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라는 적>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20살 대학생이 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나보다 잘난 사람이 더욱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취업을 준비하고 사회에 한발짝씩 나가며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면, 이 세상에 나는 먼지만도 못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지금도, 끝없이 매 순간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마주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우리는 누구나 어릴 때, 유명한 거장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한다. 아니, 우리는 언젠간 나도 어른이 되면 저런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나의 꿈 속에서 난 이미 링컨 대통령이고, 빌게이츠이며, 퀴리부인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그 누구도 눈감았다 떴더니 자서전에 오르는 대단한 인물이 되어 세상에 이바지하고 있지 않다. 어린 시절 자리잡은 나에 대한 견고한 자신감과 커다란 꿈은, 가끔 우리 앞에 다가온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럴 때, 나의 에고는 나의 적이 된다.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믿는 건강하지 못한 믿음’, <에고라는 적>이라는 책에서는 ‘에고’를 이렇게 정의한다.
대체불가능한 인간이 되어라, 나만의 브랜드가 있는 인간이 되어라.
‘개인의 브랜드화’가 중시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매순간 내 안의 에고와 전쟁을 벌인다.
내 안의 에고가 나에게 말을 거는 순간, ‘나’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사회에 처음 나온 ‘나’에게
1. PD를 꿈꾸는 나는 모 방송사의 한 프로그램에서 보조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정말 말그대로 ‘보조’였다. 메인 담당자가 시키는 잡다한 일들을 처리하고, 프린트를 정리하고, 김밥과 커피를 시키고, 스튜디오 무대를 정리했다.
처음 보조 일을 시작하고 말그대로 ‘현타’가 왔다. 내가 여기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사람인가. 이런 잡다한 일에 시간을 낭비해야 하나. 나는 더 멋진 일을 할 사람인데!
에고가 나의 머리 속을 점령한 것이다.
‘위대함은 겸손한 시작에서 비롯되며 힘들고 귀찮은 일에서 비롯된다. 덜 중요한 존재가 되고 더 많은 것을 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나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 방식이 오랜 기간 축적되면 그 효과는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다른 사람을 도움으로써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돕는 것, 바로 이것이 ‘캔버스 전략’ 이다.’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하지 않은 사회초년생이 힘들고 귀찮은 일로 시작하는 것은 당연하다.
덜 중요한 존재인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를 ‘보조’하며 기다리고 배워야하는 것이 당연하다.
모든 위대함의 시작은 그러하고, 그 어떤 위대함도 처음부터 위대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는 내 머리 속에서 ‘이런 잡다한 일이나 하고 있을 게 아닌 나’ 라는 이름으로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에고이다.
2.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늘 막막하고 눈앞이 캄캄하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라는 질문의 답은 화려해야 할 것만 같다.
세계의 평화에 이바지하고, 경제성장에 한 몫을 하고,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인물이 되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런 꿈을 세우면 결국 그것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 막막한 것이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과 그 뒤에 있는 원칙들에 충실하면서 일을 풀어나가야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 화려하고 멋진 계획을 앞세워서 일을 해나가려고 해서는 안된다.’
화려하고 멋진 꿈을 꾸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화려하고 멋진 꿈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건 정말 ‘꿈’일 뿐이다. 일단 내가 당장 오늘 할 일을 해나가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 꿈 안에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화려하고 멋진 나’라는 꿈 속에 나를 가둔 채 묶어두는 에고를 떨쳐내야 한다.
‘한밤중에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장문의 이메일을 써 보내거나 누군가를 놀라게 하려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일, 단 한번의 승부에 가진 돈을 몽땅 털어넣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흥분되고 흥미롭지 않은가? 이에 비해 같은 훈련을 반복하거나 꽉 짜여진 회의나 출장, 완벽하게 정리된 스프레드시트, 정교하게 짜인 시스템과 같은 것들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앞의 것들은 당신을 흥분시키지만 무언가를 실제적으로 이루어내는 것은 그 뒤에 언급한 것들이다.’
3. 사회에서 내가 어떠한 일을 하게 될 때, 나는 그 일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바라게 된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고, 나쁜 일을 하면 나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삶과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어릴 적 우리가 읽던 동화에서나 나오던 말이다. 인생은 동화가 아니다.
‘당신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할 수 있다. 무너뜨려야 할 대상이 되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충격적인 실패를 경험할 수도 있다. 당신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패배할 수 있다. 인생은 동화가 아니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나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그것만으로 충분할 때 당신은 그렇게 하면 된다. 이게 훨씬 낫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무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때 그 자체만으로도 자존감과 자긍심이 충만해진다면, 그 결과의 좋고 나쁨에 관계없이 충분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에고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보상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괴테는 이렇게 말한다.
‘적극적인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과연 옳은 일이 ‘생길 것’인지 어떤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행위와 결과가 1:1 함수처럼 필연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 뿐이다.
자꾸 행위와 결과를 연결시키려고 하지 말 것.
‘세상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세상에 줄기차게 계속 무언가를 바라고 또 필요로 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분노나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내모는 행위로 이어질 뿐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그 일을 잘 해라. 그런 다음 흘러가게 두고 신의 뜻을 기다려라.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인정받고 보상받는 것은 그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그저 일을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
실패를 경험한 ‘나’에게
1. 당연히 나에게도 실패는 찾아온다. ‘나는 실패할 사람이 아닌데’ 혹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에고다. 분명히 에고이다.
‘당신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이루고자 한다면 무관심에서부터 노골적인 방해에 이르는 온갖 부정적인 상황들에 맞닥뜨릴 것이다.'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패의 시간이 존재한다. 눈 감았다 떴더니 평탄대로를 건너 성공한 사람은 없다. 그러한 불행이 나에게만 유독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에고이다.
당연히 실패를 경험하면 주저앉는다. 스스로 찾아오는 실패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실패가 가져온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는 나의 선택이다.
‘그린은 사람의 삶에 존재하는 시간의 유형을 죽은 시간과 살아 있는 시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죽은 시간은 사람이 수동적으로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만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고, 살이 있는 시간은 무엇이든 배우고 행동하며 1분 1초라고 활용하려고 노력하면서 보내는 시간이다. 모든 실패의 순간,본인이 의도적으로 선택하거나 통제하지 않는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이 선택을 요구한다.'
‘죽은 시간이 죽어 있는 이유는 시간의 소유자가 게으르고 자기만족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은 누구나 죽은 시간에 붙잡힐 때가 있다. 그 자체는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는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적어도 당신이 한때의 문제를 영속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는 한 대부분의 문제는 일시적인 것으로 그친다. 또한 당신의 치료가 질병의 증상을 고치는게 아니라 질병을 더 심하게 만드는게 아닌 한 밑바닥까지 추락한 후 회복하는 일은 불가능한 게 아니며 대단한 일도 아니다. 그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오로지 에고만이 당혹스러움이나 실패를 실제보다 더 크게 생각한다. 역사 속에서 절망적인 굴욕의 고통을 당했지만 마침내 회복해서 인상적인 어벅을 쌓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2. 실패는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큰 일이 아니다.
대단한 일을 하고자 하는 그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며, 그 당연한 것을 실제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며 나를 죽은 시간의 밑바닥으로 끌고 내려가는 것이 바로 ‘에고’이다.
실패의 시간을 살아있는 시간으로 만들고, 나 자신을 회복해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넘쳐난다. 그것은 그리 큰 일이 아니다.
실패를 겪은 나를, 그리고 그 실패를 극복하는 나를, 너무 크게 만들지 말 것.
성공을 경험한 ‘나’에게
1. 성공과 동시에 오는 감정은 다채롭지만, 그 중 가장 힘이 센 것을 고르자면 바로 ‘자만심’일 것이다.
어쩌면 나의 자신감을 지켜주는 에고와 나의 현실 사이의 교점 같은 순간이었을 것이니 말이다.
‘신이 없애버리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신이 맨 먼저 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자만심이다.
뽐내지 마라, 그렇게 해서는 당신에게 이로운 게 아무것도 없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경고하고 있지만 그 순간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우리의 지식으로 이루어진 섬이 커지면 커질수록 무지의 해변도 그만큼 더 커진다.’
성공했을 때 우리는, ‘거 봐’라며 자신만만해진 우리의 에고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
‘자기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을 것, 자기보다 아래에 있거나 위에 있는 사람을 경멸하지 않을 것, 특별대우를 바라지 말 것, 분노하고 싸우거나 우쭐대거나 군림하거나 생색내거나 자기 스스로를 엄청나게 중요한 인물로 인식하지 말 것, 바로 이런 것을 추구하자는 말이다. 냉철함은 우리의 성공에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추와 같다.’
2. 우리는 자꾸만 지난 나의 성공을 하나의 스토리로 풀어내려한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결국 원인과 결과를 찾아 연결하려는 시도이며, 나를 그런 순간들을 지나쳐온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지나간 일들을 놓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는 것은 인간적인 충동이다. 그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자기 이야기를 써내려가다보면 극적으로 만들고 싶어지고 결국 진실로부터 멀어져 오만으로 이어지고 만다.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그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굳어져버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 되어버린다.’
특히나 성공은 그렇다. 나의 성공은 보다 극적이길 바라며, 나의 성공에는 이러한 나의 통찰력과 능력이 원인이 되었기를 바란다. 우리 스스로 지나간 나의 성공에 서사를 불어넣다보면, 결국 진실로부터 멀어진다.
세상 모든 실패가 나의 잘못이 아니듯, 나의 성공도 100% 나의 능력이라고 할 수 없다. 운과 타이밍 등 제어할 수 없는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한 곳에 모여 나의 성공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결국 나를 그 안의 영속된 주인공으로 가둔 채,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앞에서 말한 자만심으로 이어진다.
‘나는 내 실수를 찾으려 할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는다. 당신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들을 되돌아볼 때, 나는 그 행위에서 오로지 위험만을 볼 뿐이다.’
엘리자베스 노엘레 노이만이 말했다.
‘자기가 얼마나 잘했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대단한지 아무리 돌아보고 곱씹는다고 해도 자기의 부족한 점을 개선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순간, 에고는 나의 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