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이라는 정류장, 인생이라는 들판
"지금은 공부하지 마라."
중3 아들에게 던진 이 한마디가 우리 집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습니다. 전교 17등. 누군가에게는 대견한 성적일지 모를 아이에게 왜 이런 극단적인 말을 했을까요? 이 이야기는 3주 전 여름방학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사춘기 소년 아들 '최지'는 부산에 있는 한 중학교에 다닙니다. 올해 3학년 1학기 기말고사에서 전교생 230명 남짓 중 17등을 했습니다. 지난 2학년 2학기 19등과 비슷한 성적이었죠. 저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등수였기에, 그저 신기하고 기특하기만 했습니다.
시험을 막 끝내고 정오표가 나오기 전에는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서 얻은 결과라 칭찬도 많이 해주고, 아이 스스로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라고 생각하는 눈치였어요. 정확한 점수를 말하지 않아 살짝 불안하긴 했지만, 지난 학기 등수와 비교해 과목별 점수도 비슷하게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성적표가 나오고 나서 우리 부부는 '아.. 이거 잘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전교 등수는 제법 그럴듯했지만,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주요 과목 점수는 90점을 넘는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아니, 이 학교가 서울 학군지 학교도 아니고, 영재고 내신도 아닌데 이 점수를 받았는데 전교 17등…?'
아이는 "이번 기말 시험이 너무 어려워서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다들 망쳤어요"라는 말로 변명했습니다. 제가 국어를, 아내가 영어와 수학을 도와주고 있었기에 문제지를 좀 살펴보았습니다.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라기보다 과목별 꼼꼼한 준비가 부족했고, 시간 조절을 못 했고, 실수를 많이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고 아내와 저는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한 달간의 공부 계획을 세웠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하루에 해낼 분량을 정하고 꾸준히 실천하자고 약속했죠. 맞습니다. 이런 계획,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줄기차게 했던 것입니다.
계획은 계획일 뿐, 현실은 항상 아쉽게, 혹은 당연히 모두 실천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죠. '이 녀석, 이 계획도 방학 끝날 때까지 못할 텐데…' 이 생각을 속으로만 하면서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최지는 평일엔 6시간, 주말엔 8시간씩 공부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어요. '순공 시간'이라고 강조했지만, 자신도, 우리 부부도 '과연...'이라는 정도로 웃고 넘겼어요. 어릴 때부터 '말과 행동 중에 어느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울까?'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고, 그 때마다 '당연히 행동이 더 진실이지'라고 소리치던 아들이었으니까요. 어쩌면 저렇게 '호연지기'가 좋을까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공부 좀 하던 아이가 고등학교 가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아이와 여러 번 대화를 나누며 저희 나름의 원칙을 정리했어요.
왜 공부해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기
꿈이 없더라도, 나중에 꿈이 생겼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도록 발판 마련하기
고등학교에 가서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공부 습관 만들어주기
지금 당장의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온전히 감당하고 견뎌내는 경험이야말로 진짜 '공부'가 될 거라고요.
하지만 예상하셨겠지만, 몇 주 지나지 않아 이 원칙들은 그야말로 '박살'이 났습니다.
방학이 3주쯤 지났을 때, 공부했던 결과를 살펴봤습니다. 수학은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일단 건너뛰고 있었고, 국어는 기초 개념 설명의 네모 칸 채우기를 그냥 무시하고 점프. 영어 단어는 눈으로 쓱 훑고는 다 외웠다고 했습니다. 절대, 네버, 한 글자도 쓰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이 잘 드러나는 현장이었습니다.
모든 과목에서 공통된 특징은 바로 '채점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선택한 답은 절대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그 놀라운 자신감에 우리 부부는 서로 눈만 껌뻑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를 다시 불러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했지만, 아들은 미동도 없이 아무 말 없이 눈만 껌뻑이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 저 당당함. 한 치 물러섬도 없어 보이는 저 굳게 다문 입술.' 그 단호함에 경건함마저 느껴질 뻔했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저희 부부는 아이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기로 했어요.
첫째, 지금 당장 안 풀고 넘어간 문제 모두 풀기, 채점하지 않은 문제들도 모두 채점하고 틀린 문제 다시 풀기, 수학 문제는 모두 노트에 따로 풀기. 이 모든 걸 다 하기 전에는 모든 디지털 기기 사용 금지.
둘째, 제대로 공부하기 싫다면 지금부터 어떤 공부도 하지 않기. 대신 그 순간부터 모든 디지털 기기 사용 금지.
잠시 고민하던 아들 최지는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습니다. "아, 네…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그 말하는 표정 속에 서린 억울함과 짜증, 은근한 반항심을 읽어내는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지금 아이에게 공부는 '해야만 하는 의무'이고, 스마트폰은 그 의무를 다했을 때 받는 '보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을요. 이 '의무-보상'의 거래적 관계를 끊어내지 않으면, 아이는 평생 공부의 주인이 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벌이 아니라, 아이에게 공부에 대한 진정한 자율성을 돌려주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지금은 공부하지 마라.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대충 공부했다는 것에 대한 어떤 반성도 없고 여전히 짜증과 불만만 가득하구나. 그런 마음과 태도로 하는 공부는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이제 공부는 디지털 기기 사용과는 아무 연관이 없어. 공부는 네 삶에 필요하다면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이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가 아니야. 그 선택의 무게를 온전히 네 스스로 감당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해."
이런 상황에 대한 아내와의 대화는 이미 수차례 있었습니다. 산책하며 우리의 교육 철학을 다듬었고, 그래서 이 말이 순간적인 감정으로 내뱉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습니다. 자칫 욱하는 마음에 나온 것이었더라면, 아마 아내에게 크게 혼이 났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난 뒤 며칠 동안 고민을 계속했습니다. 아직 개학은 며칠 남았고, 내가 이 녀석 식사를 챙겨주며 계속 집에서 봐야 하는데 서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죠.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걱정은 어느새 '혹시 이 일로 아이 마음에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잠시 생기더라구요.
두려워한 그 일을 막상 경험해보면 상상만큼 최악이 아닐 때가 많다.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 공포심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일을 직접 겪어서
실제로 얼마나 고된지, 얼마나 불편한 지 느껴보는 것이다. '아, 내가 이 일을 겪어낼 힘이 있는
사람이구나. 괜찮구나'를 체감하는 것.
― 최혜진, 『명화가 내게 묻다』
아빠를 놀리는 게 삶의 낙이라던 아이는 제 눈을 피하기 시작했고, 집안에는 서먹한 공기만 맴돌았죠. 이럴 때는 출근하는 아내가 부러웠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아내와 저는 저녁 식사 후 산책을 했습니다. 아이에게도 혼자만의 시간을 듬뿍 주기 위해서도 필요한 방법이었죠.
"우리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이가 다시 책상에 앉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공부가 아닌 다른 길에서라도 스스로 무언가를 발견하고 시도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 크다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중요한 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가 아니라 '어디에서 기다리는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적'이라는 정류장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 부모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더 넓은 들판에서 아이가 스스로 방향을 찾을 때까지 묵묵히 함께 있어 주는 부모가 되는 것이 우리가 믿는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만큼은 이 불편함을 우리 가족 모두가 온몸으로 함께 겪어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사춘기 청소년 아들 최지는 개학을 했습니다. 다행히, 아주 어릴 때부터 쌓아온 부모와의 좋은 정서 관계 덕분이었을까요, 걱정했던 선을 넘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차슈'를 만들겠다며 요리책을 뒤적이더니, 생전 처음으로 근사한 고기 요리를 만들어 식탁에 내놓기도 했답니다. 물론 재료 구입은 제가 다 했습니다. 처음에는 재료 구입까지 다 네가 해야 한다고 했지만, 슬쩍 "통 삼겹살은 아빠가 좀 사다 주세요" 하기에 별말 없이 동네 정육점에 가서 사다 주었죠. 무심히, 툭, "여기 있다" 이러면서요.
차슈를 만드는 아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이 아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뭔가를 해내고 있구나.'
그리고 개학 후 3일 차 수요일. 오늘 최지는 제 방에서 스스로 세운 계획표대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월요일과 화요일 모두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에게 오늘 무엇을 공부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해주었다고 해요.
아이는 여전히 제게 거리를 둡니다. 그 안에 담긴 불만을 모르는 바 아니죠. 그럼에도 이 관계를 잘 유지하려 합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먼저 말을 건네지 않습니다. 멀리서 바라만 보고, 혹 불편한 것이 있다면 무심히 '툭' 도와주며 아무렇지 않은 척, 관심 없는 척합니다.
누군가는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힘들다'고, 그렇게 기다리기만 하면 결국 실패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가정에 똑같이 적용되는 답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우리 부부는 그저 '믿고 기다리는' 길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남들의 시선은 우리 부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우리가 어디에 서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이가 도착했으면 하는 곳이 아이에게 '지옥 같은 성공'은 아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돌아보고, 다양한 책을 읽고, 저녁에는 산책하며 대화하는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자기 삶을 살아가는 아이를 멀리서 응원하고 지켜보는 것.
그것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