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글

판펜-001.

by 한운후

올해 3월, 브런치에서 작가 신청을 거절을 받은 적이 있다.


'브런치, 가끔 쓸 만한 아이디어 찾을 때나 들어가지 뭐.'


이후로 그 곳을 배회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들곤 했다. 다만 이 플랫폼이 모든 접속자에게 작성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작가 신청을 미루고, 또 미뤘다.

왜 그랬을까?

사실, 그들(브런치, 카카오)이 글을 쓰고픈 사람에게 요구했던 건 그리 까다로운 게 아닌데.


"작가 신청을 하셨군요. 좋습니다, 뭘 갖고 계세요? 많은 사람들이 꽤 긴 시간 브런치에서 보내는데, 혹시 보여주실 뭔가가 있어요? 여기, 본보기가 될 만한 작가분들 프로필이에요. 각자만의 *Forte를 갖고 있는데, 당신은 뭘 갖고 있나요?"

스크린샷 2024-10-25 오후 4.24.56.png 네이버 사전

나는 답했다.

"소설 한 권을 완성한 이력이 있는데, 창작자로서 이에 관련한 얘깃거리를 공유할 수 있을까요? 소설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제가 오래전부터 이어온 유용한 습관 하나가 있습니다."

" ... "

"그, 메모... 메모하는 습관인데... 제가 소설을 만들면서 꽤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 ? "

"직접적으로 소설에 쓰인 것도 있고, 메모 습관 자체가 몸에 배어있어서 제가 경험할 수 있었던 이로운 점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힘겹게 '신청하기'를 누르고,

바로 다음 날부터 나는 연재할 브런치북의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이제껏 써온 글은 그 종류와 성질이 명확했다.

문장의 논리/ 맞춤법/ 질서를 올바르게 할 여력이 없는 탓에, 그저 펼쳐진 종이에 의식의 흐름에 따라 펜을 굴리면, Journal

실수든, 우연이든 뭔가가 머리를 스치는 순간에 펼치는 수첩은 Memo(비망록)

원고가 소설에 최종 삽입되기 전, 문단/ 대사/ 등장할 인물들이 뻗어갈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들을 (마치 돌다리 두드리듯)더듬어보는 과정의 Vanguarding 노트 (전쟁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을 짊어진채 적진을 향해 제일 선두로 나서는 전초부대)

등등.


다만, 내가 끊임 없이 숨쉬듯 뭔가를 끄적이고, 페이지 수를 늘려가는 와중에 결코 적극적으로 뛰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 SNS였다. 인스타로 제 3자와 팔로우를 하고, 댓글 다는 걸 페이스북에 인수되기 전에나 해 봤던 사람으로서(쓰고 보니 이상하네, 그래도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 해가 갈 수록 그것에 점점 밀려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세상이 커진 것 같은데, 사실 알고 보면 그 안에 내용물이 부풀어 올라서가 아닐까?

별의 별 개인적인 이유들은 고사하고, 나는 일찍이 친구들 사이에서 '오프라인 친구'로 자리잡았다. 참으로 트렌드와 어울리기 까다로운 성질을 가진 건 확실했다.


다행스럽게,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었다.

1. 나는 SNS에 소비할(다른 평행 우주의 또다른 내가 쏟았을 법한) 시간들을 내 Forte를 갈고 닦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2. 한국 사회의 '비교'라는 요소를 해부대의 할복당한 개구리처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3.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간단하고 쉽게 서로를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왜 자꾸 개구리가 떠오르는 걸까) 여기고 싶어 하는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등등.


하지만 뭔가에 대해 논하려 할때 좋은 점, 긍정적인 것, 밝은 면에 대해 때로 간과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서두르진 않을 심산이다.




춤추는 글. 즐기는 글?

필자가 해당 글의 제목을 이런 식으로 정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 첫 번째 글이기도 하고.


그래도, (내가 한때 그러곤 했던 것처럼 별 특별한 이유 없이 브런치 사이트의 이것 저것을 클릭하다)해당 페이지를 훑게 된 방문자 분들이 이 브런치북의 제목, 목적, 필자의 이름 같은 생소한 정보들을 접했을 경우를 생각해야겠다.


SNS, 브런치.

당연히 둘은 너무도 다르다.

(브런치엔 과 사진이, 인스타엔 사진과 글이?)


소설과 별개로, 내가 이제껏 펜으로 종이에 슥슥 적어내려가던 것들은 전부 '공개되지 않을, 개인적인, 남들과 주고받기에 무의미한' 내용물이었다. 나는 펜을 종이 위에서 굴리는 것 자체가 취미였으니, 누굴 납득시켜야 할 의무도 없었고, 말의 앞뒤가 어긋나진 않는지, 꺼내기에 누군가를 자극시킬만한 소재가 아닌지, 부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허나, 이 곳은 다르다.


그 말인 즉슨, 내가 더는 평소처럼 글쓰길 즐기지 못하게 되는 걸까? 대상을 의식하고, 하지 않고의 차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데? (예비)독자분들은 내가 본인들을 위해 이 곳에 글을 올리는 중이란 걸 인지하고 있을텐데?


'남눈치 50% + 염려 12% + 좋은 첫인상 드리고픈 의욕 38%'의 배경으로,

나는 오래 전 메모했던 이름 아이디어 하나를 채택하게 되었다.


스크린샷 2024-10-25 오후 4.01.58.png Peter Pan의 그 'Pan'


'모든 것'을 뜻하는 접두사 Pan,

그리고 모든 종류의 글에 사용하는 Pen


일어난 적 없는 가상의 이야기와 달리,

추후에 내가 논픽션의 영역에 발을 디딜때 사용하려 했던 이름이었다.

말 그대로, 펜으로 내가 쓰려 했던 모든 걸 다루는 글.


'모든 게 될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옵션을 움켜쥘 수 있게끔'

움켜쥔다는 말의 어감이 다소 탐욕스럽지만, 열린 가능성만큼 앞으로의 달달한 기대를 맛보게 해주는 것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그만큼 이것 저것 모든 걸 쓰겠다는 야욕이 풍기는 제목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가자면, 피터 팬이 나이를 먹길 거부하고, 영원한 아이로 남았다는 걸 지금에 와서 보니, 다른 게 보이기도 하고, 몇몇 비유도 떠오른다.

나는 어른이 된 다는 게 손에 쥔 주사위를 보드 위에 던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피터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무엇으로 정의할지 몰라도, 분명 주사위를 단단히 손에 쥔 채 하늘을 날며 백만 가지의 꿈을 그렸을 것이다.


뭐든 될 수 있는 그 즐거움 하나 만큼은 '초콜릿 상자'에 손을 넣기 전의 마음과 비슷할텐데.

상자에 손을 넣고,

주사위를 던지고,

나는 왠지 펜을 놓기가 싫다.


우리 어른들이 때로는 피터를 부러워해도 될까?







그림 제목:

Unidirection.

Procreate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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