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않기 위해, 부모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또 소리 질렀다' 자책의 밤,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시선'입니다

by 시선

아이를 키운다는 건, 결국 '반복을 견디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몰라요.


아이를 향해 똑같은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그럼에도 아이는 별로 달라지는 게 없고, 나는 그 상황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죠. 하루에도 몇 번씩.


오늘 아침에도 똑같은 말부터 꺼냈어요. "너 머리 좀 봐. 아톰 머리네~ 세수할 때 머리에 물만 좀 묻혀서 빗질해 주라고 했잖아..." 그리고 오후, 학교 다녀온 아이에게 또 말했어요. "학교 다녀오면 무조건 샤워부터 하라고 했는데, 왜 또 안 씻니? 이 녀석아! 가려워서 손목 자꾸 긁으니까 상처가 계속 안 낫잖아!"


이 말들을 소년 ‘최지’가 중학생이 된 이후로 더 자주 반복하고 있어요. 오히려 초등학생 때는 하는 말 잘 들었는데, 지금은 대충 튕겨내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주위에서 자기만 여태 ‘모태 솔로’라고 주절대면서도 씻지를 않아요. ㅎㅎ 외모에 관심을 가질만한 나이인데 그냥 ‘상관없어요. 아무도 안 봐요. 괜찮아요~’ 이게 레퍼토리예요. 뭐... 우리 집 아이만 그런 거 아니죠? ㅡ.,ㅡ;; 하하.


근데요, 한 번씩 지쳐요. 요즘 말로 '현타'가 오죠. "도대체 언제까지 이 말을 해야 하지?", "왜 나만 악역을 맡아야 할까?" 그리고 가끔은... "하... 저 녀석, 진짜 왜 저러는 거지?"라며 머리를 쥐어뜯습니다. 세게도 못해요. 살짝 쥐기만 합니다. ^^



반복을 견디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요?


어느 날, 기대도 하지 않았던 책에서 그 천불을 잠시 식혀주는 문장을 만났어요. 마치 부모 마음 전용 안티에이징 크림 같았죠.

정신과 의사 하지현 교수는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고』에서 이렇게 말해요.


"나 자신이 탁월하게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을 배우고,
같은 일을 반복하더라도 지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작은 변화를 감지하며 그 안에서
즐거움과 성취를 경험하는 데
익숙해지려는 사람일 뿐이다."


이 문장을 읽고, 살짝 마음이 풀렸어요. 꽤 유명하고 지식인으로 알려진 이 사람도 ‘나도 당신과 비슷해요’라고 제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힘든 것을 해 내려고 노력하고 애쓰고, 사소한 좋은 것에 익숙해지려’는 태도가 맘에 들었죠.


육아는 기본적으로 루틴이에요. 새롭고 멋진 일이 계속 벌어지는 드라마가 아니죠. 오히려 어제 한 말을 오늘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덜컹거리는 현실이죠. 그래서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건 '같은 상황을 다른 마음으로 다시 해내는 연습'과 같아요.


그것은 아이를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내 안의 ‘시선’을 바꾸는 연습입니다. 아이의 문제점을 찾아내려는 평가자의 시선에서, 아이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것이죠. 이 시선의 전환이 우리 안에 ‘지겹고 지루한 반복을 견뎌낼 근육’을 키워준다고 믿습니다.



작은 변화를 감지하는 관찰에서 오는 기쁨


그럼 그 마음 근육을 키우는 영양분은 무엇일까요? 바로 '작은 변화를 감지하는 시선'이죠.
우리가 지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내가 하는 이 일이 아무 보상 없이 느껴지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오늘 하루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느껴지고, 그 허무한 일을 내일 또 해야 한다는 현실에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우리가 하는 반복적인 잔소리는 '지겨운 소음' 아니라 '꺼지지 않은 관심' 최소 단위인지도 모른다는 관점으로 말이죠.

'나는 아직 너를 포기하지 않았어', '너의 세상에 계속 말을 걸고 있어'라는 가장 집요하고 서투른 신호인 셈이죠. 아이는 신호를 밀어낼지언정, 신호마저 끊긴 세상은 상상하고 싶지 않을 겁니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를 조금만 더 오래, 조금만 더 집중해서 관찰하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아이가 오늘은 방문을 '쾅' 닫지 않고 '툭' 하고 닫았을 때. 그것은 "사실 나도 좀 미안한 부분이 있지..."라는 말보다 더 진솔하게 아이의 성장을 슬쩍 건네는 무언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그 ‘슬쩍 건네는 변화’를 알아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놓치게 되죠.


너무 바쁘고 지쳐서 아이의 변화보다 내 힘든 마음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아이의 키나 성적보다 말투의 온도나 눈빛의 깊이에서 변화와 성장을 읽어내려는 그 애씀이 우리를 지치지 않게 합니다. 매일은 지루하고 지독하지만, 그 안에서 남들이 볼 수 없는 변화의 순간을 단 한 번만 볼 수 있어도 그 하루는 흥미롭고 찬란해질 수 있습니다.

내가 정한 행복은 '충분함'입니다.

완벽함 대신 '적정함'을 아는 마음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는 '끝없는 기대'예요. 여기서도 하지현 교수의 말이 도움이 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마음보다 나는 어느 정도면 만족할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 보는 것. 적정이란 안심의 세상이다."


그래서 자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해요. "내 마음의 컵에 물이 어느 정도 차야 '이만하면 충분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적정'을 아는 것은 경쟁만 있는 소모적인 달리기를 멈추고, 지속 가능한 산책으로 바꾸는 지혜입니다. 완벽한 아이를 향한 기대를 멈출 때, 비로소 내 곁에 있는 아이의 모습 그대로를 안심하며 바라볼 수 있게 되죠.



훌륭하지 않아도, 꽤 괜찮은 부모로 충분하다


결국 '지치지 않는 부모'란, 완벽한 부모가 아니라 '연습하는 부모'예요.
같은 잔소리를 반복하더라도 어제보다 1초 더 기다려주려고 연습하는 사람. 아이의 큰 성공을 바라기보다 작은 변화에 고개를 끄덕여주려 연습하는 사람. 더 많은 것을 채우기보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려 연습하는 사람 말입니다.


얼마 전, 학교 다녀온 아들이 제 잔소리 없이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방에서 은은한 샴푸 냄새가 풍겨왔죠. 신기한 듯 쳐다보며 '웬일이냐'는 말을 삼키고 있는데, 아들이 툭 던지더군요. "아, 그냥 등이 너무 가려워서요. 별거 아니에요."
속으로 '그럼 그렇지' 웃음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이의 세상은 제 잔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리듬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사소하고 투박한 변화의 순간을 알아채는 것. '별거 아닌 일'에서 '그래도 이게 어디야'라는 작은 기쁨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다르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요.



오늘도 어제와 같은 말을 하며 아이를 조금 더 기다리는 당신은, 잔소리를 참고 ‘욱’하는 마음을 추스르며 그 열불로 밥을 차린 당신은, 이미 사랑을 말하지 않고도 가장 깊은 사랑을 아이에게 전하고 있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게 완전하지 않아요. 하지만 꾸준히, 오래, 지치지 않고 아이 곁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이죠. 그거면 충분해요. 훌륭하진 않아도, 우리는 이미 꽤 괜찮은 부모예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속에는, 아이가 남기고 간 어떤 '투박하지만 기특한' 흔적이 남아있나요? 혹시 없다면 오늘 목표는 딱 하나, 그것 하나만 발견하는 걸로 하죠. 그걸로 충분한 하루가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