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나 IT 업계라면, 평균 실력으로 살아남기
우리 회사 개발본부 한국인뿐 아닌 프랑스, 미국, 노르웨이 등 다양한 국적의 엄청난 역량을 지닌 프로페셔널들이 모여 협동하는 곳이다. 모든 소통은 영어로 이루어진다.
처음 회사에 왔을 때 아주 당황했던 것이, 나는 이미 영어를 평균 실력 이상으로 잘하는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건 회사 제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어서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미리 알아두면 언어적인 측면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 부분을 적어본다.
첫날 CEO가 내게 제품에 대해 설명한 영어로 된 용어 리스트를 건네주셨다.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 개발자들이 공용적으로 사용하는 워드를 집합적으로 모은 리스트였는데, 코드처럼 글자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용은 심플한 영어로 되어 있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이 용어 리스트를 주신 것이 감사했고, 훗날 오시는 분들을 위해 나도 공부할 겸 업데이트를 해보기로 했다. 당연히 백엔드, 프론트, UX 등 기초적인 용어도 몰랐기 때문에 그런 건 구글로 다 찾아 공부했다. 우리 회사 제품 시스템의 서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서버가 뭔지부터 개발자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갑자기 난다) 물어봤다.
질문을 받은 프랑스 개발자 동료는 고맙게도 한 시간 시간을 내어 내게 회사 아키텍처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지도를 그려줬다. "Connect는 여기 있고, 이걸 Backend가 API를 받아서, " 등등 설명을 들으며, 해당되는 단어에 대한 추가 설명을 기존에 있던 용어 리스트에 더 추가해 붙여 넣었다.
개발자 동료가 그려준 것도 PPT에 그대로 담아 캡처해 이미지로 만들었다. 업데이트해 새로 만든 용어 리스트를 Dictionary로 제목 붙여서 노션에 담았다.
제대로 된 용어 리스트가 없다면 나같이 용어집을 여기저기 물어가며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팀원들은 워딩이 통일돼서 좋을 것이고, 나도 제품 용어를 공부할 수 있으니, 한 번 시도해보길 바란다. 이미 용어집이 있다면 더 좋고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IT 업계에 다니니 IT 뉴스를 읽는 것이 중요했다. 코리안 타임스, 타임스 등에서 IT 관련 뉴스를 많이 찾아 읽었고, Computerworld 등에서 기술 테크 뉴스를, BBC나 CNN에서 Tech news를 찾아 읽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공부해야 하는데 게을러져서 조금 소홀히 하고 있다.
현재 CAPM (국제 PM 자격증 중 하나로, 경력이 짧은 PM들이 도전할 수 있다)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 또 프로젝트 매니징 부분에서 영어 실력을 늘리고 싶어 쉬우면서도 적용할 수 있는 영어 단어들이 가득한 사이트를 찾아봤다. 프로젝트 관리 툴을 제공하는 회사 웹사이트인데, 실제 회사에서 실무 하며 써먹을 수 있는 단어가 여기저기 많아서 추천한다.
Asana - 프로젝트 매니징 관련해 좋은 영어단어 + 공짜 업무 리소스 템플릿을 제공한다.
Jira - 프로젝트 매니징 관련해 좋은 영어단어 + 매니징 관련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Gitlab - 이 사이트는 해외 개발자들과 프로젝트 매니징 측면에서 소통할 때 유용한 단어가 많다.
나의 상사와 CEO가 프로젝트 제품의 개선점, 기획과 관련하여 나눈 모든 영어 대화를 저장했다 (슬랙에선 대화 저장 기능이 있다). 슬랙 내 나의 비공개 채널로 대화를 옮겨 아래 포맷으로 정리했었다.
상황: 이미 배포된 프로젝트에 개선점을 상사가 CEO에게 제안
표현: I like this new feature. But should we consider improving the red-boxed part in the image?
배울 영어 표현: Should we consider improving the~
특징: 새로 배포된 기능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을 빨간색으로 박스 쳐서 붙여 넣으심.
추가사항: 상사에게 스크린숏용 크롬 앱 뭐 쓰시는지 문의드리고 나도 다운로드하기
이렇게 적어놓고 다음날 써먹는 등, 상사들끼리의 영어 대화는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대로 복붙 해서 사용할 수도 있어 좋았다. 이건 정말 추천하는 방법이니,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모든 해외 동료들의 대화를 꼼꼼히 읽어보며 공부해보길 추천한다.
외국 동료들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발음이 다 다르고, 쓰는 영어단어를 의미를 다 다르게 파악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프랑스 개발자들의 발음을 못 알아들어서 애를 많이 먹었다. 이건 그들의 발음에 익숙해져야 하는 문제였다. 나와 그들 모두 영어를 잘 구사했기 때문에 영어를 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들과 일해서 결과물을 내는 것이니, 점심시간에 틈을 내어 식사라도 같이 하며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작년에 개발자 분들과 거의 매일 나가 밥을 먹었던 것 같다. 대화하면서 서로 친해질 수도 있고, 열린 마음으로 부탁하면 공짜 기초 개발 과외 약속도 받아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도와주려는 마음을 많이 갖고 계시고, 표현하고 부탁하면 언제든 도와주시려고 하셔서 참 감사했다. 다양한 국적의 팀원들이 모인 국제적 환경에서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고, 그래야 팀이 더 잘 굴러간다는 것을 이분들도 알고 계시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같이 점심 먹자 하고, 놀러 가자 하고, 가르쳐달라고 부탁해보자. 나는 그렇게 살아남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프로젝트 관리자. 애자일을 전문으로 합니다. 아프리카 지역학 전공하고 우연히 IT 회사로 들어가 주니어 PM으로 활동하고 있는 스물다섯 직장인이에요. 홍대 살고 종로에서 일해요.
- 만화 연재: pm_life_24(인스타그램)
- 블로그: babylion.eun(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