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으로부터의 도피
절에 가기로 한다. 이유는 다양하게 있을 것이다. 군복무를 마친 뒤에 가는 여행이다. 자연 속에서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도파민에 중독된 나를 구원해주고 싶었다. 여러 이유로 절을 향한다.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절까지 먼 길을 떠나야 한다. 일찍 출발해야만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다. 어제 마셨던 술의 영향이 아직 있나 보다. 피곤함을 견디며 열심히 챙겼다.
보통 나는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 기차를 탈 때만큼은 무언가 먹고 싶다. 이 욕구는 어디서 온 걸까? 대개의 매체에서 열차를 탈 때 음식을 들고 타던 걸 자주 그렸던 걸로 기억한다. 그 영향일까 싶다. 오늘만큼은 아침밥을 먹기로 한다. 햄버거만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없을 테다. 역시 맛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열차를 타고 떠난다. 3시간 정도를 달려야 한다.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영상을 볼까? 게임을 할까? 독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결국 멍 때리기를 선택한다.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였으므로 말이다.
나는 많이 망가진 상태다. 단기간의 자극에 심히 중독되어 있다. 요새 숏폼 영상들이 차고 넘치고, 나 역시 이 기류에 양껏 휩쓸리는 중이다. 항상 자극을 원하고 정적을 두려워한다. 이를 자각을 하더라도 변한 게 없었다. 변화를 다짐하는 말뿐,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 자극을 멀리하자. 이런 다짐을 하며 떠난 여행이다.
영상을 봐선 안 된다. 게임? 이것도 자극이다. 노래도 멀리했다. 정적만을 반겨야만 한다. 소음은 싫기 때문에 헤드폰은 낀다. 다만 노래조차 틀지 않는다. 창밖을 구경하며 백일몽에 잠긴다. 나를 자극하는 것들이 없다. 자유롭게 떠도는 상상만을 즐길 뿐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자극을 아예 놓치는 않았다. 중간중간 달콤한 유흥을 즐겼다. 그럼에도 절반 이상은 멀리했다. 이것은 나름의 성과다. 한 번에 성공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점진적으로 나아지기를 원했다. 첫 시도에 이 정도 성과는 높게 평가해야 한다. 절반 이상 성공한 것이니 말이다.
익산역을 지난다. 와본 적이 있는 곳이다. 2년 전, 훈련소를 가기 위해 들른 곳이다. 울적한 마음만을 간직한 채 왔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훈련소에 가기 위해 왔다. 이번엔 소집해제를 축하하기 위해 지난다. 이제는 행복한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목적지는 순천이다. 아직 절반밖에 오지 않았다.
창밖에 여러 마을들이 보인다. 알록달록한 지붕들. 넓게 펼쳐진 밭과 비닐하우스. 인상적이다. 지방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보인다. 저기엔 청년들이 살까? 대부분 노인들이겠지. 저 노인들 세대가 지나면 어떻게 될까? 저 마을을 유지해 줄 사람이 남아 있을까? 없다면 저 마을은 점차 없어질 텐데. 한두 세대만 지나도 없어질 장소다. 내가 늙은 날이 된다면, 창 밖 풍경들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전부 폐허뿐인 마을이 되려나. 씁쓸한 맛이 입에 맴돈다.
열차 창문이 더러워 못 봐줄 지경이다. 닦은 지 몇 년이나 지난 것처럼만 보인다. 이 열차가 만들어진 후 한 번도 닦지 않았으려나? 이 창문이 깨끗했던 적도 있겠지. 이 열차가 처음 운행했을 때, 그때 탔던 사람들은 깨끗한 창문을 즐겼으리라. 언젠가 누군가 닦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전주역을 지난다. 이 역에서 사람들이 특히 많이 내린다. 전주, 유명한 도시려나. 비빔밥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절반 이상이 빠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남아있다. 왠지 모를 쓸쓸함을 느낀다. 저들과 나는 아무 관계도 아닌데. 참으로 기이한 쓸쓸함이다. 자극을 멀리하니 괜한 것들에 신경이 쓰이는 것만 같다. 참으로 기이하다.
드디어 도착했다. 정겨운 감성을 품은 역이다. 아버지와 군인 아들이 보인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한다. 못 본 사이에 홀쭉해졌다면서. 양손엔 짐이 한가득이다. 아버지가 대신 들어주신다. 둘이 꽤나 친해 보인다. 엄마와 아들의 친한 관계는 자주 봐왔다. 아빠와 아들의 관계는 아직도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장면이다.
무엇을 먹었는지 구구절절 적기는 귀찮다. 그러나 도착해서 먹은 돈가스가 너무 맛있었으므로 기록에 남겨야만 한다. 꽤나 유명한 집 같았다. 철판흑마늘등심돈까스였으려나. 마늘을 좋아해서 시켜봤다. 기다리니 메뉴가 나왔고, 기대에 찬 마음으로 한 입 베어 문다. 당황스럽다. 이것은 무슨 맛일까? 담백한 맛? 아니야. 담백한 수준을 넘어섰다. 육향이 없다시피 한다. 배추를 삶았을 때 느껴지는 꿉꿉함. 그 맛이 어떻게 돈가스에서 나는 걸까? 너무나 당황스럽다.
아직 나에겐 마늘 소스가 남아 있다. 양배추가 마늘 소스에 절여져 있다. 소스를 찍어 먹어 본다. 아, 이거구나. 환상적인 맛이다. 마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소스와의 조합을 위해 돈가스 맛을 이렇게 잡은 거려나? 그거라면 인정이다. 대단한 사람이다.
이젠 버스를 탄다. 버스도 타고 걷기도 해야 한다. 참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곳이다. 일부러 산속 절을 잡은 것이니 감당해야지. 버스를 타고 달린다. 서울과는 확실히 다르다. 젊은이가 거의 없더라. 나만이 젊었고 다들 노인이었다. 이 지방도 곧 없어지려나. 지방에서 살아보고 싶지만, 메리트가 없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지방 도시들도 점차 사라지겠지.
버스에서 내린 뒤 이젠 걷는다. 산속을 걷다 보면 나온다더라. 열차에서도 그렇고, 버스에서도 그렇고, 걸을 때조차도, 난 음악조차 틀지 않았다. 자극에서 벗어나는, 내 목적을 충실히 이행하는 중이다. 정적. 꽤나 매력적인 요소더라. 이제껏 정적을 무서워했다. 지금은 즐기는 중이다. 이렇게 쉽게? 정적이 무서운 것이 아니었을까? 아직은 의심 단계다. 좀 더 자극을 멀리하고, 정적을 더 즐겨봐야 한다. 더 오랫동안 시도해 보자.
절까지 가는 길이 꽤 괜찮다. 길 옆으로 물이 흐른다. 이런 풍경이 좋더라. 물이 낙차로 인해 떨어지는, 때문에 생기는 소리.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들도 흔들린다. 새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아아, 자연의 소리라 불러야 할까. 서울에선 듣기 힘든 소리다. 이것들을 원하기에 자연을 찾는 것이리라.
드디어 절에 도착했다. 꽤나 크더라. 스님을 찾아가 안내를 받는다. 넉살이 좋으신 스님이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았다. 수행하는 이미지라 그랬을까? 나는 약간 경직되어 있는 분위기를 상상했다. 이리 넉살이 좋은 분인 걸 알았더라면, 긴장을 덜 했을 테다.
숙소를 배정받고, 좀 쉬다가 밥을 먹으러 간다. 사찰 음식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맛있다는 평을 여럿 봤다. 채식이 맛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고기가 없는 식단이 맛있을 수는 없다. 내가 직접 먹어보고, 그들의 호들갑을 낱낱이 파해쳐줄 테다.
아아, 정말 맛있다. 스님들은 이런 맛있는 음식을 세끼 다 챙겨드시는 걸까. 수행하는 것, 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특별한 맛은 아니다. 단지 손이 계속 가는 맛이다. 조미료의 맛? 아닌 것 같다. 깨끗한 느낌이 든다. 고추장이 특히 맛있다. 시판 고추장은 단연 아닐 것이다. 고추장만 따로 챙겨가고 싶을 정도다. 아아, 내일 아침밥이 기대가 된다.
저녁 예불을 드린다. 불교에 대해선 문외 안이다. 그들이 무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눈치껏 절을 한다. 무슨 목적인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불교에 대해서 잠깐이라도 공부해야 할 것 같다. 내일도 예불을 드릴 테니 말이다. 그 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려면, 무슨 목적인지는 알아야 할 테다.
숙소로 돌아와 쉬고 있다.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했다. 산책을 나가고 싶었지만, 춥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다. 산책은 내일 날 밝을 때 하자.
1일 차는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다. 이미 너무 많은 글을 적어버렸다. 내일은 보다 간소한 글이 되지 않을까. 그러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