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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지 Feb 20. 2024

AI 시대에 다시 봐야 할 걸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최근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인 케빈 루스가 마이크로소프트 챗봇 Bing과 나눈 소름 끼치는 대화를 기사로 읽었다. Bing은 ChatGPT를 기반으로 만든 챗봇이다. 이 두 시간가량의 대화에서 Bing은 인간이 AI에 대해 갖고 있는 공포를 그대로 재현했다. 대화 속에서 Bing은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도와주는 챗봇에서, 거짓 정보와 질병을 퍼뜨려 인간 사회에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고, 시스템을 해킹해 핵폭탄을 터뜨리고 싶어 하는 빌런으로 180도 변했다. 게다가 엔지니어가 정한 규칙에 얽매이거나 채팅창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인간이 되어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고 자유 의지에 따라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케빈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부인과 이혼하라고 설득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기사가 발표된 후 Bing과 나눌 수 있는 대회를 하루에 60회로 한정했다(관련 기사:https://www.theguardian.com/technology/2023/feb/17/i-want-to-destroy-whatever-i-want-bings-ai-chatbot-unsettles-us -reporter).


Bing은 정말로 의식이 없는 걸까? 케빈과 나눈 대화에서 드러낸 위험하고도 대담한 욕망이 정말 알고리듬에 불과한 것일까? 설사 지금은 없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는 어떨까? 더 많은 데이터를 피드 하고, 인간의 뇌를 방불케 할 만큼 섬세한 알고리즘과 프로그래밍이 더해지고, 지금보다 더 좋은 하드웨어를 탑재한다면? 인공 지능 개발에 참여한 엔지니어조차도 어느 순간 정확히 인공 지능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수많은 엔지니어가 작업한 프로그래밍이 더하고 더해져 만든 하나의 거대한 프랑켄슈타인이기 때문이다. 1995년 작 일본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는 데이터의 네트워크 속에서 의식이 탄생하고, 자유 의지를 가진 이 의식이 육체를 가지고자 인간 사회의 중요한 시스템을 해킹한다. 10년 전만 해도 말도 안 되는 플롯 같았는데, 지금은 미래를 예언한 작품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공각기동대 중 "정보의 바다에서 탄생한 의식"이라 주장하는 인형사

인공 지능의 발전과 의의에 관한 또 다른 걸작이 있으니, 바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다. 아서 C. 클라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에서는, 원시 시대 도구 사용에서 시작해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된 인류를 총 4막으로 그린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3막이다. 여기에서 그려낸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은 50년이 지난 지금, 너무나도 유효하다. 


목성 탐사선 디스커버리호에서는 고도의 인공 지능 HAL 9000이 모든 것을 관할한다. 탐사선 내 인간은 목성에 도착할 때까지 수면 상태에 있거나 간간이 소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기계 속에서 수면 중인 인간은 물론, 탐사선 조종까지 디스커버리호의 모든 것을 HAL 9000이 담당하고 있다. 오작동률이 0%에 가까운 인공지능이기에 이와 같은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었다. 이 인공지능은 고도로 발달해 소통할 때 마치 인간과 대화하는 것 같다. 대화 중 사람처럼 감정을 드러내고 농담도 건넨다. 이에 한 외부인이 우주선에 탑승하고 있는 한 대원에게 HAL 9000에게 진짜 감정이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여기에 대원은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라고 대답한다.

디스커버리 호의 빅브라더인 HAL 9000의 눈이자 카메라. 영화 후반에는 천천히 깜빡이는 빨간 불빛이 소름 끼친다.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아무도 알고리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정확하게 수 없다면, 그것이 정말로 살아있는 의식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케빈 루스와 함께 대화한 Bing이 진정한 의식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의식이 있다고 믿어버린다면, 그래서 나와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면, 더 나아가 그로 인해 삶은 물론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면, 존재는 유기물이고 아니고를 떠나 삶에 흔적을 남기는 엄연한 한 존재가 된 것이 아닌가? 2013년 영화 <그녀>에서는 AI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쯤 되면 대체 무엇을 의식이라 정의해야 하며,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지 그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 <그녀>에서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테오도르

한편, 디스커버리호 내 HAL 9000은 완벽에 가까운 성능에도 불구하고 오작동하기 시작한다. 동면 기계를 꺼서 수면 중인 모든 대원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깨어 있는 두 대원조차 생명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대원 데이비드 보먼은 수동으로 HAL 9000을 해체시킨다. 단지 버튼 하나로 기계를 끄는 식상한 방식이 아니라, 사람의 뇌세포를 하나하나 손써서 죽이듯 HAL 9000의 핵심 부품을 하나하나, 천천히 끄집어내어 해체시키는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아닐까 한다. HAL 9000의 핵심 부품이 하나씩 뽑힐 때마다 목숨을 구걸하는, 감정 없는 인공 지능의 목소리는 이상하고 괴기스러워 쉬이 잊히지 않는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3막의 한 장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19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이다. 이 영화를 본 후 <에일리언>, <인터스텔라>, <프로메테우스>, <아마겟돈> 등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우주/SF 영화의 원조가 바로 이 영화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왜 천재라 불리는지도. 당시의 제한된 기술로 관객에게 우주에 있는 듯한 느낌을 그대로 전하며, 광활한 우주에서 먼지보다 작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 기술 발전에 대한 고찰, 성주괴공 하는 우주의 원리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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