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써보는 끝날 줄 알지만 끝나지 않을 귀신 이야기 - 시작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래도 생각해내야만 한다.
'끄륵끄륵... 끄륵끄륵...'
'아 또 이 소리, 대체 언제부터였더라.... 제발 좀...'
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언젠가부터 그곳에 있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 녀석의 존재를. 처음에는 그냥 어떤 뭔가가 마치 무겁고 축축하게 젖은 수건 하나가 목을 휘감은 기분이었다.
밤이면 더 심해졌다. 손끝이 저려왔고 숨이 턱턱 막혔으며, 온몸에 쥐가 도진 것처럼 근육이 뻣뻣해졌다. 특히 왼쪽으로 돌아누울 때면 더 심해졌다.
나는 다시 거울을 보며 그르렁거리듯 신음을 내뱉었다. 일주일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눈 밑이 시커맸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은 3 주 전이었다. 그러니까 친구들과 계곡을 놀러갔다 온 이후 언제쯤부터였을 것이다. 여기저기 잘 쏘다니는 친구 A 녀석이 용케도 인적이 드물고 꽤나 널찍한, 물 맑은 계곡 하나를 발견했다고 같이 가자고 꼬드겼다. 초보 마케터로 입사한 나는 지랄 맞은 팀장 때문에 기획안이 퇴짜 맞고 끊임없는 갈굼으로 스트레스받던 차에, 에라 모르겠다, 연차를 내버렸다. 이참에 맞지도 않는 일, 사직서를 내버릴까도 고민 중이던 차였다. 또 다른 친구 B까지 붙어, 셋이서 함께 떠났다.
A 가 말한 대로 어떻게 이런 곳을 아무도 모르는 건가 싶을 정도로 멋진 곳이었다. 천지연 폭포의 축소판이랄까? 2 m 남짓 높이에서부터 마음까지 씻어내는 듯한 맑은 물이 소리마저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항상 물소리를 좋아했다. 물멍이라고 하던가? 가끔 가다 일요일 아침 빗소리에 눈을 뜨면 그게 그렇게도 평화롭고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잠이 깼지만, 일부러 창문을 열고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고는 했다. 얼굴은 차가운 공기로 세수를 하고, 노곤한 몸뚱이를 따끈한 이불 속에서 비비적거리면서, 눈을 감고 가만히 빗소리를 즐겼다. 꼭 엄마 뱃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물소리를 좋아하는 내게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 순식간에 스트레스가 사라졌다. 나는 남자 아이돌을 눈앞에 둔 사춘기 소녀처럼 달떠서 어울리지도 않는 수다를 그렇게나 많이 떨었다.
남자들은 다 망나니들이다. 언제까지고 초딩들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갔다. A 가 먼저 시작했다. 지 궁둥이 만한 돌덩이를 다짜고짜 계곡 물에 집어던지더니 물을 등지고 텐트를 치던 내 옷을 다 적셔버렸다.
"이런 ㅆ박 쉐키가..."
나는 쌍소리를 내뱉으며 가슴팍 만한 돌덩이를 집어 들었다. 175cm 60kg 앙상한 내 두 다리가 순간 휘청했다. 그 뒤로 몇 차례 더 돌덩이를 던져 넣다가 허리가 나갈 것 같아서 관두고,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계곡 물로 뛰어들었다. 땀범벅이 된 낯짝을 물속에 담갔다 꺼냈더니 이미 다른 세계로 순간이동한 기분이었다.
허벅다리에 붙은 모기를 찰싹이며, 소맥을 퍼붓고 삼겹살을 뒤집을 즈음엔 이미 해가 진 뒤였다.
그렇게 꿈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는 돌아가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거의 도망치다시피 회사를 나왔다. 다행히 곧 취직했다. 아는 형이 전부터 불렀던 곳이었다. 그렇게 좋은 형은 아니었지만, 달리 대단한 선택지도 없었다.
사실 일단 옮기면 좀 나아지리란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놈이 그놈이었다. 상사란 놈은 다 똑같았다. 한없이 인자한 미소로 '나는 열려 있으니 뭐든 얘기해' 하더니, 막상 일을 시작하자 말 붙일 짬도 없었다. 어찌나 결기 서린 표정으로 일하는지 말 걸기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그러면서 지 일 떠넘길 땐 '자긴 젊어서 머리가 잘 돌아가서 그런지 나보다 일처리가 참 빨라' 맘에도 없는 칭찬을 내던지며, 씨익 웃고는 USB를 들이밀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나를 훌훌 털어먹었다. 똑같은 일의 반복, 지겨운 일상, 내 잘못도 아닌데 덤터기 쓰기, 그리고 끝나고 한잔 하는 혼맥. 펍에 앉아 사장님을 마주하고 얼마 올려주지도 않는 가게 매출 뽕 뽑기라도 하려는 듯 귀찮을 정도로 직장을 까대며 사장님을 괴롭혔다. 어쩌면 나는 진상 손님이었을지도.
아 또 그만둬야 하나... 변기통에 쭈그리고 앉아 마음속 사직서가 다시 고개를 들 즘이었다. 뭔가 스산한 기분이 들었다.
내 목덜미와 어깻죽지로 비단뱀 한 마리가 스르륵 타고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차갑고 습하고 비릿한 어떤 무게감이 목과 좌측 어깨 주위를 내리눌렀다.
화장지 세 칸을 끊어 접다가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다봤다.
"뭐지...?"
없었다. 아무것도.
그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냥 느낌이려니 넘겼다. 그러기엔 좀 괴이쩍긴 했지만 누구나 난데없는 한기랄지, 가끔씩 이상한 기분 한 번쯤 겪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음날이었다. 이번에는 낮잠도 깰 겸 기지개를 켜는데 갑자기 왼쪽 어깨에서 퍼르륵 큰 소리가 났다. 어찌나 크게 들리던지 옆에서 졸던 냄새 먹는 하마 같은 직장 동료가 들었을까 봐 놀랄 지경이었다.
'끼릭끼릭'
아니면 끄륵끄륵, 왼쪽 어깨를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귓속으로 무슨 하숫물이라도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불쾌한 소리였다.
그러더니...... 며칠이 더 지나서인가 유난히 화창하던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는데 그 녀석이 내 왼쪽 어깨에 붙어 있었다.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젖은 앞머리칼에서 아직 씻어내지 못한 물방울이 세면대로 떨어졌다. 내 눈엔 마치 핏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양 눈알에는 잔뜩 핏발이 서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 거니, 너는? '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그 녀석을 불러들인 게 아니었다. 그 녀석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다. 바로 내 왼쪽 어깨 위에.
이제는 어깨를 올리는 일조차 힘겨웠다.
떡진 머리,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잿빛 얼굴, 게슴츠레한 눈. 나이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눈을 보면 꼬맹이 같기도, 입매를 보면 중늙은이 같기도 했다. 눈동자와 흰자위는 둘 다 회색빛으로 자세히 봐야 겨우 구분이 될 정도로 경계가 희미했다. 크기로 치자면 어른 주먹만 했다. 아무리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어깨를 올려보려고 했지만 그 녀석이 꽉 잡고 있어서 그런지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팔을 올릴 수 없었다.
나는 항상 왼쪽으로 누워 자곤 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왼쪽으로 눕자면 그 녀석이 내 어깨 속을 갉아먹기라도 하는 것인지, 후벼파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사실 똑바로 눕는 것도 매한가지였다. 나는 포기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그런데.... 그 녀석이 며칠 전부터 달라졌다. 미동도 없던 녀석인데 뭔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착각인 줄 알았다. 그런데 분명히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