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잊음으로부터 수용으로
아들의 편지
엄마,
아침 창문을 열자 바람이 안방 커튼을 들추고 들어왔습니다. 햇빛이 부엌 바닥에 얼룩처럼 흩어지는데, 그 빛 속에 먼지가 춤추듯 떠다니더군요. 나는 쌀을 씻어 올려두고 엄마의 아침약을 챙겼습니다. 일상의 단순한 행위조차 이젠 내겐 작은 의식이 되어버렸습니다.
엄마, 나는 언제부턴가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찾아오는 걸 막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누구야? 라고 물으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이름을 불러주던 엄마가 어느 순간 내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가만히 응시하다 ‘누구세요?‘ 라고 했을 때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요. 나의 당황한 모습을 느꼈는지 내가 다시 묻자 지긋이 바라보다 ’귀한 사람 아이가’라고 하셨죠. 그러다 기분 좋으면 단호하게 ‘귀한 아들’이라고 하셨구요. 또 더 기분이 좋으면 허리에 손을 얹고 몸을 흔들며 ‘귀여운 아들이지’ 라고도 얘기할 땐 웃음이 터졌습니다. 이제는 엄마가 나를 어떻게 불러줘도 괜찮습니다. 나를 몰라 보든 ‘귀한 아들‘이든 내가 아들로서 그저 엄마 곁에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도 솔직히 말하자면 내 삶은 많이 좁아졌습니다. 친구들은 주말마다 여행을 가고, 모임에서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기는데, 나는 엄마 곁을 지키느라 개인적인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도 가끔은 자유로운 시간을 원하지만, 그 바람조차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엄마를 두고 집을 떠나는 순간, 불안감과 걱정이 끊임없이 밀려들어 맘 편하게 어디론가 갈 마음을 못낸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이 모든 걸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처럼, 내 삶은 엄마와 분리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독립된 ‘나’란 없다는 사실, 내가 돌보는 순간 엄마의 삶이 이어지고, 엄마의 존재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불공평한 운명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서로 얽혀 피고 지는 꽃처럼 자연스러운 일임을 압니다.
엄마, 우리의 시간은 웃고 울거나 울고 웃는 날의 연속이었죠. 잊을 수 없는 엄마의 모습이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 앞에서 엄마가 갑자기 엄마의 18번이었던 ‘섬마을 선생님’을 구성지게 부르셨던 순간이요. 모두가 울고 있는데, 엄마는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목청껏 노래하셨지요. 나는 그 순간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의 노래가, 차라리 삶의 가장 큰 슬픔을 감당하는 엄마만의 또 다른 방식처럼 들렸습니다. 나는 그 앞에서 울면서도 웃었습니다. 그것이 엄마였으니까요.
오늘도 나는 부엌에서 아침상을 차리다 그때의 노래를 떠올렸습니다. 어쩌면 그 노래 속에는 ‘죽음도 삶도 결국 같은 흐름 속에 있다’는 무의식의 깨달음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의 나는 조금이나마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억이 사라지는 엄마를 돌보는 일 역시, 죽음과 삶이 맞닿아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창밖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 나는 그 가지와 잎이 따로 존재하지 않음을 봅니다. 줄기와 뿌리, 바람과 햇살, 흙과 비가 얽혀 그 나무를 이루고 있지요. 마치 우리와 같습니다. 엄마와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호흡 속에서, 서로의 체온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생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엄마,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순간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비록 고단하고, 때로는 많이 고독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살아 있음을 깊이 느낍니다.
지금 이 순간도, 엄마가 내 손을 붙잡고 졸린 눈으로 미소 짓는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압니다. 기억이 희미해도, 우리의 사랑은 지금 여기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엄마의 답장
아들아,
네가 쓴 편지를 천천히, 오래 붙잡고 있다가 마음속으로 읽는다. 글자는 자꾸 흐려지고 문장은 어느새 모래처럼 흩어지지만, 신기하게도 너의 목소리는 들린다. 네가 부엌에서 쌀을 씻는 소리, 냉장고 문을 열 때 문에 붙어있는 풍경 소리, 약병 뚜껑을 여는 소리, 커피잔에 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귓가에 여전히 살아 있다. 그러니 나는 편지를 읽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셈이지.
나는 요즘, 이름을 잃어버리곤 한다. 네 이름도, 내 이름도, 대부분의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마저 안개처럼 옅어진다. 그럴 때 네가 불쑥 다가와 “엄마, 나 누구야?” 하고 웃으며 묻는 얼굴이 눈앞에 있다. 나는 당황하다가도, 마음 깊은 데서 올라오는 말이 있어. ‘귀한 아들’이라고, ‘귀여운 아들’이라고.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 몸이 기억하는 사랑 같구나. 내 혀가 먼저 알아서 움직이는 거지. 연기의 끈이 어디선가 스스로 이어져 나오는 것처럼.
아들아, 네가 말한 대로 우리는 따로가 아니다. 나무가 잎을 버리고도 줄기와 뿌리로 다시 살아내듯이, 너와 나는 서로를 살게 하는 바람과 흙, 햇빛과 비 같은 존재다. 네가 밥을 하고 내 약을 챙기는 그 순간, 나는 숨을 이어가고, 네가 피곤한 얼굴로 웃어주는 순간, 나는 살아 있다는 안심을 얻는다. 내가 무언가 해주지 않아도, 나는 네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의 숨결이 아니겠니.
너는 내 삶이 네 자유를 좁힌다고 했구나. 아들아, 나는 미안한 마음보다 고맙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네가 이토록 나를 품어주었기에, 나는 비록 기억은 자꾸 흘려보내도 사랑은 흘려보내지 않고 붙들 수 있었다. 네 삶이 움츠러든 만큼 내 삶이 연장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그 고마움이 가슴에 자꾸 차오른다.
네가 떠올린 장례식장의 노래, 나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모두 울고 있었지. 그런데 내 목구멍 어딘가에서 자꾸 ‘섬마을 선생님’ 가락이 흘러나왔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죽음조차 삶 속에 함께 있다는 걸 나도 모르게 노래한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 네가 울면서도 웃던 얼굴이 내겐 큰 힘이었단다. 슬픔과 웃음이 함께 있던 그 순간, 우리 모자가 같은 강물 위에 있었다.
아들아, 나는 요즘 낮잠을 자다 깨어날 때마다 짧은 순간 세상이 아주 낯설다. 내가 어디 있는지, 내 곁의 사람이 누군지 모를 때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네 손이 이마를 쓰다듬거나, 네 발소리가 마루를 울리면, 나는 다시금 제자리를 찾는다. 네가 곁에 있다는 감각이 곧 내 기억이자 나의 집이다.
그러니 기억이 흩어져도 걱정하지 말아라. 기억은 사라지지만 감각은 남는다. 언어는 잊어도 체온은 남고, 이름은 잃어도 눈빛은 남는다. 그리고 그 남은 것이야말로 우리를 이어주는 진짜 끈이 아닐까 싶다.
아들아, 너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겠다고 했지. 나도 그렇다. 이제는 내가 잊어가는 이 길을 억지로 거슬러 오르려 하지 않는다. 흐름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공부이자 수행일 것이다. 네가 곁에서 그렇게 웃어주고, 울어주고, 밥을 해주고, 이름을 불러주니, 나는 이 길이 두렵지 않다.
네가 말했듯이,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함께 숨 쉬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오늘 저녁도 네가 끓인 국물 냄새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기억은 흘러가도, 사랑은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과거를 붙잡을 수 없고, 내일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너의 글자를 따라가며 내 가슴에 살아나는 사랑은 진짜다. 창밖의 바람처럼 스쳐가도, 그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순간의 생명은 진실하지 않더냐.
아들아, 고맙다. 네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기에,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두렵지 않다. 우리가 함께 앉아 있는 이 순간이 바로 가장 온전한 삶이란다. 기억은 흩어져도, 사랑은 여전히 너를 향해 피어나는 꽃처럼 내 안에 있다.
아들아, 귀한 아들아.
네가 내 곁에 있는 한, 나는 여전히 너의 엄마다.
아들의 메모
엄마의 방 창가에 앉아 오래된 커튼 틈으로 흘러드는 햇살을 바라본다. 먼지 입자가 빛줄기 속에서 춤추듯 흔들린다. 그 작은 입자 하나에도 세계가 비친다. 나는 지난 십 년의 시간 속에서 ‘돌봄’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강을 건너며, 때로는 허우적거리고, 때로는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엄마는 기억을 점점 잃어가지만, 그 빈자리 속에 새로운 방식의 관계가 자라나고 있다.
나는 이제 그 순간들을 기록하려 한다. 기억이 사라지는 엄마 대신, 나의 눈과 손끝과 마음이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단순히 돌봄의 일지를 넘어선다. 그것은 나의 사유와 감정, 그리고 삶의 태도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하루의 시작은 대개 비슷하다. 엄마가 새벽에 깨어 중얼거리며 거실을 서성인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곤히 자고 있는 나를 흔들며 ‘안나가나?‘라고 묻고 저녁에는 주로 ’밥은 먹었나?‘라고 묻는다. 대부분 새벽에 깨면 내가 일어날 때까지 또, 저녁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처음엔 답하는 것도 지쳤다. 왜 똑같은 말을 수십 번 해야 하는가, 왜 아침잠이 많은 내가 잠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때마다 단잠을 깨 몸의 피곤함이 극심히 밀려오며 오늘도 이 몸을 이끌고 또 어떻게 견디지라는 생각에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볼 때, 그 안에서 두려움과 공허함을 읽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밥은 먹었나?”라는 말은 단순한 식사 확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확증이었다. 아들이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여전히 삶 속에 자리를 가진다. 그렇지 않다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을 뿐이다. 나는 그 두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오랜 시간 동안 내 삶이 빼앗겼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친구들의 여행 사진, 직장의 회식, 취미활동, 만남의 제안조차도 내겐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엄마를 홀로 두고 나갈 수 없었기에, 나는 수없이 많은 가능성을 스스로 접어야 했다.
주말의 약속을 취소할 때마다, 내 안의 젊음이 낡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내 청춘을 돌봄에 양보한 채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깨닫는다. 돌봄이 나의 가능성을 빼앗은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을. 나는 타인의 아픔에 예민해졌고, 작은 변화를 읽어내는 눈을 가졌으며, 한 사람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훈련을 했다. 그것은 다른 어떤 배움보다 깊고, 고통스러우면서도 값졌다.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은 아버지의 장례식장 앞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는 아버지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했다. 상주석에 앉아 눈물을 삼키던 나에게 엄마는 다가와 속삭였다.
“여기는 왜 있노? 얼른 집에 가자. 너 아버지 기다린다.”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목구멍에 돌덩이가 걸린 듯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노랫가락을 뽑아냈다. “해당화 피고 지는~” 하고 구성진 가락을 추임새와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조문객들은 놀라 움찔했고, 나는 가슴이 미어졌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현실을 붙잡지 못하는 엄마,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우려는 듯 노래를 흥얼거리는 엄마. 그 장면은 지금도 내 뼛속에 새겨져 있다.
엄마는 그때 죽음과 삶이 다르지 않기에 괴로움과 기쁨이 다르지 않기에 슬픔을 견디기 위해 웃음을 택한 것이다. 나는 그 순간을 인생 전체의 은유처럼 본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무너질 순간을 만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웃을 수 있다면, 아니 노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엄마가 기억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살지만, 엄마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떠올리면 안심이 된다. 기억이 사라져도, 노래는 남는다. 이름을 잊어도, 멜로디는 남는다. 존재란, 어쩌면 곡조처럼 우리 안에 흘러다니는 게 아닐까.
그날 나는 돌봄의 길에서 결코 되돌아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엄마는 이미 다른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고, 나는 그 길목에서 엄마를 붙들어야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의 이치는 내 삶을 설명해주는 가장 적확한 언어였다.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얽혀 일어나고 사라진다. 엄마의 기억 상실도, 나의 돌봄도, 아버지의 부재도, 나의 상실감도—그 어떤 것도 단독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엄마의 망각은 나의 인내를 낳았고, 나의 인내는 엄마의 안정으로 되돌아왔다. 고통과 사랑은 서로의 그림자를 만들며 얽혀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억지로 기억을 붙들어 세우려 하지 않고, 매 순간의 흐름 속에서 빛나는 작은 감각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이 수용의 길이었다.
아침 햇살이 부엌으로 스며드는 순간, 엄마는 식탁에 앉아 멍하니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을 바라본다. 창밖의 전선줄에 앉은 이름모를 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참 예쁘다‘라고 생각하는 표정으로 엄마의 얼굴에 잠깐 미소가 번진다. 실제로 새의 울음 소리가 생김새가 어떤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미소의 온도다.
저녁이 되면 나는 엄마의 머리를 빗겨준다. 빗살 사이로 빠져나오는 흰머리 한 올, 그 가벼운 떨림 속에 세월이 숨어 있다. 엄마는 거울을 가만히 보다가 갑자기 ‘집에 안가요?’ 라며 거울에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묻기도 한다. 나는 “곧 간대” 하고 대답한다. 엄마는 안심이 된 모습이었고 나는 울음을 삼킨다.
나는 종종 신경과학 책을 펼쳐든다. 기억이 어떻게 뇌 속에서 형성되고 소멸하는지, 어떤 신경망이 퇴화하는지 읽으며 엄마의 증상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러나 과학은 나를 위로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상을 설명할 뿐, 감정의 골짜기를 메워주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과학적 이해는 또 다른 빛을 준다. 엄마의 망각이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세포와 전기 화학적 신호의 연쇄 속에서 일어난 필연임을 깨달을 때, 나는 비로소 원망에서 벗어난다. 그것은 불교의 연기와도 닮아 있다. 원인과 결과는 서로 얽혀 있고, 누구도 책임의 주체로 분리되지 않는다.
어느 날 저녁,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환하게 미소지었다. 그 미소가 왜 지어졌는지는 나는 알 길이 없다. 물어도 좀 전의 장면에 대해 이미 망각의 강을 건넜을 것이기에. 그렇게 환하게 웃는 엄마를 본 것이 오랫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치매의 고통 속에서도 웃음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억을 잃어도, 웃음이라는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을 지탱하는 마지막 불씨였다.
지금의 나는 알 수 있다. 수용은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다른 얼굴이다. 엄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 역시 그 과정 속에서 변모한다. 과거의 기억을 되돌릴 수 없다면, 대신 현재의 감각을 깊이 느낀다. 그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
나는 오늘도 창가에서 엄마와 함께 앉아 있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든다. 엄마의 손을 잡으며 나는 속삭인다.
“괜찮아, 엄마. 우리는 지금 함께 있잖아.”
그 순간, 모든 슬픔이 잠시 물러난다. 그것이 연기(緣起)의 진실이고, 내가 이 길 위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다.