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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lee Apr 21. 2024

천국과 지옥이 한 병실에: 지옥편

다시 생각해도 억울한 하루

일을 하다 보면 내가 같은 마음으로 케어를 해도

같은 날 같은 시프트동안

내가 최고라는 환자와 나 같은 간호사는 처음 봤다는 환자가 있다. 


38호실도 그런 병실이었다. 

천국과 지옥이 한 자리에 있는 그런 병실이었다. 

이 분이 풀리기 전에 지옥 같은 병실을 먼저 써봐야지. 


내시경을 받고, 출혈이 있어서 응급실에서 우리 병동으로 온 환자이다.

신경과에 왜? 하겠지만 내과병실이 부족해서 

우리 병동에서도 일정 부분 내과 환자를 받아서 그렇게 온 환자이다. 


응급실에서 넘어오고 아침에 내가 나이트 간호사에게 받은 환자라서

가끔 예의 없고, 신경질적인 거 빼면 다 괜찮아.

이러기에 뭐 다들 그러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평소처럼 라운딩을 하는데,

환자가 질문이 있다고 나를 불렀다.


" 내 다음 피검사는 언제인가요? "

" 다음 피검사는 내일 아침이에요. 매일 아침 피검사가 있어요."


" 아침에 의사가 2-3시간 뒤 피검사랑 수혈을 할 거라고 했는데요?

 그 피검사가 언제인지 물어보는 거예요."

" 저는 따로 오더 받은 게 없어서 피검사를 제 임의로 진행할 수는 없어요."

" 오더를 받으면 말씀드리고 피검사 진행할게요. "


" 닥터 S 가 저한테 말했어요. 닥터 S 알아요?"

" 저는 닥터 S가 누군지 몰라요. 하지만 담당의사에게 환자분 피검사와 수혈에 대해 물어볼 수는 있어요."


" 저기요. 저는 지금 아주 심각한 상황이에요. 출혈이 있다고요. " 

" 머리가 어지럽고 기운이 없어요. 당신은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몰라요. "


" 환자분의 불안함과 걱정 이해합니다. 하지만, 의사의 피검사 오더 없이

제가 임의로 피검사를 할 수는 없어요. " 


" 당신 간호사로 일한 지 얼마나 됐죠? " 

" 반년 정도요." ( 이때 이걸 대답하지 말았어야 했다. ) 


내가 환자에게 다시 어떻게 피검사를 할 수 있는지,

과정이 어떠한지 설명을 할 때 환자가 내 말을 끊고 말했다.


" 저기요. 저는 어떤 과정이 있는지 전혀 상관하지 않아요.

슈퍼바이저나 의사를 데려와요. 당신은 이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내가 얼마나 위급한지 전혀 몰라요. "


" 저희 병동 차지널스를 데려와도 답은 같을 거예요. 

의사에게 노티는 해드릴게요 " 


그러고 혹시 몰라 환자의 바이탈을 쟀다.

125/ 75, HR 78 O2 sat 96%

교과서적인 바이탈이다. 


의사에게 노티를 하고, 

거기에 더 있다간 내가 말릴 것 같아서 우선 나왔다. 


환자가 바라던 대로 의사가 피검사를 오더 해줬고,

피검사를 했다. 어지럽고 가슴이 아프다길래 가슴 엑스레이도 했다.


의사는 큰 걱정 안 할 거라고 환자에게 전 달해 주라 해서

우선 전달을 해주니 또다시 자기가 아주 위중한 상황이라는 환자. 


" 수혈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의사 오더가 있어야지 할 수 있어요."

" 오더 없이는 제가 진행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에요."


" 너 troponin 이 뭔지 알아? 헤모글로빈이 뭔지는? " 

" 넌 이 상황을 전혀 이해 못 하고 있어. " 

" 이 상황을 제대로 아는 간호사를 데려와 " 


" 나는 이 상황을 다 알고 있고, 

당신 담당 간호사인 제가 아마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 거예요. "


환자가 자신의 검사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고 거부하니

나는 의사를 페이지 해서 다시 전화로 말을 했다. 


의사가 어이없어했지만 한 시간 정도 뒤 환자를 보러 왔고, 

환자가 바라는 대로 수혈오더를 내줬다. 


수혈을 하게 될 거라고 이야기를 하러 가자

환자가 다시 물었다. 


" 너 이거 해본 적 있어? 몇 번이나 해봤어?"

" 모든 라인이나 피는 다 새 거지? "


" 셀 수 없을 정도로 해봤어요. "

" 모든 라인이나 혈액은 다 새것을 사용할 것이고, 

모든 과정은 다른 간호사와 체크를 하며 진행돼요. 

환자 앞에서 혈액을 오픈할 거예요. " 


( 사실 난 수혈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


" 너 혹시 어느 나라에서 왔어?"

환자 가족의 어이없는 질문. 


" 전 한국사람이에요. 한국에서 왔어요. "

" 다행이다. 난 필리핀 간호사는 싫어. " 


이걸 어떻게 받아쳐야 하나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고민이 들었다. 


" 환자가족분, 부적절한 언행은 삼가주세요. 

여기 있는 간호사 모두 충분한 능력과 지식을 갖췄습니다. " 


여기에 더 있느니 내가 죽지 하고 그냥 자리를 떴다. 


환자에게 수혈과정을 설명하자,

환자가 저녁에도 같은 의사가 상주하냐고 물었다. 


" 나이트 때는 나이트 당직 레지던트 의사가 도와줄 거예요."

" 그 사람 이름은 뭐야? "


" 글쎄요. 레지던트들이 턴을 돌기 때문에 잘 모르겠네요. "

" 넌 그것도 몰라? " 

" 사실 난 레지던트에게 받는 게 마땅치 않아. 

그들은 트레이닝 중이잖아. " 


( 아침부터 그리 찾았던 의사도 레지던트였다. )


" 그런 말은 부적절한 것 같네요. 

그런 코멘트를 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 의료진을 존중해 주세요 " 


" 너는 그런 말을 할 수 없겠지. 하지만 난 할 수 있어. " 


그들의 부적절한 언행과 예의 없는 태도는 함께하는 12시간 동안 지속됐다.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은 함께 화를 내며 자기가 싸우러 가겠다고 하다가

괜히 분위기를 안 좋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나중에 가서 조용히 말을 했다. 

수혈을 하면서 하나하나 물어보며, 함께 온 다른 간호사에게도 무례한 질문을 했고, 

숙련된 간호사인 O는 그거에 크게 반응하지 않으며 대응했다.

그러니 조용한 환자와 가족의 모습을 보고 강약약강이었구나 뼈저리게 느꼈다. 


오버타임을 하며 환자의 잘못된 언행에 대해 노트를 남겼고,

매니저와 간호총괄리더(?)인 간호사에게 이메일을 남겼다.


병원에 갑작스럽게 오게 된 것이 심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진을 빠지게 하는지 이해를 하기 때문에, 예민한 환자들이 와도 최대한 이해를 하고,

그들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입원기간 동안 최대한 심적으로 편안하게

메디컬케어를 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어떠한 태도와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 걱정이 됐다. 


나를 위로해 주고 다음부터는 자기를 부르라는 동료 간호사들을 보며

눈물을 삼키며 리포트를 해주고, 

다음날 내 담당환자를 정하는 간호사에게 

나를 그 병실 근처에도 두지 말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가스라이팅을 하며 끊임없이 나를 테스트하는

최악 중 최악의 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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