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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써 보는 의사 Sep 11. 2024

당신 뒤에 붙어있을지 모를 귀신 이야기 3-여섯개의기둥

재미로 써보는 끝날 줄 알지만 끝나지 않을 귀신 이야기


3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이었다. 바람 한 점 없었고, 개미 새끼는커녕 모래 한 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중간중간 뭉툭한 둔덕들. 내 앞에 좌우로 솟아 있는 나무 없는 작은 산 같은 언덕들은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마르고 건조해 보였다. 구름이라고 해야 할지 검은 연기라고 해야 할지, 하늘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검은 곡선이 타오르듯 펼쳐져 있었다. 화성처럼 붉은 행성 표면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사물이 멈춰 있고 공기의 흐름마저 느껴지지 않는 탓인지,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만 같아 나는 두 팔을 휘저어 봤다. 다행히도 팔은 움직였다. 왼쪽 어깨는 아프지 않았다. 


'꿈틀꿈틀'

낯선 환경에 눈이 익숙해질 즈음, 처음으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눈앞 저 멀리 언덕들 사이로 붉은 지렁이 같은 것들이 지표면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그것은 흑빛 하늘과는 대조적으로 밝게 빛나고 있어 눈에 금방 띄었다. 나는 자연스레 그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가갈수록 붉은빛은 점점 커지더니, 이번에는 지면으로부터 숯처럼 타오르는 막대기 같은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시간의 흐름마저 느껴지지 않는 곳이기에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었지만, 내 생체 시계는 20분쯤 지났다고 말하고 있었다. 좀 더 가까워지자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얼굴에서부터 느껴지던 열기는 다가감에 따라 온몸으로 퍼져갔다. 목, 가슴, 배, 다리, 결국엔 온몸이 후끈거리듯 달아올랐다.  

열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대기는 있는 모양이네. 

비현실적 광경에 적응이 돼 가는지 머릿속 논리 회로도 슬슬 돌아가기 시작했다.


식별할 만큼 가까운 곳에 이르자, 나는 그 압도적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파르테논 신전의 그것 만큼 커다란 기둥 여섯 개가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타오르는 화염은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단순한 붉은 빛깔이 아니었다. 각 기둥이 각기 다른 색으로 불타고 있었다.


빨강, 노랑, 주황, 녹색, 파랑, 남색.


마치 불타는 무지개를 보는 듯했다. 형형색색의 불꽃들이 기둥을 타고 올라 꼭대기에서 커다란 붉은 빛깔 하나로 합쳐져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가 멀리서 봤던 것은 바로 그 꼭대기 부분의 불꽃이었다. 

자세히 보니 각 기둥의 불길 모양도 조금씩 달랐다. 


첫 번째 기둥은 붉은색으로 타오르는데 불길이 움직일 때마다 그 모양이 마치 두근거리는 사람의 심장 같았다. 

두 번째 기둥은 노랑 빛깔로 타오르는데 그 불기둥이 마치 사람이 두 다리로 걷듯이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세 번째 기둥의 불길은 주황색이었는데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기둥을 핥아먹는 것 같았고, 기둥은 타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흑갈색 액체가 찐득거리고 있었다. 

네 번째 기둥은 녹색 불꽃이 감싸고 있었고, 그나마 온화한 모닥불처럼 타고 있었는데 얼핏 보면 풋사과처럼도 보였다.

다섯째 기둥은 파란색 불길이 기둥 아래쪽으로는 펑퍼짐하게 깔려 있고, 기둥을 타고 위쪽으로 오르다 좌우로 뻗친 갈래가 기둥을 감싸 안으며 앞으로 휘어져 기둥 한가운데서 다시 합장하듯 모여 있었고, 기둥 꼭대기 부근에서는 둥그렇게 원을 이루고 있었다. 전체적인 형상이 꼭 누군가 기도하는 듯한 아니면 앉아서 손을 모으고 명상이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여섯째 기둥의 불꽃은 남색이었는데 불길이 기둥의 한쪽 면만을 타고 뉘엿뉘엿 오르다가 꼭대기에서 불쑥 솟아오른 모양이 마치 잠자는 와불상을 옆으로 세워놓은 듯했다.

 

나는 미동도 않고 가만히 서서 홀린 듯 기둥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내 왼쪽 귀에서 소리가 들렸다.


'끼리릭 끼리릭...'


비명소리처럼 날카롭고 높은 주파수의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깨를 움직일 때면 나던 그 소리였다. 그리고 이어서 무언가 뾰족한 것이 내 어깨를 파고들고 있었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사과를 베어 먹는 것처럼 사각거리는 느낌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어느새 내 몸에서 빠져나와 위에서 내 몸뚱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보였다, 그 녀석이 내 어깨를 파먹고 있는 모습이. 꼬막만 하던 그 녀석의 입이 위아래 좌우 사방팔방으로 동시에 넓어지더니 순식간에 어깨를 덮고 카메라 조리개처럼 조여들면서 살점을 떼어냈다. 시뻘건 속살이 불기둥의 그림자 속에서 일렁거렸다. 피는 흘러내리지 않았다. 흘러내리기도 전에 그 녀석이 모조리 빨아먹어 버렸으니까. 

나는 그 녀석의 다리를 처음 봤다. 다리는 새다리처럼 가늘고 반들거렸고 힘없이 축 처져 보였다. 발가락은 세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그에 반해 발톱은 깨진 흑요석처럼 검붉고 날카로웠다. 발톱은 내 날개뼈 부근에 박혀 있었다. 내 몸뚱이가 어깨를 올리려고 할 때면 발톱은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왜 그렇게 어깨를 올리기가 힘들었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그 녀석의 입술은 어깨를 거의 다 먹어치우고 목덜미 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멈추고 싶었지만 나는 다시 몸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점점 더 두둥실 떠 올라갈 뿐이었다. 그 녀석이 내 어깻죽지 승모근을 거의 다 파먹고 앙상한 쇄골이 드러날 무렵, 이번에는 귓속을 파고드는 금속성의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기어이 나는 잠에서 깼다.  

 

티셔츠로 목덜미의 땀을 닦고 오른쪽으로 몸을 굴려 일어났다. 왼쪽 어깨가 쑤셔왔다. 꿈과 현실은 역시나 반대인가 보다. 

혹시나 해서 거울을 보니 역시나 그 녀석은 왼쪽 어깨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귀에서는 금속성의 날카롭고 높은 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꿈이 계속 이어지는 건가 비몽사몽 한 정신 상태를 깨워보려고 양손으로 뺨을 찰싹이며 눈을 치떴다.

음악 소리였다. 옆집에서 또 기타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일렉 기타 소리 'Layla' . 새벽 2시였다. 대체 이 시간마다 무슨 놈의 음악 감상인 건지. 그것도 피아노도 아니고 기타를. 아랑곳없이 연주는 절정이었다. 울부짖는 듯한 기타 소리에 몸마저 떨렸다. 무엇을 듣고 보느냐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그것을 접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언제나 감각은 그때의 시간, 주변 상황과 한편이니까. 소싯적 그렇게 좋아했던 음악 속 감정과 추억들이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불쾌감으로 변할 수 있는지 참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오늘 음악은 좀 달랐다. 친구의 여인을 향해 부르짖는 에릭 클랩튼의 절규가 내 가슴속 한편에 단단하게 뭉쳐있던 실타래를 퍽하고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반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와의 애틋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용서할 수 없어.' 


나는 애틋함을 도로 밀어 넣고, 대신 그렇게 분노를 뇌까렸다. 어깨가 다시 욱신거려 왔다.


분노가 솟아오를수록 점점 심해지는 통증 때문에 한 손으로 왼쪽 어깨를 부여잡고 중얼중얼 욕지거리를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거울 속에서 그 녀석의 눈동자가 사르륵 돌아가기 시작했다. 머리는 그대로 고정한 채 눈동자만 스르르르 내 목덜미를 향해 미끄러져 오르고 있었다. 좀체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던 녀석이라 갑자기 이건 또 뭐지 하는 의문과 함께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병원에서 봤던 불꽃. 방금 전 꿈속의 불길도. 아른거리는 불길의 음영 속에서 녀석은 내 어깨를 잘근잘근 갈아 먹고 있었다. 때마침 절규하는 기타 소리에 춤이라도 추듯 꿈속 불길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현기증이 났다.


내가 한쪽 팔에 어지러운 머리를 기대도 있는 동안에도 녀석은 힘들지도 않은지 그렇게 한참 동안 눈동자를 목덜미에 고정하더니, 슬슬 지겨워지기라도 하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되새김질이라도 하는 걸까. 녀석의 눈동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아들, 일어나. 아들?"

"또 너냐? 좋게 말할 때 닥쳐라 좀."

나는 아직도 기타 소리가 계속되는 줄 알고 중얼거렸다. 


"빨리 일어나, 엄마가 밥 해놨어. 이건 또 웬 식은땀이야? 너 어디 안 좋니?"

나는 따뜻한 손길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따뜻한 손길이 요즘 낯설다.

아, 엄마가 오기로 했었구나.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아침 일찍부터 웬 밥이에요. 나 아침밥 잘 안 먹잖아."

어머니가 오셨다. 오늘 휴일이라 반찬 싸들고 온다는 걸 뜯어말렸지만, 기어이 오셨다. 덕분에 잠은 다 잤다. 어차피 버려질 반찬 왜 그리도 바리바리 싸들고 먼 길을 오시는 건지. 한두 달에 한 번쯤 소득 없이 말만 많은 반상회처럼 치르는 행사였다. 


투덜거리며 일어나는데 어머니가 내 왼쪽 어깨를 툭 쳤다. 어깨 속 깊숙이 찌르는 듯한 통증이 퍼지자 짜증이 확 밀려왔다. 

"아, 나, 진짜, 왜 아침부터 이렇게 일찍 와가지고 잘 자는 사람을 깨우고 그래요? 정마알!!"

소리까지 지르지는 않았지만 얼굴 표정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나를 무시하며 내 귀를 잡아끌었다.

"너는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이렇게 왔으면 고마운 줄을 알아야지, 니 아빠는 안 그런데 너는 어쩜 그러니? 누굴 닮아서."

또 아버지 얘기다. 지겹다, 비교당하는 것도. 나도 이제 성인이건만 아직도 내가 학생인 줄 아시는 건가.


"뭐야, 또 마늘이에요?"

"너는 얼굴이 곰 상이라 마늘을 많이 먹어야 된대. 편식하는 사람한테는 마늘이 좋댄다."

내가 아직 사람이 덜 됐다는 얘긴가. 도대체 또 어디서 이상한 얘기를 듣고 오신 걸까.

"아니, 그럼 뱀 상인 사람은 뭐 쥐라도 잡아 잡숴야 돼요?"

"말 잘했다. 너도 알지, 우리 옆집 살던 김OO 할아버지. 그 분이 뱀상이잖니? 일 년 전, 풍 맞아서는 회복이 더디다더니 쥐 잡아먹고 잘 걸어 다니신단다."

아니, 이건 또 무슨 도시 괴담이야 뭐야. 가뜩이나 그 녀석 때문에 현실인지 괴기 영화인지 오락가락하는 마당에.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아무튼 나 못 먹어요 마늘."

"고등학생 때만 해도 잘만 먹더니 왜 그러니 대체."


사실 어렸을 때는 곧잘 마늘을 먹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부터는 영 속이 부대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마시는 맥주 탓인지 뭐 때문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마늘을 먹기 힘들었다. 어머니한테는 그냥 싫다고만 했다. 그 뒤에 몰려올 잔소리를 생각하면 현명한 처사였다. 


어머니와 실랑이를 하자니 또 어깨가 쑤셔왔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담배를 한 대 하고도 반을 태우고 들어왔다. 태우는 내내 어깨가 도려내듯이 아리아리했다. 왜 한 대도 아니고 한 대 반이냐면, 한 대 태우고 두 대를 피울 때쯤 어깨에서부터 목 아래쪽으로 뭔가 강하게 찌릿한 느낌이 들면서 담배 한 개비를 들고 있는 자체가 불편해졌다. 나는 아까운 담배 반 대를 하는 수없이 동강이째 비벼 끄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새 어머니는 가셨다. 인사도 없이. 혹시나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마늘은 보이지 않았다. 된장과 방울토마토 제철 과일들만 놓여 있었다. 그걸 다 다시 싸들고 가셨나. 나는 못내 죄송하면서도 내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계속 목 아래쪽이 찌릿하고 불편했다. 돌덩이라도 올려놓은 것처럼 무겁고 뻐근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어깨는 오히려 편해진 기분이었다. 왜 이리 뻐근한지. 불현듯 그 녀석의 눈알이 목 쪽으로 돌아가던 것이 떠올랐다. 


이게 혹시...


나는 냉큼 거울로 달려가 어깨를 들여다봤다. 어라?

그 녀석은 위쪽으로 이동해 있었다. 어깨 견쇄관절에서 목 쪽으로. 아래쪽 목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녀석의 잿빛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느릿느릿 꾸물거림이 비현실적이어서 얼핏 보면 마치 그 녀석의 몸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은 정말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서 좀 전부터 목이 아픈 건가? 꿈속에서도 녀석은 어깨를 다 먹어치우고 목덜미로 오르고 있었다. 만약 꿈과 녀석이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면 이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시계를 봤다. 아차, 늦겠다. 친구들과 만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렇게 식욕이 당기지는 않았지만 허기는 또 있어서 일단 허겁지겁 마늘 쪽이 통째로 둥둥 떠다니는 된장에 억지로 밥을 말아먹고 속이 부대낄까 방울토마토도 함께 먹었다. 앞날에 대비해 속은 채워놔야 하니까. 먹고 나니 다행히 속이 좀 후련해지고 목도 좀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A가 차를 몰고 집 앞으로 오기로 했다.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A였지만 하는 수 없었다. 같은 배를 탄 동료일지도 모르니. 적의 적은 친구라고들 하지 않던가.


밖은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왔다 갔다 할 시간을 생각하면 좀 더 빨리 만났어야 했나. 나는 초조한 마음에 애꿎은 보도블록만 왔다 갔다 비비적대고 있었다. 


멀리서 A의 차가 오는 것이 보였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고요했다.










1편이 궁금하시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세요.

당신 등 뒤에 붙어있을지 모를 어떤 귀신 이야기 1편




여섯 개의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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