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이름을 빌린 야만

프랑스 혁명에 빗대어 본 동덕여태 사태

by 수필 쓰는 개발자

프랑스 혁명은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민중의 봉기로 기억된다. 1789년, 혁명의 불길이 파리 곳곳을 휩쓸었고, 바스티유 감옥이 무너졌다. 하지만 혁명의 광기는 그로 끝나지 않았다. 단두대의 칼날 아래 루이 16세가 목숨을 잃었고, 혁명 정부는 피의 숙청을 반복했다. 평등을 부르짖던 자들이 공포정치를 자행하며 수만 명을 처형했다. 자유의 이름 아래 폭력이 정당화되었고, 혁명은 결국 또 다른 독재를 낳았다. 이것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프랑스 혁명의 또 다른 얼굴이다.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대한민국, 동덕여대에서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언론은 이를 ‘민주적 시위’라고 포장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프랑스 혁명의 광기와 다를 바 없다. 남녀공학 전환 가능성에 반발한 학생들은 단순한 반대 의사 표현을 넘어섰다. 그들은 건물을 점거하여 출입을 막고, 주요 시설의 출입구를 폐쇄했다. 또한, 학교 내 기물을 부수고, 동상을 훼손하며, 벽과 바닥 곳곳에 스프레이로 낙서를 해 복구가 어려울 정도로 훼손했다. 총장의 얼굴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학교 관계자들에게 폭언을 퍼부었다. 심지어 남성 교수와 배달원조차도 캠퍼스에서 내쫓겼다. 이는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일종의 폭력 혁명이다.


교내 기물을 파손하고, 건물을 점거하는 것도 모자라 동덕여대 내에서 개최가 예정이었던 취업 박람회도 폭동으로 인해 모든 기물들이 파손되어 취업박람회 개최도 못하고, 참여 예정이었던 기업들에게 금전적으로 배상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폭동을 진행하고 기물을 파손했던 동덕여대생들은 집단의 익명성을 방패삼아 그 누구도 배상하려고 하지 않는다. 학교 측에서 추산한 총 피해금액은 약 100억원에 달하지만, 폭동에 가담한 그 누구도 금전적으로 배상해주지 않았다. 이 부분은 폭동이든 뭐든 법적으로 기물파손죄에 해당하여 응당 성인이라면 죗값을 치뤄야 한다. 그들의 시위가 옳든 그르든 중요하지 않다. 기물 파손에 대한 배상은 별도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 응당 맞는 일이다. 하지만 폭동은 폭동대로 하고, 배상은 나몰라라 하는 지성인 답지 않은 야만인의 태도를 보인다.


동덕여대 사태는 프랑스 혁명의 한 장면과 닮아 있다. 혁명의 이름을 내걸었지만, 실상은 광기 어린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이 되었다. 당시 프랑스에서 귀족과 성직자들은 혁명의 ‘적’으로 몰렸고, 그들의 재산은 약탈당했다. 동덕여대에서도 마찬가지다. 학내의 ‘적’으로 규정된 남성들, 그리고 학교의 정상적 운영을 바라는 이들은 탄압을 받았다. 그들이 내세우는 것은 ‘여대의 정체성을 지키겠다’는 명분이지만, 실상은 그 명분 아래 무분별한 폭력을 휘두르고 있을 뿐이다.


여대의 존폐를 논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 방식이 과연 정당한가? ‘여성의 공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자행하고, 반대 의견을 철저히 배제하는 것은 오히려 자신들이 비판하는 ‘남성 중심 사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왕과 귀족을 향한 증오가 극에 달하면서 혁명군은 거리낌 없이 목을 베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는가? 공포정치로 인해 혁명가들 스스로가 단두대의 희생양이 되었고, 결국 나폴레옹이라는 또 다른 독재자가 등장했다.


지금의 동덕여대 학생들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혁명을 외치지만, 결국 그들의 방식은 폭력에 의존하고 있다. 정당한 논의와 토론 없이, 폭력으로 입을 막고 벽을 가득 채운 구호 속에서 과연 진정한 자유와 평등이 존재할 수 있을까?


프랑스 혁명은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혁명의 또 다른 교훈을 남긴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 자유와 평등을 외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국, 폭력으로 이루어진 혁명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것.


동덕여대에서 벌어진 사태를 프랑스 혁명에 빗대어 본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혁명의 광기가 아니라 이성을 되찾는 일이다. 진정으로 성평등을 원한다면, 반대 의견을 폭력으로 짓밟을 것이 아니라 열린 대화와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혁명의 끝에는 또 다른 야만과 혼란만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