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인권, 정의, 자유라는 뜨뜻미지근한 말을 믿는가?
" '인권’과 ‘정의’라는 미지근한 말을 믿는가?"
십자군은 성지를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 미국 남북전쟁은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 그 사건들은 ‘정의’와 ‘인권’이라는 거창한 깃발을 내세웠지만, 그 깃발 아래 웅크린 욕망은 철저히 세속적이었다. 교황은 십자군을 통해 흩어진 봉건 영주들을 모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고, 이탈리아 해상도시들은 새로운 무역로를 장악할 기회로 전쟁을 활용했다. 4차 십자군은 아예 같은 기독교 세력인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하며, 그 명분이 얼마나 기만적이었는지를 똑똑히 증명했다.
미국의 남북전쟁도 다르지 않았다. 링컨은 분명 노예해방을 선포했지만, 그 선포의 시기는 흥미롭다. 전쟁이 길어지며 북부의 사기는 바닥을 쳤고, 유럽의 지지도 위태로웠다. 그때 링컨은 노예 해방이라는 도덕적 명분을 내세워 전쟁의 정당성과 우위를 가져왔다. 남부의 경제를 마비시키고, 유럽의 지원을 차단하며, 내부 결속을 다지는 데 이만한 수단이 없었던 것이다. 그가 수차례 반복한 “나는 연방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며, 노예 해방은 그 수단일 뿐”이라는 말은, 인권조차 전략적 자원으로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명분은 연기였고, 실리는 그 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전쟁 역사는 단지 과거의 일화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은 벌어지고 있다. 다만 총성이 들리지 않을 뿐이다. 플랫폼이 전장이 되고, 알고리즘이 무기가 되고, 제재와 규범이 공격 수단이 되는 ‘무형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정 국가가 ‘인권 유린’을 이유로 다른 나라에 제재를 가할 때, 그 배경에는 그 나라의 핵심 산업 구조와 무역 경로가 놓여 있다. 희토류 자원의 확보, 기술 패권의 유지, 혹은 환율시장 지배력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실익이 도덕의 언어로 감춰진다. 마치 중세 교황이 ‘하늘의 뜻’을 들먹이며 동방의 부를 탐했듯, 오늘날에도 글로벌 기업이나 국가들은 ‘보편 가치’라는 언어를 입고 움직인다.
그리고 '그 도덕'이 '독점'되는 순간, 질문은 '금기'시된다. 누군가 “그 제재는 너무 과하지 않나?”라고 묻는 순간, 그는 곧장 ‘비도덕적인 자’, ‘인권 무시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도덕은 질문을 억누르는 도구가 되며, 비판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과거의 종교 전쟁이 신성모독이라는 이름으로 질문을 죽였던 것처럼, 오늘의 국제사회도 ‘정의’와 ‘질서’라는 이름 아래 침묵을 강요한다. 즉, 신성화와 성역으로 포장되어 진다. 정보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뉴스가 집중 조명되고, 어떤 뉴스는 영영 사라지는가. 누가 마이크를 독점하고, 누가 영원히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이 분배 구조는 기술과 자본이 만들어낸 새로운 검열 체계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질문을 훈련해야 한다. 어떤 언어가 등장했을 때, 그 언어가 설명하려는 대상보다, 감추려는 이해관계를 추적해야 한다. 과거 전쟁 속에서도 늘 그랬듯, 가장 많은 이득을 본 자들은 싸움의 명분을 제공한 자들이 아니라, 그 틈을 파고든 자들이었다. 중세 상인들, 군수업자들, 금융 자본들. 오늘날 그 자리는 다국적 기술기업, 통화정책을 설계하는 금권 엘리트, 그리고 국제 규범을 재단하는 외교 관료들로 대체됐다.
우리가 감지해야 하는 건 바로 이들이다. 누가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그 질서는 누구에게 유리한가? ‘인권’이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그 안에 감춰진 ‘거래 조건’을 봐야 한다. ‘기술의 진보’가 외쳐질수록, 어떤 기술이 배제됐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이 모든 건 ‘관찰자’의 몫이다. 수용자는 메시지를 믿고, 관찰자는 맥락을 본다. 역사는 관찰자에게만 진실을 속삭인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방식만 바뀌었을 뿐이다. 인류는 지금도 여전히 같은 싸움을 하고 있다. 가면을 쓰고 실리를 챙기는 이들과, 그 가면을 벗기려는 이들의 전쟁. 우리는 어느 편에 서 있을 것인가? 대답은 오직 하나,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자만이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명분’이라는 연기의 농도에 질식하지 않고, 그 안의 불길을 정확히 감지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