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써보는 끝날 줄 알지만 끝나지 않을 귀신 이야기
당신 등 뒤에 붙어있을지 모를 귀신 이야기 1편 에서 이어집니다.
처음에 그 녀석은 분명 귀신의 집 입구에 매달린 귀신 인형 마냥 내 왼쪽 어깨 위에 꼼짝도 않고 있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볼 때는 보이지 않았다. 거울로 볼 때만 보였다.
겨드랑이 근처에 조막만 한 몸뚱이를 매달고 어깨에서 가장 솟아오른 뼈 바로 위쪽으로 떡진 머리를 내민 채, 그 녀석이 거울 밖의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내가 왼쪽으로 돌아도, 오른쪽으로 돌아도 미동도 없었고, 단지 눈동자만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처음에는 오싹했지만, 이상하게도 곧 익숙해져 갔다.
그렇게 눈동자만 굴리던 녀석이 이제는 민달팽이처럼 느릿느릿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녀석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나는 문득 그 녀석이 머리를 걸치고 있는 내 어깨의 불뚝 솟은 뼈에 시선이 집중 됐다. 전에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 보지 않았었다.
‘저기가 저렇게 튀어나왔었나? 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그 녀석 때문에 갑자기 저렇게 된 것인지, 이제야 내가 발견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녀석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넷을 찾아봤다.
견쇄관절. 툭 불거진 그 부위의 명칭이었다.
이어서 견쇄관절염, 충돌 증후군, 오십견, 견봉하 점액낭염, 회전근개 손상, 목디스크까지 생소한 단어와 익숙하지만 찾아본 적 없던 검색어들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안 되겠다'
일단은 병원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툭 튀어나온 뼈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그 녀석이 거기에 붙어 있는 것도.
당장 병원에 가보고 싶었으나, 일단은 출근부터 해야 했다. 이제 출근한 지도 얼마 되지도 않은 놈이 병가를 들이민다면 좋아할 리 만무하다는 것을 알 만큼은 눈치가 있었기에 고민하다가 30분만 일찍 조퇴를 하겠다고 말해보기로 했다.
"죄송한데, 제가 좀 병원을 가봐야 될 듯해서... 정말 죄송한데 오늘만 30분 일찍 가볼 수 있겠습니까?"
하는 수없이 곰 같은 팀장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아, 그래? 어디 아프기라도 해? 요즘 좀 안색이 안 좋긴 하더니. 그렇게 해 그럼. 단, 이번만이야."
어라, 예상치 못하게 너무 쿨하게 허락이 떨어져서 내심 놀랐지만, 무르기 전에 냉큼 받아먹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서인지 나도 모르게 맘에도 없는 말을 던졌다.
"아, 네 감사합니다. 몸 관리 잘못해서 죄송합니다. 일은 꼭 다 해놓고 나가겠습니다앗!!!!!"
나는 고개를 힘껏 숙이고 잠시 서서 반응을 살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팀장은 전처럼 씨익 웃으며 내 왼쪽 어깨를 툭 쳤다.
'이런 XX'
역시 곰탱이라 힘이 좋아서인지 내리치는 통증으로 어깨에서 번개가 번쩍하는데 욕이 나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나는 인사를 마저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허나... 당연히 눈치챘어야 했다. 씨익 웃는 웃음의 의미를. 그날따라 잔디 메시지 창을 몇 번이나 확인을 한 건지, 평상시의 거의 2배에 달하는 업무가 내 어깨를 불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앉아서 키보드만 두들길 뿐인데도 왜 이리도 화끈거리는지 지옥불이 따로 없었다. 오후쯤 되자 엉덩이까지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마음속 사직서를 간신이 억누르며 정확히 5시 반에 칼 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곰탱이에게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송구스러운 미소를 만면에 띤 채 절하듯 인사를 건네고 행여 붙잡을까 대답도 듣지 않고 고개를 돌려 병원을 향했다.
'ㅇㅁㅊ통증의학과의원'
병원 간판명이었다. 그냥 되는 대로 검색하다 얻어걸린 곳이었다. 하나하나 뒤져보고 비교해 볼 여유는 없었다. 그저 지하철 역에서 가까운 곳 정도로만 생각하고 결정했다. 차를 가지고 가면 주차 때문에 애를 먹지 않을까 우려해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어깨가 좀 아파서 왔어요."
"언제부터 아프셨지요?"
뭔가 차가운 표정의 남자 의사였다. 둥근 금속테 안경에, 마르고 무표정한 얼굴,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접수창구에서부터 뭔가 내키지 않았다. 상사를 닮은 곰 같은 여자가 한 명 앉아 있었는데, 말투까지 비슷했다. 여기가 정형외과 맞냐는 질문에, 일어나 인사도 하지 않고 통증의학과라고 답하는데 뭔가 사기당한 기분마저 들었다.
"팔 한 번 올려보세요."
어깨 속이 찢어지는 느낌이 다시 올까 두려워 슬며시 팔을 올리는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의사가 내 뒤로 성큼 다가왔다.
"자, 힘 빼세요. 잠잔다 생각하고 팔을 그냥 축 늘어뜨리세요."
하더니 일말의 예고도 없이 한 손을 내 어깨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 내 왼팔을 휙, 들어 올렸다.
'끼리리릭'
예의 하숫물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귓속을 가득 메우더니 내 입을 타고 비명으로 번져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의사는 몇 번 더 내 팔을 움직였다. 역시나 안 아픈 척 견뎠다.
"혹시 안 하던 일을 갑자기 하거나 다치거나 하신 적은 없으시지요? 원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사진 초음파 보겠습니다."
이때만 해도 의사의 이 말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10분쯤 대기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초음파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다시 그 녀석을 마주했다. 초음파 모니터 화면에 그 녀석이 다시 나타났던 것이다. 나 말고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곰 같은 간호사의 두툼한 손을 잡고 저게 보이냐고 물을 뻔했지만 잘 참았다. 어쨌든 나도 분별력은 있는 놈이고, 미친놈 취급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여기 보이시지요?"
검은색 원 가운데 박힌 흰 반점, 웬 계란 프라이 같은 게 보였다. 그리고 그 계란 프라이 위로 그 녀석의 얼굴이 떠다녔다.
"네, 여기 계란 프라이 같이 생긴 게 이두근 힘줄입니다. 원래는 이렇게 보이면 안 됩니다. 염증 때문에 물이 고였어요."
이 사람 뭐지, 순간 내 마음이라도 읽은 건가, 하고 흠칫 놀랐다. 의사가 가리키는 계란 프라이에 묘하게도 그 녀석의 입술이 오버랩되어 있었다. 그 녀석은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전에는 못 보던 짓이어서 나도 모르는 새 그쪽으로 관심이 갔다. 입술이 꼭 계란 프라이를 씹고 있는 것 같았다. 의사는 동그랗게 뜬 내 눈이 화면을 응시하고 있자 내심 흐뭇한지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염증이 관절 안에서 생겨서 이두근 힘줄을 타고 흘러나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 툭 튀어나온 뼈는 견쇄관절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염증이 있습니다. 여기 검게 물주머니처럼 솟아오른 게 보이시지요?"
이번에는 그 녀석의 입술이 의사가 가리키는 물주머니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것을 본 것은.
그 녀석의 눈동자가, 흰자와 검은자 구분도 잘 안 되는 그 눈동자가 무언가를 반짝이는 것 같았다. 순간적이어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뭔가 작은 불꽃 비슷한 것이 타오르는 듯했다. 나는 자세히 보려고 화면에 들어가기라도 할 기세로 고개를 쑥 내밀었다. 곰 같은 간호사의 손이 나를 저지했다. 간호사의 손에 잠깐 가려졌던 작은 불꽃은 다시 나타났다가 이내 사그라들 듯 멀어졌다.
"자 이제 잘 이해되셨지요?"
의사는 일방적인 설명을 마치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나는 단추를 잠그며 검사복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뒤따라 나갔다. 그러면서도 재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초음파실을 나가는 내내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건 도대체 뭐였지?'
나는 한껏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고, 의사는 그런 내 표정을 보며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큰일 아니니 걱정은 마시고, 그냥 오십견에, 견쇄관절에 염증이 생겼을 뿐입니다."
"오십견이요?" 나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깜짝 놀라 물었다. 오십견이라니 무슨 당치도 않은, 이거 바가지 씌우려는 수작 아닌가?
"네, 꼭 쉰에 생기는 질환은 아닙니다. 요즘엔 30대도 꽤 봅니다."
의사는 자기 진단에 꽤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웃으니 마른 얼굴이 더 뾰족해 보였다.
"낫기는 낫나요?"
"통증은 주사 몇 번 하시면 좀 나아질 겁니다."
"주사요?"
"네, 염증 가라앉히는 주삽니다."
"하면 다 낫는 건가요?" '귀신도 사라지나요?' 같이 묻고 싶었지만 예상치 못한 병명을 들었음에도 분별력은 아직 남아 있었다.
... 잠깐의 침묵의 시간.
"준비는 다 되셨나요?"
무슨 준비...??
생뚱맞은 질문에 의사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의사의 눈빛이 왠지 모르게 불길했다. 꼭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일단 오늘은 알아만 보자. 웬 돌팔이 사이비 같은 놈한테 눈퉁이를 맞는 걸지도 모르니, 일단 물러나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 초음파 화면에서 봤던 그 불꽃도 신경 쓰였다.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병원을 그냥 나오기로 했다.
대기실에 환자 4명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굳이 진료실 문간에 서서 병원 밖을 나서는 내 모습을 유리 자동문을 열고 나갈 때까지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설마 그 녀석이 보이기라도 하는 건가...?'
괜한 생각이라고 머리를 흔드는 동안에도, 어딘지 모르게 초조한 듯 꺼림칙한 의사의 표정이 유리문에 비치고 있었다.
병원 문을 나서자 머리가 약간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너 어디야?" A였다.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인마. 형님이 전화를 했으면 인마, 네 형님, 하고 받아야지. 뭘 이유를 물어. 니가 아직도 덜 맞았구나." 하여간에 이 새X는 순식간에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다.
"어, 그래, 이 형님 쉐키야. 어쩐 일인데? 니가 전화를 다하고?"
A가 먼저 전화를 건 지가 꽤 됐던 차였다.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훅 들어오는 한 방.
"근데 니 혹시 어디 안 아프니?"
뭐? 갑자기 간장으로 훅하고 펀치가 들어온 기분이었다. 숨이 멎는 듯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니가 내가 아픈 걸 어떻게 알아?"
"그렇구나. 너도 그렇구나. B도 그런데. 우리가 다 X된 거구나."
"무슨 말이야? 자세히 말해봐. 너는 어디가 아픈데? B는 또 왜?"
병원 건물 앞에 서서 거의 30분을 통화했다. 요약하면 A는 허리가 아프고, B는 손목을 못 쓸 지경이었다. 특히 B는 목공예를 해야 하는데 애를 많이 먹는 모양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B에게도 전화를 하고, 그렇게 한 시간쯤 흘러 우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그 계곡에 다시 가보자." B가 말했다.
"거기 가면? 그다음엔? 거기 아무것도 없잖아. 이유라도 뭐 나와?"
나는 그렇게 반문하면서도 이미 가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의사가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라서였다.
'혹시 안 하던 일을 갑자기 하거나 다치거나 하신 적은 없으시지요? 원인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결국 우리는 셋이 같이 다시 시간을 맞추기로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 녀석은 아직도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고, 눈동자의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애들에게는 아직 묻지 않았다. 니네들도 그 녀석이 보이냐고. 이건 만나서 할 얘기라는 생각에 전화를 끊었다.
거울을 자세히 보니 그 녀석은 견쇄관절에서 약간 더 목덜미 쪽으로 올라온 것 같았다.
기분 탓인가? 이 녀석 꾸물거리면서 이동하고 있는 건가?
머릿속이 아리송하고 어깨는 여전히 타는 듯했지만, 피로가 몰려오고 있었다. 나는 대충 씻고 침대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끔찍한 꿈을 꿨다. 생전 처음 겪는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