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하는 나희덕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 제1회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나희덕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 2022년 7월 2일 (토요일)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시인들”과 함께 하는 시낭독회에 초대된 1호 시인은 나희덕 시인이었다. “반달과 5펜스”에서 필사한 나희덕 시인 시는, 7권의 시집에서 발췌한 32편으로 나희덕 시인은 “반달과 5펜스”에서 필사한 시 가운데 가장 많은 시를 필사한 시인인 셈이었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시인 님팬이었다는 반달서림 대표님의 의지가 시필사 목록에 담겨있는 듯했다.
시낭독회가 열리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책방에 도착하니 베이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시인들”이라고 쓰인 현수막과, 같은 색깔로 인쇄한 나희덕 시인의 「가능주의자」와 「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시 전편이 담긴 현수막이 층고 높은 반달서림 내부 2층 난간부터 드리워진 풍경이 펼쳐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오후의 햇살 속에 시인은,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식과도 같은 두 편의 시 아래 편안한 모습으로 자리하였다. 한편 대표님은 자신의 책방에 나희덕 시인을 모시고 하는 첫 시낭독회를 개최함으로써, 친구들로부터 비로소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인정받았다며 몹시 상기된 모습이었다.
이 날 나희덕 시인이 낭독한 시는 「가능주의자」, 「벽의 반대말」, 「줍다」, 「속리산에서」, 「사라지는 것들」, 「빙하장례식」, 이 중 「속리산에서」를 제외하곤 모두 2021년에 출간된 『가능주의자』 시집에 수록된 시다.
시는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에 종종 시를 필사하며 혼자 나지막이 읊어보곤 했지만, 시인이 직접 읽어주는 시를 듣는 느낌은 또 달랐다. 시인이 시를 읽을 때의 리듬, 강조하는 시어가 내가 읽을 때와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가 아닐까 싶은데, 마치 같은 악보를 서로 다른 음색의 악기로 연주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빠르기와 강약을 조절하여 시인의 리듬으로 낭독된 시의 소리가 공간을 부드럽게 흔들며 채우고 있었다. 활자에서 소리로 분한 시 언어의 파장이 참석자에게 이르러 개개인이 갖는 고유파장과 때론 중첩되기도 하고 상쇄되기도 하면서 저마다의 이성과 감정에 물성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성에 만족하여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명확하지 않은 물성을 아직 이해할 수 없어 좀 더 다가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많은 시인들이 시 그 자체로 느껴야 하며, 시를 읽는 독자들 저마다의 감상과 느낌이 모두 옳다고는 말한다. 하지만, 독자들에겐 자신이 시에서 느끼는 것과 별개로 시인이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쓴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이 있기 마련. 그 호기심을 채워 감성과 이성의 물성에 담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 낭독을 마친 시를 주제로 시인과 독자가 함께 이야기하는 동안 물성의 구체화가 이루어져 재미와 의미가 함께 하는 시낭독회가 되었다.
시집 『가능주의자』의 시에는 시 제목의 유래와 시에 쓰인 시구의 출처를 안내해 주는 주석이 많은 편이다. 때론 어느 고전문학의 한 구절에서 인용하기도 하고 때론 영화의 주제나 한 장면, 혹은 우리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 주석이었다. 예전에는 시에 주석을 잘 넣지 않았는데, 주석을 넣음으로써 독자들이 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는 주석을 넣는 편이라고…...
시인이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쓴 시에, 그 영감의 근원을 주석으로 넣는다는 것이 반가웠다. 어떤 시를 읽었을 때, 그 시가 함축하는 바를 마음껏 상상하며 느끼는 것도 좋겠지만, 상상력의 범위를 무한대로 부여하는 것은 시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어쩐지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차에 시를 쓴 시인과 최소한의 공감은 하면서 상상력의 날개를 펼치고 싶은 한 독자의 마음을 알아주듯이, 중심이 되는 개념을 내어 줌으로써 “자! 여기서부터 너의 상상력을 펼쳐나가렴…..”이라며 안내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상상을 안정감 있게 해 나간다는 것이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상상력의 종류도 사람마다 다를 것. 나는 최소한이라도 현실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 상상을 추구한다.
사실 시집 『가능주의자』를 읽기 전, 같은 해 출간된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예술의 주름들』을 먼저 읽었다. 시인의 산문집을 읽으며 주름을 살짝 펴서 함축의 강도를 약하게 한 시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시가 플리츠스커트라면 산문은 플레어스커트. 각 잡아 접은 플리츠 주름 속 숨은 의미를 찾지 못하고 끙끙댈 때, 부드러운 플레어 주름은 그 의미를 살짝 드러내어 설명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느낌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시인의 산문집은 글로 쓴 시낭독회와 같다는 생각도 했다.
실제로 시낭독회는 『예술의 주름들』의 많은 이야기가 언급되며 진행되었는데, 그중 『예술의 주름들』의 8페이지
“예술이란 얼마나 많은 주름을 거느리고 있는가.
우리 몸과 영혼에도 얼마나 많은 주름과 상처가 있는가.
주름과 주름, 상처와 상처가 서로를 알아보았고
파도처럼 일렁이며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하였다.”
라는 글이 와닿았다. 어떤 예술작품에 마음을 빼앗긴다는 것은 내 영혼의 상처와 주름이 반응하는 것이겠구나 생각하면서……
시낭독회에서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에 수록된 「속리산에서」 시 낭독이 끝난 후 감상을 나누는 시간에는 나의 감상울 덧붙일 수 있었다. 내게 있어 속리산은 더도 덜도 아닌 딱 시에 적힌 산 그 자체였기에 이 시에 반응한 내 영혼의 주름을 이야기한 것이다. 내가 속리산을 오른 것은 지금껏 예전 회사의 단체 산행 때가 처음이자 아직까지 마지막이다. 내게 있어 속리산은 시에서 말한 그대로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였고,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속에 갇힌 시간”
처럼 좀처럼 속도를 내서 오를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빠릿빠릿하게 잘도 올라가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점점 뒤처져, 함께 오르는 두세 명을 제외하고 내 뒤를 따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내려갈까 싶었지만, 올랐던 길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봉우리인 문장대를 지나 반대편 법주사를 들러 하산하는 코스이며 타고 돌아갈 버스들도 다 그쪽에 있다 하니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산을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옆 팀 부장님께서 마치 낙오된 양을 인도할 목동처럼 다가오셨다. 그렇게 천천히 걸으면 더 힘들다며 발걸음을 빨리 하라 닦달하시며 문장대까지 동행해 주셨던 부장님의 뜻밖의 도움. 부장님이 예전의 부장님으로 돌아오신 것 같아 가슴 뭉클해졌다. 원래 부장님께서는 쾌활하고 도전적인 성격으로 회사 동료 및 선후배들과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셨고, 팀장으로서 팀 내외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 가며 진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셨던 분이셨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발견되어 치료를 받으셨고, 몇 달 후 회사에 복귀하셨다. 그런데, 복귀하신 부장님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보이셨다. 복귀를 환영하며 건네는 동료들의 인사를 쭈뼛거리시며 제대로 받아주지 않으셨고, 부재기간 동안 후배에게 위임했던 팀장 직위 복원도 고사하며 너무나도 조용히 회사를 다니시는 것이었다. 달라진 부장님 성격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안타깝고 걱정이 되던 차에, 속리산 산행에서 다시 쾌활한 태도와 언행을 보여주셔서, 이제 완전히 회복되셨다 판단하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힘을 내어 속리산을 부지런히 오르던 중 부장님이 해 주셨던 말씀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로부터 몇 해 전 봄, 창립기념일에 지인과 둘이 나름대로 멀리 지리산 여행을 2박 3일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여정 중 지리산 쪽에 숙소를 정하고 근처에서 저녁 식사를 했었는데, 그때 그 식당 이름을 말씀하시면서 거기에서 나를 보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때 부장님을 뵙지 못했기에 정말 깜짝 놀랐고, 왜 아는 척하지 않으셨냐고 하니 그땐 부장님께서 여러 모로 마음의 여유가 없으셨노라며 무안한 표정으로 살짝 미소를 지으셨다. 치료 후 회사에 복귀하신 그 시기가 부장님께는 힘든 시기였음을 알 수 있었던 순간. 정말 신기하다며…… '우리나라가 좁긴 좁아요'라며 호들갑을 떨고 대화하면서 부장님과 함께 덜 힘들게 문장대에 이르렀다. 문장대에 오르니 발아래 펼쳐진 속리산의 모습이 삶 그 차체였다. 평탄하지만 힘겨운 오르막길. 군데군데 돌덩이들이 줄지어 박혀 있는 속리산 같은 인생.
그 후 나는 직장을 옮겼고, 몇 년 지난 어느 날 부장님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을 들었다. 빈소를 방문하여 영정 사진으로 뵙는 부장님의 모습이 어색했다. 그날 속리산에서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던 부장님께는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
였던 것일까? 어떤 연유로 그날에는 그 고비를 넘지 못하셨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내 기억 속 마지막 부장님의 모습은 예전 그 활기 있는 에너지를 되찾으신 모습이었기에, 아마도 힘겨웠을 그 고비 또한 넘고자 노력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속리산 산등성이에 줄지어 박혀 있던 바위들. 넘을 수 없는 바위를 맞닥뜨리고 결국 그 가파른 고비를 넘지 못하는 그날이 나에게도 오겠지. 그 순간 어떤 마음이 들지 모르겠지만, 아마 반달과 5펜스에서 함께 필사하고 시낭독회에서 나희덕 시인이 낭독하여 준 시 「속리산에서」를 떠올리며 고비를 넘어보고자 한 번 더 힘을 내 볼 것 같다.
그렇게
내 인생의 첫 시낭독회는
내 영혼에 깊은 주름 하나를 남기고 마무리되었다.
속리산(俗離山)에서
가파른 비탈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은 남아 있는 나에게
신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 주었다
『그곳이 멀지 않다』 민음사, 1997
PS. 2년 좀 더 지난 2024년 10월 19일 토요일 나희덕 시인을 반달서림에서 다시 뵈었다. 시선집.『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 를 출간하신 후 시인님께서 먼저 반달서림에서 북토크를 하자고 제안하셨던 것인데, 이 멋진 제안을 당연히 대표님은 기쁘게 받으셨고, 많은 참여자들과 좋은 북토크 시간을 보냈다. 이 후기는 후에 별도의 글로 올릴 생각이다.
* 참고 자료
1.『가능주의자』 나희덕, 문학동네, 2021
2.『예술의 주름들』 나희덕, 마음산책, 2021
3.『그곳이 멀지않다』 나희덕, 문학동네, 2004
4. 반달서림의 나희덕 시낭독회 안내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2777184547?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5. 반달서림의 시필사 모임에서의 시낭독 (https://cafe.naver.com/bandalseorim/5503)
6. 반달서림의 나희덕 시인 시낭독회 후기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2798169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