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내게 말을 걸 때

가슴속 사소한 철학 - 시작

by 글 써 보는 의사


내 가슴속의 사소한 철학을 써보고자 한다. 현실에서의 실전적인 측면과 그 과정도 함께 쓰고자 한다.

아마도 누군가의 말과 닮은 부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글은 내 경험과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나는 겪지 못한 걸 쓸 수 없다.

감각 감정 신체 정신 마음 현실 초월 여러 주제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힘든 일을 많이 겪었고 우울과 좌절도 겪었다.

그 가운데 만들어진 것들이다.


나는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며,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그러던 내가 지난 일 년 사이, 특히 최근 한 달 사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 일 년 사이의 경험과 생각이 체계가 갖춰지기 시작한 시점은

내가 무시했던 혹은 보지 않았거나 거부하거나 회피했던 부분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것들은 대개 감정이라는 표정을 입고 나타났다.

그리고 어떤 감정이든 그 감정 깊은 곳에는 근본적으로 공통된 짐승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두려움이었다. 그 두려움의 가슴은 비어 있었다. 두려움은 결핍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이 결핍은 나 스스로 초래한 것이었다. 우리는 애초에 결핍되지 않았었고, 그 결핍은 스스로 만들어냈음을 이제야 알아가고 있다. 나는 이 결핍을 메우기 위해, 태어나면서부터 아주 긴 시간 동안 장벽을 쌓았다. 그리고 장벽 너머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장벽 너머의 무엇인가가 넘어 들어올 때면 온갖 감정이 생겨났다.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경험 혹은 체험들이 그동안 있었다. 나는 그것을 신비적으로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게는 현실적이지 않은 현실을 벗어난 듯한 경험들이었다.

이 경험이 어떻게 오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이 경험이 내게 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음 글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될 것이다. 경험을 얻게 된 구체적인 방법론은 글을 연재해 나가며 하나둘씩 나오게 될 것이다. 육체적인 방법이 있고, 정신적인 영역이 있다. 어떤 오래된 권위에 의존한 방법들도 있지만, 대개는 기초적 지식을 토대로 내 나름으로 자연스럽게 변형되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말의 의미는 이 모든 일들이 주어진 것처럼 느껴진다는 뜻이고, 또 일종의 기적처럼, 경이로움을 동반한다는 의미이다. 중요하고 어렵지만 너무 쉽게 사용되는 단어(예를 들어, 존재, 진리 따위)가 있고, 평범한 일상어이지만 어려운 관념어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단어들이 있다. 나의 여정은 어려운 개념어를 이해한다기보다는 평범한 일상어를 포착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과거형으로 쓰니 꼭 여정이 끝난 느낌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동안 나는 삶을 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평범한 일상어를 포착하기 시작하자, 어려운 개념어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려운 개념어들은 사실, 내 생각에는, 너무도 평범해서 사람들이 그 깊이를 잃어버린 단어들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로써 만들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개념어들도 처음에는 신선했을지 모르겠으나 사용이 잦아지면서 오히려 그 깊은 의미는 사라지고 얄팍해져, 현실적이지도 않고 살아있지도 않은 죽어버린 말들이 되고 말았다.


지난 일 년간-특히 최근 한 달간, 수많은 생각과 감정, 아이디어들이 솟아오르며 여기저기 많은 단상들을 메모했다.

얼마 전에는 그 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일종의 나만의 철학 체계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잠시 났었다. 그러나 만약 그 글들이 이론적으로 체계화될 경우, 그 글에서는 생명이 빠져나가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일종의 기록물처럼 남기기로 했다. 내 경험과 느낌이 가급적 살아있도록 하고 싶었다. 동시에 너무 감정덩어리가 되지 않도록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글들은 체계적이지 않을 것이며, 파편화된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시간 순도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raw data와 비슷하다.


나를 앞질러 나가는 글들이 있고, 내가 겨우겨우 억지스럽게 끌고 가는 글들이 있다. 아마 앞으로 쓰게 글들은 그 사이쯤에 있게 될 것이다.

감정과 생각,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초월, 개념과 경험, 그 사이에서 외줄 타기 하는 기분 비슷하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이 항상 외줄 타기였다. 나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외줄 타기는 내게 세상을 살게 되는 방법이다.

감정과 경험, 현실에만 빠진다면, 바닥만 보고 줄타기 하는 것이다. 그 줄타기는 줄의 흔들림과 저 아래 아득한 낭떠러지에만 시선이 집중돼, 줄이 흔들릴 때마다 그것만 바라보고 사소한 줄의 흔들림에도 휘청인다. 줄의 흔들림에만 균형을 맞추려고 과도하게 용을 쓰다가 결국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

반대로 관념놀이에 빠지거나, 초월적이거나 신비한 경험에만 빠지면, 하늘을 보고 외줄을 타는 것이다. 그런 경우 줄에 닿는 발의 감각이 사라져 어느새 발을 헛디뎌 또 떨어진다. 혹은 그냥 붕 떠서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그렇게 계속 올라갈 줄 알겠지만, 그렇게 올라가다 갑자기 어느 순간 어떤 상황을 만나면 순식간에 깨어나면서 추락해 버린다.


올바른 외줄 타기 방법은 땅도 하늘도 보지 않는 것이다. 그저 정면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다. 이따금 필요에 따라 하늘을 보기도 땅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곧 다시 정면을 본다. 때로는 앉아서 잠시 쉰다. 그렇게 계속 외줄을 탄다. 나는 이것이 인생 같다. 외줄 타기는 항상 두렵고 불안하다. 그러나 그 불안이 인생의 기본 성질이다. 그 불안이 사라지면 그 삶은 죽은 것이다.

이제 그 외줄 타기를 하며 겪은 일들을 하나둘씩 얘기해 보겠다.





2025.12.13 일, 꿈을 꾸고 난 후 그 메시지를 읽고, 큰 감동을 느끼며 그간의 여정을 간단히 정리해 보게 됐다. 일단 그 글을 먼저 올리겠다.


누군가에겐 뻔한 얘기로 들릴 수도,

누군가에겐 어려운 얘기로 들릴 수도,

또 누군가에겐 불편한 얘기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줄로 믿는다.


그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