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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모리정 Apr 14. 2023

런던에서의 8개월

나는 한인민박 매니저이자 스냅작가이자 작가가 되어있었다.

지금은 런던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글 중간에 런던을 빼먹으면 안 될 것 같아 짧게나마 런던에서의 내 생활을 적어보려 한다.




두 번째로 오는 영국 런던.

21살 때 유럽 배낭여행 왔을 때만 해도 

랜드마크를 봐도 크게 감흥이 없고, 물갈이까지 해서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다.

더구나 런던 여행 8일 중 런던의 맑은 하늘을 본 날은 겨우 반나절.

그래서 영국을 떠나 파리로 넘어가는 유로스타 안에서, 나는

영국은 다시 안 와도 되겠다. 하며 기차에 올랐다.


그런데 지금.

나는 히드로 공항에 착륙을 했고, 

다시는 안 와도 되겠다던, 딱히 좋은 기억이 없는 런던에 다시 발을 디뎠다.





5월 25일


세인트 판크라스역에서 앞으로 내가 일 할 민박집의 사장님을 처음으로 만났다.

판크라스 역에서 나와 2분이면 도착하는 "팡팡민박"

앞으로 내가 일 할 곳이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나가고 가구도, 벽지도 거의 없는 상태에

이제 사장님과 함께 페인트 칠을 하고 가구를 조립하고 꾸며나가야 하는 생 날 것의 민박집이었다.

처음에 봤을 땐

엥...? 이게... 민박집이 될 수 있나..? 

싶었지만

1~2주에 걸쳐 페인트칠 작업을 하고, 

이케아에서 사 온 2층 침대도 같이 조립하고, 의자며 여러 가구들이며 전부 들여놓으니

꽤나 볼만한 민박집이 되었다.


나는 손님들이 좀 더 편하게 민박집을 이용할 수 있도록

안내사항 같은 걸 적어서 붙여놓았고, 밋밋한 한쪽 벽을 내 여행엽서로 채울 수 있게 허락받았다.

그때 당시에는 

'그냥 내가 일을 하는구나. 

살면서 페인트 칠도 처음 해보고, 2층 침대 조립도 처음해보고 나름 재밌네.'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여행자들이 추억들 들고 올, 또 추억을 만들고 남기고 갈 공간을 처음부터 내가 함께 만들어 갔었네.'

싶은 생각이 들면서 과거의 추억을 좀 더 소중하게 감싸는 중이다.





6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님 즉위 70주년 기념

플레티넘 쥬빌리 행사가 열려 런던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시끌벅적하다.

그냥 왔는데 이런 큰 행사가 겹치다니, 운이 좋은걸.

런던은 온통 보라색으로 물 들었고, 여러 매장에서는 플레티넘 쥬빌리 기념행사를 했다.




7월


민박집에 머무르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스냅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줌 카메라라, 랜드마크가 전체적으로 다 담기게 찍을 수 없어

스냅사진에 적합하지 않았는데

사장님이 갖고 계신 카메라를 빌려주셨다.

그리고 스냅촬영 나가서 늦어지거나, 손님 시간 맞춰주거나 해야 하면

그거에 맞춰 휴무도 내주셨고, 오전에 오셔서 조식 정리도 다 해주셨다.

스냅 일을 해볼 생각은 그 당시에는 1도 없었고, 

나중에 좋은 카메라 사고, 유럽에서 살고 싶어지면 생계를 유지할 직업 중에 하나로 눈여겨보고 있는 

정도였는데 어쩌다 보니 하게 되었다.


정식으로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 비자를 이미 받아 둔 상태라 영국에서 오래 살 계획이 아니었기 때문에.

손님들이랑 인스타로 문의하시는 분들만 예약을 받아서

다른 스냅작가분들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촬영을 해드렸다.

잘 나가는 작가님들이 받으시는 금액의 30~40프로 정도의 금액만 받았다.

거기에 내가 찍은 여행엽서에, 스타벅스 음료까지 사드렸다.

사실상 돈을 벌려고 한 것보다는,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막 시작할 때 몇몇 분들은 무료로 찍어드리고 샘플 사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9월


엘리자베스 2세 여왕님이 서거하셨다.

"London bridge is down."

즉위 70주년이라 온 영국이 떠들썩하고 밝게 웃던 게 어제 같은데 3개월 만에 돌아가시다니.

런던은 슬픔과 충격에 잠겼고, 뉴스는 여왕님 서거 관련으로 가득했다.




10월


영국에 좀 더 머무르기로 결정을 하고

비자연장을 위해 비쉥겐 국가인 영국을 잠시 떠나 쉥겐국가인 포르투갈로 5박 6일 여행을 하고 왔다.


그 이후 11, 12, 1월까지 영국에서 한인민박 매니저이자, 스냅작가이자, 글 쓰는 작가로 지내왔고


다시는 안 와도 될 것 같다던 영국은, 의도치 않게 두 번이나 가게 되면서

나중에 꼭 다시 와야지 하는 나라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거기서 만난 수많은 여행자들과 인연들로

나의 여행 스토리와, 사람 스토리에 더 없는 추억들을 남겨주었고

미국에서 만난 사장 때문에 고생한 내 마음을 보상이라도 해주듯이

런던에서 만난 사장님은 내가 여태껏 일해왔던 직장 사장, 상사들 중에 제일 좋으신 분이었고


런던에 더 길게 머물기로 결정하면서 가게 된 포르투갈에서 찍은 사진들로

잠실 애비뉴엘에 전시되는 등 

더없이 행복한 경험들을 했다.


별 감흥 없다던 랜드마크, 런던아이와 빅벤, 타워브릿지는

스냅촬영하러 가면서 지겹도록 보았지만

다시 봐도 또 좋을 것 같은 랜드마크로 기억되고 있다.






2월 6일


영국 런던에서 캐나다 밴쿠버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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