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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Aug 16. 2024

오롯이 짊어진 삶의 무게, 클라라의 사랑은 영원했다.

중년에 다시 만난 브람스와 클라라

  특별한 날에 듣는 나만의 클래식 리스트가 있다. 마치 어떤 의식처럼 때가 되면 ’아~그 곡을 들을 때가 되었군~‘ 하게 된다.

새로운 계절이 시작될 즈음에는 비발디의 <사계>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몇 해 전부터는 비발디의 <사계>를 새롭게 재 작곡한 현대 작곡가 막스 리히터의 <새로운 사계>를 번갈아 듣기 시작했다. 비슷한 듯 서로 다른 두 곡을 비교하며 듣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시어머니의 기일이 있는 10월이면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작곡한 미국 현대 작곡가 윌리엄 볼콤의 <우아한 유령>이 내 플레이스트를 차지하고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승화하여 만든 작품인 드보르작의 <내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노래>를 즐겨 듣곤 한다. 이 밖에도 홀로 와인을 마시는 밤에는 드뷔시의 <달빛>, 12월이면 들뜨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작곡한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극 <호두까기인형>을 하루종일 틀어놓게 된다. 그중 ‘눈송이 왈츠’는 어쩌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흩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감상하기 더없이 좋은 곡이 아닐 수 없다. (아니면 드뷔시의 <어린이의 세계> 중 ‘춤추는 눈송이’)


 요즘은 우연히 보게 된 요가 영상의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던 브람스의 피아노 곡을 계기로 클라라 슈만(독일, 1819~1896)의 곡을 매일매일 듣고 있다. 낭만주의 작곡가 슈만과 브람스의 뮤즈이자 작곡가, 연주자로도 빛나는 활약을 펼쳤던 독일 여성 음악가인 그녀의 음악은 그녀의 삶만큼이나 말할 수 없이 깔끔하다.


  그날은 유난히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부엌을 말끔하게 정리한 후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 평화로운 저녁시간은 내가 하루 중 가장 고대하는 시간이다. 하루의 고단함을 내려놓으려 나는 소파밑에 접어둔 요가 매트를 꺼내 거실 한가운데 펼쳤다. 조명을 낮추고 구독하는 요가 앱을 킨 다음 천천히 호흡으로 시작하는 40분 인요가 영상을 선택했다. 한 동작을 오래 유지하며 몸이 그 동작에 적응하는 시간을 충분히 내어주어 마침내 깊고 편안한 호흡으로 유도하는 인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의 휴식을 충분히 취하고 싶었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요가만큼은 이십 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해오고 있다. 사람들과 경쟁하며 시끌벅적하게 움직이는 게임 스포츠 혹은 모르는 사람들과 섞여 운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내게 요가는 언제 어디서나 매트 한 장만 있으면 되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운동이다.

천천히 호흡하며 한 동작 한 동작을 따라 하던 중, 귀에 익숙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브람스 인터메조 작품 118번 중 2번. 좋아하는 곡이 흘러나오자 이내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브람스는 내게 가을을 닮은 남자다. 찬 바람이 불어와 머플러를 두르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쓸쓸하게 낙엽이 떨어지는 초겨울까지 나는 주구장창 브람스의 음악과 함께한다. 자신의 스승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평생 가슴에 품었던 브람스는 슈만이 우울증으로 죽고 난 후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줄줄이 남겨진 아이들과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연주 여행을 해야만 했던 클라라 곁에서 끊임없이 사랑을 구애하며 그녀와 그녀의 자녀들까지 애틋하게 돌보아주었지만 끝내 클라라는 브람스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둘은 죽을 때까지 평생의 친구이자 음악적 동료로 남는다.


 이 곡은 클라라가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자신의 곡 중  한 곡을 연주해 줄 것을 부탁했던 브람스를 위해 그녀가 연주했던 곡이다. 천천히 굽은 손가락으로 브람스의 인터메조 118번 중 2번을 연주했던 클라라. 평생 사랑했으나 끝내 부부로서의 인연은 허락되지 않았던 그녀를 바라보며 브람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그들은 마지막 만남을 가진 후 클라라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일 년 후 브람스도 그녀의 뒤를 따르게 된다.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 “

도대체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어떤 사랑이었길래 그녀의 부음을 듣고 그는 이런 말을 남길 수 있었던 걸까.


  젊었을 때 나는 클라라가 이해되지 않았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이혼이나 재혼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젊은 나이에 남편이 갑자기 죽고 남겨진 아이들을 홀로 부양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녀에게 자신을 사랑한다던 남자를 왜 마다했을까? 사회적으로 유명했던 남편 슈만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 죽은 남편을 아직도 사랑해서? 아니면  자기보다 14살이나 어린 브람스가 미덥지 못해서?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봐도 나 같으면 브람스의 사랑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인요가를 하면서 유유히 흘러나오는 브람스의 인터메조를 다시 듣고 있는 중년의 나는 이제 클라라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끝내 브람스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던 건 아마도 그를 영원히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열렬했던 사랑도 함께 살다 보면 희미해지는 것처럼 젊은 브람스의 정열적인 사랑의 유혹은 한없이 달콤했겠지만 자신의 삶의 무게를 나누어 주는 순간 그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현명한 그녀는 알았으리라. 나를 사랑해 주는 누군가가 어딘가에 변함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고단한 그녀의 삶에 더 큰 위로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나는 음악사 책에 실려진 젊었던 그녀와 나이 든 그녀의 사진을 다시 찾아보았다. 변함없이 그녀는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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