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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더 나은 평균의 삶을 위해

- 소준철 작가 『가난의 문법』

by 줄기

* 소준철 『가난의 문법』 : 2021년 8월 28일 (토요일)


"가난에도 문법이 있다.
도시의 길거리에서 보이는 폐지 줍는 노인들은
이 문법의 대명사다.


소준철 작가는 이 책 『가난의 문법』을 통해 가난한 삶의 경로와, 우연하지만 필연적이었던 구조들을 가시화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많은 노인들이 재활용품 수집일을 하며 힘든 생활을 하게 된 원인이 개인에게만 있지 않다고 하면서, 한 개인의 삶은 국가, 산업, 혹은 같은 동네 주민인 우리들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만큼, 가난한 노인들의 삶을 둘러싼 복합적 요소들을 파악하여 책으로 엮은 것. 책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던 만큼 책에 쓰이지 않은 책 밖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북토크를 기다렸다.

작가는 서울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기기 시작했나에 관한 의문으로 연구를 시작하였고, 그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이 책을 썼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딱딱하고 건조한 보고서 형태가 아닌 것이 흥미로웠다. 마치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를 한 편 보는 듯한 기분의 책이었다.

우선, 작가가 조사를 진행하며 만났던 여러 노인들의 살아온 생애의 조각을 이어 붙여 가상의 인물 1945년 생 윤영자 씨를 탄생시켰다. 그런 다음, 하루를 오후 1시에서 시작하여 다음날 오후 1시까지의 시간을 14개로 나누고, 각 시간에 70대 후반 평균적인 여성으로 설정된 윤영자 씨가 생활하는 모습을 마치 소설에서의 각 장 형식으로 써 내려간 후, 해당 장에서 보인 여러 측면을 작가의 연구결과와 연계하여 분석하는 방식이었다.

윤영자 씨를 둘러싼 인물들도 역시 가상의 인물들인 데다 부록에 윤영자 씨의 연도별 생애표와 가족이야기를 수록하는 등, 딱딱하고 건조한 보고서에 부드럽고 촉촉한 토핑을 올린 소준철 작가의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덕분에 책은 술술 읽히고 개념들은 머릿속에 쏙쏙 박혔다.


『가난의 문법』북토크는 기본적으로 책 내용에 충실하게 이루어졌고, 덕분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거나 간과했던 여러 부분을 좀 더 세밀하게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판잣집과 달동네와 같은 형태로써 가난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현재의 가난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아 연구 대상을 설정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사실. 특히, 중위소독 50% 이하의 계층이며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 바로 뒷단계로 잠재적 빈곤층인 차상위계층을 인지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가난의 문법』북토크와 저자 사인

여기에 한국에서는 전세금을 찾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순간, 이른바 쪽방촌으로 향하며 가난의 계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 것을 들으니, 몇 년 전부터 크게 대두된 전세사기 피해문제가 떠올랐다. 특히, 전세사기 피해자 중 많은 이들이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청년이라는 점이 가슴 아팠다. 이제 막 자신의 역량을 펼치며 꿈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될 집에 불안한 요소를 만들거나, 더 나아가 사기로 인해 송두리째 집을 빼앗긴 좌절감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와 관련하여 카피라이터이자 유명한 웹툰 작가 홍인혜 작가의 『루나의 전세역전』 책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홍인혜 작가 본인이 직접 당한 전세사기를 오랜 기간에 거쳐 극복한 이야기를 시리즈 웹툰으로 올리다가 결국엔 책까지 출판한 것인데, 청년들이 전세를 수할 때 고려할 사항과 전세사기에 대비하는 자세, 그리고 전세사기를 당했을 경우 참고할 수 있는 tip이 인상적이었다.

tvN의 《유퀴즈온더블럭》에도 홍인혜작가가 출연하여 관련된 이야기를 한 바 있으니, 전세로 자신의 첫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될 청년들이 한 번쯤 읽어두면 좋을 필독서이다.

작가 자신의 전세사기를 소재로 쓴 『루나의 전세역전』과 tvN 《유퀴즈온더블럭》출연

다시 북토크로 돌아가서...... 윤영자 씨는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살면서 그때그때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는데 그 결과가 현재 가난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그리고 윤영자 씨의 모습에서 언뜻언뜻 내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는 점이 서글펐다. 국가가 발전할수록 심화되는 소득의 양극화, 이것을 해소하려는 노력과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노력은 정부의 어느 부처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가 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의 가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책에 수록된 OECD 가입국가 간 비교 결과로 알 수 있다. 2017년을 기준으로 OECD 가입국가 가운데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4%로 미국 다음으로 높은데, 65세 이상 노인만을 살펴보면 그 비율은 껑충 뛰어 43.8%로 가장 높은 수치다. 여기에 65-69세의 고용률은 한국이 45.5%로 52.3%의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고, 70-74세의 고용률은 33%로 OECD 가입국가 중 가장 높고......

이것은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에게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또, 노인이 하는 노동의 대부분은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이루어져 노인의 고용률이 상승한다 해도 빈곤율이 낮아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다. 전적으로 공감 가는 대목으로 현실을 외면한 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단순히 보기 좋은 수치를 만들어내기 위한 정책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소비가 늘면서 버리는 것 또한 많아졌으며, 이로 인해 재활용품 줍는 일이 생겼고, 이 재활용품 줍는 일은 주로 노인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 책에서 참고로 한 『사당동 더하기 25: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에서 재활용품 수집의 각 단계의 일을 일반적 특성과 고위험군 특성으로 분류하여 기록하고, 고위험군 특성으로 일을 하는 노인의 실태를 파악하였다. 이를 통해 위험한 상항에 속한 노인의 일에는 사회가 개입해야 함을 제기하였다.

노인들은 수집한 재활용품을 고물상에 파는데, 노인이 재활용품을 줍는 일과 파는 일 모두 제도권 밖의 일이라는 것은 몰랐던 부분이었다. 문 앞에 버려진 종이골판지 상자들은 원칙대로라면 재활용품수거원에 의해 처리되어야 하는데, 그전에 노인들이 주워가는 것이라 혹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고스란히 노인이 해결해야 하며, 노인이 재활용품을 내다 파는 도심의 고물상은 주로 불법인 상태에 놓여 있다니...... 노인이 재활용품을 줍고 파는 행위가 제도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정부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한 듯 2014년 서울특별시를 시작으로 재활용품 수집인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있어 재활용 정책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는지 평가가 필요한 시점일 것이다.


제도적으로 65세를 정년으로 정하여 은퇴를 하고, 65세 이상은 산업에서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는 사회복지사업으로 ‘노인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기존의 산업 바깥에서 일을 마련해야 하는 반갑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인데, 노인들이 일을 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기초소득을 가질 방법은 개개인이 마련해야 하는 것일까?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만들 방법은 없는 것인지 생각하게 된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인 이 책『가난의 문법』을 나 또한 높게 평가하며, 작가가 언급한 " 쓰레기"를 주제로 한 다음 책을 기다린다.


*참고자료

1. 『가난의 문법』 소준철, 푸른숲, 2020

2. 반달서림 『가난의 문법』안내 공지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2472419356)

3. 『루나의 전세 역전』 홍인혜, 세미콜론, 2023

4. tvN의 《유퀴즈온더블럭》홍인혜 작가편 (https://www.youtube.com/watch?v=jgEbE6qB47E)

6. 『사당동 더하기 25: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조은, 또하나의문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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