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항상 옳은 것도 아니다. 다수결도 책임회피의 방법 아닐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집단에 들어가는 방법을 배운다. 가족, 학교, 군대, 회사, 그리고 국민. 모든 인간의 삶은 소속과 동일시의 연속이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그 구조 안에서 우리는 다수의 의견에 편입되는 것을, 때로는 정의롭다고 여기기도 한다. "다수가 선택했으니 그건 정당하다"는 믿음은 투표라는 제도를 신성한 절차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대중의 결정을 모두 진실이자 정답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마주할 때, 그 확신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투표라는 형식은 결국 '책임을 나누기 위한 가장 편리한 방식'이지, '가장 올바른 판단을 만드는 과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미 2500년 전에 이 문제를 꿰뚫어봤다. 그는 철학자의 나라에서 명예의 나라, 돈의 나라로 이어지다 마지막엔 민주주의로 퇴락한다고 말했다. 돈 많은 자들이 자신의 탐욕만 채우는 사회를 견디지 못한 민중이 들고일어나 다수의 통치를 시작하지만, 그 다수가 능력 있는 정치인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선동가를 영웅으로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지식 없는 사람들이 선장을 자처하는 배는 절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고. 정치에는 방향을 설정하고 항해를 조정할 능력이 필요하지만, 대중은 그저 표를 던진 후 물러날 뿐이다.
이런 비판은 단지 한 철학자의 경고로만 머물지 않는다. 스페인의 철학자 오르테가 역시 '대중의 반역'에서 민주주의를 뒤흔드는 본질적인 위기를 지적했다. 그가 말하는 대중은 단지 인구통계학적인 다수가 아니라, 사고의 깊이를 거부하고 감정적 반응만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일종의 무지한 군중이다. 이들은 자기 삶을 위한 규율이나 노력 없이, 문명의 성과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인식하더라도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분노만 표출한다. 그 분노는 쉽게 포퓰리스트 정치인에게 흡수된다. 정치인은 그 분노를 자신의 힘으로 전환시켜 정당성을 확보한다. 민주주의는 결국, [대중의 감정을 정당화하는 가장 쉬운 장치]가 되어버린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 실시간 댓글이 여론을 이끄는 기준이 되고, 언론은 그런 여론에 부합하기 위해 여과 없는 감정적 보도를 쏟아낸다. 정치는 그에 맞춰 이슈를 소비하고, 대중은 스스로 선택했다는 착각 속에서 다시 감정을 키운다. 어느새 우리는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정해진 흐름에 따라 박수치는 관객이 되어버린다. 정당한 투표도, 자유로운 토론도, 진정한 비판도 없는 채로. 결국 민주주의가 가능하려면, 다수, 다수결이라는 형식 뒤에 숨어 있는 집단주의적 강박부터 들춰내야 한다.
예시를 들어보자. 어떤 인물이 ‘국민적 선택’이 되면 그가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논의는 사라진다. 드라마틱한 한 줄 문장과 자극적인 이미지로 대중을 매혹한 사람이 다음 날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그 이름을 반복 노출시킨다. 그렇게 형성된 여론은 진실이 아니라 동조의 결과물이다. 그 결과 우리는 똑같은 말, 똑같은 분노, 똑같은 환호를 쏟아내며 무리 속에 녹아든다. 그 속에서 누군가 ‘잠깐, 이건 이상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괴물이 된다. 비판이 아니라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결국 침묵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게 대중은 언제나 옳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는 단 하나의 오류도 수정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이렇듯 다수는 언제나 무섭도록 평온하다. 그 안에 있으면 나도 올바른 것처럼 느껴지고, 그 다수가 언제나 옳다고 착각하는 순간, 그것은 다수를 위한 독재가 된다. 우리가 지금 믿고 있는 ‘자유’와 ‘평등’이 누군가의 환호 속에서 얼마나 쉽게 선동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 이미 수많은 역사가 증명했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다. 문제는 그 제도를 구성하는 인간이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동의가 아니라 더 깊은 의심이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 다수가, 진짜 옳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대중이 선택한 길이 정말 진리인지를 묻는 일. 그것은 단지 철학자의 몫이 아니라, 침묵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묻자. "왜 이러는 걸까?"라고. 질문은 언제나, 생각의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