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라톤에서 도망치다

"Escape from the marathon called life."

by Andrew Marine

브런치 스토리에 처음 글을 쓰게 되었다. 시작 하는 첫 글로 무엇을 적을지에 대한 고민은 꽤 시간이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글을 적고 내가 느낀 점을 남들과 나누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았을때 [게임, 여행, 영화, 공학, 수학...] 등이 먼저 생각났다. 이들 중에서도 여행과 공학에 대한 느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여행과 공학을 좋아하게 된 배경이 앞으로 내가 써내려갈 글들의 방향성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다. 단한번의 결정으로 시작된 인생이란 마라톤에서의 도망. 그 도망이 도약으로 바뀌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나누고 싶다.


[여행]


나는 여행을 굉장히 좋아한다. 최근에는 군 전역을 하면서 이집트 여행을 2달동안 다녀오기도 했다. 내가 여행을 언제부터 좋아했는가? 라는 질문에 고민을 해보니, 나는 처음부터 여행을 그렇게 좋아한 편은 아니었던것 같다. 어릴적부터 내가 어딘가를 가보자며 남들을 이끌었던 기억은 크게 없다. 그저 남들이 어디를 가자하면 물론 군말없이 떠났고, 항상 즐거웠던 기억은 있다. 하지만 그저 따라가는 것 만으로 내가 여행을 좋아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 당시의 나에게 있어 여행은 수동적인 성질이 강했다. 사실 어쩌면 나의 예전 인생이 주도적인 개척자 보다는 남들과 걸음을 맞추며 같은 방향을 향해 무작정 달려갔던 마라톤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런 내 인생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는 Paradigm Shift가 발생한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해병대를 지원하면서 부터 내 인생은 처음으로 내 손으로 작지만 큰 흐름의 변화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했다.


1. 해병대


나는 마땅한 의미도 찾지 못한체 대학 생활을 하면서 흐지부지하게 시간을 보내버렸고, 남들보다 늦은 23살의 나이에 군 입대를 결심하고 입대 신청을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가뜩이나 기말고사를 보며 피폐해진 정신과 충동적인 내 성격, 그리고 친구가 추천한 육군의 모집병과(흔히 말하는 꿀보직)의 지원률이 90대 1인 것을 확인한 그 삼박자가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해 그 자리에서 해병대를 지원해버렸다. 정신이없어서 신청하기 전 걱정할 새도 없었다. 오직 신청후의 후련함만 남아있었다. 물론, 5분전 육군에 지원하고 오겠다고 방에 들어간 아들이 해병대를 지원했다면서 방문을 벌컼 열고 나왔을때 부모님의 당황한 표정은 재미있었다. 아버지는 기뻐하셨고, 어머니는 화를 내셨다.

어쨌든 이런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나는 이때 처음으로 내 인생이 크게 바뀔만한 큰 결정을 오직 나만의 생각을 통해 내렸던 것이다. 남들과 똑같이 달리던 마라톤 코스에서 울타리를 넘어가서 샛길로 들어간 순간이다. 물론 다시 그 길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내 앞에 새로 생긴 길, 남들이 가지 않은 길(당시 내 주변에 해병대를 간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딱히 조언을 들을 수도 없었다). 엄청난 만류와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물론 힘든 일들이 존재하겠지만, 내가 스스로 고른 결정에 아무런 후회도 없고 오히려 열정과 자신감이 차올랐다.


역시나 힘든 일이 많았지만 내 스스로 고른 길에 만족하며 매일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새 힘든 시간은 지나갔고, 나에게 남은건 힘든 시간을 거치면서 습득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성실함, 열정 뿐이었다. 내가 처음 택했던 좁고 불안했던 그 마라톤의 샛길은 어느새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동행자들을 만나 크고 탄탄한 하나의 안정한 길이 되었다. 그 길 위에서, 동행자들의 기대와 지지 속에서 나는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택하며 새로운 길로의 진입을 시작했다. 바로 세계여행이다.


어릴적부터 막연히 '아 언젠가는 세계여행 한번 가봐야지!' 했던 결심은 내가 고르지 않았던 길을 달리며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하지만 당당히 그 길을 벗어나고 나만의 길을 선택하면서 어릴적의 추억같던 결심이 조금씩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국 그 추억은 현실이 되어 내 병장 생활은 여행 계획을 짜며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2. 전역


군대 화장실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여행사 잡지, 그 속에 있던 필리핀 세부의 한 장면. 그 사진 한 장이 새장속에 같혀있던 것 같은 답답한 군 생활 속에서 나의 눈에는 엄청 눈부시게 보였다. 말 그대로 사진이 눈이 부시는 것 같았다. 아직도 나는 그 사진을 잊을 수 없다.


전역 전 긴 휴가를 나가게 되면서 나는 친구와 일주일간의 세부 여행을 출발했다. 정말 모든 시간 모든 분, 모든 초가 가슴이 설레고 아름다웠다.


드디어 전역을 하고나서 나는 친구들, 부모님, 지인들을 짧게 만나고 바로 이집트 카이로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총 20키로에 가까운 배낭을 앞뒤로 매고 고프로 카메라를 한손에 든채로 떠나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고, 너무나도 설렜다. 그렇게 나는 어릴적부터 그토록 보고 싶었던 피라미드와 사막을 보기 위해 새로운 샛길에 올랐다. 앞으로의 있을 수많은 인연, 사랑, 감동, 슬픔, 사기, 우정은 꿈에도 생각치 못한 채 말이다.


[공학]


그렇게 2달간의 여행이 끝나고 귀국을 했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정말 많은 일들을 했다. 온갖 문화유산을 구경하고, 수도없이 사기를 당하면 흥정의 달인이 된 것도, 어쩌다 보니 다이빙이 재밌어 마스터 다이버 자격증을 따게 된 것도, 내가 샛길에 오르지 않았으면 절대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차차 여행기로써 글을 올리겠다.


이제 귀국하고 나니 2달여간의 여행이 꿈만 같았다. 바로 현실로 돌아와서 복학을 하고 새 학기를 맞이했다.


'공부하기 싫다... 그냥 여행이나 다니고 싶다...'


나의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되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 공부하기 싫어...'


'하.. 근데 그렇게 어렵진 않네'


'하.. 생각보다 이게 신기하네, 다른건 뭐가 있지?'


'오 이런것도 있구나, 재밌네'


'뭐? 공부가 재밌다고? 왜....?'


내 인생에서 공부가 재밌어진 순간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군대를 갔다오기 전과 동일한 길일 터, 어째서 그때 느낌 감정과 지금 느끼는 감정이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같은 길이 아니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우선적으로 내 목표가 달라졌다. 단순한 돈벌이의 목적에서 내가 정말 공부하고 싶은 재밌있는 것으로 바뀌면서 당연히 길 또한 바뀌었다. 같은 내용을 듣더라도, 마인드가 다르고 결심이 다르면 각자가 걷는 길은 다른 법이다. 그렇게 나는 전자공학에 푹 빠지게 됐다. 그 중 통신에 관심이 생겨 현재, 학부 연구생으로써 연구실에서 좋아하는 공부를 마음껏 하고있다.


나는 남들과 같은 길을 걷고싶지 않았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하고 싶었고 도망을 선택했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걸을려는 순간 수많은 동정섞인 비난과 비판이 들릴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엔 정신없이 신경안쓰고 도망쳐버렸지만, 누군가에겐 엄청난 고민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도망친 곳이 이미 나와같은 누군가는 걷고 있던 길이었음을 알았다. 인생이라는 코스는 결코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수한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수많은 길 중 나에게 맞는 길을 찾는 것이다. 어쩌면 잘못된 길을 통해 원치 않던 결말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결말에 도달할 수 있게 지금도 분주히 나의 길을 찾아나서고 있다.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의 도망은 남들처럼 살고 싶어하지 않고 의지가 약한 패배자의 처참한 도망이 아닌, 나만을 위해 준비된 길을 찾아 떠난 아름다운 도약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