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관계에서의 말의 쓸모

by 이성출



말을 빨리하라는 몸짓의 강요를 받았었다. 상대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나도 길게 느리게 말하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는 문자를 포함한 언어가 아닌 말에 국한한다. 또, 단절을 목적으로 하는 말의 쓸모는 귀찮아서 제외했다.


감정의 배출이 대부분일 것이다.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목적은 마음속에 두고 싶지 않은 감정을 말로 뱉어내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얼굴을 마주보면 더 좋고 전화 통화도 좋고 카톡도 좋다. 대신 교환이 이뤄진다. 내가 하고 상대가 듣고 상대가 하고 내가 듣고. 누가 더 하거나 덜 하거나는 중요하지 않다. 교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된다. 단, 듣지 않거나 부정하면 깨진다. 충분히 감정을 배출하면 편해진다. 거기서 지속되면 다시 감정에 쌓이기에 만남을 중단하는 것이 좋다. 아참, 되도록 비밀이 유지되는 상대이기에 긴밀함이 필요하다. 서로의 비밀을 가지고 있기에 긴밀해지기도 하다.


정보의 교환이다. 각자의 이익을 목적으로 만난다. 이익이 있는 원인의 신뢰가 중요하다. 에토스를 많이 가진 사람은 이 만남에서 많은 이들에게 선호된다. 의도된 거짓일 수도 있고 부풀어진 정보일 수 있지만 그럴수록 솔깃하다. 이익을 가져다줄 거란 기대는 기분을 좋게 한다. 그 상대를 보기만 해도 심지어 생각하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교환은 같은 형태가 아니어도 된다. 칭찬이 되기도 하고 돈이 되기도 하고 다른 이익이 되는 정보가 되기도 한다. 그 기대로 결혼이나 친구 관계로 묶어질 수도 있다.


감정의 연대가 있다. 자칫 감정의 배출을 하는 말에서 감정의 연대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아니라 상대가 중심에 있다. 물론 상대도 마찬가지다. 서로 알기에 말의 의미와 의도는 장치일 뿐이다. 마음을 알기에 말은 거추장스럽다.


위의 셋은 단계적 구별이 아니다. 어느 관계에서도 동시에 나타날 수 있고 개별로 나타날 수 있다. 대상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선택될 수도 있다. 전근대, 근대, 현대의 가치관을 함께 가지고 있고 상대에 따라 꺼내 쓰는 게 다른 것과 같다.


피부가 속살을 지키는 것과 같이 인간에게 말은 자신을 보호해 준다. 추워서 피부를 두껍게 하는 수고가 싫듯이 말로 나를 보호해야 하는 어려움도 피하는 게 나을 거라고 본다. 인생은 길지 않은데 달콤함이라도 많은 게 낫지 않은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