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펜-001.
올해 3월, 브런치에서 작가 신청을 거절을 받은 적이 있다.
'브런치, 가끔 쓸 만한 아이디어 찾을 때나 들어가지 뭐.'
이후로 그 곳을 배회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글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들곤 했다. 다만 이 플랫폼이 모든 접속자에게 작성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작가 신청을 미루고, 또 미뤘다.
왜 그랬을까?
사실, 그들(브런치, 카카오)이 글을 쓰고픈 사람에게 요구했던 건 그리 까다로운 게 아닌데.
"작가 신청을 하셨군요. 좋습니다, 뭘 갖고 계세요? 많은 사람들이 꽤 긴 시간 브런치에서 보내는데, 혹시 보여주실 뭔가가 있어요? 여기, 본보기가 될 만한 작가분들 프로필이에요. 각자만의 *Forte를 갖고 있는데, 당신은 뭘 갖고 있나요?"
나는 답했다.
"소설 한 권을 완성한 이력이 있는데, 창작자로서 이에 관련한 얘깃거리를 공유할 수 있을까요? 소설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제가 오래전부터 이어온 유용한 습관 하나가 있습니다."
" ... "
"그, 메모... 메모하는 습관인데... 제가 소설을 만들면서 꽤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 ? "
"직접적으로 소설에 쓰인 것도 있고, 메모 습관 자체가 몸에 배어있어서 제가 경험할 수 있었던 이로운 점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힘겹게 '신청하기'를 누르고,
바로 다음 날부터 나는 연재할 브런치북의 이름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이제껏 써온 글은 그 종류와 성질이 명확했다.
문장의 논리/ 맞춤법/ 질서를 올바르게 할 여력이 없는 탓에, 그저 펼쳐진 종이에 의식의 흐름에 따라 펜을 굴리면, Journal
실수든, 우연이든 뭔가가 머리를 스치는 순간에 펼치는 수첩은 Memo(비망록)
원고가 소설에 최종 삽입되기 전, 문단/ 대사/ 등장할 인물들이 뻗어갈 수 있는 최대한의 가능성들을 (마치 돌다리 두드리듯)더듬어보는 과정의 Vanguarding 노트 (전쟁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을 짊어진채 적진을 향해 제일 선두로 나서는 전초부대)
등등.
다만, 내가 끊임 없이 숨쉬듯 뭔가를 끄적이고, 페이지 수를 늘려가는 와중에 결코 적극적으로 뛰어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건 SNS였다. 인스타로 제 3자와 팔로우를 하고, 댓글 다는 걸 페이스북에 인수되기 전에나 해 봤던 사람으로서(쓰고 보니 이상하네, 그래도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 해가 갈 수록 그것에 점점 밀려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세상이 커진 것 같은데, 사실 알고 보면 그 안에 내용물이 부풀어 올라서가 아닐까?
별의 별 개인적인 이유들은 고사하고, 나는 일찍이 친구들 사이에서 '오프라인 친구'로 자리잡았다. 참으로 트렌드와 어울리기 까다로운 성질을 가진 건 확실했다.
다행스럽게, 모든 것엔 장단점이 있었다.
1. 나는 SNS에 소비할(다른 평행 우주의 또다른 내가 쏟았을 법한) 시간들을 내 Forte를 갈고 닦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2. 한국 사회의 '비교'라는 요소를 해부대의 할복당한 개구리처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3.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간단하고 쉽게 서로를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왜 자꾸 개구리가 떠오르는 걸까) 여기고 싶어 하는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등등.
하지만 뭔가에 대해 논하려 할때 좋은 점, 긍정적인 것, 밝은 면에 대해 때로 간과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 서두르진 않을 심산이다.
춤추는 글. 즐기는 글?
필자가 해당 글의 제목을 이런 식으로 정한 이유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은 상태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직 첫 번째 글이기도 하고.
그래도, (내가 한때 그러곤 했던 것처럼 별 특별한 이유 없이 브런치 사이트의 이것 저것을 클릭하다)해당 페이지를 훑게 된 방문자 분들이 이 브런치북의 제목, 목적, 필자의 이름 같은 생소한 정보들을 접했을 경우를 생각해야겠다.
SNS, 브런치.
당연히 둘은 너무도 다르다.
소설과 별개로, 내가 이제껏 펜으로 종이에 슥슥 적어내려가던 것들은 전부 '공개되지 않을, 개인적인, 남들과 주고받기에 무의미한' 내용물이었다. 나는 펜을 종이 위에서 굴리는 것 자체가 취미였으니, 누굴 납득시켜야 할 의무도 없었고, 말의 앞뒤가 어긋나진 않는지, 꺼내기에 누군가를 자극시킬만한 소재가 아닌지, 부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지는 않은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 말인 즉슨, 내가 더는 평소처럼 글쓰길 즐기지 못하게 되는 걸까? 대상을 의식하고, 하지 않고의 차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데? (예비)독자분들은 내가 본인들을 위해 이 곳에 글을 올리는 중이란 걸 인지하고 있을텐데?
'남눈치 50% + 염려 12% + 좋은 첫인상 드리고픈 의욕 38%'의 배경으로,
나는 오래 전 메모했던 이름 아이디어 하나를 채택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뜻하는 접두사 Pan,
그리고 모든 종류의 글에 사용하는 Pen
일어난 적 없는 가상의 이야기와 달리,
추후에 내가 논픽션의 영역에 발을 디딜때 사용하려 했던 이름이었다.
말 그대로, 펜으로 내가 쓰려 했던 모든 걸 다루는 글.
'모든 게 될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옵션을 움켜쥘 수 있게끔'
움켜쥔다는 말의 어감이 다소 탐욕스럽지만, 열린 가능성만큼 앞으로의 달달한 기대를 맛보게 해주는 것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그만큼 이것 저것 모든 걸 쓰겠다는 야욕이 풍기는 제목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로 가자면, 피터 팬이 나이를 먹길 거부하고, 영원한 아이로 남았다는 걸 지금에 와서 보니, 다른 게 보이기도 하고, 몇몇 비유도 떠오른다.
나는 어른이 된 다는 게 손에 쥔 주사위를 보드 위에 던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피터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무엇으로 정의할지 몰라도, 분명 주사위를 단단히 손에 쥔 채 하늘을 날며 백만 가지의 꿈을 그렸을 것이다.
뭐든 될 수 있는 그 즐거움 하나 만큼은 '초콜릿 상자'에 손을 넣기 전의 마음과 비슷할텐데.
상자에 손을 넣고,
주사위를 던지고,
나는 왠지 펜을 놓기가 싫다.
우리 어른들이 때로는 피터를 부러워해도 될까?
그림 제목:
Unidi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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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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