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신비한 일'이라고 정의된다. 하지만 이 정의 안에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모순이 숨어있다. 우리는 기적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기적을 믿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기적에 대한 인간의 열망은 결국 유한성에 대한 거부다. 시간의 제약, 능력의 한계, 죽음의 필연성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우리는 초월적 개입을 꿈꾼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제1원동자'처럼,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해줄 절대적 힘을 간절히 원한다.
이러한 열망 자체는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열망이 현실 도피의 수단이 될 때 발생한다. 유한성을 거부하려는 욕구가 현재의 가능성마저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는 것이 있다. 기적을 기다리는 행위 자체가 이미 우리의 주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사르트르가 강조했듯이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은' 존재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자유가 있고, 동시에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 기적을 기다리는 것은 이 실존적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다.
우리는 종종 막다른 길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기적이다.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해결되고, 노력 없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기적에 의존하는 삶은 결국 우리를 더 깊은 절망으로 이끈다.
기적을 기다리는 것은 편안하다. 현실의 어려움을 직시하지 않아도 되고, 힘든 선택을 미룰 수 있으며,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 "운이 따라주겠지", "누군가 나를 구해줄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은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하이데거가 경고한 '일상성의 함정'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진정한 실존적 결단을 피하고, '다스 만(das Man)'이라는 익명의 존재 양식 속에 안주한다. 기적에 대한 기대는 결국 타자에게 의존하려는 욕망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기적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은 흐르고,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빚은 이자와 함께 불어나고, 건강은 더욱 악화되며, 관계는 소원해진다. 기적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이 멈춰 기다려주지는 않는다.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durée)'은 멈춰 서지 않고, 우리의 삶은 매 순간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기적은 기적을 포기할 때 일어난다. 매일 조금씩 노력하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가며,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기적이다.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의 사상을 떠올려보자. 만약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반복해야 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기적을 기다리며 수동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영원히 반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능동적으로 삶을 창조해나가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는 것, 매일 30분씩 운동하는 것, 조금씩 돈을 모으는 것, 어려운 대화를 피하지 않는 것. 이런 평범해 보이는 행동들이 쌓여서 인생을 바꾼다. 1년 후, 5년 후 돌아보면 그 변화는 기적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지의 산물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Wille)'의 표현이며, 동시에 들뢰즈가 강조한 '생성(devenir)'—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워지는 삶의 역동적 과정—의 구현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경제 상황, 타인의 마음, 자연재해, 유전적 요인들. 이런 것들에 매달려 기적을 바라는 것은 에너지의 낭비다.
에픽테토스는 이미 2천 년 전에 이를 명확히 구분했다.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고, 어떤 것은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다."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은 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오직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노력, 태도, 선택, 습관. 이것들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삶은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기적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에서 기적을 만드는 능동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것이다. 이는 곧 스피노자가 말한 '능동적 감정'—외부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내적 힘으로 행동하는 상태—으로의 전환이며, 자신의 본질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기적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계획한 일을 끝까지 해내는 것, 미루던 전화를 거는 것, 한 시간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 이런 작은 승리들이 모여서 자신감을 만들고, 자신감은 더 큰 도전을 가능하게 한다.
작은 승리는 우리에게 통제감을 준다. "내가 원하면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면, 더 이상 외부의 기적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 자신이 바로 기적의 원천임을 깨닫게 된다.
기적에 의존하지 말라는 것은 꿈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안에서 가능한 최선의 방법을 찾으라는 의미다.
병에 걸렸다면 기적적인 치유보다는 적절한 치료와 생활 습관 개선에 집중하라. 사업이 어렵다면 대박을 꿈꾸 기보다는 한 걸음씩 개선해 나가라. 관계가 어긋났다면 상대방의 변화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달라져보라.
기적은 어디선가 날아오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우리 안에 있고, 우리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현실화된다. 매일 조금씩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한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사람. 바로 당신 자신이 기적이다.
카뮈가 시시포스의 신화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우리의 삶은 끝없는 반복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에서 의미를 창조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위대함이다. "시시포스는 행복해야 한다"고 카뮈가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이상 기적을 기다리지 마라. 기적을 만들어라. 당신의 인생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적 진리다. 우리는 던져진 존재이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매 순간의 선택이 우리를 규정하고, 그 축적된 선택들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기적인 것이다.
진정한 기적은 초월적 개입이 아니라, 내재적 변화다. 자신을 믿고, 현실에 발을 딛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운명의 수동적 희생자가 아닌, 삶의 능동적 창조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