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평 02 <노아> : '저출산'과 '생태론'의 교묘한 관계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큰아이가 겨울방학을 하고 집에 함께 있게 되었다. 마침 연초라서 성경 읽기의 진도가 창세기였다. 영화를 같이 볼 만한 게 뭐가 있을까 찾다가, 오래전 가볍게 보기 딱 좋던 <에반 올마이티>(2007)를 틀어 주었다. 전작인 <브루스 올마이티>(2003)와 함께 코미디 장르의 대가인 톰 새디악이 만든, 전형적인 기독교 혹은 미국 영화라고 여겨진다. 짐 캐리에서 스티브 카렐로 주인공은 바뀌지만, 하나님 전문 배우는 모건 프리먼이 계속 맡았던 게 인상적이다. 노아의 홍수를 현대사회의 생태 문제로 적용시켜 정치적 이슈로 풀어낸 점이 나쁘지 않았다. 방주를 성경에 나온 규격대로 만들어본 점도 영화사적으로 의미가 있을 테다. 물론, 안티 기독교 입장에서는 노골적 주제도 문제겠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나이브’하다고 비판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딱 좋은 먹잇감이다. 코미디 장르에 뭘 더 기대하는가.
그러다 몇 해 전 아내와 함께 본 <노아>(2014)라는 유태인 감독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작품이 떠올랐다. 굳이 유태인임을 강조한 까닭은 그가 비록 무신론자라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경, 정확하게 말하면 구약을 얼마나 많이 읽었을까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흔히 하브루타로 불린 그들의 교육방식에 근거하자면 아버지가 읽어주는 성경으로 그는 아마 배웠을 것이다. 이러한 장면이 이 영화의 한 대목으로 등장한다. 노아가 밤마다 꿈에서 보게 된 천지창조부터 인간의 타락으로 연결되는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그 옛이야기를 아빠인 노아가 직접 가족들을 모아놓고 들려준다. 성경의 족보를 따지자면 아담부터 노아까지 9대라고 한다. 셋의 자손을 대표하는 노아네 가족, 가인의 자손을 대표하는 두발가인의 왕국 간 대결 구도는 그 사실 여부를 떠나 흥미롭다. 두발가인은 아담의 7대손이니 그가 노아의 아비 라멕을 죽이고, 노아가 그 원수와 맞서는 설정이 꽤 일리 있다.
성경에 두발가인은 대장장이의 조상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워쳐스, 즉 감시자들과는 왜 사이가 안 좋을까.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기독교 영화가 아니며, 장르도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계명성에서 온 타락 천사가 가인의 자손들, 즉 타락한 인간들의 문명 발전에 도움을 주었으나, 이 워쳐스가 신으로부터도 인간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는 설정은 외경으로 알려진 ‘에녹서’에 전해진다. 에녹은 므두셀라의 아버지, 즉 노아의 증조할아버지이다. 창세기에 그가 죽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최초의 인간으로 기록되었으니, 에녹이 하늘에 가서 보았을 우주의 신비란, 기독교가 정전으로 인정하지는 못해도, 풍부한 상상력을 지녔을 법하다. 워쳐스 중 적극적으로 노아를 도운 ‘셈야자’ 같은 캐틱터가 에녹서에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구비전승된 설화들을 어린 시절부터 읽어왔을 유태인 감독의 상상력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가족 코미디를 겉 형식으로 취할 뿐 기독교의 주제를 속살에 담아 생태주의를 직접 표방한 <에반 올마이티>를 종교 영화로 보는 입장은 인정한다. 그러나 <노아>도 종교 영화로 보는 입장은 비평을 종합해 볼 때 그 자체가 코미디다. 기독교나 유태교나 모든 종교가 인정하는 노아의 홍수를 소재로 삼아, 인간성에 대한 탐구를 시도한 ‘철학 영화’로 보는 게 가장 타당할 테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재난 영화처럼 포장된 건 흥행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모든 작품을 보지 못했으나, 내 짧은 감상 경험상 <블랙스완>(2010)과 <더 웨일>(2023) 같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그의 세계관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한다.
두 영화의 대사를 기억하자면, 토마스 단장이 ‘완벽함이란 통제하는 게 아냐. 흘러가게 두는 것이기도 해.’라고 충고한 일탈과 해방을 끝내 경험하게 된 니나가 마지막 장면에서 흑조로 변신하고 피를 흘리며 ‘나는 완벽함을 느꼈어’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기쁨이 되고자 백조처럼 노력해 온 완벽주의자 발레리나가 정신질환을 앓으며 분열과 환각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자살로 예술의 완벽함을 추구하게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백조와 흑조로 이분화할 수 있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서사인 셈이다.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갈등을 ‘신의 계시’와 ‘인간 자유의지’로 재해석한 영화가 <노아>인 게 아닐까. 그러나 최근 <더 웨일>을 보면 ‘누가 누구를 구원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라며 늘 곁을 지켜주던 친구 리즈가 전도사 토마스를 비아냥거리며 한 말에 대해, 찰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고. 그러니까 사람은 놀라운 존재야’라며 자신의 딸 엘리가 토마스를 도왔다면서 항변한다. 신의 영역으로만 여기던 구원의 문제를, 인간이 죽음을 통해 시도한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글로 대런 애러노프스키의 전체 작품세계를 쭉 훑을 만큼, 나 스스로가 깜이 되지 못한다. 그저 이 <노아> 영화에서 주목하는 철학적 질문 가운데 한 가지만 콕 집어서 생각해보고 싶다. 워낙 이 영화의 갈등 서사에 대한 좋은 비평이 많기에, 여태껏 언급이 안 된 이야기를 하나 찾아내련다. 마침 아이들과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모세가 기록했다고 알려지는 창세기에서 노아에 대한 언급은 5장 마지막 절부터 10장 첫 절까지며, 본격적인 서술은 6장부터 9장까지로 네 개의 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 안 것인데, 노아가 신으로부터 방주에 대한 사명을 받은 때와 자녀를 가진 때가 비슷할 것으로 유추하는데, 그때 나이가 무려 5백 세라는 점이다. 그리고 홍수 사건을 경험한 것이 6백 세였으며, 노아는 그의 10대손인 아브라함까지 보고 9백50세까지 살다가 죽었다고 전한다. 아담에서 노아까지 10대, 노아에서 아브라함까지 10대, 노아로부터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지만, 바벨탑 사건까지 겪으며, 인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흩어졌다는 점을 고려할 때, 흥미로운 대목은 두 가지다.
첫째, 이제 므두셀라와 노아만큼 9백 세 넘는 나이까지 사는 자손들이 없다는 점이다. 대체로 3백, 2백, 1백 세 안팎으로 수명이 줄어든다. 둘째, 노아의 홍수 이후 생육과 번성에 대한 신의 명령이 다시 선포되었기에 대체로 30대에 자녀를 출산하지만, 정작 노아와 그의 아들들은 출산을 엄청나게 늦게 한 셈이다. 노아는 무려 5 백세 가량, 노아의 세 아들, 셈, 함, 야벳의 나이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셈이 홍수가 끝나고 2년 후 1백 세가 되어서야 자녀를 출산했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영화의 설정이 셈만 아내 일라가 있을 뿐, 함과 야벳은 아내가 없던 총각으로 나온다는 점이 과도한 상상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 성경을 토대로 따져 보면, 셈과 함과 야벳은 아내를 맞이하고도 1백 년 가까이 자녀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여기서 질문이 생긴다. 노아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은 요즘 말로 치면 ‘딩크족’이 아니었을까?
딩크에 대해서 나는 ‘할많하않’이자 ‘낄낄빠빠’의 입장을 고수한다. 나는 종교가 기독교이고 두 아이를 키우지만, 내 주변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아이를 갖지 않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대런 애러노프스키는 노아의 고민을 오늘날 딩크 트렌드에서 발견한 것이 아닐까. ‘인간의 죄성으로 인한 세상의 타락은 나의 세대에서 끝내야 한다’와 ‘내 사명은 인류를 끝내는 데 있고, 그것이 세상을 구원하는 길이다’로 요약이 된다. 어쩌면 극단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생각을 오늘날 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도한 논리일까. 인간 종의 멸절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는 게 지나쳐 보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개인의 삶과 그 개인의 욕망이 구조화된 사회가 벌리고 있는 사건들, 예를 들면 자연 파괴, 학살, 전쟁, 전염병, 지구 온난화, 이 모든 재앙의 결과가 결국 인류와 지구의 멸망으로 향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무의식 간에 표현된 삶의 형태가 비혼 혹은 딩크인 셈이다. 종말론적 세계관이 다른 게 아니라면 무엇인가. 대홍수와 인류 멸절에 대한 예언을 믿었던 노아네 가족이 자녀를 가지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노아가 사명을 받은 시점과 자녀를 가진 시점에 대해서는 엄밀한 연구가 더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최소한 이 영화가 주장하는 메시지와 현대사회의 저출산 현상이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만큼은 확인된다.
이 철학적인 영화감독이 노아의 방주라는 소재를 통해 오늘날 던진 메시지는 생태주의라고 본다. 인간만 사라지면 지구는 회복될 수 있다는 단순한 메시지 말이다. 어쩌면 맞는 말이다. 기독교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 자체로 나 역시 인간중심주의에 푹 빠져있음을 깨달았다. 죄의 근원이 되는 인간, 이 인간이 사라진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낙원이 회복될 수 있다는 노아의 생각, 과연 영화 속에서만 그러했을까. 인간성에 대한 환멸을 뼈저리게 경험한 노아가 마냥 쉽게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소망하게 되었을까. 그 지점에서 영화 속 주인공 노아는 독하리만치 완벽주의와 원칙주의에다 우울증 환자로까지 묘사된다. 다른 가족들이 방주 밖 인간들이 죽어가며 외치는 비명에 괴로워할 때, 하나님의 사명이 이것이라고 굳게 믿는, 게다가 둘째 아들 함이 그토록 아내를 요구했는데도, 자식의 개인적 욕망이 중요한 게 아닌, 인간 자체의 멸종을 설파하는 모습에서는 전체주의자의 면모도 엿보인다. 그렇게 ‘독한 딩크족 영감’으로 그려진 노아가 선택한 세계가,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태계가 회복되는 세상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이 관점에서 흥미로운 영화 속 장치가 있는데, 방주로 들어온 동물들이 질서 있게 생활할 수 있게, 수면제 같은 허브 향료를 사용하는 장면이다. 늘 온갖 동물들, 그들 중 육식을 하는 동물들도 있는데, 방주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평화롭게 꽤 오랜 기간을 지낼 수 있었을까, 참 궁금했는데, 이 영화가 나름의 답을 준 셈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재우는 게 답’이다. 솔직히 사람의 아이를 키우다 보면 육아에서도 재우는 게 답인 경우가 많다. 물론, 이제 나의 자녀들은 재운다고 잘 나이가 아니긴 하지만. 그 덕분에 다른 상상을 했다. 만에 하나, 노아의 가족 가운데 돌봐야 할 아이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과연 이 생태적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을까. 현실에서는 사람의 아이를 키우는 ‘육아’와 전 지구적으로 종을 보전하는 ‘생태’를 딱 양분할 수 없겠지만, 이 영화는 그 이분화를 성공적으로 해내었다. 전작인 <블랙스완>이 ‘백조’와 ‘흑조’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낸 것처럼 말이다.
이 이분법적 측면에서 볼 때, 어르신들이 하는 꼰대 발언 중 ‘요즘 젊은 친구들은 애를 안 낳고 개만 키워’ 같은 말을 곱씹으면, 이 영화 <노아>와 참 닮은 듯하다. 다시 한번 밝히지만 인간의 저출산 문제와 반려동물 증가가 사회적으로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는지까지 따질 만한 논리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러나 그 둘의 관계가 교묘하게 얽혀 있다는 점만큼은 느낄 수가 있다. 이 영화 속 갈등 서사의 정점은 아마 두 쌍둥이 손녀를 만나 칼로 찌르려고 했던 노아가, 자신도 모르게 그 아이들 얼굴을 보는 순간 포기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인해 방주에서 나온 후로도 가족들과 떨어져 우울증에 시달리며 주독에 빠진 채 지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아들들과 며느리 일라가 찾아와서 그날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나누며, 노아는 스스로 신을 실망시켰고 가족들을 실망시켰다고 자학하지만, 그 선택 자체가 어쩌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다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고, 두 번째 아담 같은 인류의 생육과 번성 재개를 선포하며, 무지개 광선 시전으로 영화는 끝난다.
방주 갑판 위에서 손녀들을 죽일 뻔한 노아에게서 묘하게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겹쳐 보이고, 이삭을 제물로 바치러 모리아산으로 올라갈 때 아브라함의 내적인 불안에 초점을 맞춘, 유신론적 실존주의자 키르케고어의 <공포와 전율>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기존 신학은 신의 뜻이 인간의 순종으로만 이루어진다고 ‘나이브’하게 본 것을, ‘신 앞에 선 단독자’가 겪게 될 ‘신앙의 역설’로 풀어낸 점이 현대철학적으로 유효하다. 신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 같은 어려운 주제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인간이 어떻게 신의 뜻을 온전히 예견할 수 있을까. 그저 고뇌하는 삶으로 경험하고 실수하며, 그 과정에서 신의 뜻을 어렴풋이 깨닫게 될 뿐이니 말이다.
* 참고자료 : 아서 가이서트 글과 그림, 이수명 옮김, <노아의 방주(The Ark)>, 비룡소, 1988; 2003;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