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의 탈출, 행복한 여행을 위해서
아, 7시다. 오늘도 새벽 예불을 지나쳤다. 아침밥 역시 걸렀다. 절에서의 활동이 질린다. 얼른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찝찝함이 올라온다. 이틀간 씻지를 않았다. 너무 더럽게만 보지 마시라. “반항”이라는 숭고한 행위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외관으로부터, 관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최근, 꾸미는 행위에 대해 회의감이 올라왔다. 매일 하는 면도와 분기별로 하는 펌, 옷도 신경 써서 입는다. 신발장에 내 신발만 15켤레 정도 될 것이다. 한때는 좋아서 했다. 지금은 최소한의 예의로 하는 것이다. 질린다. 모든 것이 권태롭다. 아아, 이게 무슨 의미인가. 최근 길렀던 머리도 잘랐다. 삭발까지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용기가 부족했을까? 언젠간 용기를 낼 수 있으리라.
어쨌든, 씻기로 결심했다. 이 찝찝함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아, 샴푸를 챙겨 오지 않았다. 이런, 나는 왜 절에 세면도구가 구비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스님은 머리카락이 없지 않은가. 멍청하다. 그냥 물로만 씻고 나왔다. 상쾌하다. 얼른 내려가고 싶다.
드디어 하산한다. 고작 2박 3일이었지만,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다음부턴 짧게만 머물러야겠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겠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다. 핸드폰을 멀리 한다. 멍 때리는 중이다. 자극에서 멀어지자. 기분이 좋다. 온갖 잡생각들이 머리를 스친다. 그동안 핸드폰에 의해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단절되었는가. 짧은 시간 동안 이리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한 아주머니가 버스에 탄다. 자연스레 앞자리에 앉아 기사님에게 말을 건다. 정겨운 풍경이다. 서울에선 볼 수 없던 장면인데.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사투리가 심해 알아듣지 못하겠다. 아니, 발음이 어눌한 것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빨래.. 김서방 ..” 파편적인 언어만이 들린다. 일상적인 대화겠거니. 잠깐, 말이 너무 많다. 말을 쉬지 않고 한다. 평소라면 소음이라 치부하고 헤드폰을 꼈을 것이다. 오늘만큼은 즐겨보자.
기사님은 저 말들을 다 알아들으시는 걸까? 가만 보니 기사님 역시 대화에 흥미가 없어 보인다. 아주머니 혼자서만 말을 뱉는다. 신기하다. 저 대화의 목적은 무엇일까? 듣는 이가 없는 대화, 이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 알면서도 계속 말하는 걸까? 저런 사람들이 고독사를 하는 거겠지. 저렇게 말이 많은데, 들어줄 이가 없다면 그때는 고독사를 하는 거겠지. 잠깐, 내 머릿속에도 여러 문장들이 쉬지 않고 지나간다. 그렇다면 저 아주머니와 나의 차이는 무엇이지? 저 사람은 말을 뱉을 뿐이다. 나 역시 말이 많다. 뱉지 않을 뿐이다. 이런, 나도 언젠간 고독사를 하려나.
국밥집을 찾았다. 순천이 국밥으로 유명하다더라. 절에서 채식을 충분히 하지 않았나. 고기가 필요하다. 고기가 먹고 싶다. 식당에 들어서니 낮술을 하는 아저씨들이 보인다. 신뢰가 간다. 저들은 맛집 보증 수표가 아닌가! 음식이 나오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맛있다. 분위기부터 먹고 들어간다.
음식이 나왔다. 이런, 국밥에 콩나물? 이건 무슨 조합일까. 콩나물 국밥을 싫어한다. 그리 피해 다녔는데 여기서 마주치게 되다니. 갑자기 기대가 팍 식는다. 그래도 먹어보자.
아아, 이건 무슨 맛인가! 자극적이다. 너무나 맛있다. 사찰 음식을 먹어왔기 때문일까? 전라도 국밥이 내 취향인 걸까? 감동적인 맛이다. 술을 시켰다. 아저씨들을 따라간다. 저들과 함께 술에 취한다. 맛있는 국밥엔 술을 마셔야만 한다. 기분이 좋다.
약간 취한 채로 나왔다. 날이 너무 춥다. 움직이기가 싫어진다. 얼른 괜찮은 카페나 찾아 들어가야지. 여긴 번화가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게 뭐지? 대부분 상가가 임대를 내놨다. 거리가 썰렁해 보인다. 아무리 평일 점심이라지만, 사람이 너무 없다. 죽은 거리 같다. 씁쓸함을 느낀다. 이 도시도 위험한 상태일까? 지방은 점점 사라지는 걸까?
괜찮은 카페를 찾았다. 여기서 저녁까지 시간을 죽여야 한다. 책을 읽고 게임도 하고 영상도 봤다. 어느새 사람들이 많이 찼다. 연령대가 꽤나 있다. 신기하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가 하나도 없다. 지방은 늙어간다. 또 한 번의 씁쓸함을 느낀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왔다. 무인텔. 사진으로 봤을 땐 깔끔해 보였다. 실제로 와보니 허름한 모텔 느낌이 난다. 세면 용품 속엔 콘돔이 있고 룸 서비스에선 성인 용품을 팔고 있다. 야릇한 기분이 든다. 이런 분위기 속에 혼자 있으니 씁쓸함을 느낀다. 이런, 오늘 씁쓸함을 여럿 느낀다.
원래는 양조장에 갈 예정이었다. 괜찮은 양조장이 있다 해서 기대를 약간 했다. 하필 리모델링 중이더라. 계획한 대로 잘 풀리면 여행이 아니지. 급한 대로 옆 카페에 왔다. 창고 같은 분위기에 규모가 꽤 있다. 밀크 쉐이크를 시키고 글을 쓰는 중이다. 밀크 쉐이크 이거 요물이다. 우유가 신선하다는, 신선한 맛이 이런 맛일까? 너무 맛있다. 계획이 틀어졌지만 위안이 된다.
앞으로 숙소에 가서 치킨을 시켜 먹을 듯하다. 사실 배가 고프진 않다. 그럼에도 시킬 것이다. 이번 여행이 아직까지 만족스럽지가 않다. 남은 일만큼은 만족스럽게 보내야만 한다. 돈을 쓰자. 돈을 자유롭게 쓸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을 테니. 사치를 부리자. 행복을 사자.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즐겁게 보내야만 한다. 그것을 위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