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둘째 주 목요일. 이 날이 어떤 날인지 알고 계신가요? 바로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날인데요, 오늘은 교문을 나올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풀었던 마지막 문제의 정답을 삶에 마킹하려 합니다
<수능에 대한 소고(小考)>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면 문뜩 오늘 하루가, 지난 3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갔음을 느낍니다. '조금만 더 공부할 걸' 수능이 끝난 이 시간이면 매번 하는 생각입니다. 항상 끝나버린 일보다는 하지 않았던 일이 더 후회됩니다. 비단 입시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시판에 "사연 없는 정시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시러들은 처음 정시를 선언할 때도, 그리고 원서를 넣을 때도, 학교에 합격할 때도 항상 아쉬움과 미련, 할 말이 남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탐구영역이 끝나고 대기시간에 가채점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메디컬에 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수능을 원하는 만큼 못 친 것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습니다. 정신승리 같지만 어쩌면 삶에서 수능이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정말 슬픈 것은, 이 아무것도 아닌 시험의 아무것도 아닌 부분을 차지하는 어떠한 좌절감과 허망함을 이겨낼 여력조차 남지 않은 오늘의 현실이 제 스무 살의 대가라는 사실입니다. 제가 그토록 간절히 추구해 온 가치들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깨달았을 때 슬펐습니다. 제가 그토록 간단히 포기해 온 가치들이 정말 소중했던 것임을 깨달았을 때 슬펐습니다.
그동안 삶의 한 도전으로서 n 수를 선택해 왔다고 믿어왔는데 사실 도전이 아니라 그저 현실로부터 도망쳐 왔음을 느낍니다. 새롭게 도전하는 것이 두려워 그나마 익숙했던 그곳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할 순간입니다. 남은 20대를, 어쩌면 평생을 열등감으로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역시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목표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학과를 소개할 때 자존심이 상해서 일지도, 좀 더 거칠게 말하면 "가오"가 상하기 때문일지도요. 언젠가 그 원인을 알게 되는,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이 스무 살의 치기였음을 깨닫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고려대 어문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메디컬에 가지 못한 제 인생은 실패한 것일까요? 이것 또한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히 아는 것은 인생은 수험장 밖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상투적으로 보이는 말이 사실 그 어떤 말보다 본질에 가까웠음을 이제는 압니다. 수십 개의 흑색 마킹으로 뒤덮인 5장의 omr카드가, 이역만리 아라비아의 숫자로 점철된 1장의 성적표가, 직사각형이 쌓여있는 9칸의 진학사정시예측 칸 수가, 우리네 삶을, 우리네 스무 살을 결정짓지 않음을 이제는 압니다. 10시간 남짓한 수험실에서의 하루가 100년의 삶을 결정짓지 않음을 이제는 압니다.
세는 나이로 한 번, 만 나이로 한 번, 인생의 단 두 번뿐인 스무 살을 바친 그 시험을 이제는 그만둬야 할 순간입니다. 혹시 컴퓨터 사인펜을 놓던 순간이 기억나십니까? 컴싸를 내려놓을 때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4교시 탐구영역 제2선택과목 종료령이 울릴 때 내려놓으면 됩니다. 근데, 샤프를 들 때는 이유가 있어야만 하거든요. 처음 샤프를 들었던 이유가 더 이상은 떠오르지 않던 24년 10월의 어느 날 제 수능은 이미 끝났습니다. 혹자는 해방을, 또 다른 이는 허무함을 말하겠지만 어째서인가 저는 서운함과 그리움을 더 크게 느낍니다. 아마 지나간 기억 속 추억들이 붙잡는 것이겠지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즐거움도, 슬픔도, 그곳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설레임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아슴푸레한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웃어봅니다. 반면 수없이 많은 모의고사에서 무수히 적어 내려간 필적확인문구들은 정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기억하기 싫을지도요. 다만 봄 없는 세 번째 겨울에 끝을 고하는 이 순간, 단 한 문장만은 또렷이 기억합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적확인문구,
<저 넓은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라>
- ??? 배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