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존엄 족쇄

by 레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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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자.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가 있다. 첫 울음소리와 함께, 그 아기에게는 이미 하나의 정체성이 부여된다. '죄인'.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의식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 원죄(原罪) 교리가 모든 인간에게 제시하는 출발점이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믿음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인간의 본질과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 관점의 문제이며,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자아 인식과 세계관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사상 체계다. 그리고 이 체계가 과연 인간의 존엄성과 건전한 정신 발달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오히려 해를 끼치는지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전통 기독교 신학은 원죄를 '죄책(guilt)'과 '죄성(corruption)'으로 구분한다. 죄책은 아담의 죄에 대한 법적 책임이고, 죄성은 인간 본성의 타락 상태를 의미한다. 일부 신학자들은 죄책 전가를 부정하고 죄성만을 인정하려 하지만, 이러한 구분도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죄성 개념 역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태생적 조건을 부정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법학과 윤리학의 기본 원칙이다. 부모의 죄가 자녀에게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구약성경 에스겔 18장에서도 명시된 원칙이다. 원죄 교리는 죄책이든 죄성이든, 이러한 개인 책임 원칙과 긴장 관계에 있다.


원죄 교리는 인간을 본질적으로 '부패한 존재', '죄악된 존재'로 규정한다. 이러한 인간관은 개인의 자존감 형성과 건전한 자아 정체성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심리학 연구들은 건전한 자아상이 개인의 정신건강과 사회적 기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자신을 근본적으로 '잘못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은 우울, 불안, 과도한 죄책감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원죄 교리는 필연적으로 구원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모든 인간이 태생적 죄인이라면, 스스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반드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이는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종교적 권위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건전한 종교적 관계는 강요된 의존이 아닌 자발적 신뢰에 기초해야 한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부터 특정한 세계관에 노출된 상태에서 형성된 신념이 과연 완전히 자유로운 선택의 결과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사회심리학의 연구들은 어린 시절의 각인이 성인기의 사고와 행동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진정한 자유의지는 다양한 관점에 노출되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행사될 수 있다.

"겸손을 가르치는 것이다"

겸손과 자기 부정은 구별되어야 한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기본적 가치와 존엄성은 확신하는 것이다.

건전한 겸손은 "나도 실수할 수 있고 배울 것이 많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반면 원죄 교리가 제시하는 것은 "나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존재다"라는 인식으로, 이는 겸손보다는 심리적 자기 부정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의 개념과 원죄 교리 사이에는 논리적 긴장이 존재한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한다면서 동시에 그 존재를 본질적으로 부패했다고 규정하는 것은 내재적 모순을 보여준다. 이는 마치 자녀에게 "너를 사랑하지만 너는 근본적으로 문제 있는 존재야"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한 혼란된 메시지를 전달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종교 전통들의 인간관은 이렇다.

불교: 인간은 본래 청정한 불성을 지닌 존재로, 깨달음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유교: 인간은 선한 본성(性善)을 타고났으며, 교육과 수양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

이슬람: 인간은 알라의 칼리파(대리자)로서 존귀하며, 피트라(순수한 본성)를 지니고 있다

이들과 비교할 때, 원죄 교리의 인간관은 상당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특징을 보인다.


현대 심리학은 인간을 기본적으로 성장과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본다.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론, 로저스의 인간중심 상담 이론 등은 모두 인간의 내재적 성장 동력을 인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을 태생적으로 부패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개인의 잠재력과 성장 가능성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원죄 교리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적 연구들은 우려할 만한 결과들을 보여준다. 종교심리학자 케네스 파가멘트(Kenneth Pargament)의 연구에 따르면, 하나님을 징벌적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우울증과 불안장애 발생률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특히 원죄 교리와 관련해서는 종교심리학자 줄리 엑슬라인(Julie Exline)의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 그의 연구팀은 '신에 대한 분노' 척도를 개발해 분석한 결과, 자신을 본질적으로 죄인으로 인식하는 신앙인들이 높은 수준의 자기 비난과 종교적 스트레스를 보인다고 보고했다. 이는 원죄 개념이 건전한 자아상 형성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시사한다.


원죄 교리의 영향은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한국 기독교 문화에서는 이 교리가 독특한 형태로 발현된다.

한국 교회의 '회개 중심 설교'는 원죄 의식을 강화하는 대표적 사례다. 신도들은 정기적으로 자신의 '죄성'을 고백하고 회개하도록 요구받는다. 이는 개인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반성을 넘어서, 존재 자체에 대한 지속적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새벽기도'나 '금식기도' 같은 신앙 훈련 방식에서도 자기 부정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죄인 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와 같은 표현이 일상화되면서, 신도들은 자신을 지속적으로 '부족하고 잘못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은 원죄 교리의 부정적 영향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원죄 교리를 거부한다고 해서 인간의 불완전성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균형 잡힌 인간관이 필요하다.

균형적 인간관: 인간은 완전하지도 완전히 부패하지도 않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존재다. 실수와 잘못은 학습의 기회이지, 존재 자체의 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본질적 가치 인정: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고유한 가치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 소중함은 그 사람의 행위나 성취와 무관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자율적 책임: 개인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진다. 하지만 이 책임은 다른 사람의 행위나 태생적 조건까지 포함하지 않는다.


원죄 교리는 2천 년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의 핵심 교리다. 하지만 전통이 오래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자동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많은 오래된 관습들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재검토되고 개선되어왔다.

중요한 것은 어떤 교리나 관습이 실제로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건전한 발달을 방해한다면, 그 역사와 전통성에도 불구하고 재고되어야 한다.

인간은 태생적 죄인이 아니다. 인간은 실수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부패한 것도 아니다. 인간은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이며, 이러한 기본적 가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원죄 교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종교를 버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더 건전하고 성숙한 영성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진정한 종교적 삶은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지, 정신적으로 억압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 개개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각자의 성장 가능성을 신뢰하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인간관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길이며, 건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기초가 될 것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hisark.com/?p=6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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