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마케팅 축제: 관습이 된 이벤트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자정, 전 세계 와인 시장은 거대한 마케팅 축제의 장이 된다. "르 보졸레 누보 에 아리베(Le Beaujolais Nouveau est arrivé)! 보졸레 누보가 도착했다!"
나 역시 와인에 입문하던 시절, 11월 셋째 주 목요일만 되면 의례적으로 편의점이나 마트에 들러 이 햇와인을 사곤 했다. "이해에 수확한 첫 와인"이라는 상징성에 이끌려 마치 연중행사처럼 마셨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그 인기도 시들해져 편의점 재고 처리를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냉정하게 본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가 마셨던 건 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위적인 바나나 향과 풍선껌 냄새(탄산 침용)가 진동하는 알코올 주스에 가깝다. 이것은 와인 산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마케팅 사례로 꼽히지만, 동시에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스스로 깎아먹은 가장 비극적인 '자해 공갈' 사건의 시작이기도 했다.
1. 황금알을 낳다 거위 배를 가르다
이 이벤트 덕분에 보졸레 생산자들은 막대한 현금을 거두어들였다. 9월에 수확해 11월에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이 '패스트푸드 와인'은 재고 비용조차 들지 않는 완벽한 수익 모델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전 세계 소비자들의 뇌리에 "보졸레 =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 햇와인"이라는 공식이 문신처럼 새겨졌기 때문이다. 와인 평론가 카렌 맥닐(Karen MacNeil)은 그녀의 저서 <더 와인 바이블(The Wine Bible)>을 통해 보졸레 누보의 경이적인 마케팅 성공이 역설적으로 지역 전체의 평판을 파괴했으며, 사람들이 보졸레가 진지한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단기적인 돈을 벌고 지역의 명예를 잃었다. '보졸레'라는 이름은 이제 훈장이 아니라, 생산자들이 피하고 싶은 낙인(Stigma)이 되어버렸다.
2. 억울한 누명, 가메(Gamay)의 변명
여기서 짚고 넘어갈 팩트가 있다. 죄는 인간의 탐욕에 있지, 포도 품종인 '가메(Gamay)'는 죄가 없다. 가메는 부르고뉴의 귀족 '피노 누아'와 사촌 지간이다. 화강암 토양에서 제대로 키워 전통 방식으로 양조한 가메는 꽤 섬세하고 우아하다.
실제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전문가들조차 "이거 부르고뉴 피노 누아인가요?"라며 헛다리를 짚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가벼운 맛은 빨리 팔기 위해 사용한 속성 양조법이 만든 것이지, 포도의 DNA가 아니었다.
3. 결말: 이름 지우기, 행정적 절연
결국 참다못한 보졸레 북부의 상위 10개 마을(Cru)은 가문의 배신을 택했다. 이것은 앞서 살펴본 보르도의 세컨드 와인이나 뒤에서 다룰 미국의 AVA 확장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보통은 유명한 지역 이름을 어떻게든 라벨에 붙이려 안달이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고향의 이름을 스스로 은폐하는 것이 생존 전략이 되었다.
그들은 프랑스 와인법(AOC)을 이용해 라벨에서 'Beaujolais'라는 단어를 전략적으로 지워버리고, 오직 자신들의 마을 이름만 남겼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이 망친 이미지를 세탁하기 위한 가장 냉정하고도 슬픈 행정적 세탁(Administrative Laundering)이다.
"보졸레 누보와 엮지 마세요. 우린 다릅니다."
[보졸레라는 이름을 지운 10개의 '진짜' 마을들]
브루이(Brouilly)
코트 드 브루이(Côte de Brouilly)
셰나(Chénas)
시루블(Chiroubles)
플뢰리(Fleurie)
줄리에나(Juliénas)
모르공(Morgon)
물랭-아-방(Moulin-à-Vent)
레니에(Régnié)
생-타무르(Saint-Amour)
본 연재글은 향후 도서 출판을 목적으로 기획/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