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는 길을 기다리며
알람 소리에 깼다. 새벽 3시 30분이다. 새벽 예불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이걸 보기 위해 알람을 맞췄었지 참. 아, 너무나 피곤하다.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그냥 자련다. 굳이 봐야 하나.
알람 소리에 깼다. 새벽 5시 50분이다. 6시에 아침 공양이 시작된다. 이때를 놓치면 아침밥은 없다. 원래 아침밥은 안 먹는다. 다만 절 밥이 너무 맛있다. 그러므로 이번엔 먹어야만 한다. 피곤한 몸을 일으킨다.
이른 새벽이라 그런가, 사람이 별로 없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는다. 원래 밥을 먹을 땐, 어떠한 영상이라도 틀었다. 정적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언가의 자극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절에선 그것들을 멀리한다. 정적 속에서 밥을 먹어야만 했고, 나 역시 강제로 그 법칙을 따라야만 한다. 좋은 경험이다. 의식이 조용해진 느낌이다. 나를 방해하는 자극이란 없다. 왜 이제껏 무언가에 매달렸을까? 왜 정적을 그토록 무서워했을까? 정적 속에서의 활동, 썩 괜찮게 느껴진다. 밥 역시 훌륭하다.
아침밥을 먹고 낮잠을 잔다. 밥을 위해 일찍 일어났으니. 알람 소리에 깼다. 9시다. 스님과의 차담이 예정되어 있다. 고대하던 시간이기도 하다.
스님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한다. 궁금한 점이 적지 않았다. “왜 수행을 시작했는지”, “부처님 말씀 중, 무엇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예불할 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새벽 예불 같이 매일 하기엔 힘들 수행이 있는 것 같은데, 무슨 동력으로 계속하는지” 등. 여러 질문을 준비했다.
음.. 답이 시원찮다.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일까? 아니지, 애초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런 답도 예상 범주 안이다. 나는 평균보다 많은 생각을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때문에 이런 질문이 누군가에겐 버거운 질문일 테다. 스님 역시 그런 반응이다. “어려운 질문 말고 다른 질문이 없나?”라는 답이 돌아온다. 음 .. 스님은 많은 생각을 하는 것보다는 행동하는 자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스님 한 분과의 대화만으로 저들을 판단하는 건 부조리한 짓일 테다.
점심시간이다. 짜장 냄새가 솔솔 난다. 잠깐, 짜장이라고? 짜장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나? 절에선 고기를 안 먹을 텐데. 고기 없는 짜장을 무슨 맛으로 먹나? 여러 생각이 스친다. 이제껏 맛있게 먹은 밥인데, 이번만큼은 실망할 수도 있을 것만 같다.
아아, 나는 왜 믿질 못했나. 이렇게나 맛있는걸! 놀랍다. 고기 없는 짜장을 이렇게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니. 웬만한 중국집보다도 훌륭하다. 저들은 고기 넣고도 이런 맛을 내지 못한다. 비법이 무엇이란 말인가. 면이 없는 것이 아쉽다. 짜장은 면과 함께 해야만 하는데 말이다. 이번에도 훌륭한 식사 시간을 보낸다.
다시 잠에 든다. 왜 이리 졸릴까? 밖은 너무나 춥다. 무언갈 하기엔 내 신체와 의지가 약하다. 방 안은 따뜻하니 잠이 솔솔 온다. 잠에 든다. 편하다. 아니지, 침대가 없어 잠자리는 불편하다. 슬슬 내려가고 싶다. 절이 질리기 시작한다.
일어났다. 아,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미련하다. 억지로 밖을 나선다. 산책이라도 해야지. 산을 좀 오른다. 이것을 올랐다고 표현해야 할까? 약간 걸으니 새로운 절이 나왔다. 그곳엔 아무도 없다. 나만이 있다. 기분이 묘하다. 이렇게 넓은 자연과 절이 있는데, 사람은 없다. 사람이 있던 흔적이 있지만, 사람은 없다. 이런 분위기가 좋더라. 공허하면서 쓸쓸한,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만 같은, 이 기분이 좋더라.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추워서 무언갈 하지 못하겠다. 다시 잠에 든다. 이런, 여기까지 와서 뭘 하는 건지. 잠만 잘 거면서 왜 절까지 왔는지. 추운 걸 어떡하나. 날씨 탓이라도 해야겠다. 날씨가 좋았어도 방 안에만 있었을 것만 같지만 말이다.
저녁밥을 먹으러 왔다. 아, 이제 슬슬 질린다. 정말 맛있던 고추장과 참기름, 이젠 이 맛에 질리기 시작한다. 고기가 필요하다. 절에 오기 전, 먹었던 돈가스가 떠오른다. 참 맛있었는데. 내려가면 반드시 그것을 먹을 테다. 내일 아침밥도 이것을 먹어야 하는데. 내일은 걸러야겠다. 더 이상 먹고 싶지가 않다.
아, 2박 3일은 너무 길다. 내가 즐기지 못하는 걸까? 다른 곳을 가질 못하니 답답하다. 어딜 가도 산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지 못한다. 얼른 내려가고 싶다. 얼른 .. 내일 아침에 내려가야겠다. 얼른 잠에 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