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는 한글 맞춤법의 기본이요,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는 문학적 도구다. "글쓰기"라는 단어는 "글을 쓰는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 독자는 글자 자체에서 오는 완결성과 글을 쓰는 행위의 "주체성"을 느낀다. 반면 "글 쓰기"는 명사 글 뒤에 조사가 생략된 형태로 "글을 쓰다"라는 절에 명사형 어미가 붙어 활용된 것이다. 이는 글의 객체성과 미결성을 부각한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작가의 선택에 따라 글의 뉘앙스가 아예 달라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글을 쓰는 행위는 작가의 선택, 즉 주관에 따라 많은 것이 결정된다. 나는 이 주관과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럴 기회가 거의 없다. 하지만 운 좋게도 최근 지인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처음 "글 쓰기"에서 벗어나 "글쓰기"를 한 순간은 언제였는가. 그때 감정은 어떠하였는가. 왜 글을 썼는가. 이 질문들을 통해 따분하고 머리 아픈 글쓰기라는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처음 쓴 글은 작년 이맘때 작성한 편지였다. 다시 열어 본 한 장의 PDF에는 한 해의 겨울이 담겨있었다. 나는 돌아오지 않을 답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뤄지지 않을 바람을 적어나갔다. 이후에는 주로 수필, 비평문 등 내 주관이 드러나는 글을 써왔다. 지인은 주로 소설류를 썼다고 한다. 사실 소설 쓰는 사람은 처음 봐서 좀 신기한 경험이었다. 아무튼 대화를 나누며 느낀 것은 글을 쓰는 행위의 본질이다. 수필과 소설은 다른 장르다. 하지만 자아를 성찰한다는 점에서 그 지향점, 즉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수필은 경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쓰는 갈래다. 이 과정에서 당시 감정과 결정 근거, 결과를 떠올리고 결국 자아 성찰로 이어진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에 기반한 글이다. 상상은 결핍을 채우는 행위로 작가의 내면에서 만들어진다. 작가는 상상을 형성하고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는 단계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본다. 결국 소설을 쓰는 것은 자신에 대한 성찰을 수반한다. 이 처럼 주체적 행위로써 "글쓰기"란 스스로를 고찰하고 자아를 세계화하는 과정이다.
"꽃 한송이를 부탁하면 봄을 가져다주는 사람". 내가 키보드를 두드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잘 드러내는 문장이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유치하지 않게, 흔히 말하는 짜치지 않게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심지어 차이 역시 뭔가 미묘하다. 이 문장만 보아도 그렇다. 그냥 "다정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과 내용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왜 굳이 저렇게 긴 문장을 공들여 만드는 것인가. 글이라는 매체는 대화나 영상과 달리 전달 수단이 아주 한정적이다. 몇 자의 텍스트에 감정, 논리, 주장을 모두 담아야 한다. 심지어 글자 수 마저도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가가 자신의 주관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한 문장에 다양한 것을 눌러 담고 (공)감각적 이미지를 부여해서 임팩트 있게 전달해야 한다. 그렇기에 굳이 귀찮은 일을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대충 표현하는 것이 뭔가 없어 보여서 자존심 상하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나는 이런 표현들을 깊게 이해하는 것이 내 주관에 공감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이 문장들은 결국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감정, 주관 등을 함축적으로 정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도 비슷하게 생각했다. 정리하면, 글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를 깊게 성찰해서 주관을 만들고 이를 효과적인 표현을 통해 드러내는 과정이다.
요즘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면 아주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인것 같아요... 도대체 왜 자신의 감정을 말하거나 확실한 근거에 기반하여 판단하는 상황에서 조차 추측성 어미를 사용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사실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투를 사용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것 외에도 내가 지양하는 습관들이 여럿 있다. 먼저 ~해보자, ~인 것인가?처럼 독자에게 말을 거는 문장들이 있다. 이는 글쓰기 교양 선생님에 따르면 글을 전개하는 논리적 힘이 약해서 간접적으로 글을 전개하는 습관이라고 한다. 물론 적절히 사용한다면 독자가 친근감을 느끼거나 글에 몰입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돕지만 안타깝게도 시도 때도 없이 쓰이는 게 문제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 참 노력하는데도 쉽지 않다. 근본적인 논리력을 기르고 글의 큰 구조를 짜는 연습을 해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웠으면 누구나 대문호가 되었겠지. 보라, 지금 이 글에서도 설의와 말 걸기가 꽤 나오지 않는가. 또 다른 습관은 감정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감정을 드러내고 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 글, 수필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해지면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아닌 감정이 글을 쓰게 되고 독자가 불편함을 느낀다. 이 외에도 동어나 동일 어미의 반복 등이 있다. 이것들을 지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관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 즉 글의 본질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항상 이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단순한 질문일수록 명료한 답을 하는 것은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단순한 질문이 결국 핵심, 본질을 담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좋은/글. 두 어절을 이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글이 뭘까? 논문이라면 양질의 정보를, 소설이라면 재밌는 이야기를, 수필이라면 깊은 성찰과 경험을 담아야 좋은 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르에 따라 달라지는 복잡한 대답은 단순한 질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글의 종류와 무관하게 "좋은 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 하나의 문장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위 답변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결국 글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논문도, 소설도, 수필도 모두 필자의 주관을 담아 타인에게 공유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한다. 2문단에서 살펴본 "글쓰기"의 본질을 고려하면 "좋은 글"이란 필자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글이다. 좋은 글이라… 모든 작가는 그것을 꿈꾼다. 내 타이핑이 그저 무의미한 단어들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글 쓰기’가 아닌 ‘글쓰기’가 되어 진심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두드림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