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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마밍 Mar 25. 2022

기록광:기록의 이유

다꾸가 아닌 저널링으로만 1년에 다이어리 6권 이상을 쓰는 기록광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게 그렇게 어려워?"


친구들과의 대화 중 내 얘기를 듣던 한 친구가 문득 내게 질문을 던졌다.

왜 나는 이렇게 많은 메모를 남기고 노트가 곁에 없으면 불안한지에 대해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누다가 온종일 머릿속이 시끄러워서 그걸 노트에 꺼내놓지 않으면 하루가 정리가 안된다는 말을 하게 되었는데, 역시 친구는 그런 날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내가 조용히 '기록'을 하는 이유이다.


내면의 시끄러움을 잠재우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

말로하는 수다로 정리가 되는 날도 있었지만 내면 깊은 곳의 갈등이나 타고난 기질로 인한 어려움 등은 사람들에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잠잠히 들어주고 고개 끄덕여주기를 바라지만 내 이야기를 듣는 친구들 대부분 앞서 이야기 한 친구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저렇게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표정과 다양한 감탄사 등으로 '너 참 희안하다.'라는 식의 반응들을 보였다.

분명 그 전까진 그 안에서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저런 말을 듣는 순간 그 그룹에서 퉁 하고 몸이 튕겨져 나온 느낌이 들었다.

다시 그 안에 들어가고 싶어도 마치 자석의 같은 극처럼 밀려나는 느낌.

결국 말수는 적어지고 군중 속에서 또 나는 외로워졌다.


나의 쓰는 습관은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습관중의 하나이다.

어린 시절, 엄마의 화장대엔 노트와 펜이 늘 올려져있었고 가끔 들추어보면 엄마 내면의 이야기들이 들어있었다. 남의 일기를 훔쳐 읽는 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어릴때부터 문구류를 좋아했고 쓰는걸 좋아했다.

초등학교 땐,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일기나 여름방학 탐구생활 등을 밀리지 않고 매일 조금씩 해냈고, 중학교에 가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일기'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다.

시작은 친구와의 교환일기였다.

1년 정도, 학교친구, 교회 언니와의 교환일기를 쓰며 꾸준히 쓰는것에 재미를 붙인 난,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일기장에 이름을 붙이고 그곳에 내 이야기를 담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내 안의 감정을 쓰고, 그 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써냈다.


성인이 된 후엔, 일기장보다는 플래너를 썼다.

감정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불안했다. 누군가 내 일기장을 볼 수도 있는 것이었고

행여 내가 급작스레 죽게 된다면, 나 대신 남겨진 일기들이 부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부턴 감정을 기록하기 보다는 매일의 사실을 기록했고 스스로 일기 내용을 검열해서 쓰기도 했다.


어딜가든 플래너와 노트는 함께 했다.

일반적인 회사를 다니는 직업이 아니라 프리랜서 배우 생활을 했던 20대 중, 후반,

내 가방엔 대본, 악보, 플래너, 연습복 등이 들어있었다.

오디션을 보러가는 길, 공연을 하러 가는 길, 항상 극장이나 연습실 근처 카페에 두어시간 전 도착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빈 노트와 대본을 꺼내놓고 번갈아 읽고 쓰며 생각을 쏟아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기 보단 노트에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걸 더 좋아하는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런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다 받아주는 노트들.

아마도 내겐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이 것이 원동력이 되어 계속 끄적이게 만들고 기록하게 만든것이지 싶다.


마음을 드러내도 비난받지 않을 수 있는 것.

쏟아내는 감정의 양과 종류에 상관없이 수용받을 수 있는 것.

하루종일 끝없이 밀려드는 생각을 시시 때때로 다 털어낼 수 있는 공간.

매일 쓰는 노트들(이 외에도 더 있음)

"아이 넷을 키우면서 이런걸 쓸 시간이 있어?"

라고 묻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시간은 만들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행위를 위해 못할게 무엇이 있을까.


내가 선택한 시간은 새벽과 저녁이었다.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 3시 반.

매일 일어나 가장 좋아하는 기록들을 채워나가고,

저녁 8시.

부엌을 떠나 노트를 들고 2층 침실로 올라온다.

물론 아이들이 등에서 뛰어 놀고 난리를 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노트를 펴고 자리에 엎드린 순간, 내 주변엔 나만 아는 방어막이 생긴다.

아이들의 웅성임도 저 멀리에서 들리고 나와 노트, 펜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즐기기 시작하며

아이들도 자기들끼리 놀 꺼리를 찾아 내 곁에 앉는다.


오랜 습관이었던 기록을 잠시 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아이들을 낳아 키우며 정신없이 살았던 대략 7년의 시간.

하지만 그 때에도 아예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육아일기를 쓰고 있었으며, '맘스 다이어리'에 매일 아이들의 사진과 한줄기록으로 하루를 남기고 있었다.

플래너도 꼬박꼬박 사서 매일의 일정을 관리했다.

아이가 많아질 수록 기록은 더 중요해졌다.

잊어버리고 놓칠 기회가 더 많아지면 더 많이 자주 기록을 했다.


주방, 책상, 차, 가방 등지에 다 다른 플래너를 놓아두고 장소를 옮길 때마다 할 일들을 떠올리고 기록했다.

플래너 한권을 여기저기 들고다닐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플래너는 뒷전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가 주로 생활하는 공간에 플래너를 두는 것이었다.

각각의 플래너에 계속 같은 기록을 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방법은 지금 내 삶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플래너를 챙겨서 장소마다 다니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에너지 소모인 지금.

(아이들이 집에서 독립하는 순간, 내 삶도 하나의 플래너에 정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만, 그 것 만으로도 조금 쓸쓸해진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일상을 누군가 대신 기억하고 기록해준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잊고 사는 대부분의 어린 시절.

나 스스로 기록해두지 않았더라면 까맣게 잊고 살았을 그 당시의 생각과 감정, 사건들.

물론 사진으로 남기도 하지만 글로 남는다면 그 또한 얼마나 멋진 일일까.


위인이 위인으로 남는 것은 그들이 위대한 일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위대한 일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소중한 내 아이들의 어린 시절, 그리고 그 아이들과 함께하는 현재의 나를 기록하는 것은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꽤나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두번 사는 것도 아니고 한번만 사는 인생,

노년에 내 기록들을 들추어보며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하루를 더 꼼꼼히 기록하게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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