하게 공개하고 동력으로 삼는 그 '정직한 야성'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기습의 설계와 실시를 담당한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미국의 잠재력과 공격성을 몰랐을까?
아니, 하버드로 유학을 다녀왔고
미국주재 일본 무관을 역임했다.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미국과의 전쟁을 논하는 어전회의에서도 전쟁을 반대했고
당시 일본 총리인 고노에 후미마로에게는
‘일단 시작하면 6개월에서 1년은 백중지세이나 그 이후는 장담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폐쇄적이면서, 상급자에게 극한의 돌려말하기를 하는 일본사회,
특히 군국주의 하 일본의 군인정신을 고려하면
이 말은
‘이거 시작하면 다 죽음’ 이라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이 말도안되는 전쟁의 시작을 진두 지휘했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와~ 정말 군인정신이 투철했나보다. 싶다.
맞다. 군인정신 투철하다.
(내가볼땐 제정신 아님. 나라를 패망으로 몰아넣을 거라는걸 알면서도 나가는건 죄악이다.
이순신장군이 부산포로 괜히 안나간게 아니잖은가?)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것보다 당시 일본군 혹은 일본 국민들의 정신 기저에 자리잡은
독특하고 특이한 문화덕분이다.
일본제국의 언어로 말하자면,
‘대동아공영’을 했고
실제로 동아시아, 동남아를 군홧발로 집어삼키기까지 했던 일본 제국.
도대체 무엇이 그 일본제국을 말도안되는 이 전쟁에 뛰어들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일본 제국을 패망시키고 말았는가?
그 의문은 일본편에서 계속된다.
야매쉐프가 말아주는 국제정세 스파게티 : 미국편(태평양전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