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투자 은행에서 생존만 합니다 - ep1

토종 한국인으로 살다가 미국에서 일하며 겪는 수난기

by Non Resident Alien

한국식 교육을 받고 한국에서 자란 성인이 미국 직장, 특히 금융업계에 적응하는 일은 단순한 ‘문화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 권력, 그리고 침묵을 강요하는 시스템 속에서 외국인이 어떻게 소모되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나 역시 그 안에서 무력해지는 과정을 온몸으로 겪었다.


입사 초기, 내가 만든 프레젠테이션에 오류가 발견됐다. 나와 부하직원은 함께 상사에게 불려 가 질책을 받았다. 나는 팀워크를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내 책임이 아니었던 오류까지 떠안으며 “내가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한국 조직에서라면 미덕으로 여겨질 행동이었다. 그러나 미국 직장은 달랐다. 이후 내가 감싸주었던 미국인 팀원에게 조심스럽게, 프레젠테이션의 핵심 오류는 숫자가 틀린 것이니 다음부터 주의해 달라고 하자 그는 즉각 반발했다. 어떤 부분이 자신의 실수냐고 따져 물었다. 나는 결국 그의 눈앞에서 파워포인트 파일을 열어 그가 보낸 자료의 3, 5, 10페이지를 하나하나 짚어 보여줘야 했다. 그제야 그는 입을 닫았다. 이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상사가 부하를 보호할 의무도, 희생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상황은 점점 악화됐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는 석사 시절부터 번역기와 문법 교정 도구의 도움을 받아 문서를 작성해 왔다. 그러나 회사는 보안을 이유로 Google Translator, Grammarly를 포함한 모든 외부 소프트웨어와 웹사이트 사용을 금지했다. 외국인 직원에게 최소한의 언어적 안전장치조차 허용되지 않는 환경에서, 복잡한 M&A, 리파이낸싱, 구조조정 관련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고 이를 클라이언트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라는 요구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패는 예정되어 있었고, 책임은 개인에게 돌아갔다.


금융업계는 Apprenticeship, 즉 도제식 구조로 움직인다. 상사와의 관계가 곧 생존을 의미한다. 인턴십 당시에는 친절하고 합리적으로 보였던 상사는, 내가 정규직으로 입사하자마자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아무런 설명도, 교육도 없이 다짜고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오라고 지시했고, 처음 해보는 업무에 시간이 걸리자 나를 “식물인간 수준”이라며 공개적으로 모욕했다. 새벽, 아침, 저녁 가릴 것 없이 메일을 보내며 10분 안에 답장이 없으면 프로젝트에서 퇴출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이건 관리가 아니라 학대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조직 내에서 ‘문제 인물’이 아니라, 묵인되는 권력이었다.


그 상사가 남미에서 직접 초청한 직원은 콜럼비아 금융업계에서 5년 이상 일한 베테랑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폭언과 비상식적인 업무 강도를 견디다 못해 HR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새벽에 임의로 데드라인을 설정하고, 24시간 언제든 연락이 닿지 않으면 폭언을 퍼붓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는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상습적 행태였다. HR은 이 사실을 Managing Director(MD)에게 보고했고, 조직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그 상사를 스스로 나가게 만드는 방식을 택했다. 공개적인 모욕, 의미 없는 업무 배정, 그리고 고립. 몇 달 뒤 그는 경쟁사로 이직했다. 내가 이 모든 과정을 생생히 아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내가 입사 후 처음 3개월간 함께 일했던 직속 사수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 3개월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이후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될 때마다 가장 기본적인 업무만 맡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었다. 내가 속한 팀은 Product Team이 아닌 Coverage Team, 즉 고객 대응과 세일즈를 담당하는 조직이었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에게, 세일즈는 구조적으로 불리한 자리였다. 실패는 개인의 역량 부족으로 기록되었고, 구조적 문제는 끝내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다 석사 선배이자 매니저와의 대화를 통해, 차량 부품을 제조하는 회사의 셀사이드 M&A 프로젝트에 투입되게 되었다. 흔히 SNS에서 소비되는 성공담이라면, 이 지점에서 좋은 상사를 만나 반등하는 서사가 이어졌을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나를 데려간 CRO 선배는 원래 광물·자원 산업 담당이었고,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이해는 거의 없었다. 나 역시 처음 맡는 M&A 프로젝트였기에 전체 구조도, 팀원들의 역할도 모른 채 그저 지시를 처리하는 데 급급했다.


팀은 Analyst 2명, Associate 1명(나), VP 1명, Director 1명, MD 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실무는 주니어가, 방향성과 책임은 시니어가 지는 구조였다. 그러나 산업 이해가 부족한 VP 아래에서 내려오는 지시는 오락가락했고, 혼란의 책임은 다시 주니어에게 전가됐다.


결정적인 사건은 MD의 발언에서 터졌다. 화상 회의 중 그는 ‘Anal Penetration’ (항문 삽입)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회의실은 얼어붙었다. MD는 당황한 듯 급히 미팅을 종료했고, 팀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Analyst 한 명이 이 사건을 다른 Analyst 그룹에 공유했다. 그 대가는 명확했다. 프로젝트 미팅 배제, 승진 누락, 그리고 사실상의 좌천.


이 업계에서 승진과 평가는 실력이 아니라 ‘누가 누구의 사람인가’로 결정된다. MD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절대 권력자다. 중간 매니저의 평가는 의미가 없고, MD의 한마디가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든다. 좌천을 직감한 그 Analyst는 분노했고, 어느 날 퇴근한 뒤 다시는 출근하지 않았다.


해고는 드물다. 대신 승진을 누락시키고, 비자를 무기로 삼아 스스로 떠나게 만든다. 외국인은 이 구조에서 가장 취약하다. 실제로 중동 출신 Associate 한 명은 일을 못한다는 평가를 받자 비자 연장을 거절당했고, 영국 지사로 사실상 유배되었다. 영국 금융권 주니어들의 짧은 평균 근속 기간은, 이 산업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준다.


첫 대형 프로젝트의 실패 이후, 나는 이 조직에서 더 이상 버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직을 준비하며 인터뷰를 봤지만, 대부분의 포지션은 깊이 있는 M&A 경험을 요구했다. 단 한 번도 전체 모델을 끝까지 만들어볼 기회를 얻지 못한 나는, 질문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 평가는 예상대로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회사는 나를 바로 내보내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비자 정책은 점점 외국인에게 불리해지고 있었고, Associate 직급의 절반은 외국인이었다. 높은 연봉에도 불구하고, 주 6일 근무, 최대 주 95시간의 노동, 폭언과 정치가 난무하는 환경을 미국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산업은 외국인을 더 쉽게 쓰고, 더 쉽게 소모한다.


이것은 개인의 적응 실패기가 아니다. 외국인에게 불리하게 설계된 시스템, 그리고 그 안에서 침묵을 강요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중간 평가 이후 연말 고과까지의 이야기는, 다음 편(ep.2)에서 이어서 적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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