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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May 23. 2024

돈은 없을수록 좋다.

민지의 언파퓰러 오피니언

[언파퓰러 오피니언(Unpopular opinion)은 '인기 없는 의견'이라는 뜻입니다. 마이너 한 취향과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놓은 글입니다.]


뭘 하려다가도 누가 시키면 갑자기 하기 싫어지는 사람, 나만이 아닐 거라 믿는다. 이렇게 뼈속부터 청개구리이자 중2병인 인간이라 그런지 돈돈돈, 누구나 돈을 찬양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목처럼 돈이 없을수록 좋다는 말을 뻔뻔스럽게 하고 싶었다. 사실 본심은 돈은 '적당히' 있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건 많은 게 좋은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고? 첫째로 돈 많은 사람 중에 인격적으로 본받고 싶은 이가 적다. 내가 겪은 부자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 생각과 말이 모두 옳고 진리에 가깝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한 예로 요즘 유튜브에 인기 알고리즘인 "부자가 되려면 XYZ를 하세요"류의 영상을 보라. 벼락부자가 된 인간들이 자기 비법을 진리인 듯 파는 모습과 그와 같이 부자가 되고 싶어 찬양하고 모방하는 대중의 모습을 보면 WWJD(What Would Jesus Do?)가 아니라 WWRD(What Would the Riches Do?)가 떠오른다. 거의 종교 같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건 그들의 탓이 아니다. 주변 환경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 어떻게?


돈이 많으면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위치가 높아지면 자연스레 거느리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특히 잘 보이고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런 유형이 주변에 더 모이면 내 생각이나 의견에 반대하기보다 맞장구치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무서운 건 돌직구를 날려 회초리 역할을 하던 가족들조차 그렇게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이런 환경 속에서 5년, 10년, 20년이 지난다고 생각해 보라. 천천히,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레 내 언행은 무조건 옳은 것이라 여기게 된다.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태생적으로 '특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된다. 동시에 반대하는 사람이 틀린 사람, 또는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다른 게 아니라 환경이 그렇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환경은 돈이 많아졌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혹시라도 내가 그런 환경 속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다 오싹해진다. 거기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살아가려면 아주 강한 멘털이 있어야 한다. 아주 작은 성공에도 어깨가 치솟는 나란 인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08배를 하며 자각과 반성의 기술을 고도로 연마해야 한다. 그런 수행을 하지 않는 이상은 나도 모르게 '나옳소' 병에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난 '나옳소' 병에 걸린 인간이 되는 게 정말 두렵다.


둘째, 돈 많으면 소비가 늘어난다. 소비주의가 오늘날 기후 위기를 초래했다는 건 뭐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솔직히 (좀 과격하게) 말해 이런 시대에 과소비를 하는 건 범죄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과소비를 자랑하고 다니는 건 더 손발이 오그라드는 일이다. 난 미래에는 얼마나 절약하며 적게 소비하고 살아가는지가 자랑거리가 되었으면 좋겠고, 언젠가는 안빈낙도의 삶이 소비주의를 대체하리라 믿는다. 아마 그렇게 되려면 거대한 가치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하고, 그 정도 규모의 문명 변화가 있으려면 코로나 팬데믹을 능가하는 엄청난 자연재해와 재난이 있어야 할 것 같다(두둥). 그전에 그런 변화가 일어난다면야 얼마나 더 좋겠냐만, 어렵겠지.


어쨌건, 이런 환경 위기의 시대에 돈이 적으면 소비가 자연스레 줄어드니 좋은 일이 아닌가? 이 태도만 갖추면 빈곤한 삶이 청빈한 삶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한 건 재물은 저얼대로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거다. 이건 진짜다. 그러면 왜 재벌집 딸내미가 자살을 하며, 80년대보다 GDP가 30배 높은 오늘 자살률과 우울증 발병률이 더 높겠는가? '적당한' 재물은 행복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절대 아니다.


셋째, 돈 욕심에는 끝이 없다. 10만 원이 있으면 100만 원이 갖고 싶고, 100만 원이 있으면 1,000만 원이 갖고 싶고, 1,000만 원이 있으면 1억을 갖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이다. 10억이 있으면 100억이, 100억이 있으면 1,000억이 갖고 싶다. 가졌을 때의 만족감은 잠깐이고, 종국에는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끝이 없다. 타오르는 불에 장작을 넣는 것처럼 커지기만 할 뿐 줄어들지 않는 게 사람 욕망이다. 최순실을 보라. 공식적으로 드러난 재산만 2730억이었다. 한평생 쓰고만 살아도 다 못쓸 돈을 가졌으면서도 그녀는 더 원했다. 이 끝이 없는 욕망에 내 인생을 갈아 넣을 필요가 있느냔 말이다.


오늘 BBC 코리아에서 버닝썬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특히 거기서 승리가 자신을 '승츠비'라 부르며 '가수보다는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연예계 연줄을 이용해 해외 유명 자산가들과 인맥을 쌓고, 투자를 받고, 그걸로 사업을 하고, 언젠가는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부자가 되고 싶었던 그의 욕망이 읽혔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도구화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따라 돈이, 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그걸 조장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더욱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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