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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이 Nov 15. 2023

추악해도 영원히 사랑받을 세계

바빌론(2022) - 주관적인 영화 리뷰

※ 본 리뷰는 '바빌론'(2022)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왓챠피디아


광기와 욕망에 물들었던 그때 그 시대

'미쳤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초반 30분

영화 제작을 꿈꾸던 잡일꾼 매니 토레스(디에고 칼바)는 어느 날 파티에서 뛰어난 스타 지망생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둘이 파티를 즐기던 와중 넬리는 영화 제작 위해 긴급 캐스팅 되고, 매니는 당대 유명 영화배우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의 심부름꾼이 되는 걸 계기로 본격적으로 영화 산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바빌론은 1920년대 후반 유성 영화가 개발된 시기를 배경으로 영화 제작 산업 속 스타들의 흥망성쇠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 당시 암담했던 영화제작 환경을 과감하게 보여주기에 영화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관객들은 여러 잔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마고 로비, 브래드 피트, 디에고 칼바 등 뛰어난 주연들이 관객들의 감정선을 잘 잡아주고 특히 ost는 '라라랜드'를 만들었던 데미언 셰젤 감독의 음악적 능력이 한껏 발휘되어 작품의 광적인 분위기가 청각적으로도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마법이 이루어지는 곳'

모두를 홀리게 만드는 마법과 같은 꿈의 공간

'마법이 이루어지는 곳'은 할리우드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 중 하나입니다. 그 문장처럼 할리우드는 수많은 꿈과 환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품 속에서 비추는 영화라는 매체는 자극적이면서 경건하기까지 합니다. 관객에 따라서 느끼기 어려운 영화의 경이로움은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등 배우 캐릭터들의 모습을 은유시킴으로써 이해하기 쉽게 연출됩니다.


 완성된 영화 속 모습과 달리 영화 제작 현장은 작품 초반의 광란의 파티를 연상케 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규칙성 없이 오고 가며 마약과 고함 소리, 음악소리가 끊이질 않습니다. 일정한 규칙이나 형식은 가볍게 무시되는 공간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에 걸맞게 영화의 촬영 방식도 배우나 감독의 의견에 따라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수정되는 즉흥성과 소통성이 강합니다.

이렇듯 '마법이 이루어지는 곳'은  넘치는 에너지와 욕망으로, 오만이 가득한 땅이기도 합니다. 결국 1920년대 후반, 먼 옛날 인간의 오만함으로 인해 단죄되었던 바빌론처럼 할리우드에도 신의 천벌이 도래합니다.




몰락과 분열의 시작

몰락은 낮은 사람보다 높은 사람한테 더 위험한 법

1920년대 후반 유성 영화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이는 기존의 영화들이 구식 취급받을 정도로 혁신적인 기술이었으며 영화 업계는 시대를 따라가기 위해 격변을 맞이하게 됩니다. 더 이상 영화는 한 사람의 영향력에 매달리지 않게 되었고 각 분야 별로 전문가들이 양성되어 각자의 역할 속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이런 변화는 마치 하나로 모여 영화라는 거대한 탑을 쌓던 옛 시절이 붕괴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각자의 목소리가 커진 만큼 소통은 힘들어지고, 단순한 촬영도 수십 번의 리테이크가 필요할 정도의 정교함이 요구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부분은 작중 초반 넬리 라로이가 첫 촬영에서 리테이크를 수십 번씩 하던 장면과 대비를 통해 제작자들의 고충이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제작 현장 밖에서도 변화의 바람은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관객들의 유행, 감성의 영역이 달라졌고 여러 스타들이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와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는 이런 부분에서 관객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만듭니다.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배우들이지만 시대에 흐름에 따라 너무도 허망하게 버려집니다.




영화인, 갱스터, 그리고 동물들

작중 영화 업계인, 갱스터는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른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바빌론은 영화계 스타, 제작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갱스터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일단 전체적인 구성부터 갱스터 무비의 형식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선량하면서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후반부 갱스터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영화 제작자와 갱스터들은 별로 다르지 않다는 대사를 통해 장르적 유사함은 보다 확고해집니다.


 하지만 이들이 얼마나 유사하건 주인공들은 결국 마피아와 다른 생태계를 가진 사람입니다. 영화과 마피아의 대비는 작중 등장 동물들인 코끼리와 악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코끼리(영화배우)는 산 위 별장에서 모두의 이목을 끄는 화려한 존재입니다. 반대로 악어(갱스터)는 축축하고 어두운 지하 소굴에서 모두의 두려움을 받는 존재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코끼리는 화려함으로 부정을 감추는 존재이고, 악어는 두려움으로 부정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악어가 사는 축축한 지하는 달러 잉크를 지워내 가짜 돈을 드러내고, 진짜 마피아란 영화계의 화려함이 통하지 않은 어두운 존재임을 확인해 줍니다.




'바빌론'에서 영화란

영화가 있는 이상 이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

총과 동료들을 이용해 배우들을 협박하며 영화를 만들었던 매니는, 역으로 총으로 동료들을 잃고 협박받으며 영화계를 떠나게 됩니다. 명예도 꿈도 사랑도 모두 잃은 그는 더 이상 최고를 갈망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 그저 바라만 보는 관객입니다.


그렇치만 영화는 아직 그에게 유효합니다. 스크린을 볼 때면 색의 여러 조합들이 뒤섞여 만나 언제나 잃어버린 그 시간이, 배우들이, 영원히 살아납니다. 패기로운 실험정신과 뚝심으로 밀고 나간 연출이 관객들에게 적잖은 당혹감을 주겠지만 감독이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는 정말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한 작품에서 영화에 대한 애정과 추함을 강조할 수 있다는 것은 필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았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영화 외적으로 개인적인 경외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상을 향한 갈망과 애정

아직 하지 못한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합니다

본 작품의 감독 데미언 셰젤의 전작들은 모두 최고의 경지를 향한, 하늘 높이 올라가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려왔었습니다. 하지만 작품마다 향상심을 다루는 작품의 시선과 표현은 변화를 계속해왔습니다. 이번 '바빌론'은 감독 작품 중 최고를 향한 인간의 갈망과 욕망을 가장 자극적이고 개인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인의 사적인 애정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특별함이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바빌론'은 데미언 셰젤의 가장 개인적인 영화로 팬들에게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고, 감독 본인에게도 더 다채로운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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